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355
354화. 추억이 되다 (2)
“다 됐다. 이제 먹자.”
유순태 가족과 강소는 식탁 앞에 둘러앉았다.
술은 달콤하면서도 차가웠고 음료 역시 그러했기에 오늘의 안주는 살짝 매콤하면서도 따뜻한 탕이었다.
“있는 재료 다 때려 넣고 끓인 짬뽕 탕이랄까?”
“그렇군.”
매운 것을 못 먹는 유하영을 위해, 계란찜도 마련되어 있었다.
짠-!
술잔이 부딪쳤고 유순태는 강소가 만든 수박 소주를 마시곤 감탄했다.
“오! 즉석에서 만들었는데, 맛있네?”
“다행이네.”
유순태는 어떻게 그렇게 단시간에 만들었는데 맛있는지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뻔했으니까.
수박 특유의 향과 사이다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소주는 끝도 없이 들어갔다.
‘이거, 위험한 술이군! 계속 마시게 되다니! 앞으로 만드는 것을 자제해야겠어.’
옆에서 유하영은 수박 주스를 마시며 맛있다며 까르르 웃었다.
수박 주스를 빨대로 쪽 빨아 마시던 임소영이 말했다.
“아까, 오빠에게 연락이 왔는데 내일 가게에 들린대요.”
“그래? 몇 시쯤 오신대?”
“점심쯤에 오시겠대요. 점심 사 주시겠다고.”
“그래?”
양춘각 건물을 싹 밀어야 했기에 유순태 가족과 강소가 임시로 거주할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단기 월세를 알아보던 중에 임송규가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라고 제안했다.
“집도 넓고, 방도 많고, 화장실도 많잖아?”
그건 사실이었기에 유순태는 임송규의 제안대로 건물이 새로 지어질 때까지만 신세를 지기로 했다.
강소는 힐끔 옆집 쪽을 보았다.
‘사랑 꽃집의 두 모녀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철저하게 해 놔야겠군.’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지면, 그만큼 기민하게 대처하기 어려웠으니까.
* * *
아침이었다.
램프 포터 길드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요즘 가장 바쁜 곳은 누가 뭐라 해도 각성자 협회와 헌터 길드 그리고 포터 길드였다.
“네, 짐꾼 몇 명이 필요하시다고 했죠?”
“오류가 있는데, 서류 다시 보내 주셔야 해요.”
“그 건은 제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짐꾼 길드는 헌터 길드와 마찬가지로 3교대로 근무를 했다.
1년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가야 했기 때문.
그때 교대할 직원들이 사무실로 들어왔고, 그 뒤를 따라 길드장인 임송규가 들어왔다.
“좋은 아침.”
“아, 길드장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보고할 것 있으면 보고하고.”
“네.”
임송규가 길드장실로 들어가고, 직원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오늘 길드장님,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표정이 좋으신데요?”
“그러게요. 저렇게 기분 좋은 표정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직원들은 교대하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아, 그거?”
그때 백동호가 모닝커피를 들고 오며 말했다.
“내일모레부터 동생네 가족이 함께 살거든.”
“동생이라면, 소영 씨요?”
신입 직원을 제외하고 직원 대부분은 임송규의 동생 임소영과 그 남편인 유순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럼 합가하는 건가요?”
“아니.”
백동호는 고개를 저었다.
“길드장님의 동생 남편이 양춘각을 운영하잖아. 그런데 그 건물을 신축하게 되어서 말이지.”
“그럼 같이 사는 건 얼마 안 되겠네요?”
“두 달 정도 되려나?”
그 말에 한 직원이 말했다.
“그럼 두 달 뒤가 문제네요.”
“왜?”
“그때가 되면 다시 기분이 우울해지실 것 아니에요.”
그 말에 직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든 자리는 표 나지 않아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했다.
“아, 그걸 생각 못 했네.”
백동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아. 그건 미래의 우리가 겪을 일이지 지금의 우리가 겪을 일이 아니잖아.”
“아, 그건 그러네요…… 가 아니잖아요!”
.
.
.
길드장실에 들어온 임송규는 비서에게 오늘 오후의 일을 모두 미뤄 놓으라 지시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백동호가 길드장실에 들어왔다.
“그렇게 좋으세요?”
그의 물음에 임송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걱정이었거든. 임신한 소영이가 위험하게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말이야.”
“이제 배가 부를 시기니까요.”
“그리고, 이제 매일 하영이를 볼 수 있으니까.”
백동호는 피식 웃었다.
