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74
173화. 새싹들의 날 (4)
강소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오늘은 12월의 첫 번째 주 월요일.
새싹 유치원의 학예회 ‘새싹들의 날’이다.
그리고 강소가 지도한 아이들이 연극을 선보이는 날이기도 했다.
오늘 유하영은 오전 10시까지 유치원에 가야 했지만, 새싹들의 날은 오후 2시에 시작이다.
2시부터 4시 30분까지의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미리 연습을 해야 했기에 강소는 11시까지 유치원으로 가야 했다.
“그럼 먼저 가마.”
“그래. 이따 보자.”
강소는 유순태의 배웅을 받으며 새싹 유치원으로 향했다. 이제 유치원으로 가는 길은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였다.
오늘은 외부인이 들어올 수 있는 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많은 헌터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강소는 신분증과, 임시 ID카드를 제시했다.
유치원 아이들의 연극 지도를 위해 유치원에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출입 증명서였다.
“네, 들어가십시오.”
“수고하십니다.”
강소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유치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리고 한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율동을 하고 있었다.
‘율동 연습을 하고 있나 보군.’
강소는 아이들이 짧은 팔과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꼬물꼬물 뽀짝뽀짝 움직이는 것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앞에서 율동을 하던 선생님은 미소 짓는 강소의 얼굴에 그만 율동하던 것을 잊어 버렸지만.
‘아…….’
그런 선생님을 보며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선생님이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
“연극 선생님이다!”
강소를 발견한 아이들이 그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율동 연습을 하고 있었구나.”
“네!”
“무척 잘하더구나. 하지만 지금은 율동 시간이니까 율동에 집중해야지.”
강소의 말에 아이들은 얼른 “네!”하고 대답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말 한마디로 아이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을 보며 선생님은 감탄했다.
‘아이들이 저렇게 쉽게 따르다니!’
그녀는 간신히 평정을 되찾고, 다시 율동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 평정을 되찾은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머물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유치원 안의 분위기가 왠지 뒤숭숭했다.
‘무슨 일이지?’
강소는 의문을 안은 채 주임 선생님이 근무하는 교무실로 향했다.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서명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커피 한 잔 하시겠습니까?”
“주십시오.”
강소는 교무실 가운데 있는 탁자 앞에 앉았고, 그녀는 그 앞에 두 잔의 커피를 놓았다.
그녀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강소가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군요.”
“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저녁, 함초롱 어린이가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실종…… 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함초롱은 오늘 연극에서 착한 남쪽 마녀 글린다 역을 맡은 7살 여자아이였다.
서명선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제저녁에 할머니와 함께 공원에 놀러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라져 버렸죠.”
“CCTV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사각지대로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경찰에서 찾고 있지만, 아직…….”
강소는 커피를 원샷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극 리허설, 언제 시작합니까?”
“그건 11시에…….”
“그럼 약 40분이 남았군요.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 * *
“흐흑. 엄마…… 아빠…… 할머니…….”
온통 캄캄했다.
함초롱은 훌쩍이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지만, 눈물은 끊임없이 흘렀다.
자신은 할머니랑 같이 공원에 산책하러 왔었는데, 그리고 여기저기 막 뛰어 다녔는데.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니 캄캄한 곳이었다.
사방을 헤맸지만, 나갈 수 없었다.
걷다가 넘어져서 다친 무릎과 손바닥도 아팠고, 또 배도 고팠다.
아빠랑 엄마랑 할머니도 보고 싶었다.
“오늘 새싹들의 날인데…….”
그리고 잘생긴 선생님이랑 연극도 해야 하는데 자신은 나갈 수 없었다.
무서웠고 서러웠다.
“흑, 흐윽…….”
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때였다.
퍽-! 퍼직-!
위쪽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들리는 다정한 목소리.
“초롱아. 눈을 감아 볼래?”
“어?”
낯익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따뜻한 손바닥이 얼굴에 닿았다.
“갑자기 빛을 보면 눈이 다칠 수 있으니까,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라.”
그 목소리에 함초롱이 물었다.
“연극 선생님?”
“그래. 초롱이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우리 요즘 매일 만났지?”
“네.”
“오늘 연극을 해야 하는데 오지 않아서 걱정했다. 그래서 찾으러 왔다.”
“흑…….”
“이제 안전하니까 안심해도 된다.”
“으아앙-! 선생님!”
그제야 안심했는지 그녀는 강소의 품에 안겼다.
강소의 뒤에는 김명희가 서 있었다.
“공원에 F급 게이트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게이트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존재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F급 게이트.
게이트는 게이트지만, 제대로 된 게이트 취급도 받지 못하는 게이트다.
커다란 진동이나 바람 같은 현상이 전혀 없이 게이트가 열리고, 또 발생하는 에너지 역시 거의 없기에 관측하는 건 불가능했다.
미처 처리되지 않은 게이트를 보지 못해서 그곳에 빠지는 불상사가 간혹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망자는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F급 게이트의 클리어 방법은 간단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기다리는 것.
F급 게이트는 생성된 지 이틀이 지나면 역류를 일으키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밖으로 내보낸다.
F급 게이트는 역류한다 해도 괜찮았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마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 안에서 정령과 같은 존재들이 나오곤 했다.
경찰들 중에 기운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각성자가 있었음에도 함초롱을 찾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 안에 들어가면서 닫혀 버린 F급 게이트는 S급이 아니면 찾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사라져 버리니까.
“그런데 그 아이가 F급 게이트에 빠졌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아이의 기운이 여기에서 느껴졌습니다.”
“네?”
