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6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5화
서바이벌로 데뷔하는 그룹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는 것이야 흔한 일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얻은 캐릭터와 화제성을 어느 정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미팅 한 번 만에 바로 촬영까지 들어갈 줄은 몰랐다.’
심지어 미팅 때도 별 이야기 못 들었다.
멤버끼리 뭘 하고 싶은지 인터뷰나 따간 정도였지.
‘그나마 숙소가 좋아서 다행인가.’
촬영을 의식한 건지 생각보다 숙소가 휘황찬란했다. 이렇게 보안 좋은 큰 평수의 신축 아파트에 묵는 건 처음이다.
물론, 모서리마다 카메라가 달려 있긴 했지만.
“아, 카메라!”
“안녕하십니까…?”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거실로 달려가던 놈들이 카메라를 보고 알은척했다. 사전에 당부받았던 행동이다.
‘너무 카메라 의식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부자연스럽다고 했던가.’
애초에 이 정도로 많으면 의식하지 않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
심지어 거실에 진입하니 무인 카메라 사각지대에 카메라맨과 제작진도 몇 사람 대기 중이었다.
듣기로는 리얼리티 초반 진행 컷을 위해 오늘만 잠깐 있다가, 무인 카메라만 두고 사람들은 철수할 거라고 한다.
“우선… 다들 합격을 축하합니다~”
“와~!”
“우리 인증샷!”
거실에 둘러앉은 합격자들은 박수를 치며 다 같이 사진을 한번 찍은 후, 리얼리티 진행을 시작했다.
“이야, 이렇게 있으니까 새로운 팀전이 시작된 것 같네요.”
“그 팀전이 5년이라는 것만 빼면 맞는 말씀 같습니다.”
“오~ 래빈이 잘 받는데?”
다행히 다들 자연스러워 보였다.
‘에서 맨날 카메라와 함께 생활한 덕을 이렇게 보는군.’
게다가 합격의 기쁨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오디션 촬영 당시보다 세 배는 덜 예민하고 너그러워진 놈들은 덕담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헤헤 웃었다.
“다들 참 고생 많았다.”
“맞아요. 이제 웬만한 건 다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즈, 즐겁게 지내자…!”
그리고 적당할 때, 카메라 사각지대의 제작진으로부터 불쑥 로봇 청소기가 튀어나왔다.
이번 리얼리티 프로그램 마스코트 겸 주요 PPL이었다.
“어?”
“쟤 뭐 가지고 있어!”
청소기의 헤드 부근에 반짝이 풀이 잔뜩 붙은 카드가 대롱거렸다.
손 빠른 차유진이 번쩍 청소기를 들어 올려 카드를 뽑았다.
“뭐 적혀 있나?”
“맞아요!”
차유진이 옆구리에 여전히 로봇 청소기를 낀 채로, 신나게 카드 내용을 읽었다.
“음음, ‘여러분은… 앞으로 카드를 통해 미션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그룹이 될 수 있도록, 미션을 클리어하세요!’”
“앗.”
“미, 미션.”
살짝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트라우마 반응이 따로 없었다.
류청우가 해탈한 것처럼 웃었다.
“하하, 오디션도 붙었는데 미션이 끝나질 않는구나….”
나는 떨떠름하게 생각했다.
‘…진정한 그룹이 되려면 소속사부터 정신 차려야 할 것 같던데.’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세 번쯤 소속이 바뀐다고 통보했다 취소하는 것을 반복한 Tnet이 떠올랐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괜한 헛바람이 든 것 같단 말이지.’
이번에 워낙 프로그램이 흥하다 보니, 아예 T1 차원에서 새로 직영 소속사를 만들어서 테스타를 굴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존에 Tnet 자회사와 계약된 사항이 있다 보니, 쉽사리 뺏어오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알력 싸움하느라 정신이 없는지 도리어 그룹은 방치 상태였다.
심지어 한 달 내로 데뷔곡 낼 거라는 소식은 오늘 아침에 기사로 접했다. 근데 우린 아직 매니저도 만나지 못한 상태다.
‘돌아버리겠네.’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때, 차유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오? 더 있어요! ‘오늘의 미션은… 자유시간’!”
“오오!!”
순식간에 분위기가 풀렸다.
나도 ‘오늘 얻은 휴식 시간이 무척 즐겁습니다.’ 리액션용으로 주변 사람들의 하이파이브를 받아주었다.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T1의 새 소속사로 들어간 건 이제 거의 확정된 상태.
