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29
128화. 기차여행 (2)
아침이었다.
유하영의 눈은 말똥말똥했다.
평소 아침마다 일어나기 힘들었던 때와는 달랐다.
시계를 보자 아침 7시였다.
그리고 오늘은 기차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었다.
“핫-!”
그걸 깨달은 유하영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도도도 유순태와 임소영의 방으로 달려갔다.
“아빠! 엄마! 일어나세요!”
“으음…….”
“아침이에요! 오늘 기차 타러 가는 날이에요!”
유순태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시계를 보았다. 아직 7시밖에 되지 않았다.
“으…… 하영아. 기차는 10시 30분 기차야.”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
“선생님이 그랬는데, 기차는 출발 10분 전에 미리 나가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 그래…….”
.
.
.
한편, 강소는 이미 일어나 운기조식까지 마친 후 방에서 핸드폰으로 뭔가를 보는 중이었다.
“음, 사진으로 봐도 귀엽군.”
강소가 보고 있는 건 유하영의 팬클럽 사이트였다.
하태복이 알려 줘서 회원가입도 했다.
가장 최근에 올라온 사진은 촬영장에서의 사진이었다.
분장 때문에 얼굴에 가짜 피와 먼지 등이 묻어 있어도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 밑에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 팔딱팔딱러브 : 아! 오늘도 하영이의 귀여움은 허용치를 넘었네요.
팔딱팔딱러브는 운영자의 닉네임이었다.
– 1004천사 : 하영이의 귀여움은 국보급입니다!!
1004천사라는 닉네임은 하태복이었다.
그 아래에도 수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강소는 자신의 닉네임으로 강소라는 본명을 쓰려고 했는데, 하태복이 원래 닉네임은 본인인지 모르게 정하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강소의 닉네임은 ‘부끄부끄’였다.
물론, 그가 정한 닉네임이 아니라 하태복의 추천으로 만든 닉네임이었다.
강소는 핸드폰 자판을 눌러 댓글을 달았다.
– 부끄부끄 : 하영이는 역시 귀엽습니다.
그리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위에서 유하영과 유순태 그리고 임소영의 대화가 들렸다. 아무래도 오늘 기차 여행을 한다는 설렘 때문에 유하영이 일찍 일어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전에 마린랜드에 갔을 때에도 깨우지 않았음에도 혼자서 일어났었지. 그것도 아침 일찍.’
강소는 참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 * *
아침의 태양이 각성자 협회의 은색 건물을 붉게 물들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지원 1과의 과장 성진호는 고개를 들었다.
“아, 아침인가 보군.”
일을 하다가 아침 해를 보는 일이 일상인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을 먹기 위해서였다.
밤은 지새워도 아침은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기 때문이었다.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은탑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은탑의 10층과 9층에 식당이 있었다.
9층은 정해진 시간에 먹을 수 있는 대규모 식당으로 정규 식당이라 불렀다.
전에 강소가 고립인 교육을 받으며 급식을 체험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10층은 비정규 식당으로 정규 식당의 문이 닫힌 시간 동안만 운영했다.
업무 특성상 식사 시간이 불규칙한 직원들의 수가 제법 많았기 때문이었다.
성진호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정규 식당은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열기 때문에 그는 비정규 식당으로 향했다.
우우웅-! 우우웅-!
그때 진동으로 해 놓았던 성진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감찰 1과장 한유의 전화였다.
“네, 성진호입니다.”
– 아! 성 과장. 지금 어디인가?
“은탑입니다.”
– 미안하지만 일거리가 하나 생겼어.
“목소리가 다급하신 것을 보니, 급한 일이군요.”
– 그래, 급한 일이네. 철도 쪽에서 잠복 중인 직원이 물어 온 정보네. 아무래도 블랙맨이 움직인 것 같아.
“설마…… 기차 테러입니까?”
– 그런 것 같네.
“그래서 어떤 기차입니까?”
– 그게 문제야.
