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8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86화
천 아래 감춰져 있던 것은… 묵직한 명패였다.
-???
-? 뭐얔ㅋㅋㅋ
기업 회장의 책상 위에나 있을 법한 고급스럽고 거대한 자개 명패에는 궁서체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러뷰어] [Loviewer]류청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랑을 담아 저희를 지켜봐 주시는 팬분들을 생각하며 정했습니다.] [LOVE plus Reviewer! 입니다~]차유진이 부가 설명을 붙였다. 그리고 뿌듯한 눈으로 거대 명패를 바라보았다.
[저거 주문? 주문 제작했어요!] [지금까지 저희한테 투자해 주신 우리 팬분들이 저희한테 최고라는 뜻으로… 아, 그리고 W라이브 끝나면 추첨으로 팬분께 보내드릴 예정입니다!]당연한 말이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명패는 뜬금없어서 웃기기만 했다.
참고로 박문대는 끝까지 반대했으나 다수결로 밀려서 그냥 포기했다.
어쨌든 테스타가 너무 뿌듯해하는 것 같았기에, 팬들은 그냥 웃는 이모티콘과 하트로 댓글을 밀어버렸다. 귀여웠으니까.
물론 SNS에서는 치열한 상황중계가 오갔다.
-W앱에 명패 올드하니 가져다 치우라고 말해주고 싶죠? 하지만 첫 W앱이잖아요 봐줍시다ㅠㅠ 우리 한 번만 봐주자!
-아 ㄹㅇㅋㅋ만 치라고~
-어지간히 X구린게 나오지 않는 이상 분위기 파악하란 말이야~
-일단 이름은 괜찮으니 명패는 의외의 귀여움이라고 납득 가능한 부분임 ㅇㅋ?
덕분에 팬덤명에 대한 반응이 궁금한 나머지 스마트폰 화면에 가까이 갔던 멤버들은 ‘ㅋㅋㅋ’과 ‘ㅠㅠㅠ’ 그리고 ‘사랑해’ 같은 글 위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
[보고! 반응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다, 다행이에요…….] [좋았어!]테스타는 들뜬 얼굴로 다음 발표를 이어갔다.
[그럼 이어서 공식 색을 발표하겠습니다!]* * *
테스타의 첫 W라이브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원래는 2시간 예정이었으나, 멤버들이 첫 번째 W라이브를 대본대로만 진행해서 끝내기 아쉬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반에는 꽤 많은 TMI가 풀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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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W앱에서 테스타가 풀어준 본인들 MBTI 정리ㅋㅋㅋ]: 류청우 ESFJ / 이세진A ISFP / 선아현 ISFJ / 큰세진 ENTJ / 박문대 INTJ / 김래빈 INFP/ 차유진 ENTP
이런 거 안 해본 애들이 라이브로 하면서 신나 하는 게 별미였다 정말… 테스타는 W라이브까지 맛집이야…
※정식 테스트 아니었으니까 재미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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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겹치는 애들 하나도 없어ㅋㅋㅋㅋㅋ
-ㅠㅠㅠㅠ애들 오늘 너무 귀여웠어 W앱 자주 켜줬으면 좋겠다
-외향 내향 진짜 귀신같이 나왔다 특히 확신의 E 큰세진ㅋㅋㅋㅋㅋ
-청우 ESFJ 설명 나올 때마다 애들이 똑같다고 감탄하는데 완전 선생님 좋아하는 유치원 애기들 같았잖아ㅠㅠ 아이고 귀여운 것들
-공감능력 낮은 것 같은 애들이 T네. 어울린다.
└?? MBTI로 인성 궁예질하는 멍청이가 있다?
└ㅋㅋㅋㅋㅋㅋ 인류 절반 묶어서 후려치기 오졌다~
물론 드디어 정해진 팬덤명을 자축하는 분위기가 가장 강했다.
-테스타 솔직히 테스터 생각나서 찝찝했는데 팬들한테 사랑 넘치는 리뷰 작성자 컨셉 잡아준 내 가수 덕에 다 잊어버렸다
└이거 맞음 테스타-러뷰어 완전 운명의 페어 반박 안 받습니다?
-내일 법원 문 여는 대로 이름을 김러뷰로 개명할 예정임ㅇㅇ 사랑스럽고 일코될 듯
└ㅋㅋㅋㅋㅋ미쳤나ㅋㅋㅋ
하루에 둘이나 신청하면 이상하잖아 나만 할 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
-시간대별로 하늘색 따서 쓰리톤으로 팬덤 컬러 만든 것도 괜찮았어. 이번 앨범 세계관하고 연관되는 느낌?
