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25
24화. 구상옥과 아우들 (3)
백은호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느껴지는 탕수육 냄새에 아까 근처에서 본 양춘각 배달부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 배달부가 이 근처에 있었지?’
탕수육 냄새는 나는데, 탕수육 그릇은 없으니, 지금 이 상황이 일어나기 직전에 배달부가 탕수육 그릇을 수거해 간 것이 틀림없었다.
‘냄새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어. 그 말은 이 일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뜻이겠지? 어쩌면 그 배달부가 범인을 봤을 수도 있겠군!’
아직 공터의 병칠파들이 넋이 나가 있는 지금, 유일한 목격자는 양춘각 배달부밖에 없었다.
* * *
그 시각, 강소가 배달을 마치고 양춘각에 도착하자 유순태가 주방에서 나와 그를 맞아 주었다.
“왔냐? 고생했다.”
“고생은 뭘. 다음 배달은?”
“아직 없다. 그런데 그 그릇은 탕수육 그릇이잖아?”
탕수육 접시는 상당히 컸기 때문에 철가방에서 삐쭉 나와 있었다.
그래서 유순태가 발견한 것.
강소는 철가방 안에서 탕수육과 소스를 담았던 그릇을 꺼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 이거 방금 탕수육 대 자를 주문한 곳에서 가져온 거야.”
“그렇게 금방, 그릇을 가져왔다고?”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시킨 손님들이 무척 배가 고팠던지 허겁지겁 먹더라고.”
“소스까지…… 다?”
보통 탕수육을 시키면, 소스를 부어 먹든지 찍어 먹든지 소스가 그릇에 잔뜩 남아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강소의 손에 들린 소스 그릇은 마치 핥아 먹기라도 한 듯 소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네가 만든 소스는 무척 맛있잖아. 네 요리에 자부심 가져도 된다.”
“그렇게 말하니 쑥스럽네. 하하하.”
강소는 그릇을 주방 설거지통에 넣었다.
솔직히 탕수육을 소스까지 다 먹었다는 것을 납득하기는 어려웠지만 강소가 워낙 천연덕스럽게 말하니 유순태 역시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주방 안에 있는 강소의 눈빛은 방금 전의 따스하고 다정한 눈빛이 아니었다.
그 눈은 모든 것을 얼려 버릴 것 같이 싸늘했다.
탕수육 배달을 갔더니,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열네 명의 양아치들이었다.
그들은 강소에게 배달부를 그만두라 협박하면서 철가방을 발로 차고 탕수육 그릇을 엎으며 난리를 부렸다.
물론, 그걸 그냥 두고 볼 강소가 아니었다.
결국 강소는 무릎 꿇고 반성하는 그들의 입에서 구상옥이라는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구상옥이라…….’
자신의 친구를 이용해 먹으려는 구상옥이란 자를 더는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는 유순태에게 말했다.
“순태야! 오늘 저녁에 잠깐 밖에 나갔다 오마.”
“어디 가려고?”
“그냥 세상 구경 좀 할까 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멀리 가지는 않을 테니까.”
* * *
그날 저녁.
강소는 자신의 방에서 나왔다.
그때 강소의 발밑에서 꼬롱이가 앞발로 바닥을 치며 꼬리를 흔들었다.
“꼬뀨! 꼬뀨! 뀨!”
“같이 가자고? 뭐, 안 될 건 없지.”
강소는 꼬롱이를 들어 자신의 셔츠 안에 넣고 양춘각에서 나왔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병칠파 녀석들에게 자백받은 내용을 떠올렸다.
그자들 중에는 구상옥이 어디에 사는지 잘 아는 자가 있었다.
강소는 구상옥이 산다는 원룸으로 향했다.
그가 이 세상에 와서 신기해했던 것이 무척이나 다양한 형태의 집이 있다는 것이었다.
판자촌의 판자집부터 원룸, 투룸, 오피스텔, 아파트, 연립주택과 호화주택까지.
물론 집이 그 사람의 재정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는 건 자신이 살던 곳이나 이곳이나 다를 건 없었다.
‘여긴가?’
강소는 어느새 구상옥의 원룸에 도착했다.
‘음…….’
그런데, 뭔가 상태가 이상했다.
2층에 있는 그의 원룸 앞에는 우편물이 가득했다.
