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24
23화. 구상옥과 아우들 (2)
유순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에휴-! 이래서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러는 건가? 나도 참! 강소가 얻어터질까 봐 걱정하다니!’
그는 빛의 속도로 양파를 까고 있는 강소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 그런데, 강소야.”
“……?”
“혹시나 해서 말인데 그 최동만이라는 사람…… 혹시 심하게 다루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
“심하게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거냐?”
“이를테면…… 죽였다거나?”
그 말에 강소는 씩 웃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멀쩡하다.”
“정말이지?”
“그래.”
“그, 그럼 다행이고.”
강소는 피식 웃었다.
‘역시 티 안 나게 패기를 잘했군.’
문득 강소는 유순태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구상옥이라는 놈을 그냥 둘 거냐?”
“그냥 둬야지. 뭘 어찌하겠냐?”
“그냥 넘어간다고?”
강소가 의문을 표하자 유순태는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 일 가지고 경찰서에 가 봤자 그 녀석이 받는 벌은 벌금형 정도야. 내가 겪을 귀찮음과 번거로움, 그리고 그 녀석의 보복까지 생각해 보면 그냥 넘어가는 게 낫지. 그것과 별개로 기분은 더럽지만.”
“증인이 있는데?”
“내가 구상옥, 그 녀석을 잘 아는데. 그 비열한 놈이 자기 빠져나갈 구멍 하나 만들지 않고 일을 시켰을 리가 없거든.”
“……그렇군.”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법이 있기는 하지만, 정작 그 법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은 자신이 살던 곳이나 여기나 비슷한 것 같았다.
* * *
사흘 후 늦은 저녁.
구상옥은 자신의 핸드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슬슬 입질 올 때가 되었는데?”
최동만이 양춘각 오토바이의 브레이크에 수작을 부려놨다고 전화한 것이 벌써 사흘 전이었다.
몇 번 브레이크를 잡다 보면 어느새 브레이크가 듣지 않게 말이다.
배달을 하면서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과속하게 되는 만큼, 사고가 나도 열 번은 더 났어야 했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는 소식도, 양춘각 배달부가 공석이 되었다는 소식도 없었다.
“이 새끼, 요즘 좀 풀어 줬더니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건가?”
그는 최동만에게 전화를 걸었다.
–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
안내 멘트에 구상옥은 당황했고, 몇 번이나 다시 걸었지만 들리는 멘트는 같았다.
“하! 이 새끼 지금 잠수 탄 거야?”
하지만 구상옥에게는 최동만 말고도 여러 동생이 있었다.
그는 그중의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 형님!
“그래, 너 혹시 동만이 놈 요즘 뭐 하는지 아는 거 있냐?”
– 아, 동만이 형님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짓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못 들으셨습니까?
“뭐? 노, 농사?”
– 이틀 전인가? 다른 애들이 만났는데 동만 형님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고 합니다.
“…….”
– 허공을 보며 용서해 달라고, 이제 착실하게 살겠다고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흠칫 놀라거나 불안해 보였다던데요. 그러다 갑자기 시골로 내려가 버렸고요.
“이 자식이 진짜 미쳤구나!”
구상옥은 한숨을 쉬었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오토바이에 손을 댄 그 계획은 실패라는 것이었다.
생활비가 바닥을 보이는 지금, 그는 다급했다.
“만득아, 너 아직 병칠이 애들하고 연락하고 있지?”
그 말에 김만득은 화들짝 놀라 반문했다.
– 네? 그렇기는 한데…… 걔들은 왜?
“밟아 줘야 할 놈이 있거든.”
* * *
백은호는 오랜만에 양춘각에 왔다.
사실, 양춘각이 목적이 아니라 볼일이 있어 가는 도중 배가 출출한 것 같아서 양춘각에 들른 것이었다.
가자마자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하는데 배까지 고프면 그것만큼 서글픈 게 또 있을까?
그때, 문이 열리며 은색 헬멧을 쓴 강소가 나왔다.
탓-!
