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40
139화. 고구마와 사이다 (1)
새싹 어린이집.
주임선생님이 앞의 프로젝터에 사진을 한 장 띄웠다.
“새싹 어린이들! 이 그림은 뭘까요?”
주임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서로 손을 들며 말했다.
“저 알아요!”
“고구마요!”
“군고구마 해 먹는 거예요!”
“맛탕도 해 먹을 수 있어요!”
“전에 엄마가 튀김 해 줬어요!”
아이들의 말대로, 주임 선생님이 보여 준 사진은 바로 고구마였다.
“맞아요. 바로 고구마예요. 그럼 선생님이 왜 고구마 사진을 보여 줬을까요?”
“오늘 간식이 고구마라서요!”
“아쉽지만 오늘 간식은 떡볶이에요.”
물론 맵지 않게 만든 간장떡볶이였다.
그때 유하영이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손을 번쩍 들었다.
“고구마 찾으러 가요?”
그 말에 주임 선생님은 미소 지었다.
“비슷해요. 왜냐하면 고구마를 캐는 것은 즉 고구마를 찾는 일이니까요.”
사실 유하영은 방금 자신이 친구들과 고구마를 캐는 미래를 봤다.
스쳐 가는 찰나를 본 것이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게 될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녀에게 캔다는 단어는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찾는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번 주 금요일. 우리 새싹 어린이들은 고구마 농장에 방문해서 고구마를 캐고, 고구마로 만든 맛있는 음식도 먹을 거예요.”
“와!”
“정말요?”
“재밌겠다!”
“저 고구마 많이 먹을래요!”
환호하는 아이들을 보며 주임 선생님이 말했다.
“그럼 우리 고구마에 대해서 노래와 율동으로 배워 볼까요?”
“네!”
주임 선생님의 말에 옆에서 준비하고 있던 선생님들이 움직였다.
한 선생님이 피아노 반주를 했고, 고소라가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시작했다.
요 이틀간 밤새 연습한 노래와 율동이었다.
“달달한 고구마! sweet potato! 뿌리채소라서 땅속에 숨어 있지요. 우리 모두 으싸! 으싸! 고구마를 캐 보아요! 그리고 맛있게 먹어 줄 거야. 냠!”
고소라는 자신을 따라서 짧은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율동을 하는 유치원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쩜! 나 정말 전직할까 봐!’
정말 많이 심각하게 고민이 될 정도로 귀여웠다.
* * *
그날 오후의 브레이크 타임.
강소는 TV를 보고 있었다.
‘TV전국팔도’ 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대한민국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 마을의 특산물을 소개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3시 30분이라는 애매한 시간에 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그래도 강소는 그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대한민국의 이모저모를 알려 줘서 무척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패랭이 모자를 쓰고 보부상 차림을 한 젊은 남자 개그맨이 그 프로그램을 이끌어 갔다.
그는 특유의 익살스런 얼굴로 오버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외쳤다.
[이 팔도 보부상이 오늘은 여기 전라남도에 왔습니다! 어?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지? 킁! 킁킁! 아니! 이 냄새는! 고구마?]그걸 보며 유순태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고구마 수확 철이구나.”
“응? 고구마? 그게 뭐냐?”
“저기, 화면에 나오는 저게 고구마다.”
그걸 본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과(地瓜)를 말하는 거군. 그걸 이곳에서는 고구마라 부르는구나. 음…… 고구마. 고구마. 고구마.”
강소는 여러 번 고구마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으로 완벽하게 고구마라는 단어에 적응했다.
“그런데 너 고구마 좋아하냐?”
유순태의 물음에 강소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고구마를 맛있어서 먹은 적이 별로 없어서.”
그 말대로, 강소에게 고구마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몰래 캐 먹었던 식량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
그 말에 유순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기가 막힌 고구마 요리를 해 봐야겠네!”
그때 위에서 임소영이 내려오며 말했다.
“하영이 데리고 올게요.”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유하영의 신변보호를 위해 강소가 하원길에 동행하고 있었다.
강소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다녀오마.”
* * *
입사 5년 차인 31살의 안유성은 자신 앞의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근무하는 곳은 각성자 협회 지원 6과의 2팀.
