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0
9화. 은탑의 사정 (2)
딸랑.
문에 매달린 종소리와 함께 김명희와 김명진이 들어가자 임소영이 외쳤다.
“어서 오세요! 편한 곳에 앉으세요!”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열두 개의 테이블 중 반 이상이 차 있었다.
김명희와 김명진은 테이블 앞에 앉았다.
“뭘 드릴까요?”
물과 물수건을 세팅하며 임소영이 물었고, 김명진이 말했다.
“짜장면 두 그릇하고 탕수육 하나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임소영은 주방 안에 주문을 넣었고, 김명희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여기 리모델링한 곳이야?”
“아니, 개업한 지 오 년 정도 되었지만 리모델링은 없었다고 하던데?”
“그럼 주인이 참 부지런한가 보네. 가게가 엄청 깨끗하잖아. 천장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때였다.
김명희는 뭔가 오싹한 기운을 느껴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긴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한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저 남자가 방금 오싹한 기운을 느끼게 한 건가?’
김명희는 A급 각성자답게, 더블 능력의 소유자였다.
A급은 능력이 두 개였고, S급은 무려 세 개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로급 각성자는 몇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 능력이 미지수라서 제로(0)급이라 불렀다.
그녀의 능력 중 하나가 마력 및 오러를 감지하는 능력이었고, 상당히 뛰어났다.
하여 아무리 상대가 힘을 숨긴다 하여도 그 기운을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 김명희 그녀를 오싹하게 만든 기운은 분명 그 남자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은 그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저 남자가 순간적으로 기운을 숨긴 건가?’
그 남자는 손에 화려한 제복을 입은 남자 바비 인형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어색한 표정으로 앞의 여자아이와 인형 놀이를 해 주고 있었다.
‘저 인형이 아직도 있구나. 나 어릴 때 많이 가지고 놀았었는데…….’
김명희는 피식 웃었다.
‘나를 오싹하게 만들려면 S급 각성자는 되어야 하는데, 저 남자가 그럴 리가 없잖아. 피곤해서 그런가? 착각했나 보네.’
그 남자는 잘생기기는 했어도 평범한 남자임이 틀림없었다.
그때, 임소영이 탕수육을 가지고 왔다.
“제 딸이랑, 알바생이에요.”
“따님이 참 귀엽네요. 그런데 알바생이요?”
김명희가 되묻자 임소영이 웃으며 말했다.
“숙식하며 일하기로 했거든요. 정식으로 고용하는 건 며칠 뒤이고요.”
“그렇군요.”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김명진은 탕수육을 보며 말했다.
“누나는 찍먹이야? 부먹이야?”
“너 내 동생 맞니? 누나 취향도 몰라?”
“하하하…….”
“누나는 부먹이다.”
“그럼 소스는 반만 뿌릴게.”
김명진이 탕수육의 반을 나누어 소스를 뿌리는 동안 김명희는 짜장면을 비벼 한입 가득 넣었다.
“어머!”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먹어 본 짜장면 중 단언컨대 최고로 맛있었다. 왜 미식가로 소문난 백은호가 추천한 곳인지 알 것 같았다.
“정말 맛있네!”
“그렇지?”
김명희는 다시 젓가락으로 짜장면을 크게 말아 입에 넣었다.
그녀는 양춘각의 단골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편, 가게 한쪽에서 오늘도 유하영과 인형 놀이를 하고 있던 강소는 김명희와 김명진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흠, 두 사람의 기운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고수라 부를 만한 기운을 지녔군. 혹시 저들이 각성자들인가?’
실력을 살피기 위해 살짝 기운을 풀었는데, 김명희가 알아차렸는지 뒤를 돌아보았고 강소는 얼른 자신의 기운을 숨겼다.
‘생각보다 감이 좋군.’
그때, 유하영이 그의 손등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오빠, 왕자님이랑 공주님이 무도회에 왔으니까 춤을 춰야 해.”
“알았다. 어떻게 하면 되지?”
“이렇게 딴 따라라 딴따 딴딴딴…….”
유순태는 여전히 주방에서 웃겨 죽겠다는 표정이었지만, 강소는 진지한 표정으로 유하영이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 인형 놀이라는 것…… 하다 보니, 제법 재미가 있군.’
* * *
성진호는 호출을 받아 은탑의 69층으로 올라갔다.
사실상 은탑의 꼭대기라 할 수 있는 그곳은 각성자 협회장실이었다.
협회장실 앞에 도착하자 검은색 슈트를 입은 네 명의 보안 요원이 서 있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각성자 협회의 협회장이라는 위치는 사실상 대한민국의 대통령보다 더 위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대통령보다 더 철저하게 경호를 받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답답하다며 투덜대었지만 말이다.
“누구십니까?”
“지원 1과장 성진호입니다.”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각성자 협회장실 앞에도 은신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잡아내는 각성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여러 절차가 진행되었지만 성진호는 불만을 내뱉지 않았다. 왜냐하면 꼭 필요한 절차였기 때문이다.
삼 년 전, 각성자 협회장 암살 미수 사건을 떠올리면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그였다.
범인은 블랙맨이었고, 현장에서 체포하여 재판에 넘겨졌지만, 보안과장은 옷을 벗어야 했다.
그리고 감찰 1과와 집행 1과, 그리고 지원 1과는 뒷수습을 하느라 엄청난 격무에 시달려야 했다.
그 일을 또 겪느니, 보안 절차를 열 배는 더 강화시키는 게 나았다.
“되셨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실례했습니다.”
문이 열리고 성진호는 협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협회장은 책상에 앉아 있었다.
흐트러짐 없이 와이셔츠의 첫 번째 단추까지 채운 오십 대 후반의 젠틀한 신사였다.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군.”
협회장이 고개를 들어 성진호를 보며 말했다.
