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enders score goals well RAW novel - Chapter 151
마드리드 팬들에게 나의 진짜 축구를 보여주지
“얼굴도 참 두꺼운 녀석이구나. 나를 쓰러트리고 골까지 넣어 놓고서 유니폼을 바꾸자고 해?”
“게임 끝나면 다 같은 축구인 아닙니까~ 선배님.”
나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말디니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좋다. 그 배짱 마음에 들었어.”
말디니가 흔쾌히 유니폼을 벗어주었다.
우리가 유니폼을 교환하자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월드클래스 레전드 수비수가 젊은 동양 수비수에게 유니폼을 벗어주는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이봐. 동양 친구. 나중에 밀란에 와서 뛸 생각 없니?”
“아… 기회가 되면 좋죠.”
“세계 최고의 수비수가 되고 싶다면 반드시 세리에A를 경험해 봐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
말디니가 나의 어깨를 두드리곤 피치를 떠났다.
그는 나의 마음에 호기심의 씨앗을 심었다.
“세리에A라… 수비수들의 로망이지.”
말디니가 확실히 어린 선수 보는 눈이 있는 모양이다.
훗날 그는 암흑기에 빠진 AC밀란의 디렉터를 맡아 싸고 좋은 젊은 유망주들을 대거 영입해서 키워내며 혼자 AC밀란의 부활을 이끈다.
그리곤 구단주에게 짤렸지.
“역시 베컴의 길이 맞아. 감독, 단장, 디렉터 다 필요 없고 구단주가 최고야.”
나는 돌아오는 전용기에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
8일 후.
AC밀란과의 챔스 2차전이 마드리드에서 벌어졌다.
그 사이에 오사수나와 리그 경기를 했는데 또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2대0으로 승리했다.
앞으로 9번의 리그 경기가 남았다.
이 기세를 이어가면 충분히 바르셀로나를 누르고 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여기에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달성한다면.
나의 이번 시즌 스토리는 최악으로 시작해서 최상으로 끝나게 된다.
[06/07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레알 마드리드 대 AC밀란]15일 동안 4경기를 치렀지만 컨디션은 최고였다.
오히려 부족했던 실전 감각이 올라와서 올 시즌 중 가장 몸 상태가 좋았다.
“다녀올게. 현지야.”
“잘 다녀와요~ 오빠~”
저녁 경기가 있는 날은 오전 11시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현지가 차려준 스태미너 영양식을 천천히 꼭꼭 씹어 먹고 홍차를 마시고 훈련장으로 떠났다.
현지는 경기장에 오고 싶어 했는데 내가 집에서 티비로 보라고 했다.
AC밀란 과격파 울트라들이 대거 마드리드에 입성했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동네 사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 부인들과 한집에 모여 경기를 보기로 했다고 한다.
현지는 이곳으로 이사 와서 선수 부인들과 쇼핑도 다니고 식당도 다니며 어울려 다녔는데 영 불편해했다.
다들 모델 출신의 화려한 여자들이었고 파파라치까지 따라붙어 피곤했다.
“그래도 당분간 따라 다녀. 그것보다 스페인어와 스페인 문화를 빨리 배울 방법은 없으니까. 그들의 모든 걸 흡수해.”
현지는 그녀들 덕분에 스페인어가 빠르게 늘었다.
또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군. 베컴의 선택이 미래와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베컴은 훗날 미국 마이애미에서 축구 구단주가 된다.
마이애미는 영어보다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할 정도로 히스패닉 도시로 유명하다.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 익힌 스페인어와 스페인 문화는 미래에 그가 마이애미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호감을 사는 데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나도 훗날 어느 팀의 구단주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부터 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AC밀란이 오늘 챔스 4강 진출권을 두고 마지막 대결을 펼칩니다!]양 팀이 1차전과 같은 포메이션에 같은 멤버로 나왔는데 인자기만 선발로 바뀌었다.
