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7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78화
옆자리의 문대는 약한 미소를 지은 채, 이미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
대화! 문댕댕과 근접거리에서 첫 대화!
‘허억.’
갑작스럽게 쭉 치고 올라오는 긴장 때문에, 방금까지 잘만 이야기하던 입이 반 박자 늦게야 열렸다.
다년간의 팬싸 경험은 다 소용없었다…….
“아, 안녕. 문대야.”
“음, 누나?”
“…!”
‘미친!’
다짜고짜 반말을 때린 자신을 때리고 싶으면서 누나를 들은 자신을 칭찬하고 싶은 복합적인 심정이 그녀를 지배했다.
“맞아!”
“반가워요. …이거 드실래요?”
“……!?”
문대가 책상 아래에서 빠르게 뭔가를 꺼내어 내밀었다.
…막대사탕이다.
그것도 그냥 편의점에서 파는 공산품이 아니었다. 이쁘장한 동물장식이 붙어서 귀엽고 큼직한 게, 전문점의 냄새가 물씬 났다.
“나 주는 거야…?”
“네. 그거 맛있더라구요.”
“…….”
캐릭터에 어울린다 어쩐다를 떠나서, 어쩐지 눈물이 왈칵 돌았다.
‘왜, 왜 네가 날 주고 있어…….’
문대 사정에 아직 정산도 못 받아서 돈도 없을 텐데 뭘 이런 걸 준비했단 말인가.
‘저것도 100개나 사려면 돈 좀 들었을 것 같은데…….’
그녀는 사탕을 쥔 채로 순간 감정에 잠길 뻔했지만, 다행히 박문대가 쉴 틈도 주지 않고 바로 다시 말을 붙였다.
“그거 제 건가요?”
“어? 어어… 응!”
그녀는 자신이 문대 차례라고 반사적으로 화관을 꺼내둔 것을 깨달았다.
‘자기소개 영상에서 닭발 대신 화관 아이템 쓰는 것도 보고 싶었다면서 부탁하는 대화를 짜왔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 박문대는 곧장 화관을 잡아다가, 자신의 머리에 호쾌하게 턱 얹었다.
“…!”
“…누나 사진 찍으시죠? 계속 쓰고 있을 테니까 걱정 마시고.”
박문대는 넋 나간 자신의 홈마에게 쓱쓱 사인을 해줬다.
“성함이?”
“어…. 내 이름.”
홈마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계정명이 아니라 본명을 말해버렸다는 것을 사인이 끝난 후에야 깨달았다.
‘문대한테는 계정 이름으로 받으려고 했는데…!’
하지만 이 생각도 다음 문대의 말에 증발했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좀 더 재밌는 성격이면 좋았을 텐데, 입담이 좋은 편이 아니라…… 뭐 궁금하신 거 있을까요.”
“아니, 음…….”
아냐 문댕아! 너 성격 충분히 재밌어!
…라고 대답해주고 싶었으나, 슬슬 ‘이동하실 게요’를 외치러 다가오는 스탭을 보며 그녀는 반사적으로 빠르게 물었다.
스탭이 계속 빡빡하게 구는 것을 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M, MBTI 뭐야?”
“그건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는데, 해보고 알려드릴게요.”
그 소득 없는 대화를 끝으로, 그녀는 스탭의 손짓에 강제로 책상을 벗어나게 되었다….
아니, 벗어나게 되었어야 했는데…?
“잠시만요.”
그녀는 아직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박문대가 일부러 그녀의 앨범을 한 손으로 꾹 누른 채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어어…….’
박문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다시 물었다.
“아까 건 대답 못 했으니까 무효로 치고, 다른 궁금한 점은 없으세요?”
순식간에 홈마의 뇌가 돌아갔다. 원래 준비해 왔던 대화 로그의 일부였다.
‘문대야 너 웰시코기 탈 쓰고 광고 인증 돌 때 우리 만났었는데 혹시 기억나니?!’
하지만 입은… 본능과 공익에 충실하게 움직였다.
“그, 다, 닭발 말고 좋아하는 음식 하나 딱 들면 뭐야? 다 잘 먹는 건 아는데!”
박문대는 피식 웃었다.