“네?”
– 어떤 기차에 폭탄을 설치할 건지를 모른다는 것이 문제야.
“가장 베스트는 오늘 운행하는 모든 열차의 운행을 중단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요.”
– 맞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감찰 1과장 한유의 목소리에서 답답함이 묻어났다.
– 우선 국립 B&T 마정석 연구소 남해 지부의 블랙맨 습격이 진압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시점이라서 괜한 국민들의 불안을 조성할 수 있지.
“…….”
– 그리고 낌새를 눈치챈 블랙맨들이 기차가 아닌 다른 곳을 테러한다면 그에 대한 대처가 늦게 되지.
“…….”
– 아무튼 여러 가지로 말썽이야. 하아…….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성진호의 물음에 한유가 대답했다.
–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노가다 뛰어야지 뭐.
“하하하.”
감찰 1과장 한유는 도깨비였다.
한국 땅에 정착한 지 25년 정도 된 도깨비 한유는 이제 노가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었다.
* * *
“기차, 여기서 타는 거예요?”
유하영의 물음에 유순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서 기차를 타는 거지.”
“아닌데? 여기 전철역인데?”
지금 그들은 영등포 역에 있었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서 용산 역이나 영등포 역으로 가야 하는 건 격변의 시대 이전이나 이후나 같았다.
유하영의 말에 유순태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기차와 전철을 타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기차역과 전철역을 붙여 놔서 그래. 저쪽으로 가면 전철을 타는 거고 이쪽이 기차를 타는 플랫폼으로 가는 길이야.”
“아! 그렇구나!”
이해한 듯 유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순태는 손으로 역의 벽에 걸려 있는 전광판을 가리키며 강소에게 말했다.
“기차를 탈 때, 확인해야 할 게 바로 저거야.”
전광판에는 주황색 글자가 가득했다.
[익산 무궁화 1506 10:30 8번] [용산 무궁화 1203 10:45 3번].
.
이런 식의 글자가 무슨 뜻인가 했는데, 유순태가 설명을 해 주었다.
“앞의 익산, 용산 같은 것은 행선지를 말하는 거야. 기차는 상행선 하행선이 있거든.”
“상행선과 하행선?”
“기준은 서울이야. 저 위의 강원도건 저 아래의 전라남도이건 무조건 서울로 향하는 건 상행, 그 외 지방으로 향하는 건 하행이야.”
“그렇군.”
“그리고 그 뒤에는 기차의 이름인데, 등급별로 무궁화호를 시작으로 새마을호 그리고 영웅호가 있지.”
격변의 시대가 오면서 선로가 망가지는 바람에 기차 역시 무용지물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교통은 중요한 것이다.
각성자 협회와 정부는 최우선 과제로 교통망을 정비했다.
덕분에 대부분의 선로가 재정비되면서 다시 기차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이왕 선로가 새로 깔린 김에 기차들의 이름 역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국민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건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기존의 무궁화호와 새마을호라는 이름을 유지했다.
대신에 옛날에 KTX라 불리던 고속철은 영웅호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옛날에는 통일호라는 기차도 있었다고 하더라고. 그 전에는 비둘기호라는 기차도 있었고.”
“그렇군.”
“아무튼 그 뒤에 있는 숫자 보이지? 그건 기차가 출발하는 시간하고 기차를 타는 플랫폼 숫자거든. 특히 플랫폼 숫자는 정말 중요하니까 꼭 기억해야 해.”
“알았다.”
유순태는 핸드폰을 꺼내 한국철도 어플을 실행하여 티켓을 확인했다.
“우리가 탈 열차는 저거네. 1506호 차.”
“아! 그럼 8번 플랫폼으로 가면 되겠군. 지금 가면 되는 건가?”
“뭐, 지금 가도 상관은 없지만 이왕이면 저 입구에 있는 전광판에 탑승준비 하라고 떴을 때 가는 게 좋지.”
유순태는 피식 웃었다.
