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9
8화. 은탑의 사정 (1)
어김없이 떠오른 태양의 붉은빛이 70층짜리 빌딩의 은빛 외관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토요일이건 일요일이건 공휴일이건 밤낮 상관없이 365일 24시간 분주하게 돌아가는 곳.
바로 각성자 협회 본부였다.
각성자 협회는 25년 전 처음 조직되었을 때와 달리 많은 일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을 꼽으라면, 각성자 관리와 헌터와 헌터 길드 관리 그리고 마수와 게이트에 대한 조사 및 관리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각성자 협회, 일명 은탑의 존재 목적이었으니까.
은탑에는 여러 부서가 있었다.
재무과라든지, 총무과 같은 일반적인 부서도 있지만 은탑에만 있는 부서가 있었으니 지원과와 집행과, 그리고 감찰과였다.
우선, 감찰과는 각성자들 특히 헌터들이 허튼짓을 하지 않나 감시하는 자들로서 감찰과 직원들 중 몇은 신분을 드러내고 활동하지만, 상당수의 이들은 곳곳에 숨어서 은밀히 자신의 직무를 다하고 있었다.
집행과는 가장 강한 각성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들의 주 임무는 블랙맨들의 검거였다.
블랙맨은 각성한 능력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부르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마수와 게이트 때문에 골치 아픈 상황에서 그들의 존재는 협회 직원들의 만성 두통을 유발하는 존재였다.
그들로 인해 사회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기에 전 세계는 연대하여 블랙맨의 검거에 나서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원과.
그들은 각성자 협회의 최일선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자들로서 지원 1과에서 지원 10과까지 있을 정도로 상당히 많은 범위의 일을 처리했다.
집행과와 감찰과가 하지 않는 각성자 협회 본연의 업무 중 대부분의 일들은 지원과의 일이라 생각하면 될 정도로 말이다.
하여 지원과는 각성자 협회의 꽃이라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지원과에서 일하는 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지만.
띵동.
경쾌한 소리와 함께 60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검은색 정장 치마를 입은 늘씬한 미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60층의 지원 1과의 문 앞에 섰다.
문 앞에는 두 명의 검은색 슈트를 입은 건장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들은 지원 1과를 지키는 경호원들이었다.
대민과의 소통을 모토로 하기에 따로 경호원을 두지 않는 다른 지원과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그건, 지원 1과가 지원과의 업무 중에서도 기밀을 요하는 업무를 다루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녀는 문으로 가까이 다가갔고, 경호원 중 하나가 말했다.
“이곳에 출입할 수 있는 분이라면, 신분을 증명하시길 바랍니다.”
그녀가 신분증을 내밀며 말했다.
“감찰 2과 과장 김명희.”
“잠시 확인하겠습니다.”
또 다른 경호원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쭈욱 훑어보았다.
만약 다른 남자가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그녀에게 반쯤 죽는 것으로도 끝나지 않았겠지만,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왜냐하면 그 경호원은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숨기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출입하는 것이기에 신분과 소지품을 확인하는 절차는 매우 중요했다.
각성자 협회의 협회장, 아니 일국의 지도자가 와도 거부할 수 없는 절차였다.
곧 그는 선글라스를 쓰고 뒤로 물러났다.
“확인되셨습니다. 들어가십시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간 김명희는 순간 당황했다.
“…….”
지원 1과의 직원들이 전부 책상에 엎어져 있거나 바닥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서, 설마 습격인가?”
김명희는 감각을 곤두세우고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침입자에 대비했다.
‘얼른 협회장님께 이 사실을…… 그런데 문 앞의 경호원들이 이 상황을 몰랐다는 건 상당히 강한 놈인가? 진호는 어디에 있지? 그 녀석이 당했다는 건 습격자가 A급 이상이라는 건데? A급에 아티펙트를 소지했을지도 몰라!’
긴장한 김명희가 사태 파악 및 범인에 대한 추측을 이어 가고 있던 때였다.
“으어어…….”
신음과 함께 책상에 엎어져 있던 누군가의 손이 위로 들렸다.
그 손은 책상을 더듬거려 내팽개쳐 있던 안경을 썼고 고개를 들었다.
“난 또 누구라고…… 명희냐?”
