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31
30화.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 (4)
강소는 얼마 전 유순태와 함께 이혁의 베이커리에 다녀올 때 보았던 바람의 정령이 기억났다.
그때도, 바람의 정령이 그의 감각에 느껴지지 않아 놀랐었다.
그의 감각에 느껴지지 않는 존재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으니까.
‘저 꽃의 정령 역시 정령이라 그랬군!’
정령은 자연에서 태어난, 자연 한없이 가까운 존재라 하였다.
그러니 강소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거기에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도 며칠 전이 처음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였으니까.
게다가 정령은 마음만 먹으면 어떤 물체든 방해받지 않고 통과할 수 있었다.
‘특정한 자연의 기운이 뭉쳐 있는 것 같군!’
강소는 이 두 번의 마주침으로 인해 정령이 어떤 기운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기운도 알아냈는데, 꽃의 정령을 생포하지 못할 리 없었다.
우웅-!
강소의 몸에서 기운이 뻗어 나가 벽을 통과해 도망치려는 꽃의 정령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자신의 눈앞으로 끌고 왔다.
마음먹으면 모든 물체를 통과할 수 있다지만, 강소의 기운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 녀석!”
강소는 꽃의 정령에게 호통을 쳤다.
하지만 강소는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부딪혔다.
강소에게 붙잡힌 꽃의 정령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고, 그걸 보자 마치 자신이 나쁜 놈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혼내야 할 건 혼내야 하는 법!
강소는 마음을 다잡고 꽃의 정령에게 말했다.
“네가 지금까지 내 롤 케이크를 훔쳐 먹은 거냐?”
꽃의 정령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강소에게 꽃의 정령의 미안함과 죄책감이 전해졌다.
“역시 네가 범인이었구나!”
그때 강소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는 그 목소리가 꽃의 정령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 미안. 나빠. 내가.
“잘못한 건 아는구나.”
– 알아. 어쩔 수 없어. 하지만.
“……?”
– 너무. 달콤해. 빵이. 나. 배고파.
그러니까 꽃의 정령의 말을 종합해 보면,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지만 롤 케이크가 너무 달콤하고 또 꽃의 정령이 배고픈 상태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혁 사장님이 잘못했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이혁이 빵을 너무 달콤하고 맛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 꽃의 정령. 좋아해. 달콤함.
“꽃의 정령이 달콤한 것을 좋아한다고?”
– 응. 나. 나빠.
그리고 앙증맞은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콩콩 때렸다.
강소는 너무 귀여운 것을 봐도, 그걸 보는 사람의 심장에 무리가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 때릴 데도 없는데 그러지 마라. 나 그렇게 야박한 사람 아니다. 배고파서 그랬다는데 말이지.”
이곳은 자신이 살던 곳과는 다른 곳이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가볍게 취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강소는 이미 살수를 그만두며 평범하게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살기로 했다.
흔한 이웃집의 청년처럼, 평범하게 말이다.
그는 전에 유순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한국에서는 삼세 번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가위 바위 보를 해도 세 판, 예의상 거절해도 세 번, 그리고 용서해 주는 것 역시 세 번이라고 말이다.
물론, 구상옥 같은 놈은 제외하고.
“에휴-!”
강소는 기운을 움직여, 꽃의 정령을 풀어 주었다.
“이번에는 용서해 주마.”
그의 말에 꽃의 정령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 너. 용서? 하지만. 나. 알아. 너. 강해. 나. 소멸.
단어의 나열뿐이었지만, 강소는 꽃의 정령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꽃의 정령은 자연에서 태어난 자연에 한없이 가까운 존재.
성장하면서 능력이 강해지지만, 본래부터 기운을 느끼는 능력은 S급이었다.
그렇기에 꽃의 정령은 강소의 기운에 의해 잡혔을 때 강소의 강대한 힘을 일부이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 일부만 살짝 느꼈을 뿐이지만, 강소가 무서운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면 자신 같은 꽃의 정령 따위는 순식간에 소멸될 터!
그런데 용서해 준다고 했다.