짬 없는 신인은 권한이 없다.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
‘…제발 기획 파트에 친인척 꽂아 넣기만 하지 말아라.’
제발 높으신 분들이 영업, 회계, 운영은 알아서 해 드시고 기획만 건들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부디 경력직을 써주길 바란다.
“우리 방 구경! 방 잡자!”
합격자들은 ‘자유시간’ 카드를 든 채 일어나서 집을 투어하기 시작했다.
방 세 개에 화장실 세 개. 넉넉히 나눠서 쓸 수 있는 좋은 구성이었다.
그리고 각 침실 앞에 번호가 적힌 팻말이 붙어 있었다.
“테스타의 첫 번째~ 미니게임! 주제는 방 정하기!”
“똑같아.”
“저, 정말.”
자원해서 MC를 성대모사한 김래빈이 웃기다기보다는 PTSD를 자극할 만큼 비슷해서 또 숙연해졌다. 그래도 게임은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랜덤 요소가 짙은 몇 가지 보드게임을 통해 결정된 순서대로 박스에서 쪽지를 뽑았다.
“얘도 묘한 데자뷔가….”
“그러게…….”
가 겹쳐질 때마다 애들이 아련해지는군.
어쨌든, 나는 차유진에 이어 두 번째로 쪽지를 뽑았다.
1번이었다.
‘3번은 피했군.’
안방인 3번 침실은 세 명이 함께 쓰는 구조였다. 세 명보다야 두 명이 훨씬 나은 건 당연했다.
‘좀 조용한 놈이랑 같이 썼으면 좋겠는데.’
일단 차유진은 피했다.
‘큰세진만 피하면 되겠군.’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다음 순서였던 이세진이 1번 쪽지를 뽑았다.
“…….”
마가 뜨기 직전에 큰세진과 류청우가 치고 들어왔다.
“오~ 문대랑 세진 형님 같은 방~”
“둘 다 딱 부러지는 타입이라 잘 지낼 것 같다.”
“그쵸?”
눈치 빠른 놈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얼른 손을 내밀었고, 이세진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받았다.
‘이거 촬영은 좀 걱정되는데.’
보아하니 조용할 것 같은 점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2~3주는 돌아갈 텐데 그동안 과연 이놈이 훈훈한 척이라도 해줄지가 관건이었다.
‘제작진이 알아서 하겠지.’
오디션도 아니고 리얼리티인데 어련히 편집이 잘 들어가겠거니 싶었다.
논란이 나 봤자 제작진에게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얼른 뽑자~”
남은 방 배정은 극과 극으로 끝났다.
김래빈과 선아현이 한방.
“자, 잘 부탁해.”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 배틀을 하는 안 친한 두 놈을 보자니 저쪽도 나름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보다야 사정이 훨씬 낫다. 일단 둘 다 성격이 이세진 같지는 않으니까.
“오~ 우리 방 진짜 재밌겠는데요?”
“큰 방 좋아요!”
“그래! 잘 지내보자.”
그리고 3명이 쓰는 3번 방은…… 큰세진, 차유진, 그리고 류청우가 함께 쓰게 되었다.
벌써 시끄러웠다. 하지만 류청우는 그럭저럭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니 류청우 위치가 좀 떴군.’
류청우는 합격자 중에 차유진을 제외하면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없었다.
차라리 사람 많은 방에 들어가서 빨리 상황 잡는 편이 나을 것이다. 붙임성 좋고 연상한테 깍듯한 큰세진이 있으니 금상첨화겠지.
제작진의 사인에 따라, 짐을 풀고 쉬는 컷을 위해 곧바로 침실로 이동했다.
“침대 어느 쪽 쓰실래요?”
“아무거나 상관없어.”
“그래요?”
그러시다면야.
나는 곧바로 왼쪽 침대로 가서 짐을 풀었다. 거실 반대편이라 벽에 울리는 소음이 적을 것 같은 위치였다.
참고로 이세진도 이 침대를 보고 있었다. 덕분에 또 말이 없어졌다.
“…….”
서바이벌도 아니고 내가 뭐하러 네 비위를 눈치껏 맞춰주겠냐?
책 잡히지 않을 선에서 편한 대로 할 생각이다.
이세진은 말없이 이쪽을 보다가, 반대편으로 가서 짐을 풀었다.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짐 정리를 시작했다. 사실 별로 가진 게 없어서 정리할 것도 없긴 했다만.
아, 옷은 너무 없어서 좀 샀다. 결승에서 간소한 차로 내 팀이 이겨서 번 상금이었다.