“저는 제가 연극 지도를 맡은 모든 아이들의 기운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
강소는 함초롱이 실종되었다는 말에 즉시, 그녀의 기운을 추적했고 그녀가 아직 공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공원으로 왔고 그곳에서 이미 수색을 마친 곳을 다시 한 번 살피기 위해 온 김명희와 마주친 것.
“아무튼, 정말 다행이에요. 그리고 감사드려요.”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아이의 부모에게 데려다 주십시오.”
“네.”
강소는 그녀를 김명희에게 넘기려 했지만, 함초롱은 울음을 터트리며 강소의 목을 두 팔로 꽉 안으며 더욱 더 강소의 품 안에 파고들었다.
“아직 진정이 안 된 모양입니다.”
“할 수 없죠. 그냥 같이 가요.”
.
.
.
경찰서에 있던 함초롱의 부모는 아이를 찾았다는 김명희의 무전을 전해 듣고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길이 엇갈릴까 봐 경찰서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문이 열리고, 김명희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문 사이로 함초롱을 안은 강소도 들어왔다.
“초롱아!”
“흑……. 초롱아!”
아빠 엄마의 목소리에 강소를 꼭 안고 있던 함초롱이 반응했다.
“엄마? 아빠?”
“초롱아!”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함초롱과 그 부모의 모습에 강소는 심장이 저릿했다.
그 감정이 뭔지 강소는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감정을 말할 수도, 입 밖으로 낼 수도 없었다.
누르고 또 눌러서.
더 이상 누를 수 없을 때까지 눌러서.
조금만 틈을 주면 터져 버릴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함초롱은 힐러에게 치료를 받았다.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새싹들의 날에 참석하지 않고 곧바로 입원시키려 했지만, 함초롱은 꼭 연극을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의사와 힐러는 함초롱의 심리적 안정에는 입원 치료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연극에 참여할 수 있었다.
* * *
“그럼 지금부터 새싹 유치원, 새싹들의 날 행사를 시작합니다.”
사회는 주임 서명선이 맡았다.
“첫 번째 순서는 보리 반 아이들의 율동입니다!”
“와-!
“짝짝짝짝-!”
학부모들과 내빈들의 환호와 박수가 들리는 가운데 막이 올라가고 유하영과 친구들이 날개가 달린 꿀벌 옷을 입고 등장했다.
[붕붕붕! 꼬마벌이 엉덩이를 흔들며 꽃님에게 인사해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그 모습에 모두들 함박웃음을 지었고, 유순태는 열심히 유하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강소 역시 유하영을 핸드폰 사진으로 찍었다.
‘배경화면으로 해야겠군.’
뒤이어 6세 아이들인 밀 반과 7세 아이들인 쌀 반의 무대가 이어졌다.
그리고 학부모와 내빈들의 표정 역시 보리 반을 볼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등장만으로도 빛나는 존재였으니까.
뒤이어 프로젝트로 아이들의 활동을 담은 VCR이 상영되었다.
그 틈에 아이들은 연극 준비를 했다.
VCR을 보며 학부모와 내빈들은 감동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또 웃기도 하면서 아이들의 활동을 보았다.
강소는 준비를 마친 아이들을 둘러봤다.
“연습한 거 다 기억하고 있지?”
“네!”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된다. 만약 대사가 기억나지 않으면 나를 보면 된다. 나는 무대 바로 앞에 있을 테니까. 알았지?”
“네!”
VCR 상영이 끝나고, 서명선이 진행을 했다.
“그럼 이제 새싹 어린이들이 준비한 연극을 시작하겠습니다. 연극의 제목은 오즈의 마법사입니다.”
짝짝짝-!
공간을 가득 채우는 박수 소리.
고소라의 내레이션과 함께 연극이 시작되었다.
“아주 오래전, 한 소녀가 살던 마을에 회오리바람이 불었어요…….”
막이 오르고 은색 구두를 신은 유하영이 등장했다.
옆에는 강아지 토토 분장을 한 아이가 있었다.
“여기는 어디지? 토토야? 너는 알고 있니?”
“나도 몰라.”
유하영의 연기는 단번에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뒤이어 나온 아이들 역시 유하영의 연기에 힘입어 열심히 연기를 했다.
강소는 앞에서 아이들이 머뭇거릴 때면, 얼른 스케치북에 대사를 써서 들어 줬다.
이미 모든 대사를 다 외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새 연극은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안돼요! 아저씨! 저도 데려가 주세요!”
“미안하구나!”
“이를 어쩌지. 토토야. 우리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어.”
“걱정하지 마렴.”
“어? 누구세요?”
“나는 착한 남쪽의 마녀. 글린다란다.”
함초롱은 글린다 역을 훌륭하게 연기했고, 그걸 지켜보는 그녀의 부모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함초롱의 부모는 강소에게 감사하다면서 사례를 하겠다고 했지만 강소는 거절했다.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당연한 일에 사례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저 역시 제가 지도하는 아이를 구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함초롱의 부모는 감동한 표정이었다.
강소는 자신이 어린이들의 연극을 지도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함초롱의 기운을 기억할 수 있어, 그녀를 구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도로시와 토토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답니다.”
고소라의 나레이션에 이어 경쾌한 음악이 나오고 등장인물들 모두가 나와 율동을 하며 커튼콜을 했다.
“선생님!”
커튼콜이 끝나고, 아이들이 모두 강소에게 달려왔다.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행동에 강소의 두 눈이 커졌다.
“연극 잘했죠?”
“열심히 했어요!”
아이들의 말에 강소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 잘했다.”
그렇게 새싹의 날도, 강소가 지도했던 연극도 끝났다.
하지만.
강소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오늘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라고.
무림에서 온 배달부 17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