강소는 손가락을 뻗어 꽃의 정령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힘을 알아차렸구나! 하긴, 자연에서 온 존재이니 알아차릴 수밖에. 하지만 그 이야기는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비밀?
“그래, 비밀이다.”
딸랑.
그때 문이 열리며 유순태와 이혁이 들어왔다.
유순태는 약속이 있어 잠깐 나갔다가, 9시에 양춘각으로 오라는 강소의 말에 양춘각으로 오던 이혁과 만난 것.
“강소야! 방에 있냐? 이 사장님 오셨다.”
유순태의 말에 강소가 얼른 대답했다.
“그래, 방에 있다.”
“그런데 안 나오고 뭐해? 문 연다.”
유순태는 방문을 열었고, 순간 굳어진 채 두 눈만 깜빡였다.
강소의 앞에 꽃의 정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꽃의 정령?”
“맞다.”
“근데 왜…… 여기 있어?”
유순태의 물음에 강소는 눈짓으로 냉장고를 가리켰고, 그제야 유순태는 열린 냉장고 안에 보이는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를 보았다.
“어? 이 롤 케이크…… 누가 파먹은 흔적이……?”
그제야 유순태는 깨달았다.
“이 꽃의 정령이 범인이었군!”
“하지만 용서해 주기로 했다.”
그 말을 양춘각 홀에 앉아 듣고 있던 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롤 케이크에는 벌꿀을 넣는데 그것 때문인가?”
그 말에 강소와 유순태 그리고 꽃의 정령도 이혁을 바라보았다.
“벌꿀…… 말입니까?”
“그래, 벌꿀 말이야. 설탕 먹여서 만든 사양 꿀이 아니라 진짜 자연산 벌꿀을 넣지. 그래서 단가가 좀 비싸.”
유순태가 말했다.
“꽃의 정령이 봄에 활동하기 시작하는 이유는, 꽃이 피는 계절이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꽃의 정령은 꽃에서 기운을 얻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꽃의 기운이 배어 있는 꿀 역시 좋아해.”
“역시 경력 10년의 짐꾼이야! 별걸 다 아네!”
“하하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형님.”
강소는 고개를 돌려 꽃의 정령을 보았다.
“아무튼, 이제 가라. 다시는 남의 것을 훔쳐 먹지 말고, 정 배고프면 나에게 와라. 아니면 일이라도 해서…… 그런데 정령도 일을 하나?”
그때 꽃의 정령이 강소에게 말했다.
– 나. 염치. 알아. 나. 일해. 나. 배고파.
“일을 시켜 달라고?”
유순태가 고민에 찬 얼굴로 말했다.
“중국집에서 꽃의 정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그때 이혁이 말했다.
“우리 베이커리라도 괜찮으면 일할래?”
– 정말?
꽃의 정령은 이혁에게 날아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 나. 계란. 잘 옮겨! 빵. 잘 날라!
꽃의 정령은 이혁에게 자신의 가치를 열심히 어필했고, 이혁은 물었다.
“그래서, 월급은 얼마나 받기를 원하는 건데?”
– 한 달. 꿀. 이만큼!
꽃의 정령은 두 팔을 힘껏 폈지만, 그래도 사람이 손바닥을 쫙 편 것보다 짧았다.
“그만큼이 얼마큼이지?”
꽃의 정령은 양춘각 홀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종이컵을 가져와 앞에 놓았다.
– 이만큼!
“알겠다. 좀 더 인심 써서 한 달에 꿀 200g을 주지.”
그렇게 순식간에 연봉 협상을 마치고, 꽃의 정령은 이혁의 베이커리에서 일하게 되었다.
역시 그 아우에 그 형님이라고, 강소는 두 남자 모두 사람이 좋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형님이 혼자 생활하셔서 걱정되었는데, 꽃의 정령과 함께 있으니 걱정을 덜 수 있겠군요.”
“그런가?”
강소는 씩 웃었다.
이혁에게도 그렇고 꽃의 정령에게도 그렇고 잘 된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너를 뭐라고 불러야지?”
이혁의 물음에 꽃의 정령이 말했다.