철가방을 든 강소는 땅을 박찼고, 눈 깜짝할 사이에 저 멀리 사라진 강소를 보며 백은호는 눈을 깜박였다.
“휘유-! 엄청 빠른데?”
그는 양춘각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유순태와 임소영은 백은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저녁 먹으러 왔습니다. 짜장면 곱빼기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유순태는 다시 웍을 돌리기 시작했고, 임소영은 백은호 앞에 단무지와 김치를 놓았다.
“아, 그런데 이 집 배달부 말입니다. 방금 배달하는 것을 보니, 각성자 같던데…….”
임소영은 미리 말을 맞춘 대로 대답했다.
“네. F급 각성자인데, 달리는 능력이 있어서 오토바이를 쓰지 않고 배달하고 있어요.”
“그렇습니까? 달리는 능력이라면, 보조 계열인가 보군요.”
각성자는 전투 계열과 보조 계열로 나눌 수 있었다.
그중 보조 계열에는 다양한 능력이 있었고 그 능력의 가짓수가 만여 개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강소에게 달리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F급이라고?’
백은호는 그냥 각성자가 아닌 B급 각성자였고 거기에 베일에 싸인 지원 1과의, 3팀장이었다.
그 말은 상대방의 능력을 보면 대충 견적이 나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F급은 무슨! 딱 봐도 C급 이상이던데.’
그러나 백은호는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각성자치고 자신의 등급을 아래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각성자의 등급 자체가 일종의 지위였으니까.
그래서 백은호는 배달부에게 뭔가 사연이 있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냥 모른 척 넘어가기로 한 것.
탁, 곧 그의 앞에 짜장면 그릇이 놓였다.
“맛있게 드십시오!”
“잘 먹겠습니다!”
백은호는 짜장면을 비벼 한 젓가락 크게 말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이 맛이야!’
잠시 후, 식사를 마친 백은호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양춘각을 나섰다.
“그럼 가 볼까?”
그가 향한 곳은 유아영이 다니는 새싹 유치원 앞에 위치한 헌터 총회였다.
다음 주 화요일에 그곳에서 정기 총회가 열리고, 그 지원을 맡은 팀들 중 하나가 지원 1과의 3팀이었다.
다른 회의도 아니고 무려 헌터 총회의 정기 총회였다.
각성자 협회장뿐만 아니라 헌터계의 굵직한 인물들이 다 모이는 자리였기에 3팀의 팀장인 그가 직접 헌터 총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백은호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진짜 가기 싫다.’
사실 그의 능력은 텔레포트.
그래서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헌터 총회로 갈 수 있었지만 일부러 천천히 걸어서 헌터 총회로 향했다.
‘그나저나 붐버맨 이 자식은 대체 무슨 생각이야?’
두 달 전, 감찰과에서 첩보가 들어왔다.
정기 총회를 노리고 붐버맨이 활동 중이라는 첩보였다.
붐버맨은 각성한 능력으로 범죄를 일으키고 다니는 통칭 블랙맨 중 하나였다.
그의 능력은 이름 그대로 폭발을 일으키는 폭렬 능력.
문제는 폭렬 능력의 특성상 사고를 일으키면 필연적으로 다수의 사상자를 발생시킨다는 것이었다.
‘개나리 십장생 같은 자식! 그 능력으로 마수나 잡을 것이지! 그런데 그 녀석…… 아직 살아 있었어?’
저번, 백화점 폭발 미수 사건 당시 집행과 직원들과의 전투 끝에 자신이 일으킨 폭발에 휘말렸고 상당히 큰 부상을 입고 죽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활동한다는 소식이 들린 것!
덕분에 감찰과와 집행과 직원들이 이를 갈며 밤낮없이 개고생을 하고 있었다.
새싹 유치원의 고소라 역시 그 이유로 인해 유치원 선생님으로 위장해 잠복 중인 것이었다.
당연히 붐버맨을 향한 백은호의 감정도 곱지 않았다.
‘저번 정기 총회는 무사히 넘어갔지만, 이번에도 과연 무사히 넘어가려나?’
그때였다.