보통은 데이터과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지원 6과의 2팀이 하는 일이 매일 매일 보고된 데이터를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후우…… 이제 이것만 입력하면 끝인가?”
오늘까지 입력해야 하는 데이터가 아직 많이 남았지만 부지런히 속도를 내면 저녁 7시 전에는 끝낼 수 있을 거라 예상할 수 있었다.
물론 퇴근 시간은 6시였지만, 6시 땡 하면 퇴근하는 직원은 별로 없었다.
워낙 일이 시도 때도 없이 펑펑 터지니까.
사실 그의 옆에 쌓여 있는 자료는 일반인이 48시간을 꼬박 입력해야 하는 자료였지만 안유성은 각성자였다.
그의 능력은 C급 기록의 마법.
보조계 능력으로 기록하는 것에 특화된 능력이었다.
연필로 기록하든 컴퓨터로 기록하든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빨리 손을 움직일 수 있었고, 눈동자 역시 그에 맞추어 움직일 수 있었다.
‘오늘은 수사1과 오 반장의 본방을 볼 수 있겠지. 오늘 범인이 누군지 밝혀지는데 반드시 본방을 사수해야지!’
‘수사1과 오 반장’은 10시에 방영되는, 요즘 인기가 많은 수목 드라마였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안유성의 삶에 생기를 주는 건 추리였다.
하지만 그건 남들은 모르는 취미였다.
그리고 입력하고 있는 데이터를 통해서 사실을 도출해 내는 취미가 있다는 것도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2~3평 남짓 한 방 안에 혼자 앉아 하루 종일 컴퓨터만 상대하니 다른 직원들과의 접촉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입력할 서류는 한 장 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이제, 이거 한 장만 입력하면 퇴근할 수 있어!’
벌컥.
그때 안유성이 있는 데이터 3실의 문이 열렸고, 그는 깜짝 놀랐다.
“아 선배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안유성의 선배들 중 하나인 조민섭이었다.
“갑자기 소리가 들려서 놀랐습니다.”
라고 했지만, 사실 안유성은 ‘선배! 노크는 예의 아닙니까?’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소심했고, 그런 말을 잘 하지 못했다.
“각성자 협회에서 일하면서 이런 걸로 깜짝 깜짝 놀라면 어떻게 해?”
그러나 조민섭은 적반하장이었다.
“일은 얼마나 남았어? 이야! 빠르네! 벌써 한 장 남았어?”
조민섭의 말에 안유성은 뭔가 불안해졌다.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미 책상에 쿵 소리와 함께 두꺼운 서류들이 놓였다.
“잘 됐네. 그럼 이것 좀 부탁해.”
안유성은 그 서류를 보며 조심스럽게 반항했다.
“하지만 선배. 이건 선배가 입력해야 하는 자료 아닙니까?”
“내가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그래. 선후배 사이가 좋다는 게 뭐냐? 선배가 곤란하면 좀 도와주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냐?”
“하지만 선배…… 저도 오늘 볼일이.”
하지만 안유성의 반항 같지도 않은 반항은 순식간에 진압되고 말았다.
“그 볼일이 인생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야? 아니지? 그럼 잘 부탁한다.”
“서, 선배! 하지만…….”
쾅.
조민섭은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하아…….”
안유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본방은 못 보겠네.”
그는 짜증이 치솟았다. 그건 본방을 보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조민섭이 그의 의사에 상관없이 일을 떠맡겼다는 것 때문이었다.
조민섭 역시 C급 기록의 마법 각성자였고, 그보다 숙련되어 있으니 그보다 더 일찍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3시간 정도 입력할 분량이 남았다는 건…….
화장실이나 식당을 오가면서 들은 말에 의하면 요즘 조민섭은 윗선의 눈에 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말만 중요직이고, 대우는 한직인 데이터과에서 벗어나 승진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안하고 위층에서 놀다가 다급해지니까 나에게 떠맡겨 놓고는 자신은 약속이 있다고 나간건가?’
그리고 그 약속이 뭔지도 짐작이 갔다.
‘위층의 직원들하고 약속을 잡은 건가?’