“닭은 다 좋아해요.”
“아, 진짜?”
“예. 다음에 한 번 살게요. 누나는 뭐 좋아하시는데요? 닭발?”
바, 방금 얘가 뭘 또 산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방금 닭발 이야기는 나한테 장난 건 거지? 어어억.
하지만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홈마는 황급히 대답을 내놓았다.
“나도 닭 좋아해!”
“입맛이 비슷한가 보네요. 좋아요.”
‘그리고 문대가 더 좋다’고 말하려던 홈마의 뒷말은 박문대의 다정한 대답에 날아갔다.
준비한 모든 주접이 아이돌의 선제공격으로 차단되었다…….
“이동! 하실게요!”
“음.”
스탭의 재시도에, 이번에는 박문대도 순순히 팬에게 앨범을 보내주었다.
그녀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한 손을 내밀며 사심을 가득 담아 외쳤다.
“악수 좀!”
“아.”
박문대는 곧장 손을 들어서, 악수 대신 손깍지를 끼워줬다. 그리고 웃으며 흔들었다.
“…!”
“잘 들어가세요.”
“……어어.”
세상에.
세상에…!
그녀는 흐늘흐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털썩 앉아서, 생각했다.
‘미쳤다 진짜….’
왜 저렇게 침착하고 잘해준단 말인가.
심지어 발성도 좋아서 고함을 지르지 않아도 찰떡같이 대화가 잘 오갔다.
‘첫 팬싸라서 성의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잘할 줄은!’
문댕이 이런 데 좀 무심한 타입일 거라고 각오한 건 정말 쓸모없는 짓이었다…!
그녀는 다 때려치우고 포효를 지르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으며 그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화관, 무조건 베스트 컷은 내가 찍어가고 만다.’
전투력이 폭주했다. 그녀는 묵묵히 카메라를 조작했다.
뷰파인더 창 너머로 화관을 쓴 박문대가 보였다.
근데 어느새 팬 사인회 스테디 아이템인 토끼 귀도 하나 걸치고 있다. 쫑긋한 하얀 귀가 노란 꽃들 위로 솟았다.
“어!”
어울려!
이후 박문대는 자신을 똑 닮은 솜뭉치 인형까지 받았다. 홈마는 반사적으로 매의 눈으로 크기를 어림짐작했다.
‘20㎝ 제작인가.’
문대는 약간 머뭇거리며 위치를 고민하는 듯했지만, 인형은 곧 어깨 위에 올라갔다.
귀여워!
셋 다 아주 끝내주게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었다. 사방에서 카메라 든 팬들이 문대를 외치며 카메라에 시선을 달라고 종용했다.
“문대야!”
“문댕!”
“박문대 여기!”
박문대는 다음 팬이 앨범을 들고 오는 틈을 이용해, 자기 카메라만 귀신같이 찾아내서 눈을 맞춰줬다. 물론 전직에서 우러난 짬이었다.
‘헐.’
하지만 그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박문대의 자기 카메라를 찾아내는 정확도에 놀란 덕분에, 홈마는 팬 몇 명이 사인을 받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아챘다.
‘시간을 최대한 써주네….’
자신에게 사인을 받는 팬이 다음 사람 차례가 넘어오기 전까지 남는 자투리 시간을 다 쓸 수 있도록, 끈질기게 버텨준 것이다.
본인이 끝자리라는 것을 고려한 게 분명한 선택이었다.
‘우리 문댕은… 아이돌의 별 아래에서 태어났다……. 반박은 받지 않는다…….’
천년만년 아이돌을 해야 할 직업 자세라고, 홈마는 감동했다.
뷰파인더 너머의 박문대는 이제 머니 건까지 받아서 쏘고 있었다. 흩날리는 가짜 돈 사이의 박문대를 보고 있자니, 정말 현금을 주머니마다 꽂아주고 싶었다.
‘평생 은퇴하지 말고 돈길 걸어야돼.’
그녀는 큰세진과 박문대가 서로에게 책상에 떨어진 가짜 돈을 던지는 것을 보며, 훈훈하게 생각했다.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다.
이번에 문대에게 사인을 받으러 이동한 팬이 내민 것은… 노란 웰시코기 모자였기 때문이다.