듣기로는 결승전 시간 배분 문제 때문에 프로그램 끝나고 인터넷으로 공지해서 욕 좀 먹었다는데, 뭐 나야 돈은 줬으니 됐다.
참고로 김치냉장고는… 아직도 못 받았다. 사기꾼 새끼들이 따로 없었다.
‘좀 열 받는데.’
한숨을 참으며 마지막 옷을 갤 때쯤, 고요하던 방이 사람 말소리로 가득 찼다.
“짠!”
“역시 1번 방이 좋군. 1등이 묵어서인가.”
3번 방에서 온 놈들이었다.
류청우가 국대 출신이라 짐 푸는 요령을 알려줘서 순식간에 정리가 끝났다며, 차유진과 큰세진이 희희낙락 방을 휘젓고 다니는 것 같았다.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어?”
류청우가 웃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갈비!”
“족발!”
차유진이야 그렇다 쳐도, 큰세진 저놈은 일부러 분량 뽑으려고 더 저러는 것 같다.
…나는 문득, 리얼리티가 진행되는 동안은 이 소란스러움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 *
저녁은 굳이 같이 요리해서 먹어야 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2인분 이상을 요리해 봤다.
‘장 보러 가는 것보다야 요리가 낫지.’
일단 외출하면 말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인원이 더 소수니까.
게다가 세 대의 카메라와 함께 대형 마트에 입장하는 일은 제법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래도 요리는 제법 성공적이었다. 의외로 보조가 잘 들어오더라.
선아현 빼고.
“미, 미미안…….”
“미안할 건 없고.”
나 말고 본인 손한테는 좀 미안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세 번째로 자기 손을 자를 뻔한 선아현을 부엌에서 쫓아냈다.
불안해하던 선아현은 대신 식탁을 세팅하는 일을 주자 그제야 안심했다.
‘…자취 집에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집안일을 곧잘 하던 놈한테 왜 일하는 사람을 붙였나 했다. 요리를 괴멸적으로 못해서였군.
어쨌든 찜닭은 잘 완성되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류청우의 픽이었다.
‘외식비 아까워서 생일날 해봤던 건데 이렇게 써먹어 보는군.’
나는 데이터 팔이로 돈 벌었던 첫해 생일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맛있어 보입니다.”
“그러게.”
“…….”
이세진은 김래빈의 말에 특별한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요리에서는 협조적이었다.
‘칼을 들어서 그런가.’
나는 아직 들고 있던 식칼을 정리했다. 그사이 찜닭은 장보기 조의 손에 들려 식탁으로 이동되었다.
“오~ 찜닭 진짜 맛있다!”
“간장 양념이 잘 뱄고 부드럽습니다.”
식사는 성공적이었다.
“나도 요리나 배워볼까.”
“저 요리 잘해요.”
“어? 그럼 요리하지!”
“근데 장 보는 거 더 좋아요.”
차유진의 해맑은 발언으로, 리얼리티 도입부는 마무리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팀은 철수하면서 거실에 인형뽑기 기계를 하나 설치하고 갔다.
안에 든 인형들이 전부 뒤통수가 위로 향하게 놓여 있었다.
‘밤에 보면 약간 섬뜩하겠는데.’
어쨌든, 내일 거실에서 보고 놀란 다음에 저 인형 중 하나를 뽑아달라고 한다.
‘컨텐츠 뽑기군.’
내일 매니저도 만나고 드디어 소속사랑 앨범 미팅도 시작한다는데 저것까지 하려면 빠른 숙면은 물 건너갔다.
오늘 많이 자두겠다는 일념으로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이세진은 이미 침대에 들어가서 스마트폰을 보는 중이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너도.”
밥을 잘 먹어서 그런가. 아침보다 좀 사람이 누그러들었다.
나는 곧바로 귀마개를 장착하고 취침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본 시야에서는 구석에 카메라가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
‘내일 만나는 관계자들이 제발 개소리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리고 이 바람은 딱 반만 이루어진다.
* * *
매니저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 주고!”
서글서글하고 임계점이 높아 보였다. 그냥 봐도 애한테 손은 안 올리는 부류인 것 같았다.
‘하기야, 신인이라고 굴리기엔 이미 너무 떴긴 했지.’
“앨범 활동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나 말고도 매니저 한 명 더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넵!”
일단 먼저 온 사람이 잡아둔 분위기로 갈 확률이 높으니, 저 건에 대해선 일단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소속사 미팅.
이게…….
“곡은 우리, 능력 좋은 테스타가 맡아서 꾸려보는 겁니다?”
“……? 예?”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X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