“아시잖습니까?”
“사흘 동안 철야를 했다지? 그래서 건진 건?”
“있으면 벌써 보고했겠죠.”
살짝 건방진 말에도 협회장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미소에는 안쓰러움이 섞여 있었다.
“조사는 그냥 접도록 해라.”
“네? 이제 와서 접으라니요!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네 실력을 모르는 게 아니다. 솔직히 외골수인 집행과나 감찰과 녀석들보다 무력은 약할지 몰라도 수완은 가장 좋은 편이니까.”
“…….”
“그런 네가 사흘 동안 노력했음에도 이렇다한 결과물이 없다면 뜻하는 건 하나밖에 없지.”
“작정하고 숨은 거라는 말씀입니까?”
“이미 답을 알고 있구나.”
협회장의 말에 성진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포기가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우리나라가 미국, 그리고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기회니까, 그러니까…….”
“미안하다. 내가 부족해서 네게 짐을 지웠구나.”
협회장의 자책에 성진호는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그, 그런 말씀 마세요! 협회장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습니다!”
“아니야. 내가 부족해서…….”
“협회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협회장의 자책에 결국 성진호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험험, 그래서 내 말을 들을 테냐?”
“알겠습니다. 조사는 접도록 하겠습니다.”
성진호의 대답에 협회장은 씩 웃었다.
“꼭 내가 죽는 소리를 한 번씩 해야 말을 듣는다니까.”
“아, 협회장님!”
“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해서는 항상 대비하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강 여사가 하는 말이, 지금 군사 협력 협의회의 다른 회원국들이 바짝 긴장한 상태라더구나. 이 정도만 되어도 우리가 원하는 건 얻을 수 있을 거다.”
“그럼 전 군사 협력 협의회 자료 준비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성진호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제로급 각성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숨어 버린 걸까요?”
“나인들 알겠느냐?”
성진호는 협회장실에서 나왔다.
결국 조사를 중단하게 되었지만, 뭔가 찝찝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사무실로 돌아왔고, 과의 직원들에게 조사 중단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조사는 중단하니까, 지금까지 한 것 정리하고 퇴근하도록 하세요.”
“앗싸-!”
“드디어 퇴근이다!”
“이제 집에 갈 수 있어!”
“어무니! 아들이 집에 갑니다!”
직원들의 환호성에 성진호는 왜인지 씁쓸해졌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죄송합니다.”
성진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 먼저 퇴근합니다.”
아무리 퇴근하라고 말은 했지만 상사가 남아 있으면 퇴근하기 눈치 보일 테니까.
하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집에 가 봤자 온기도 없는 싸늘한 방에서 TV나 보다 잠들 터였다.
“하아, 기분 더럽네. 떡볶이나 먹으러 갈까?”
그는 단골 떡볶이 집으로 향했지만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오늘은 쉽니다.]칼칼하고 매운 것이 먹고 싶었던 성진호는 김이 빠져 한숨을 쉬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같은 과의 3팀장인 백은호가 추천해 준 중국집이 떠올랐다.
“짬뽕이나 먹자. 그런데 지금 시간에도 하려나?”
그는 발걸음을 돌려 양춘각으로 향했다.
* * *
“어서 오세요!”
임소영은 문을 열고 들어온 성진호를 맞아 주었다.
“저녁 먹을 수 있습니까?”
“물론 됩니다. 라스트 오더가 8시 까지니까요.”
“다행이군요! 짬뽕 한 그릇 주십시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성진호는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가게는 크지 않았지만 깨끗하고 분위기도 좋았다.
‘음?’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청년이 한쪽 식탁에 탕수육이 담긴 그릇을 놓고, 술잔과 젓가락을 세팅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그 청년에게 시선이 갔다.
“음식 나왔습니다.”
임소영이 짬뽕 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주문한 음식은 빨리 나왔다.
“소주도 한 병 주십시오.”
그 말에 주방에서 나온 유순태가 말했다.
“술 한잔하실 거면, 같이 드실래요?”
“네?”
“저희도 일 끝나고 한잔하려고 했거든요. 주제넘은 참견일지도 모르지만, 술은 혼자 마시면 왠지 맛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뭐 좋습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성진호도 혼자 술 마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의 옆에 강소가 앉았고 그 앞에는 유순태 부부가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던 중 성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하소연을 했다.
“제가요 어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도통 찾을 수 없으니 환장할 지경이란 말입니다.”
“저런!”
“그런데, 위에선 그만 찾으라고…… 작정하고 숨은 거니까…… 그만 찾으라고…….”
“속상하시겠군요.”
“후우, 어쩔 수 없지요. 뭐.”
성진호는 술잔을 들이켜며 말했다.
“그런데 대체 왜 숨은 걸까요? 완전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인데 말이죠!”
“그쪽도 무슨 사정이 있겠죠.”
유순태를 이어 강소가 말을 이었다.
“만날 인연이면 언젠가 만나게 될 겁니다.”
“그렇겠죠.”
“무엇이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 여유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강소의 조언에 성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편 강소는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이런 강한 자가 찾지 못한다는 거지?’
* * *
아침이 밝아 오자, 성진호는 눈을 떴다.
그는 어젯밤의 일을 떠올렸다.
‘양춘각이라…… 백 팀장이 좋은 가게를 알려 주었군.’
보안상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
그는 어제 강소라는 청년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뭐, 만날 인연이면 만나겠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는 하늘이 결코 이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다.
십 년 전의 대격돌 때도 무사히 위기를 넘긴 대한민국이었으니까.
성진호는 기지개를 켰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네, 성진호…….”
– 과장님! 일 터졌습니다! B-0136186 게이트에 들어갔던 헌터들이…….
오늘도 역시나, 은탑은 바람 잘 날 없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