‘슬슬 갈아끼려나.’
좀 아쉽지만, 화관 샷을 어느 정도 찍었으니 만족할 때도 됐다.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문대가 웰시코기 모자를 쓰는 것을 기다렸다.
예상대로, 문대는 화관과 토끼 귀를 벗고 모자를 썼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문대는 자신이 모자를 쓴 것이 몇 컷 찍힐 만한 시간이 지나자, 도로 화관과 토끼 귀를 그 위로 장착했다.
“…!!”
순간, 홈마의 머릿속에 문대의 발언이 울렸다.
-계속 끼고 있을 테니까 걱정 마시고.
…그리고 정말 박문대는 팬싸가 끝날 때까지 아이템을 ‘단 하나도’ 빼지 않았다.
* * *
“…….”
“……흐.”
팬 사인회가 끝나고 이동하는 차 안이 조용했다. 100명과 연달아 떠드느라 지친 놈들이 다 뻗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조용히 인터넷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그래도 분당 10만 원어치만큼 했다고는 양심상 못 말하겠군.
나는 짧게 몇 사람을 회상했다.
-볼 찔러봐도 돼요…?
-문대야, 애교 삼종! 빠르게!
-이거 제가 달아드려도 괜찮을까요!?
-모닝콜! 모닝콜 한 번만 말해주면 안 될까?
음, 대부분 사전 조사를 통해 예상했던 요청들이었다. 덕분에 당황하지 않고 무사히 클리어한 것 같다.
‘좀 민망했지만… 할 만했고.’
가끔 박문대를 별로 안 좋아하는지 시비 걸려는 사람도 나왔는데, 그것도 그냥저냥 괜찮았다.
뭐, 내 얼굴을 주먹으로 뭉개려고 한 것도 아니고.
도리어 자꾸 돈 주고 온 사람들이 역으로 박문대에게 감명을 주려고 시도해서 더 당황했다.
‘돈 주는 쪽에서 굳이……?’
나는 웰시코기 탈을 쓰고 와서 ‘박문대’로 삼행시를 했던 학생을 반사적으로 떠올리다가, 곧 원래 하려던 일을 깨달았다. 반응 모니터링.
“음.”
스마트폰이나 켜자.
일단… 테스타의 첫 팬싸는 SNS에서 실시간 트렌드에 들었다.
‘이건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비공개였지만, 워낙 관심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거의 생중계 식으로 실시간 글이 올라왔었다.
-애들 팬싸 대응 미쳤어 나보다 애들이 더 많이 말함;; 나 차유진한테 호적 다 털리고 옴
-돌 말고 내 쪽에서 ‘아 진짜요’를 말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아 테스타 다들 엄청 긴장했엌ㅋㅋㅠㅠ 너무 귀여워! (짧은 인사 동영상)
-야 아현이한테 모노클 준 거 누구냐?
그저 감사합니다 삼대가 복 받으실 것 (사진)
-두루마기 걸친 청우 보고 가세요 당장 사극에 세자 저하로 출연해야함ㅠㅠ (사진)
대부분 분위기 좋은 첫 팬싸에 대해 즐거워하고, 못 간 팬들이 아쉬워하면서도 실시간 떡밥에 신난 분위기였다.
‘포스트잇 금지하자고 건의했던 건 괜찮은 선택 같고.’
시청자가 많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룹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상황이다.
혹여라도 누가 자기 맘대로 조작해서 올릴 수 있는 여지는 안 주는 게 맞았다.
‘덕분에 쓸데없는 루머는 수면 위엔 없군.’
대신 내가 한 짓이 꽤 화제가 됐는지, 단독으로 트렌드에 하나 올렸다.
[#6 문댕댕 묘기대행진]……가장 좋아요가 많이 된 글을 하나 살펴보자.
========================
: 아아아 여러분 다들 문댕댕 묘기 대행진 좀 보세요 팬들이 준 거 자기 머리에 탑을 쌓아놓음ㅋㅋㅠㅠ
완전 본인 물건에 애착 형성된 댕댕이 재질 아니냐고ㅠㅠ (사진)
========================
박문대가 팬 사인회가 진행될수록 온갖 소품을 머리와 몸에 계속 쌓는 컷을 연달아 붙여 편집한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막판에는 한 다섯 개쯤 겹쳐 쓴 것 같은데.’