└맞아 어차피 요새 컬러야 유명무실한 느낌이기도 하고ㅋㅋㅋ
-사실 우리 응원봉이 엄청 눈에 띄게 나올 것 같아서… 컬러는 아무래도 좋을지도…
└ㅋㅋㅋ맞아ㅋㅋㅋㅋ
└나 벌써 공방 기대 돼 진짴ㅋㅋㅋㅋ
테스타의 팬들은 첫 W라이브에서 터진 여러 떡밥을 즐기며 일요일을 보냈다.
게다가, 마침 이번 활동 마지막 팬 사인회가 진행 중이었다.
-W라이브 직후에 팬싸 괜찮으려나ㅠㅠ
-얘네 스케줄 진짜 못 잡는다;
테스타를 걱정하고 소속사를 욕하면서도, W라이브 관련 이야기를 질문해 보겠다는 이야기에 또 후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었다.
다행히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어떤 분이 래빈이한테 야구방망이 모양 마라카스 줬어ㅋㅋㅋㅋ 래빈이 부끄러워서 죽으려고 해ㅋㅋㅋ (사진)
-문대한테 강아지 그려달라고 해봤습니다. 음… 암튼 문댕댕이 강아지라고 하니까 이게 앞으로 강아지입니다. (터진 호떡 같은 그림 사진)
-오늘은 아현이가 선물 준비했다ㅠㅠ 사슴 캐릭터 펜이야ㅠㅠ 나 이걸로 사인받아왔어! (사진)
그리고 테스타도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간다는 느낌 덕에 더욱 활기차게 팬 사인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 * *
“문대야 나 응원봉 여기 그려주면 안 될까?”
“…그럼요. 여기요?”
“응!”
오늘만 한 열 번은 비슷한 요청을 받는 것 같다. 나는 떨떠름한 기색을 감추며 사인 옆에 응원봉 최종 버전을 그렸다.
…내가 그렸지만 뭔지 도저히 못 알아보겠다.
“어떡해! 너무 좋아…….”
허술한 모습이 인간적으로 보여서 정이 가는 건가…….
‘아니면 너무 못 그리다 보니 희소성이 있어서인가.’
어느 쪽이든 받는 쪽이 좋다면야 상관은 없다만, 봉이 김선달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은 피할 수가 없다.
‘시간만 때운 느낌인데.’
나는 최대한 빨리 그림을 마치고 다시 물어봤다.
“다른 거 또 보고 싶은 거 없으세요?”
“헉, 그럼 설레는 말 적어줘!”
“흠, 설레는 말…….”
이런 구체적이지 않은 부탁이 고민에 시간을 쓸 수 없는 환경상 제일 까다로운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팬 사인회 한 타임 하면 두 번 이상은 듣는 말이기 때문에 슬슬 속도가 붙었다.
나는 곧바로 응원봉 아래에 글을 적어 내렸다.
[오늘 박문대의 저녁 일정 : 팬사인회에서 만난 러뷰어 생각하기]“허어엉…….”
“또 봐요.”
팬분은 흐느적거리며 스탭에게 다음 자리로 이동 당했다. 이미 한 번 버텼기 때문에 이번에는 스탭도 단호해서 별수 없었다.
‘역시 상대와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을 언급하는 게 제일 효과가 좋군.’
약간 개인적 느낌을 넣는 게 더 좋긴 한데, 도저히 20초 안에 생각날 것 같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저녁에 진짜 떠오를 것 같다.’
나는 목 뒤를 쓰다듬으며 다음 사람을 기다렸지만, 아직 올 기미가 없었다.
“세진이는 무대 잘하는 비결 있어요?”
“음~ 누나가 좋은 점 말씀해 주시면 그걸 비결로 하면 되겠다!”
“와아악!”
큰세진이 거의 무슨 묘기처럼 대화를 잇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탭이 손도 못 쓰는 게 대단했다.
‘시간이 떴군…….’
이름을 부르는 카메라에 시선을 주고 있자니, 방금 건너간 팬이 선아현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선아현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는지, 목소리에 별 감흥이 없었다.
“서, 성함이 어떻게 되, 되시나요?”
“네?”
팬이 약간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되묻는 게 들렸다.
“그, 이, 이름이요…!”
선아현은 다시 한번 물었지만, 약간 더 작아진 목소리는 도리어 좀 뭉개졌다. 상대의 말투에 약간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잘 안 들리는데요…….”
“죄, 죄, 죄송해요.”
“아뇨.”
“…….”
느낌 안 좋은데.
이후로 선아현의 말이 없어졌다. 힐끗 보니, 그래도 사인은 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드디어 큰세진의 말이 끝났는지, 내 앞으로 다른 팬이 왔다. 아직도 큰세진과 손을 흔드는 중인 팬이 앨범을 내밀길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이, 이거…….”