그는 임송규의 기분이 좋은 근본적인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그건 그 넓은 집에서 매일 아침 혼자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퇴근했을 때 맞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걱정인데…….’
백동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 그럼 두 달 뒤에 소영이 가족이 나갔을 때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직원들의 말대로, 정말 그게 걱정되었다.
임소영이 결혼하고 함께 살던 집에서 나갔을 때 임송규는 한동안 실의에 빠졌었다.
그 모습을 지켜봤기에,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글쎄다…….”
임송규는 멋쩍게 웃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오늘 오후에 양춘각으로 가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일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똑똑.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노크 소리에 눈을 들어 보니, 함진평이 들어와 있었다.
“시간 됐습니다. 형님.”
임송규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았다.
11시였다.
오늘 그는 동생 가족에게 점심을 사 주기로 했기 때문에 지금 나가야 했다.
임신한 여동생이 힘들게 걷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함진평에게 운전을 부탁했다.
“가자.”
임송규는 양복 재킷을 집어 입고는 함진평과 주차장으로 향했다.
함진평은 시동을 걸며 말했다.
“곧바로 양춘각으로 가실 거죠?”
“응.”
차가 출발했다.
“저, 그런데 형님.”
“왜?”
“그 소영이와 함께 사는, 강소라는 청년 말이에요.”
그는 운전을 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그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조사를 좀 해 봤습니다. 우선 고립인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작년 봄에 고립인 등록을 하기 전의 행적이 전혀 없거든요.”
“그래?”
“그런데, 좀 석연찮은 점이 있습니다.”
“뭐지? 그 석연찮은 점이라는 게?”
자신의 여동생 가족과 함께 살고 있기에, 임송규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게…… 평범한 F급 각성자가 아닌 듯합니다. 형님도 아시죠? 그 한강 시민수영장의 이벤트 말입니다.”
“아아, 그 장애물 넘기 이벤트?”
“그 장애물 넘기의 신기록을 세운 사람이, 강소 씨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게 아직 깨지지 않고 있죠.”
“…….”
그 말에 임송규는 손으로 미간을 긁적였다.
“허허, 거참.”
임송규도 그 장애물 넘기의 진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고민하던 그는 한 가지 추측에 다다랐다.
“설마, 그럼 강소라는 자는 은탑의 비밀요원이라는 뜻이냐?”
“제가 내린 결론 역시 그와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짝 은탑 쪽을 찔러 봤는데 반응도 좀 이상하고요. 또 신기록을 세웠음에도 아직 소속되어 있는 길드가 없지 않습니까? 그게 비밀요원 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임송규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우선, 놔두지.”
임송규는 말을 이었다.
“은탑 측 인물이라면,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아. 그러니까 너도 더 이상 접근하지 마. 그러다 다친다.”
“알겠습니다.”
그리 말은 했지만, 임송규는 강소라는 인물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생각이었다.
다행히, 함께 살게 되었으니까 기회는 충분했다.
* * *
양춘각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건물 안을 싹 치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짐은 가지고 가야 할 것, 보관할 것으로 나뉘었다.
가지고 가야 할 짐은 우선 놔두고, 보관할 짐들은 강소의 인벤토리 안으로 직행했다.
주방 안의 도구들도, 홀의 식탁과 의자들도, 계산대도 모두 인벤토리 안으로 들어가자 1층이 휑해졌다.
“덕분에, 정리가 빠르네.”
유순태의 말에 강소가 웃으며 말했다.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다.”
“인벤토리 관리자들이 고생이네.”
일부러 호족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혹시 누군가 듣고 호족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벤토리 관리자’라는 말을 사용했다.
“나중에 막걸리에 부침개라도 돌려야겠다.”
“그러면 좋아할 거다. 전에 부침개를 해 먹으려고 했다가 사고로 반죽을 엎어 버려서 서운했다고 하더라고.”
“그래?”
딸랑.
그때 종이 울리고, 임송규가 들어왔다.
“정리는 잘하고 있나?”
“아, 형님!”
“안녕하세요.”
유순태와 강소는 얼른 그에게 인사를 했다.
“고생이 많네.”
“하하하.”
그때 2층에서 짐을 정리하던 임소영이 내려왔다.
“오빠! 왔어요?”
“응. 하영이는?”
“스케줄 갔어요. 오늘 ‘그들의 청사초롱’ 촬영이 있거든요.”
“그렇구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가자. 점심 먹어야지.”
임송규는 강소를 보았다.
“자네도 오게.”
