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75
174화. 다시 만나 (1)
도순이는 베이커리의 창밖을 내다보았다.
스으으으-.
불어오는 바람에 겨울이 담겨 있었다.
“도순아. 밥 먹자.”
– 네. 사장님.
도순이가 포로록 날아, 베이커리 한쪽의 탁자 위에 앉았다.
오늘 이혁의 점심은 야채를 잔뜩 넣은 샌드위치.
체중을 감량한 후에도, 방심하지 않고 평소에도 식단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
이혁은 티스푼으로 꿀을 푹 찍어 접시 위에 놨다.
그게 도순이의 식사였고, 도순이의 말에 의하면 진수성찬이라고 한다.
이혁이 주는 꿀은 진짜 자연산 꿀이었으니까.
– 사장님.
“왜?”
– 내일 첫눈이 올 거야요.
“첫눈이 온다고?”
도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첫눈이 오면 도순이 자야 한다요.
“아…… 험험. 그렇구나.”
이혁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헛기침을 했다.
지금의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전에 도순이가 이혁의 베이커리에 취업할 때 웃으며 자신은 첫눈이 오면 겨울잠을 자야 한다고 했었으니까.
하지만 도순이와 매일 붙어 다녔기에 잠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니고, 다시 봄이 올 때까지 약 서너 달 정도 못 보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그랬다.
* * *
퇴근 준비를 하는 백현미를 보며 동료 유지영이 물었다.
“현미 씨, 오늘 좋은 일 있어?”
“네?”
“혹시 데이트?”
“아!”
백현미의 ‘어떻게 아셨어요?’ 하는 표정에 유지영이 까르르 웃었다.
“얼굴에 다 드러나는데.”
그때 과장이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국수는 언제 먹을 수 있는 거야?”
그 말에 백현미의 양 볼이 붉어졌다.
“아,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암튼, 축의금 빵빵하게 준비해 놓고 있으니까 그런 줄로만 알아.”
“네. 왕창 받아 낼 거예요!”
과장은 코트를 걸친 뒤,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내가 먼저 퇴근해야 현미 씨 마음 편하게 데이트하러 가겠지. 하하하! 그럼 내일 봅시다!”
“네!”
“살펴 들어가세요!”
회계과 과장이 먼저 퇴근하고, 뒤이어 다른 직원들도 하나둘씩 퇴근하기 시작했다.
백현미는 핸드폰을 보았다.
이혁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 식당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백현미는 오늘의 데이트를 기대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레스토랑 들꽃.
이곳이 오늘 이혁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다.
그녀는 계단을 올라, 2층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하얀 셔츠에 검은색 앞치마를 두른 점원이 그녀를 맞아 주었다.
“일행이 있어요.”
그녀의 말에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백현미 씨 되십니까?”
“네. 맞아요.”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녀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색색의 파스텔 톤 꽃으로 인테리어한 그 모습에 백현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식당 주인이 식물의 마법 각성자인 듯했다.
‘그러니까 이 계절에 이렇게 많은 꽃들을 싱싱하게 피워내는 게 가능하겠지.’
지금 자신이 들어온 식당은 여자들의 소녀 감성을 이끌어 내는 인테리어였고, 그에 어울리는 파스타와 화덕 피자를 팔고 있었다.
보통 남자들의 취향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는 곳.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이런 곳을 어떻게 아시는 거지?’
곧 그녀는 한 테이블로 안내되었고, 그곳에는 캐주얼한 복장의 이혁이 앉아 있다가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오셨습니까?”
“네. 많이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저도 금방 왔습니다.”
가벼운 인사 뒤, 그들은 음식을 주문했다.
이혁은 매운 까르보나라를, 백현미는 새우 토마토 파스타를 시켰고, 추가로 마르게리타 피자까지 시켰다.
“그런데 이런 곳은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백현미의 물음에 이혁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양춘각 유 사장이 추천해 준 가게입니다.”
“네? 유 사장님이요?”
“네. 알바생이 알려 줘서 한 번 가 봤는데, 데이트 코스로 정말 좋았다고 하면서 추천해 주시더군요. 마음에 드십니까?”
“네. 무척이요.”
“유 사장에게 감사하다고 말해야겠군요.”