‘이건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는 증거인가?’
집 문은 열려 있었다.
열렸다기보다는 반은 뜯겨 나가 있었기에 잠금장치의 기능은 이미 상실한 상태였다.
‘들어가도 되겠지?’
강소는 슬쩍 원룸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원룸 안은 신발 자국과 너부러진 물건들로 인해 난리였다.
‘…….’
강소는 당황했다.
마치 급하게 야반도주한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누구십니까?”
굵은 남자의 목소리에 강소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누가 등 뒤에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별로 위험하지 않아 보여 그냥 있었던 것.
“혹시 여기 사는 구상옥 그 새…… 아니, 구상옥 씨와 아는 사이십니까?”
“이 집 주인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없군요.”
“볼일이라면…….”
강소는 빠르게 발아래에 짓이겨진 종이의 글자를 읽어 보았다.
사설 금융 회사의 독촉장이었다.
‘이쪽도 염왕채가 있군.’
그런데 그게 한 회사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 때문에 염왕채를 이렇게 많이 끌어다 쓴 거지?’
덕분에 뭐라 대답해야 곤란한 상황을 피할 수 있을지 알 수 있었다.
“받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그의 대답에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던 젊은 남자의 자세는 금방 풀어져 버렸다.
“하! 그 새끼! 진짜 간덩이가 부었네!”
그는 말을 이었다.
“포기하는 게 좋을 거요! 대체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안 보여서 이쪽도 죽겠으니까.”
“설마 그쪽도?”
“하! 이 개자식이 소리 소문도 없이 날라서……. 그놈 못 잡으면 내가 형님한테 죽으니 미치겠습니다.”
“그쪽도 고충이 많으시군요. 이해합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상대의 감정에 공감해 주는 건 그가 살수였을 때 종종 쓰던 방법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동종업자라는 동질감을 느껴서인지 아니면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그런지 남자는 술술 정보를 뱉어내었다.
“뭐 병원비나 사업 같은 데 쓴 것도 아니고, 매일 술 처먹고 여자 만나는데 그 돈을 다 썼다는데, 미쳐도 단단히 미친 새끼 아닙니까?”
강소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진짜 쓰레기였군.’
그는 앞의 남자에게 물었다.
“만약 구상옥을 찾으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어떻게 하긴요! 탈탈 털어 버려야죠.”
순간 강소는 자신이 손을 쓰지 않아도 구상옥을 처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저, 연락처 좀 알려 주십시오. 혹시 그자를 찾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젊은 사채업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강소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락을 준다면 고맙기는 한데, 그쪽 먼저 돈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저에게 연락을 줍니까?”
“저는 받을 빚을 포기해도 됩니다만, 한 대 패 주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러니 제가 연락드리면 저 대신 패 달라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랬다.
알아서 탈탈 털어 줄 사람이 있는데, 사서 수고할 필요는 없었다.
강소의 예상대로 젊은 사채업자는 기분이 좋아서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그런 쪽에는 아주 프로페셔널한 전문가들이니 말입니다. 흐흐흐.”
뭐든지 전문가에게 맡겨야 뒤탈이 없는 법이었다.
그는 자신의 명함을 주며, 부탁드린다고 인사하고는 구상옥의 원룸에서 나갔다.
그가 돌아가고, 강소는 셔츠 사이로 빠끔히 고개를 내민 꼬롱이에게 말했다.
“혹시 이곳에서 살던 구상옥이라는 자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겠나?”
꼬롱이를 코를 내밀어 킁킁거렸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냄새가 섞여 있었지만, 꼬롱이는 구상옥의 냄새를 정확하게 잡아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뀨! 꼬뀨!”
“그럼 안내 부탁한다.”
“뀨!”
잠시 후.
강소는 어느 다세대 주택의 옥상에 있었다.
그 옥상 위에 있는 작은 옥탑방이 바로 꼬롱이가 알려 준 장소였다.
강소는 슬그머니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 흔적 없이 침입하는 건 살수였던 그의 특기였으니까.
바닥에 깔린 이불에서 한 남자가 단잠에 빠져 있었다.
그 얼굴은 병칠파의 기억에서 봤던 그 얼굴이 맞았다.
‘찾았다!’