그만큼 안첼로티 감독은 2차전의 핵심을 인자기로 보았다.
문제는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안첼로티 감독만은 아니었다는 거다.
“안첼로티는 시작부터 인자기를 투입해서 우리의 뒷공간을 노릴 거다. 1차전에서 우리 센터백 라인이 공격적이라는 걸 파악 했으니까.”
“…”
경기 전.
카펠로 감독이 나와 라모스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또 뒤로 물러나서 라인을 유지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지시를 내렸다.
“1차전보다 라인을 더 올리도록 해. 단. 둘의 호흡이 완벽하게 맞아야 한다. 틀리면 바로 실점이야. 할 수 있겠지?”
“예! 감독님.”
카펠로는 놀랍게도 우리에게 전진 수비를 주문했다.
자신의 제자였던 안첼로티 앞에서 물러나는 게 쪽팔린 건가.
어쨌든 나와 라모스는 환영했다.
삐이이이익- !
[전반전이 밀란의 선공으로 시작됩니다!]시작부터 라모스와 나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라인을 끌어올릴 타이밍을 잡았다.
그런데.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
뻐어어어엉- !
[피를로의 전진 패스! 인자기가 라인을 파고듭니다! 어!]삐이이익!
[주심이 오프사이드를 선언합니다! 부심의 깃발이 올라갔어요.]인자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프사이드를 깨트리는 기술만큼은 그가 세계 최고였기 때문이다.
삐이이익- !
나와 라모스는 원톱 인자기보다 빨랐다.
우리 둘은 앞으로 현대 축구에서 중요해지는 빠른 센터백의 전형이었다.
우리 둘의 주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밀란이 후방에서 전진 패스를 날리는 순간 빠르게 전진해서 오프사이드 트랩을 걸 수 있었다.
라모스와 나의 호흡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척척 들어맞았다.
뻐어어어엉- !
[나영웅이 높은 위치에서 왼쪽 측면으로 패스를 날립니다! 오버래핑하는 카를로스! 크로스! 판니 슈팅! 아~~ 살짝 빗나가네요!] [레알 마드리드 오늘 굉장합니다. 마치 카펠로 감독의 초창기 시절 축구를 보는 것 같네요.]카펠로 감독도 처음부터 경직된 수비 축구를 한 건 아니다.
처음에는 그의 평생 라이벌 아리고 사키 감독처럼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축구를 했었다.
센터백이 전진해서 적극적으로 빌드업을 하고 풀백이 윙어처럼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서 공격하는 전술로 유럽 축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명성이 높아질수록 카펠로 감독은 신중해졌다.
더 큰 영광을 찾아서 모험을 하기보다는 지금의 영광을 지키려고만 했다.
그런데.
나영웅과 라모스라는 두 젊은 수비수의 등장에 내리막길을 걷던 카펠로도 용기를 얻었다.
콰아아앙!
[볼 빼앗는 라모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패스합니다! 베컴이 받아서 얼리 크로스! 밀란 골문을 위협합니다! 호쾌한 축구에 열광하는 마드리드 팬들!]“우와아아아아!”
[놀랍네요. 마드리드의 화려한 공격 축구가 살아났습니다.]AC밀란 선수들은 당황했다.
나와 라모스가 라인을 극단적으로 올린 효과는 컸다.
최전방과 최후방 사이가 좁아지며 밀란 선수들이 공을 소유하기 힘들어졌다.
특히 앞 공간이 있어야 속도를 낼 수 있는 카카가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고립되었다.
자신감을 얻은 레알 선수들이 파상 공세를 펼치며 밀란을 쓰러트리려고 하는데.
한 남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뻐어어어어엉- !
[피를로의 크로스인가요!? 아! 슈팅입니다! 슈팅이에요! 어! 어!]처어얼썩!
피곤한 얼굴의 피를로가 세상 귀찮은 표정으로 오른쪽 측면에서 볼을 차올렸다.
골대까지 거리는 대략 40미터.