덥수룩한 머리에,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삼십 대 남자는 지원 1과의 과장 성진호였다.
“야, 성진호!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다들…….”
벌컥-!
그때 지원 1과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두 명의 직원이 품에 무언가를 잔뜩 안고 뛰어 들어왔다.
“과장님! 에너지 드링크 사 왔습니다!”
“죽지 마세요! 이거 마시고 얼른 정신 차리세요! 선배님들!”
그제야 책상에 엎어지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직원들이 흐느적거리며 일어났다.
“흐어어어, 그거 더 마시면 내 심장이 터질지도 몰라.”
“이거 사면서 A급 힐러님께 전화로 상담했는데, 심장이 터져서 죽기 전에 다시 살려 주신대요!”
“그냥 죽여 줘…….”
“아직 죽으면 안 돼요! 하던 일은 마치고 죽으셔야죠!”
“각성 버프 스크롤이 필요해!”
“그건 안 돼요! 이미 허용치를 넘었어요! 어차피 더 이상 스크롤 써도 듣지도 않아요. 아쉬운 대로 에너지 드링크라도 드세요!”
김명희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습격 같은 건 없었다.
단지, 며칠이나 이어진 철야로 인해 직원들이 지쳐 쓰러져 있었던 것일 뿐.
그들도 각성자이기 이전에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김명희는 지원 1과 과장 성진호의 책상으로 다가왔고, 혀를 찼다.
“나는 또 습격이라도 받은 줄 알았잖아!”
“습격?”
성진호는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켜며 피식 웃었다.
“내가 있는 지원 1과를?”
“하긴…… 네 번개에 맞아 죽고 싶지 않으면 감히 이곳에는 못 오겠지. 그런데…….”
김명희의 눈은 책상과 그 아래로 내려갔고, 그곳에 수북이 쌓여 있는 에너지 드링크 캔과 병, 그리고 찢어진 스크롤 북에 기겁했다.
“세상에나! 에너지 드링크를 대체 몇 병이나 마신 거야? 각성 버프는 열 장이나 찢고! 회복 스크롤도 벌써 다섯 장이냐? 야! 그거 그만 마셔!”
김명희는 성진호의 손에서 에너지 드링크 캔을 뺏었다.
“어쩔 수 없잖아.”
성진호는 한숨을 쉬었다.
“A-0128109 게이트 사건. 그거 아직도 해결 안 됐으니까.”
“그래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일요일까지 일하고…….”
“우리나라도 제로 등급의 각성자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으니까.”
김명희는 혀를 찼다.
“쯧쯧, 아주 대단한 애국자 납셨네!”
“지는.”
“그나저나 듣기로 A급 헌터 두세 명이 맞붙어야 하는 마수인 싸이클롭스와 웨어울프에 미노타우로스까지 주먹 한 방에 해치웠다면서? 그거 진짜 사람이 한 거 맞아?”
김명희의 물음에 성진호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틀림없이 사람이야. 게이트 내 모든 마수의 상흔을 분석한 결과 확실히 사람의 주먹이었어. 너 설마 내 조사 결과를 못 믿는 거냐?”
“아니, 믿어! 믿는 데…… 솔직히 믿기 힘든 이야기잖아.”
“……나도 처음엔 믿을 수 없었어. 하지만 몇 번을 돌려 봐도 결과가 그렇게 나왔으니 믿을 수밖에 없잖아.”
김명희는 옆의 의자를 끌어와 앉았고,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내밀며 말했다.
“아무튼, 감찰 1과의 과장님이 이거 전달해 달라고 하셨어. 제로급 각성자로 추측되는 자들의 명단이야. 그리고 밑에 건 우리 2과가 정리한 거.”
“오! 고맙다!”
“그거 알아? 요즘 한국도 제로급의 각성자를 보유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기사로 전 세계가 떠들썩한 거.”
“알고 있지.”
“대체 협회장님과 강 여사님은 무슨 생각으로 아직 결론도 나지 않은 이야기를 오픈하신 거야?”
아무리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고 하지만, 제로급 각성자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만약 각성자 협회에서 제대로 나섰다면, 간 크게도 기사로 쓸 언론은 단 한 곳도 없었을 터!
“왜기는 왜겠어. 군사 협력 협의회 때문이지. 조금이나마 협의국들을 압박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이득이니까.”