“아.”
선아현이 준비한 선물을 내민 모양이었다.
그리고, 약간 기분이 상한 것 같은 목소리가 거절했다.
“아, 됐어요. 괜찮아요.”
“…!”
선아현 앞에 앉아 있던 팬은 그대로 자리를 떴다.
사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언제나 친절한 사람만 만나는 직업은 없다. 저 정도면 면전에서 욕 들은 건 아니니, 어쩌면 그냥 기분 좀 나쁘고 넘길 수도 있다.
문제는 X나게 감이 싸하다는 것이다.
‘말더듬증, 낯선 또래, 거절.’
키워드가 아주 트리플 크라운이다.
선아현 트라우마 스위치 위에서 누가 탭댄스를 춘 수준이다.
“…….”
옆을 보니, 선아현이 바짝 굳은 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X발…….’
저건 조금만 지체하면 들킨다.
나는 일단 선아현 손에 들린 펜을 뺏었다. 그리고 바로 포장을 뜯어버렸다.
“……!”
“이거 아현이가 준비한 선물인데, 저도 이걸로 사인해드려도 될까요.”
“와! 너무 좋지!”
나는 곧장 사인을 시작하며, 선아현을 대화에 끌어들였다.
“그리고 아현이가 누나한테 지금 제가 쓰는 것도 주고, 포장된 것도 하나 더 준대요.”
“헐…?! 진짜?”
“그럼요. 맞지?”
“…네, 네!”
선아현이 정신을 차렸는지, 대답을 시작했다.
‘일단 굳은 건 풀렸고.’
“어어어, 너무 좋은데, 나 왜 두 개 받아?”
“큰세진의 말을 오래 받아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에 드리는 보답입니다. 저희 멤버가 말이 좀 많죠.”
“야, 너무 하네!”
“으하하하!”
용케 듣고 큰세진이 한번 추임새를 넣고 사라졌다.
이쯤 되니 모든 게 농담이다 싶은지, 팬분은 신나게 웃으며 펜을 챙겨갔다.
“너무 고마워~ 근데 내가 누난 건 어떻게 알았어?”
“옆에서 큰세진이 한 열 번은 말하던데요?”
“하하핫…!”
민망한 듯 웃은 그 팬분은, 다행히 다음 순서인 선아현한테도 성의껏 말을 걸고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선아현은 다음 사람이 오기 전에 안정을 되찾았다.
‘일단 넘겼다.’
다행히 그날 팬사인회가 끝날 때까지 다른 이변은 없었다.
* * *
“너 괜찮아?”
“…괘, 괜찮아.”
숙소에 돌아가는 차 안, 선아현의 상태는 확실히 아까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그리고 연거푸 사과의 말을 중얼거렸다.
“미, 미안… 내, 내가 크, 큰일 낼 뻔, 한 거지…….”
“그런 건 아니고.”
좀 귀찮은 스캔들이 될 순 있겠지만, 그룹에 타격이 될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저놈 멘탈이 먼저 박살 날 것 같다는 점이 문제였다.
‘팬싸 잡히면 또 아까 같은 상황이 올까 봐 계속 걱정하겠지.’
그러다 ‘근성’ 특성이 비활성화라도 되는 날에는… 정말 그룹에 타격이 갈 수 있었다. 댄스 라인에 구멍이 날 테니까.
“혹시 상담받아 볼 생각은 없어?”
“……시, 시, 시간도 없고….”
“소속사에 말하면 좀 빼줄 것 같은데. 요새는 이런 문제로 아예 활동 쉬는 사람도 많아.”
활동 시작하고 4주는 채웠으니, 선아현이 못 해 먹겠다고 나오면 어느 정도 편의는 봐줄 것이란 뜻이다.
하지만 선아현을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고, 곧 휴가 주신다니까, 그, 그때… 할게.”
“…….”
그거 언플용이고 한 사흘 주고 생색낼 것 같던데.
그냥 지금 받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해보려는데, 선아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 지금은… 하기 싫어. 아, 아직 활동 중이고, 스, 스케줄, 빠지기 싫고.”
단호하군.
본인이 그렇다니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처음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흠… 그래. 알았어.”
“으응…….”
‘분위기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선아현 부모님께 연락해 버리면 되겠지.’
음악을 틀어놓은 차 안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눈 탓에 대화는 새어나가지 않았다. 나는 팝송을 따라 부르는 차유진 목소리에서 귀마개를 사용해 도망치기로 했다.
“…….”
그리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
거실이 웬 풍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