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1
10화. 고립인 교육 (1)
월요일이었다.
점심 장사를 마친 후, 강소는 유순태와 함께 은탑으로 향했다.
강소의 신분 회복을 위해서였다.
고립인의 신분 회복은 일반 동사무소 같은 곳이 아닌 은탑의 민원실로 가야 했다.
“길 잃어버리지 않게 잘 따라와.”
“알겠다.”
은탑이 있는 곳은 대한민국 최고의 핫 플레이스인 만큼 사람에 치여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강소가 처음 와서 봤던 모습 그대로 여전히 빵빵거리고 부르릉거리는 소음이 귀에 거슬렸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정신 사납지 않았다.
‘나도 점점 이곳에 적응해 가는 것 같군.’
그때 서너 명의 여자들이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며 지나갔다.
그들을 본 강소는 순간 민망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아직 이곳 여자들의 옷차림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넌 정말 대단하다.”
강소의 말에 유순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대단하다는 거야?”
“저렇게 속옷이나 다름없는 옷을 입은 처자들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니! 부동심법이라도 익힌 것이냐?”
“하하하!”
유순태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치마가 짧아 봤자 미니스커트도 아니고 무릎 정도인데 그게 민망해서 고개를 돌리면 여름철이나 수영장에 가면 어떻게 하려고?”
“수영장? 어떤 곳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아, 그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
유순태는 강소의 정신 건강을 위해 그곳에 대한 설명은 나중으로 미루었다.
‘무릎 닿는 스커트에도 기겁하는 녀석인데, 비키니 입은 여자들을 본다면…….’
강소의 반응이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그들은 은탑으로 들어갔고, 1층의 민원실로 가 번호표를 뽑았다.
그런 유순태의 행동을 강소는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본능이었다.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벨이 울렸다.
띵동-!
그리고 기계적인 안내음이 들렸다.
– 74번 고객님. 3번 창구로 오십시오.
그 안내음에 유순태와 강소는 3번 창구로 갔고, 그곳에서 여직원의 안내를 받았다.
“아! 고립인이시라고요? 고립인은 오랜만이네요. 신분 회복 절차를 위해서는 우선 이 신청서를 작성하셔야 합니다.”
여직원은 그들에게 신청서를 내밀었다.
유순태와 강소는 그것을 받아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설치된 입식 책상으로 왔다.
강소가 이번에 익힌 한글 실력을 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볼펜을 들었다.
자신의 손에 들린 볼펜은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었다.
‘먹물을 묻히지도 않았는데 글자가 써지다니! 제갈천린이 봤다면 놀라 뒤로 넘어졌을 물건이구나!’
강소는 시선을 신청서로 향했고, 순간 당황했다.
“문제가 생겼다.”
“문제? 무슨 문제?”
“성을 적게 되어 있다.”
“성? 아…… 너 성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었지?”
“성을 꼭 써야 하나?”
“아마…… 도?”
그 말에 고민하던 강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에 이름을 썼다.
성은 강, 이름은 소. 합해서 강소였다.
“주소는 어떻게 되지?”
“아, 주소? 주소는 서울시…….”
서류에 강소가 자신의 인적 사항을 다 쓰자, 유순태는 보증인인 자신의 인적 사항을 적으며 검토했다.
유순태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긴가민가했는데 진짜 그 몇 시간 만에 한글을 깨우쳤네? ‘세상에 이런 신기한 일이’에 나가도 되겠는데?”
“그게 뭐지?”
“방송 프로그램 중 하나인데, 세상의 이런저런 신기한 일들을 촬영해서 TV로 보여 주지.”
“어제 저녁에 안주인이 보던 ‘백장미의 복수’도 방송 프로그램인가?”
백장미의 복수는 요즘 임소영이 재밌게 보고 있는 막장이 주를 이루는 일일 드라마였다.
“아…… 그, 그렇지.”
그들이 서류를 창구에 제출하자 여직원이 말했다.