“하영이가 기차에서 먹을 간식도 좀 사고 말이지.”
잠시 후.
그들은 8번 플랫폼으로 왔다.
‘음…… 저곳이 지하철을 타는 곳이군.’
강소는 플랫폼 너머에 있는 또 다른 플랫폼을 보았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서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강소는 이곳에서 지하철을 타 본 적은 없지만 딱 봐도 저곳이 지하철을 타는 곳이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스크린 도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르르르릉-!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안내 방송이 들렸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노란색 선 뒤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그 방송과 함께 저 멀리서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8번 플랫폼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유하영은 그걸 보며 상기된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지금 들어온 열차는 10시 30분에 영등포 역을 출발하여 익산으로 가는 무궁화호 1506호 열차입니다. 승차권을 확인하시어 착오가 없도록 하시길 바랍니다.]곧 열차가 정차했고, 유순태가 말했다.
“이제 타면 된다.”
기차 안은 제법 넓었다.
‘지하철보다 넓은 것 같군.’
좌우로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창측과 내측으로 나뉘어 있었고 좌석마다 번호가 있었다.
강소는 유순태가 승차권으로 확인한 자리를 찾았다.
유순태는 좌석을 앞자리와 뒷자리로 예매를 했다. 왜 그렇게 예매를 했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의자의 아래쪽 발판을 꾹 밟더니 의자를 빙글 돌린 것.
“오!”
“와아!”
강소와 유하영은 서로 마주 보는 형태가 된 의자를 보고 감탄했다.
“하영이는 이해하겠지만, 너는 이게 뭐라고 그렇게 감탄하는 거냐?”
“고정된 좌석인 줄 알았다. 이래서 선입견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이군.”
여전히 진지한 강소를 보며 유순태는 피식 웃었다.
“앉자. 이제 곧 열차 출발한다.”
* * *
10시 30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의 5호 칸.
그곳의 중간 좌석에 탄 한 여자는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짧게 커트 친 머리의 그녀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녀 옆에 앉은 남자는 다정한 얼굴로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저기, 우리를 배웅하고 있네요.”
“어디?”
“저기요.”
그녀는 자신을 배웅하기 위해 손을 흔들며 웃는 남자를 향해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과장님. 꽃등심 콜?
그녀의 입모양을 본 남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역시 입모양으로 말했다.
임무나 잘해라. 이 자식아.
그들은 각성자 협회 감찰 1과의 과장 한유와 4팀의 팀장 고은솔이었다.
그리고 입모양으로 말하는 건 감찰과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기술이었다.
고은솔 옆에 앉아 있던 집행과 직원이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들이 이 기차에 타 있는 이유는 바로 오늘 아침에 누군가 물어 온 블랙맨이 기차에서 깽판을 칠 예정이라는 정보 때문이었다.
문제는 블랙맨들이 깽판 칠 기차가 어떤 기차인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나마 다행인 건 오전 중에 움직이는 기차라는 것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격변의 시대 이전보다 움직이는 기차가 적어서 다행이었다.
오전에 움직이는 모든 기차에는 감찰과와 집행과 직원들이 승객으로 위장한 채 탑승해 있었다.
그리고 기차를 오고가는 승무원 역시 감찰과 직원이 대신하고 있었다.
물론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기에 승객들이 불편해하거나 의심하는 일은 없었다.
승무원의 일을 수행하면서 수상한 승객이 있는지, 그리고 수상한 물건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승무원으로 위장한 은탑 직원들의 임무였다.
[……열차 출발합니다]방송과 함께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순태 가족과 강소가 탄 3호차.
맨 뒷좌석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고, 허리야.”
그 할머니는 허리를 톡톡 두들기며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은 ‘어르신이 화장실에 가시나 보군’ 하고 생각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창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할머니는 유순태와 강소가 앉은 자리를 지나쳤고, 순간 강소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 노파의 손…… 아무리 봐도 남자인데?’
무림에서 온 배달부 12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