안유성은 각성자 협회장을 떠올렸다.
사람 쓰는데 탁월한 감각이 있는 그가 만약 이 상황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했다.
‘뭐 우리 같은 말단까지 신경 쓰시겠어? 안 그래도 신경 쓰실 일이 엄청 많은데.’
이제 저녁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기가 싫었다.
‘오랜만에 짜장면이나 시켜 먹을까?’
그는 핸드폰을 꺼내 주문을 넣었다.
“여보세요. 거기 양춘각이죠? 짜장면 하나 배달됩니까?”
* * *
그 시각.
강소는 식당 한쪽 구석에서 대본을 읽고 있는 유하영을 보고 있었다.
그때 유하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냐?”
강소의 물음에 유하영이 대본의 어느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고구마가 펑 하고 터졌어! 고구마는 맛있는데 왜 펑 하고 터져?”
그 말에 강소는 대본을 읽어 보았다.
게이트에 들어간 주인공 윤진과 소녀 이혜민이 배고픔에 식량을 찾던 중에 고구마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건 스위트 붐버포테 라는 고구마 형태를 하고 있는 마수였다.
원래 마수는 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먹을 수 있는 스위트 붐버포테는 건드리면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래서 한창 어려울 땐 스위트 붐버포테를 일반 고구마와 착각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다고 했다.
대본에서도 윤진이 폭발로부터 이혜민을 감싸는 그런 장면이 있었다.
“음, 그러니까 이건 말이지.”
강소는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여기서 나오는 고구마는 진짜 고구마가 아니라 마수라서 그런 거야.”
“그러면, 진짜 고구마는 맛있는 거 맞지?”
“물론이지.”
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건 유순태가 그리 말했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 것이었다.
“다행이야! 나 내일 고구마 찾으러 가는데, 힘들게 찾은 고구마가 맛이 없으면 슬플 거야.”
그 말에 강소는 웃었다.
따르르릉.
그때 가게의 전화벨이 울렸고, 알바 중인 오동수가 전화를 받았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주방을 향해 외쳤다.
“짜장면 하나! 배달이요!”
잠시 후.
강소는 각성자 협회 안에 있었다.
각성자 협회에서 일하는 직원들 역시 사람이었기에, 가끔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가서 먹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기에 음식을 배달해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
물론 각성자 협회의 특성상 1층에서 음식을 전달해 줘야 했다.
그래서 각성자 협회로 가는 음식들은 바구니 안에 담아서 배달했다.
일종의 서비스였다.
각성자 협회에 도착한 강소는 전화를 했다.
“양춘각입니다. 짜장면 하나 주문하신 분 맞으시죠?”
– 네. 맞습니다.
“1층에 도착했습니다.”
– 금방 가겠습니다.
잠시 후.
안유성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강소에게 다가갔다.
“짜장면 하나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돈은 여기 있습니다.”
안유성이 내민 돈을 받은 강소는 들고 있던 바구니를 그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그릇은 바구니 채 뒷문 쪽에 내 놓으시면 됩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그리고 강소가 각성자 협회에서 나오려는데, 누군가 마주쳤다.
“아! 안녕하세요.”
김명희였다.
“배달이 있으셨나 봅니다.”
“네.”
그의 대답에 김명희는 고개를 돌려, 음식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남자를 살폈다.
“아는 직원이십니까?”
강소의 물음에 그녀의 입에서 인적사항이 술술 나왔다.
“지원 6과의 2팀 직원 안유성. C급 기록의 마법을 각성했죠.”
“잘 아시는군요.”
“모든 직원들의 정보는 여기에 들어 있으니까요.”
김명희는 자신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모든 직원들의 정보를 기억하는 김명희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그곳은 뭐 하는 곳입니까?”
강소의 물음에 김명희가 대답했다.
“단순히 컴퓨터로 자료를 입력하는 그런 곳이에요.”
“협회장이 사람을 잘 쓴다고 동생이 그러던데, 그것도 아닌가 봅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그 말에 김명희의 눈이 단번에 날카로워졌다.
강소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런 인재를 단순히 자료나 입력하게 하다니 말입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14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