“아, 감사합니다.”
임송규가 그들을 데리고 간 곳은 만두전골 집이었다.
보글보글 끓는 얼큰한 국물과 함께 만두를 배불리 먹은 그들은 임송규의 집으로 향했다.
임송규의 집은 마포에 있는 2층짜리 단독 주택이었다.
화장실만 해도 4개였다.
게다가 넓은 마당까지 있었다.
강소는 생각보다 큰 집에 감탄했다.
‘TV에서 봤던 재벌들이 사는 집과 비슷하군.’
전에 유순태 부부와 함께 박형우의 아버지인 박훈길 이사의 초대를 받아 별장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임소영은 그 규모와 고급스러움에 감탄을 했지만, 주눅 들지 않았었다.
강소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런 집에서 살았었으니, 그랬던 거군.’
이 집에서 실질적으로 산 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살던 경험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었다.
그걸 보면 임소영이 유순태와 결혼한 것도, 함께 양춘각을 운영하며 즐겁게 사는 것도 대단했다.
‘순태가 부인 복이 있단 말이지.’
강소는 고개를 돌려 임송규를 보았다.
‘결혼을 허락해 준 길드장님도 대단하고 말이지.’
임송규가 말했다.
“내가 임의로 방을 정해 놨는데, 소영이랑 자네는 1층의 이 방을 쓰는 게 어떤가?”
“화장실도 옆에 있고 좋네요.”
“그리고 여기 원래 소영이 방이었던 곳은 하영이가 쓰면 될 것 같고.”
“그렇게 하죠.”
임송규는 강소를 보았다.
“자네는 2층을 써도 되나?”
“물론입니다.”
“그럼 2층, 왼쪽 방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네. 거기 화장실도 딸려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이렇게 살 집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중한 강소의 인사에 임송규는 자신도 모르게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사실 그는, 예의 바르고 정중한 사람에게 너그러운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험험.”
임송규는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짐 정리되는 대로 들어와 살라고. 열쇠는 여기 있고.”
그는 도장 모양의 작은 열쇠 두 개를 건넸다.
‘전자식 잠금장치의 열쇠군.’
유순태는 열쇠를 받았다.
“사실 내일부터 포터 교육원 일 때문에 좀 바쁠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러셨군요.”
“아무튼, 이렇게 같이 살게 되었으니까 잘 지내보자.”
“네. 형님.”
* * *
강소가 눈을 떴을 때 낯선 천장이 그를 맞이했다.
“아, 여기 임 길드장님 댁이지.”
엊그제부터 그는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달력을 보았다.
9월 20일.
오늘 드디어 양춘각의 공사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오늘, 양춘각 건물을 부순다고 하지 않았나?’
강소가 방에 딸린 욕실에서 씻고 1층으로 내려가자, 유순태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일어났냐?”
“응.”
“길드장님은?”
“아직 안 일어나셨다.”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 5시였다.
사실 이른 시간이긴 했다.
하지만 식당 일을 하다 보니,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된 것.
집안일을 도와주는 여사님이 차려 준 음식을 먹고 유순태와 함께 양춘각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작업모를 쓴 인부가 그들에게 인사했다.
“그럼 지금부터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 잠시만요.”
강소가 얼른 외치고 양춘각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의 손에는 종이 들려 있었다.
“이 종을 챙겨야 해서.”
“아, 그거 깜빡할 뻔했네. 고마워.”
유순태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그거, 안사람이 사서 달아 놓은 거야. 내가 챙겨야 했는데…….”
“챙겼으니 된 거다.”
유순태는 피식 웃었고, 인부에게 말했다.
“이제 작업 시작하셔도 됩니다.”
“네, 위험하니 좀 물러나세요.”
곧, 중기계의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집게가 양춘각을 사정없이 뜯어 버렸다.
오늘 건물 철거 현장에 유하영도 오고 싶어 했지만, 유순태가 허락하지 않았다.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임소영도 함께 오지 않았다.
그렇게 양춘각의 2층짜리 건물은 순식간에 부서졌다.
사실, 강소는 양춘각 건물을 통째로 인벤토리 안으로 옮길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인벤토리 안에서 쓸쓸하게 쇠락하는 모습을 보는 건 추억이 가득한 그 건물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건물이 의미가 있는 건, 그 건물에 추억을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곳에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면, 그곳에 살면서 새로운 추억을 쌓게 될 터.
‘다시 이 종이 딸랑하며 울리겠지?’
그때까지의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을 터였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35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