백은호 앞쪽의 골목길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철가방을 들고 은색 헬멧을 쓴 그는 양춘각의 배달부인 강소였다.
강소는 쏜살같이 다시 양춘각을 향해 달려갔고, 백은호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 빠르기는 하군.’
그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가야지. 그래, 가자! 어차피 가야 하는 거!”
백은호는 다시 헌터 총회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흐으윽-! 살려…….”
귓가에 누군가의 신음이 들렸다.
각성자들의 감각은 일반인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고, 작은 신음이었지만 백은호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신음이 들리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곧 그 장소에 도착한 백은호는 경악했다.
“……!”
골목이 끝나는 부근에 있는 제법 넓은 공터에 십여 명의 남자들이 인사불성이 된 채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이보세요!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백은호는 그들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모두 목숨이 위태롭지 않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누군가를 향해 용서를 빌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흐윽-! 살려 주세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으허허헝-!”
“더, 더 이상은 못 먹습니다!”
“저는 탕수육 좋아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차, 차라리 죽여 줘…….”
그들을 보며 백은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단체로 미친 게 아니라면 정신계 각성자에게 당한 것 같은데? 이 근처에 블랙맨이 나타났나?’
혹시 싶어 백은호는 품 안의 작은 기계를 꺼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기계 이름은 오러 감지기.
모든 각성자는 능력을 쓰면 반드시 그 장소에 오러가 남아 있었다.
각성자의 능력 자체가 체내의 오러를 외부로 방출하는 원리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장소에 남아 있는 오러는 사라졌고, 하루가 지나면 완벽하게 사라지기는 하지만 그 현상을 이용하여 증거를 잡아 블랙맨을 검거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각성 등급이 높을수록 남아 있는 오러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건 아마도 더 효율적으로 오러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일 터.
백은호는 기계를 작동시켰다.
삐-!
남아 있는 오러의 수치는 01.
수치가 05 이하였으니, 지금 눈앞의 현장은 각성자의 짓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후우…… 그럼 대체 왜?”
백은호는 자신 혼자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기에 인근 경찰서와 구급대에 전화를 걸어 지원을 요청했다.
각성자든 일반인이든 모든 사건의 1차 담당은 경찰이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이 상황을 판단하여 각성자가 연관된 사건이면 각성자 협회에 사건을 넘겼고, 일반 사건이면 경찰서 자체에서 해결하는 시스템이었다.
곧 경찰이 도착했고, 그들은 널브러져 있는 이들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 이 자식들! 병칠파 자식들 아니야!”
“네? 병칠파요?”
“이 부근의 양아치들인데 말도 마십시오! 피해 신고는 들어오는데, 이 자식들 얼마나 치고 빠지기를 잘하는지! 일반인들이라 각성자 협회의 지원도 받지 못해 검거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잘 걸렸다, 이 자식들!”
각성자 협회의 도움을 받아 검거할 수 있는 자들은 법으로 블랙맨과 중범죄자들로 정해져 있었다.
그 외의 경범자들은 각성자 협회에서 터치하지 않았는데 거기에는 좀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자식들, 대체 왜 이런 꼴로?”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신음을 듣고 와 보니 이런 상황입니다.”
그때 구급대원들이 도착했고, 구급대원 중 하나인 E급 힐러가 뛰어와 그들의 부상을 살폈다.
“어?”
힐러는 고개를 갸웃했고 백은호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저, 이분들…… 멀쩡한데요?”
“네?”
“타박상도 없고…….”
그때였다.
꼬르르륵.
힐러의 배에서 소리가 났고,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 제가 아직 밥을 못 먹어서…… 갑자기 탕수육 소스 냄새를 맡으니까 배가 더 고프네요. 헤헤헤.”
“탕수육 소스요?”
힐러 역시 각성자였기에 감각이 예민하여 알아차린 것 같았다.
사실 백은호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공터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고, 왜인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군침이 돌게 하는 새콤달콤한 냄새였지만 정확히 뭔지 알아채지 못하던 차에 힐러 덕분에 그 냄새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건 탕수육 소스 냄새였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2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