– 도순이.
“응?”
– 내 이름. 도순이.
“그렇구나. ‘도’ 자가 복숭아 ‘도’ 자를 써서, 복숭아 꽃 정령이라는 건가?”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정령의 치마가 복숭아꽃을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아, 이 사장님.”
강소는 이혁을 불렀다.
“근처에 좋은 장소를 물색해 놓았습니다. 내일부터 그곳에서 훈련…… 이 아니라 운동을 할 계획입니다.”
“그곳이 어딘데?”
“여기서 가깝습니다.”
* * *
다음 날 아침.
꽃의 정령 도순이는 꽃잎 이불을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혁 베이커리가 있는 건물의 2층.
작은 부엌과 방 두 개의 작은 전셋집이 이혁이 사는 집이었다.
부엌의 식탁 위에서 잠을 잔 도순이는 주섬주섬 꽃잎 이부자리를 잘 개켜서 자신이 메고 다니는 가방 안에 쏙 넣었다.
오늘부터 도순이는 이혁 베이커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월급은 종이컵 한 컵보다 조금 더 많은 분량의 꿀.
도순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하함-! 잘 잤냐?”
방문이 열리고, 머리가 까치집을 진 이혁이 나오며 도순이에게 인사했다.
– 사장님. 좋은. 아침.
“그래, 좋은 아침이다!”
이혁은 목욕탕으로 가 씻고, 다시 깔끔해진 얼굴로 나왔다.
“그럼 일하러 가자.”
도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시간은 5시 반.
베이커리의 일은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말하는 것을 잘 기억해라.”
이혁은 도순이에게 베이커리의 구조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려 주었다.
“그럼 나는 반죽을 할 테니까 소금을 가져와라.”
– 알았어!
“네 라고 대답해야지!”
– 네!
도순이는 옆의 선반에서 소금을 가져왔다.
“잘했다. 이제 계란을 가져와라.”
– 네!
도순이는 이혁의 지시대로 이것저것 재료를 가져왔고, 이혁은 빵 반죽을 하고 발효를 시키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도순이 덕분에 이혁은 한결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뭐든 지시만 하면 도순이가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무거워서 도순이가 들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제 롤 케이크를…….”
그때 도순이는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혁은 도순이가 왜 그런지 알아차렸다.
이혁은 손에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의 안쪽에 바를 벌꿀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줄까?”
그 물음에 도순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 안 돼! 약속! 나 착해!
“후후후.”
이혁은 티스푼으로 꿀을 조금 찍어 도순이의 입 앞에 놓았다.
“자, 이건 보너스다.”
– 음!
얼떨결에 달콤한 벌꿀을 맛본 도순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 달콤해!
“후후후.”
이혁은 왜인지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딸이 생긴 기분이었다.
– 오늘 밤. 운동?
그때 도순이가 물었다.
오늘 밤에 운동하러 가느냐는 뜻이었다.
“가야지. 약속했으니까?”
– 운동? 왜?
운동을 왜 하느냐는 물음이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거든. 그런데 그 여자가 배에 복근이 있는 여자가 좋다고 해서 말이지.”
도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 여자. 예뻐?
“흐흐흐, 그 여자가 예쁘냐고? 당연히 예쁘지!”
히죽 웃는 이혁을 보며 도순이는 이혁이 그 여자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혁은 자신을 고용해 준 착한 인간이었다. 도순이는 작은 손을 들어 이혁을 응원했다.
– 힘내!
그날 밤.
이혁은 거의 반죽음 상태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씻지도 못하고 뻗어 버린 이혁을 보며 도순이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감기! 아파!
하지만 강소가 진행하는 운동이 무척 고되었는지 이혁은 이미 잠들어 버렸고, 도순이는 낑낑대며 근처 소파에 있던 담요를 끌고 와 이혁의 위에 덮어 주었다.
– 힘들어!
그리고 도순이는 내일 아침 일찍 이혁을 깨워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가방에서 꽃잎 이불을 꺼내 덮고 잠이 들었다.
– 잘 자!
무림에서 온 배달부 3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