“접수되었습니다. 내일 교육이 있으니 아침 9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교육이요?”
유순태의 물음에 여직원이 말했다.
“네. 하루 동안 각성자 검사와 적응 교육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갈아입을 옷과 세면 도구를 꼭 챙겨 오세요. 보통 아침을 먹고 점심 전에 끝나지만, 만약 각성자로 판명되시면 교육은 내일 저녁에 끝날 거예요.”
“알겠습니다.”
* * *
강소와 유순태는 집으로 돌아왔고, 임소영이 맞아 주었다.
“일찍 오셨네요?”
“오늘은 서류 접수뿐이었으니까. 강소는 내일 하루 합숙을 해야 하고.”
“그런데. 사람이 나 한 명뿐인데, 합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냐?”
강소의 물음에 유순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너 한 명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아까, 나에게 하루 동안 교육이 있다고 한 여자가 다른 사람들하고 대화하는 것을 들으니, 이번 고립인은 나 하나뿐이기에 나 혼자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음…… 하긴, 고립인이 발견되었다는 말을 거의 반년 정도는 듣지 못한 것 같으니까.”
사실, 예전에는 각성자 협회나 정부의 활약을 알리기 위해 고립인들에 대한 신상을 밝히면서까지 고립인에 대해 세세하게 보도를 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고립인들이 사회에 평범하게 적응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한 고립인이 각성자 협회에 화염병을 던지며 깽판을 치고 나서야 개인 정보를 밝히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고립인 몇 명이 신분 회복 신청을 했다고 흘러가는 듯이 뉴스를 통해 보도하곤 했다.
“그래서 그 직원이 고립인은 오랜만이라고 했구나.”
이 순간, 유순태 부부는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건 유순태도 듣지 못한 직원들의 대화를 강소가 들었다는 것이었다.
정확하게는, 그 여직원이 뒤쪽의 탕비실 안에서 다른 직원들과 속삭이듯이 말한 내용이었다.
“아, 그럼 준비물이 있어야 하나요?”
임소영의 물음에 유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갈아입을 옷과 세면 도구를 가져오라던데?”
“그럼 어서 챙겨 놔야겠네요. 아, 그리고 아까 수리 업자에게 연락 왔는데 내일 방문한대요.”
“잘됐네! 내일 강소가 합숙 가 있는 동안 가게 옆방을 수리하면 되겠어.”
양춘각 1층에는 작은 욕실이 딸린 방이 있었는데, 강소는 그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동안 쓰는 사람이 없어 방치해 두었던 곳이었기에 강소가 쓸 수 있도록 손을 봐야 했다.
“그럼 저녁 장사 준비를 해 볼까?”
유순태는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했고, 임소영은 2층으로 올라갔다.
그때, 틀어 놓았던 TV에서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최근, 죽음의 땅에서 발생한 A-0128109 게이트 안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에 대해…….]그와 함께 뒤쪽에 펼쳐지는 자료 화면에 강소는 흠칫했다.
‘저곳은…….’
그곳은 바로 강소가 이 낯선 곳에서 눈을 뜬 바로 그 장소였다.
그리고 그를 노리던 괴물들을 한 방에 때려죽이고 나온 곳이기도 했다.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뉴스를 들었다.
[……전문가들은 제로급 각성자가 나타난 것이 확실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이에 대해 각계에서는 각성자 협회와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각성자 협회와 정부는 계속해서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침묵을 지킬 것인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때, 잠시 주방에서 나온 유순태가 뉴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제로급 각성자가 나타난 거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그의 중얼거림에 강소는 얼른 유순태에게 물었다.
“저게…… 무슨 뜻이지?”
“아, 저거……? 그러니까…….”
유순태는 지금 뉴스에서 말하는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각성자와 게이트에 대해서는 전에 설명해 주었기에 강소는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수들의 사체도 고스란히 남아 있고 마정석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적룡 길드만 계 탄 상황이라는 거지. 뭐 각성자 협회는 지금 꽤 골머리를 썩고 있다지만.”