강소는 구상옥의 옥탑방에서 나왔고,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는 핸드폰을 들어 아까 젊은 사채업자에게서 받은 명함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명함을 받았던 사람인데, 구상옥이라는 자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서 알려 드리려고요.”
– 그게 정말입니까? 어디입니까?
“주소는…….”
강소는 옥탑방의 주소를 불러 주었고, 전화를 끊은 뒤 미소 지었다.
이제부터가 쇼 타임이었다.
* * *
그 시각.
구상옥은 자신에게 닥칠 일도 알지 못한 채 배를 북북 긁으며 단잠에 빠져 있었다.
그가 사는 옥탑의 단칸방에는 치우지 않은 과자와 컵라면의 잔해들과 술병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씀씀이를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렵다고 했다. 양춘각의 배달부를 그만둔 뒤에도 신나게 유흥을 즐겼고, 결국 이미 통장 잔고는 바닥, 모든 카드는 정지된 지 오래였다.
결국 사채까지 빌려 유흥을 즐겼지만, 빚을 갚을 능력이 없으니 빚 독촉을 피해 야반도주하여 이 작은 옥탑방에 피신해 있는 것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핸드폰이 울렸다.
이미 자신의 핸드폰은 정지시켜 버렸고, 아는 동생 중 하나의 이름을 빌려 개통한 전화였다.
귀찮아서 받지 않았지만, 전화벨은 집요하게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에이, 씨×! 누구야!”
결국 구상옥은 성질을 내며 전화를 받았다.
– 형님! 저 만득입니다! 형님! 지금 큰일 났습니다! 병칠파 녀석들이 지금 유치장에 있습니다!
“뭐? 유치장? 설마 그 알바 새끼 패다가 걸렸냐?”
만득은 다급하게 구상옥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 그게 아니라 그 녀석들, 그 알바는 보지도 못했답니다. 아니, 아예 그 당시 기억이 없답니다! 문제는 근처 상인들하고 행인들에게 시비 털다가 고발당해서 지금 수배 중이라는 겁니다.
“쯧쯧. 안 됐네. 그럼 전화 끊어라.”
– 네?
만득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걔들이 수배당한 게 내 탓이냐?”
– 혀, 형님? 지금 그 녀석들이 제 이름까지 불어서…… 아무튼 저 지금 상당히 곤란한 상황입니다.
“나는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 일로 전화하지 마라.”
필요해서 쓰다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미련 없이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구상옥의 인성이었다.
-형님!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제가 형님을 위해서 얼마나 개처럼 굴렀는데!
“내가 언제 그러라고 했냐? 전화 끊어라.”
– 형님! 상옥 형님!
수화기 너머로 애타는 만득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구상옥은 전화를 끊었다.
“한참 잘 자고 있었는데, 별 시답잖은 전화나 하고.”
구상옥은 다시 이불 위에 누웠지만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쾅쾅쾅-!
“구상옥 씨! 계십니까?”
듣는 것만으로도 등골에 소름이 쫙 끼치는 이 목소리는 분명했다. 사채업자였다.
“어이! 이제 그만 좀 도망가지?”
“여기 있는 거 다 알고 있거든?”
구상옥은 당황했다.
“어, 어떻게 알았지?”
사채업자들 중에는 추적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있었기에 꽤 고가의 추적 방지 아티팩트를 구입하여 착용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손에 있는 반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추적당하지 않고 야반도주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도망가야 했다.
그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이들은 악명 높기로 유명한 사설 금융회사 사람들이었다.
잡히면 장기가 털리는 건 기본 옵션이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날쌔게도 움직이던 구상옥의 몸은 어쩐지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우지끈-!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채업자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 새끼! 여기서 잘 먹고 잘 처자고 계셨네?”
“남의 돈 떼먹고 도망간 놈 팔자 참 편하다? ××아?”
“야야! 건드리지 마라! 장기 상할라.”
구상옥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편, 강소는 허공답보로 공중에 떠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도망가려는 구상옥의 몸을 내공을 이용하여 붙잡아 두기까지 하였다.
사채업자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구상옥을 보면서도 강소는 측은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업자득이지.’
이제 양춘각으로 돌아가야 했다.
너무 늦으면 유순태가 걱정할 테니까.
무림에서 온 배달부 2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