“꼭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에 이혁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사실, 이런 곳은 처음이라서…….”
이혁의 살짝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백현미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취향이 아님에도 그녀에게 맞춰 주려는 노력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점원이 음식을 밀 트레이에 가져와 테이블에 하나하나 차려 주었다.
“맛있게 드세요.”
“네, 현미 씨도요.”
백현미는 진한 토마토 소스의 맛을 음미했다.
“맛있네요.”
“입에 맞다니 다행입니다.”
“아, 혹시 마르게리타 피자가 건강식인 거 아세요?”
“그렇습니까? 저는 피자가 살찌는 음식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하하.”
“물론 많이 먹으면 살이 찌겠죠? 코끼리도 풀만 먹잖아요.”
“아! 그러네요. 하하하.”
좋은 분위기에, 좋은 식사가 더해지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백현미는 아까부터 이혁의 표정이 뭔가 어색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긍금했던 그녀는 결국,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네?”
“표정이 별로 좋지 않으셔서요.”
“아, 그게 말이죠…….”
이혁의 표정이 급격히 우울해졌다.
“내일 첫눈이 온대요.”
“?”
“그리고 첫눈이 오면 도순이가 겨울잠을 자야 한다고 하더군요.”
“아…… 꽃의 정령이라서 그렇군요.”
이혁이 도순이를 더 잘 돌보겠다고 구입한 ‘정령에 대해 궁금한 101가지’ 책을 그녀도 읽어 봤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한 것.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년 봄에 다시 만나겠지만 그래도, 섭섭하고 그렇습니다.”
“그 마음 저도 이해되네요. 저도 도순이를 한동안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별로 좋지 않아요.”
백현미는 말을 이었다.
“저도, 도순이에게 정이 많이 들었으니까요.”
그리고는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저, 그래서 말인데요. 저희 결혼이요.”
그 말에 움찔하며 이혁이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날짜를 좀 미루어서 내년 봄에 하는 게 어때요?”
“내년 봄에…… 말입니까?”
“저희 결혼에 도순이가 참석하지 못한다니! 너무 속상해요.”
그들은 내년 1월에 결혼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저도…… 그러고 싶어서 현미 씨에게 양해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럼 결정되었네요. 내년 4월에 도순이가 일어나면 해요.”
“감사합니다. 도순이도 좋아할 겁니다.”
그때 커피를 마시려던 그녀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잠깐만요! 그러면 오늘 저녁이 도순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올해의 마지막 저녁이라는 뜻이잖아요?”
“네.”
“세상에! 그런데 도순이 혼자 있다고요?”
이혁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늘 저녁, 함께 있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현미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데이트를 취소하려고 했는데…… 아시잖습니까? 도순이가 엄청 눈치 빠르다는 거요.”
“그래서…….”
“네.”
백현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요!”
“네?”
“저희, 오늘 밤은 도순이와 함께 있어요.”
그녀의 말에 이혁은 곧바로 영화를 취소하곤 함께 집으로 향했다.
* * *
도순이는 빈 화분에 걸터앉아 있었다.
도순이가 이혁에게 부탁해서 마련한 화분.
담겨 있는 흙이 오늘따라 왠지 더 차갑게 느껴진다.
– 심심해. 사장님하고 언니 보고 싶어.
오늘 이혁은 약속이 없으니까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도순이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의 데이트를 위해서 유순태에게 좋은 장소를 추천해 달라고까지 했었다.
– 사장님. 거짓말 못 해.
그래서 도순이는 이혁이 좋았다.
여왕님이 말한 대로, 모든 인간들이 나쁜 건 아니었다.
이혁을 비롯하여 백현미와 유순태 가족들, 그리고 베이커리에 올 때마다 자신을 예뻐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강소라는 이름의, 인간답지 않게 강한 인간도 있었다.
처음 자신이 강소의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를 훔쳐 먹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날이 자신의 마지막 날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강소는 도순이를 용서해 줬고, 이혁의 베이커리에 취업도 시켜 줬다.
– 강소 님. 정말 좋은 사람이야.
꽃의 정령에게 겨울잠이란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하지만 강소의 인벤토리 안에 들어가 있으면 겨울잠에 저항할 수 있다.