“블러핑도 적당히 쳐야지! 그러다 들키면?”
“괜찮아. 그냥 뭉개면 돼. 다른 나라도 블러핑 치는 건 똑같으니까. 솔직히 누가 100퍼센트 진실로 외교하냐? 진실 반, 블러핑 반. 이게 정정당당한 외교 아니냐?”
“나 참! 외교가 양념 반 후라이드 반도 아니고…….”
현재 세계 국력의 우위를 결정짓는 건 뛰어난 각성자의 보유 유무였다.
사람들은 그동안 S등급이 최고로 뛰어난 각성자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 년 전 S등급보다 강한 각성자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측정 불가라는 뜻의 제로(0) 등급.
미국과 중국이 각각 한 명씩 보유하고 있다는데, 아직 정확한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나라의 전략을 좌지우지할 각성자를 그렇게 쉽게 노출할 리가 없었으니까.
김명희와 성진호는 헌터 훈련소에서부터 함께한 입사 동기였다.
피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십 년 전 대격돌의 사선을 함께 넘으며 이미 남매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나 못지않게 바쁜 감찰 2과의 과장님께서 고작 이 서류 하나 건네주러 직접 행차하신 거야?”
“아, 내가 온 진짜 목적은 이거야.”
김명희는 가방에서 볼펜 케이스를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이건?”
“드디어 완성됐어. 네가 신청했던 새 무기. 네가 공방에도 못 들를 정도로 바쁘니까, 영감님이 나보고 배달하라고 해서 말이야.”
볼펜 케이스를 열자 금색의 볼펜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성진호의 손에 쥐어지자 그건 더 이상 볼펜이 아닌 무기였다.
그가 볼펜에 오러를 주입했다.
지잉-!
공기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금색의 볼펜은 금색을 띠는 장검의 형태로 변했다.
“이름은 라이트닝 소드. 오직 전격계 각성자만 사용할 수 있어. 다른 계열의 각성자가 만졌다가는 감전사할 수도 있다니까 주의하도록 해.”
“고맙다. 영감님께 감사하다는 전화라도 드려야겠네.”
“그러든지. 간다. 좀 쉬엄쉬엄해.”
“배웅 못한다.”
“나 배웅할 시간에 눈이나 좀 붙여!”
김명희는 지원 1과를 나서며 시계를 보았다.
“지금 슬슬 나가면 되겠네.”
오늘 그녀는 동생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만날 장소는 은탑의 1층.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고, 곧 저 멀리 문 앞쪽에 서 있는 동생을 발견했다.
“누나!”
“어! 명진아! 오래 기다렸어?”
“아니, 방금 왔어.”
남동생 김명진 역시 은탑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의 근무지는 은탑 3층의 의무과.
마수에게 부상당한 일반인이나 각성자들을 치료하는 곳이었다.
보통의 부상은 일반 병원으로 가면 되었지만 마수에 의해 입은 부상은 C급 이상의 힐러의 힐을 받아야만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하여 C급 이상의 힐러의 몸값은 상당히 비쌌고, 그건 협회 소속 힐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협회 소속은 돈보다는 사명감이 더 우선인 자들이었다.
각성자가 되는 건 반 이상이 유전이었고, 김명희만큼이나 김명진도 뛰어난 각성자였다.
김명진은 무려 협회가 자랑하는 A급 힐러였다.
그 둘은 오랜만에 만나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으면 일 년에 함께 몇 번 식사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 바빴기 때문이다.
“뭐 먹을래?”
“누나가 사 주는 거지?”
“설마 동생보고 사라고 하겠니?”
“그럼 누나랑 같이 먹고 싶은 게 있어.”
* * *
잠시 후, 김명희 김명진 남매는 양춘각 앞에 서 있었다.
간판을 본 김명희가 동생에게 물었다.
“뭐야, 중국 요리 먹고 싶었어?”
“어. 짜장면. 지원 1과 백은호 팀장이 여기 짜장면 엄청 맛있다고 해서 먹어 봤는데 진짜 맛있었거든! 그래서 누나랑 같이 오고 싶었어.”
김명진은 양춘각 문을 열며 말했다.
“들어가자.”
무림에서 온 배달부 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