다들 침투하는 인자기와 카카를 찾았는데 둘은 온사이드에서 멀뚱멀뚱 날아가는 공을 구경하고 있었다.
당했다는 걸 알아차린 카시야스가 뒤로 다이빙했지만 피를로의 슈팅은 얄밉게 손가락을 통과해 골망에 꽂혔다.
[골! 원더 골이 터졌습니다! 피를로의 장거리 슈팅이 레알 마드리드 골망을 흔듭니다!] [굉장하네요. 오직 피를로만이 가능한 골입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충격이 크겠어요.] [레알 0 대 1 밀란]전반전 32분.
어이가 없었다.
화려한 공격 콤비네이션으로 밀란을 그로기상태까지 몰았는데 피를로의 카운터 한방에 와르르 무너졌다.
“무회전 킥이었어…”
나는 피를로가 찬 슈팅이 날아가는 걸 보았다.
축구공에 아디다스 마크와 챔피언스리그 로고가 선명하게 보일 만큼 완벽한 무회전 킥이었다.
공기를 타고 둥실둥실 날아갔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도 카시야스가 막지 못한 거다.
삑! 삑! 삐이이익!
[1대0! 밀란이 1점 앞선 채로 전반전이 종료됩니다. 카펠로 감독은 허무하겠어요. 모처럼 초창기 시절 과감한 공격 축구를 시도했는데 우세한 경기를 하다가 일격을 당했습니다.]터널을 따라 라커룸으로 돌아가며 생각에 잠겼다.
카펠로는 분명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 거다.
후반전에는 엉덩이를 뒤로 빼고 수비에만 집중하다가 세트 피스에서 골을 노리라는 지시를 하지 싶었다.
그런데.
“나영웅. 후반전에는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공격에 가담해라. 대신 반드시 공을 라인 밖으로 처리해서 인플레이 상황을 끝내야 한다. 알겠지?”
“아. 예. 알겠습니다. 감독님.”
귀를 의심했다.
카펠로는 내가 웨스트햄에서 했던 오버래핑 중거리 슈팅 전술을 지시했다.
“연장전은 없다고 생각해라. 반드시 후반전에 경기를 뒤집는다. 알겠나?”
“예!”
놀랄 일이었다.
이 양반이 왜 이런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도 마지막 족쇄를 풀었다.
“좋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모인 마드리드 팬들에게 나의 진짜 축구를 보여주지.”
[후반전이 시작됐습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과연 어떻게 나올까요?] [카펠로 감독이라면 라인을 내릴 겁니다. 추가 실점 가능성을 차단하고 어떻게든 세트 피스로 1점을 넣어 동점을 만들고 연장전까지 가서 어떻게든 1점을 우겨 넣는…] [어. 나영웅 선수가 드리블하며 계속 전진하네요. 뭘까요?]나는 카시야스에게 볼을 받아 직접 공격을 지휘했다.
인자기를 지나쳐 편안하게 공을 몰고 올라오자 마당쇠 가투소와 세드로프가 양쪽에서 덤벼들었다.
뻐어어어엉- !
[나영웅의 기습적인 로빙 패스! 단번에 판니스텔루이에게 날아갑니다! 찬스에요! 그대로 터닝 슈팅! 아! 또 살짝 빗나갑니다!]“젠장.”
판니의 슈팅을 수비하는 네스타와 말디니를 보고 깨달았다.
우리는 속고 있었다.
공격이 계속 위협적인 슈팅까지 이어지니까 조금만 영점을 맞추면 골을 넣을 수 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아니야! 틀렸어! 이런 식으론 절대 골을 못 넣어. 둘이 만들어놓은 늪에 빠져들고 있었어.”
“무슨 개소리야?”
“저 둘을 봐. 말디니와 네스타는 교묘하게 각도와 거리를 통제해서 우리 공격수들의 영점이 빗나갈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어.”
“뭐야!?”
이탈리아 수비수들의 수준은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