식물의 마법으로 꽃을 피운 화실 안에 들어가 있어도 겨울잠에 저항할 수 있다.
사실 도순이도 겨울잠을 자고 싶지 않았다.
강소에게 부탁하면 흔쾌히 ‘내 인벤토리 안에 들어가 있어라.’ 라고 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수명이 반으로 짧아진다.
겨울잠이라는 건 꽃의 정령들의 생존 본능이나 마찬가지다.
도순이는 겨울잠을 자는 게 싫었지만, 그 이상으로 이혁을 오랫동안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혁과 백현미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보고 싶었다.
그래서 겨울잠을 자는 것을 선택했다.
뻐꾹! 뻐꾹!
시계가 저녁 8시를 가리키며 뻐꾸기 모양 조각이 튀어나와 뻐꾹 소리를 냈다.
평소 그 소리에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하고 반응할 이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기분이 이상했다.
이혁과 백현미의 데이트에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신은 분위기를 읽을 줄 아는 정령이었으니까.
– 괜찮아. 나는 외롭지 않아.
……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외로운 건 외로운 거였다.
그때.
– 어?
도순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이 시간에 느껴질 리 없는 사람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띠띠띠 띠띠띠.
현관문의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이혁과 백현미가 들어왔다.
“도순아!”
“우리 왔어!”
– 사장님? 언니?
도순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백현미는 도순이에게 다가가 두 손으로 그녀를 들어 올렸다.
“우리 오늘 밤, 재미있게 놀자.”
그녀는 빙긋 웃었다.
“내일 휴가 받았으니까 밤새 놀 수도 있어.”
* * *
그날 밤.
강소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선지 오늘따라 꼬롱이와 뽀뽀의 상태가 이상했다.
평소와 달랐다.
꼬롱이는 평소의 하이 텐션을 잃어버린 채 창가에 찰딱 붙어서 달을 보며 ‘꼬뀨-!’ 거리고 있다.
꼬롱이가 아무리 꼬뀨거려도 무념무상으로 풀을 우물거리던 뽀뽀도 오늘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무슨 일이냐?”
“꼬뀨?”
“뽀뽀?”
“오늘은 평소와 무척 다르다.”
“꼬뀨…….”
“뽀…….”
강소의 물음에 그들은 힘이 쫙 빠진 소리를 냈다.
분명 뭔가 있었다.
그때 유하영이 손에 악보를 들고 1층으로 내려왔다.
강소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서.
오창수 팀과는 달리 강소는 윤경호와 유하영에게는 기술적인 것도 가르쳤다.
가장 우수한 제자는 하영이었다.
“오빠! 오늘 새로운 노래 배웠어. 연습해야 해!”
“황태준 작곡가님께서 무척 열심히 하시는구나.”
고영민에게 듣기로 유하영이 참여하는 스페셜 앨범 ‘무지개 꿈’의 수록곡은 총 12곡.
그 중 황태준이 작곡하는 건 6곡이었고, 나머지 여섯 곡은 RD엔터 소속 작곡가들이 작곡한 것을 싣기로 했다고 한다.
그 작곡가들 중에는 작곡에 재능이 있는 가수가 작곡한 노래도 있다고 했다.
고영민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뭐, 일종의 홍보이기도 합니다. 작곡돌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우려는 뭐, 그런 거죠. 그래도 제법 실력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서 강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고영민이 알아서 잘해 주고 있었으니까.
유하영이 강소에게 악보를 내밀었다.
“여기 악보.”
강소는 악보를 받아 들고, 가사와 음표를 보았다.
처음에는 자신이 있던 곳과는 다른 방식으로 음을 표시한다는 것에 신기해했었다.
그는 도서관의 책과 동영상 사이트를 보며 서양의 음계라는 것을 익혔다.
과거, 살수 조직에 의해 노래를 배울 때의 짬밥은 어디 가지 않았기에 금방 익힐 수 있었다.
살수 조직에서 가르치는 것이니 만큼, 배우는 과정 역시 녹록치 않았다.
진짜 잘 못해서 죽든지, 잘 해서 살든지 였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강소가 그토록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소는 그런 교육과정을 절대 다른 누구에게 적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의 생각에 윤경호가 “그럼 저는 뭡니까?”라고 반발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17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