“게이트라는 것이 모든 마수가 죽으면 닫힌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그런데 모든 마수가 죽은 게 아니라 슬라임 같은 E급 헌터에게도 발리는 녀석들은 남아 있어서 게이트가 닫히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그 말에 강소는 그때 자신을 보고 멀찍이 도망가 버린 흐느적거리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게 슬라임이라 부르는 것들이었나?’
당시에는 덤비지도 않고 도망가니, 귀찮아서 그냥 놔두었다.
강소는 내심 후회했다.
‘그냥 다 죽여 버렸으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 괜히 이 세상만 혼란스럽게 만들었군!’
순간, 그는 뭔가 쎄한 기분을 느꼈다.
“설마 지금 저곳의 마수라는 것들을 전부 죽여 버린 자를 제로급 각성자라 부르며, 찾고 있다는 거냐?”
“설마는 무슨, 정확하게 말하고 있네.”
“찾으면?”
그 물음에 유순태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 영웅 대접을 받겠지. 아니면 나라의 국보급 대우를 받거나.”
쎄한 기분을 느낀 이유가 있었다.
‘흐음…….’
다른 사람이라면 좋다며 춤이라도 추겠지만 강소는 절대 아니었다.
영웅 대접, 국보급 대접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가 바로 강소였다.
그 자신이 속했던 살수 조직을 와해시키고 천마신교 교주를 무릎 꿇렸다는 것이 알려지기 무섭게 백도 무림에서는 그에게 화친을 제의했다.
비굴할 정도로 공손하게 대접했고, 강소도 싸우기 피곤해서 화친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강소가 백도 무림에 호의적이라고 착각한 몇몇 인사들이 그를 다짜고짜 찾아와 말도 안 되는 도움을 청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렇게 세파에 시달리다가 이골이 난 강소는 소녀를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산중 마을에 틀어박혔다.
‘이번에도 내 평화로운 삶이 깨지도록 놔둘 수 없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각성자로 활동하지 않기로 결정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 각성자 검사도 있다고 했지?”
강소의 물음에 유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어떤 식으로 검사하지?”
“아, 그거? 검사하러 가면 한 손에 들어올 만한 수정구슬이 두 개 있는데, 거기에 손을 올리면 검사가 진행되거든.”
그는 말을 이었다.
“등급이 높을수록 수정 구슬 안에서 나오는 전자력이 몸 안으로 지나가기 힘들다고 들었어. 몸 안의 힘이 전자력을 막는다나? 나는 찌릿한 뭔가가 오른손으로 들어와 왼손으로 잘만 나가던데.”
“그렇군.”
그렇다면 자신의 내공만 잘 다스리면 될 일이었다.
* * *
강소는 임소영이 싸 둔 짐을 들고 유순태와 함께 은탑으로 왔다.
그의 응원을 받으며 강소는 여자 직원을 따라 이 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의 카페테리아 비슷한 공간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한 젊은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선생님의 교육을 맡게 된 제 이름은 박수은, 지원 2과의 2팀장입니다.”
강소에게 다가온 남자는 자신의 소개를 했고, 강소를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강소입니다.”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고립인은 반년 만이네요.”
“그렇습니까?”
“사실 십여 년 전만 해도 고립인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제 예전의 대한민국 땅을 대부분 수복했거든요. 북한 쪽은 예나 지금이나 답이 없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모르는 내용이 나왔을 땐 그저 웃는 게 최고였다.
‘나중에 순태한테 물어봐야지.’
박수은은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이제 고립인들은 거의 없습니다.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습니까?”
“어디가 어딘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느 산속이었습니다.”
강소는 대충 둘러 대었다.
다른 세상에서 왔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다행히 박수은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아, 우선 각성자 검사를 해야 합니다. 검사 결과를 토대로 교육의 방향이 결정될 겁니다.”
그들은 2층에 있는 각성자 검사실이라 쓰인 곳으로 들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없어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검사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강소는 검사실 가운데 있는 물건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