용케도 안 무너졌다 싶다.
132만 원을 너무 의식해서 쓸데없는 만용까지 부렸나 약간 후회했는데, 웃음이라도 줬다니 다행이다.
흠, 관련 인기 후기들을 좀 더 살펴보자.
-박문대 진짜 미친놈임 와 스탭이 넘기라는데 안 넘기고 끝까지 나하고 손깍지하고 있어줬다 와 청혼할 뻔
-문대가 제 저녁밥까지 같이 골라줬다고ㅋㅋ 말씀드렸나요? 진짜 우리집 댕댕인 줄 알았잖아
-팬싸 후기 (7) 마지막으로 문대!
가위바위보해서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하자고 했는데 내가 졌음. 근데 문대가 쓱 보더니 자기 걸 바꿔서 져 줌ㅠㅠ 심장 떨어지는 줄
-문대에게… 뭉댕 솜뭉치를 준 것은… 올해 최고의 순간… 문대가 말랑거린다며 신기해했다구여 자기 손으로 챙겨갔다구 으아악 (사진)
“…….”
그… 솜뭉치라고 부르는 인형은, 촉감이 좋아서 스트레스볼처럼 주무르다 보니 얼결에 차까지 챙겨왔다. 지금은 가방에 잘 들어 있고.
어쩐지 오묘한 기분이 되었다.
‘받은 사람이 감격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자체 제작까지 해서 만든 물건을 선물해 준 쪽이 감격하고 있냐는 말이다.
어쨌든 고마운 일이니 감사하며 다음 글로 넘어갔다. 제일 공유가 많이 된 글이었다.
-아 문대가 첫 팬싸라고 인원수 맞춰서 사탕 준비해 왔어ㅠㅠ 아니 우리 댕댕이 언제 다 커서 이런 것까지ㅠㅠ 누나가 가보로 간직한다! (사진)
‘…사인 끝나고 그냥 계속 앉아 있으면 심심할까 봐 요깃거리라도 하시라고 가져간 건데.’
어째 한 분도 안 드시더라.
어쨌든 즐거워하시니 좋은 일이었지만, 그 밑에 방금 달린 글이 문제였다.
└아.. 난리나서 뭐 줬나 했더니 사탕이었어요? 전 또 대단한 거라도 준 줄…
└? 님 저 아세요?
└아니요 근데 안타까워서 달아봐요ㅎ 막 주식 사면서 돈 엄청나게 쓰셨을 텐데, 겨우 사탕 하나 준 가성비 아이돌한테 감격하시고…ㅠ 자존감 좀 챙기셔요!
└별 이상한 사람 다 튀어나오네; 블락합니다~
‘흐음.’
나는 탭을 조작해서 인터넷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확인해보니 슬슬 커뮤니티 인기글마다 비슷한 익명 계정으로 개소리를 달기 시작했다. 타이밍으로 보아 조직적으로까지 느껴지는 행보였다.
-좀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거 나만 그래? 첫 팬싼데 멤버 중에 자기 혼자만 저렇게 준비해 올 줄은;
-겨우 막대사탕으로 가성비 챙기는 것 같아서 꺼림칙함 팬들 놀리나 싶고
-팬싸 온 사람들한테만 준 거지?ㅋㅋ 돌이 나서서 돈 쓴 사람 순으로 팬 계층화시키네… 하
-팬싸템 저렇게 쌓아서 한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예쁘지도 않고… 그냥 1위로 데뷔했는데 실제 팀 내 인기가 그만큼 안 되니까 되게 의식하는 느낌임
이럴 줄 알았지.
‘어떻게 이 새끼들은 패턴이 한결같냐.’
다만 불지옥 같던 가 끝나니까 원색적인 말이 잘 안 먹히는 걸 확인했는지, 그나마 눈치 보면서 살살 긁는 것 같았다.
사실 오디션도 끝난 마당에 이런 놈들이야 무시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재밌어하던 사람들한테 초를 치니 문제다.
‘빨리 해결해 두자.’
나는 혀를 차며 테스타의 SNS를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