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433
432화. 제루엘의 봉 (1)
1월이었지만,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자 눈은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멈추었던 것들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강소는 뉴스를 보며 유순태에게 말했다.
“내일모레부터 배달 금지 행정 명령이 해제될 것 같은데?”
“그래? 그럼 내일부터 직원들 출근하라고 전화해야지. 요즘 언제 출근하냐고 문자가 오고 있거든.”
“그럼 이건 언제 붙이는 거냐?”
강소가 말한 건, 어제 작성한 구인공고였다.
새로운 홀 서빙 직원을 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유순태는 테이프를 가지고 나가서, 문 앞에 구인공고문을 붙이고 왔다.
“좋은 사람이 왔으면 좋겠네.”
“그러게 말이다.”
* * *
작은 원룸 집.
한 남자가 바닥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건 술병뿐이다.
곧 그의 시선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서류에 향했고, 그걸 본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퇴사 확인서] [대상자 : 허만철] [퇴사 이유 : 레이드 중의 부상] [위 대상자는 상기 이유로 인하여 헌터로서 활동할 수 없어 퇴사하였음을 확인하고 이를 증명합니다.] [발급자 : 북두 길드장 최평진]그랬다.
그는, 허만철은 헌터였다.
그의 능력은 봉술로, D급이었지만 레이드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었다.
북두 길드는 D급도 귀하게 쓰일 정도로 작은 헌터 길드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얼마 전 있었던 레이드에서 그는 부상을 입었다.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베이는 큰 부상이었지만, 곧 다시 헌터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부상을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힐을 써 봤지만, 완치는 불가능했습니다.”
힐러라는 기적 같은 존재가 있는 세상이었지만, 만능은 아니었다.
그것이 아직까지 의사라는 직업이 없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허만철이 완치되지 못한 이유는, 부상이 누적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제때 조치하지 못한 탓이 컸다.
당장 눈앞에 죽어 가는 동료를 구해야 했으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았다.
다만, 목숨을 걸고 정말 뼈가 부서져라 일했던 자신을 북두 길드는 헌신짝만도 못한 취급을 하며 버렸다.
“같이 레이드를 돌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지? 미안하지만 더는 길드에 남아 있을 수 없어.”
“……정말 안 되는 겁니까?”
“알다시피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작은 길드잖아. 다음 레이드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다른 헌터를 구해야 하는 거 잘 알면서 왜 그럴까?”
“…….”
“왜? 청소부로라도 고용해 줘? 그런데 그걸 네 자존심이 감당할 수 있겠어? 다른 애들이 병신이 된 너를 대우해 주기나 할까?”
허만철은 입술을 깨물었다.
서슴없는 인신공격.
그게 사실이라 해도 듣는 허만철은 모멸감에 손이 덜덜 떨렸다.
북두 길드의 길드장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회의감이 들었다.
대체 이런 사람 밑에서 무엇을 바라고 지금까지 청춘을 바쳐 일했을까 하고 말이다.
아니,
이유가 있었다. 함께 고생하는 길드원들이 눈에 밟혀서 얼른 이직하지 못했다.
“퇴직금으로 천만 원 넣어 줄게. 그리고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위로금으로 한 오백만 원 더 넣어 주지.”
“…….”
“싫어? 싫으면 천만 원만 받든지.”
선택지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오늘 퇴사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북두 길드는 소규모 길드였고, 허만철은 D급 각성자였기에 월급도 얼마 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일반 직장에 비하면 많은 돈이었지만, 적룡 길드나 레전드 길드 같은 네임드 길드의 D급 각성자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다.
그 월급도 탈탈 털어서 방어구와 무기를 사고, 포션을 사면 저축은 꿈도 꾸지 못했다.
허만철은 통장을 열어 보았다.
잔고는 17,683,553원.
‘이 돈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지?’
돈이라는 건 벌어 가면서 써야지, 벌지 않은 상태에서는 봄눈 녹듯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집세와 이런저런 생활비를 생각하자 앞이 막막해졌다.
게다가 헌터 일을 못 할 뿐이지 다른 일은 가능했기에 복지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허만철은 그렇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이라는 단계를 거친다고.
솔직히 허만철이 당장 죽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헌터로서의 허만철의 죽음이었고, 그 역시 그 다섯 가지 단계를 거쳤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헌터로서의 경력이 끝났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 잔고가 천칠백만 원이나 있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지. 땡전 한 푼도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눈이 전부 녹은 건 아니었지만, 집에만 있으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람 좀 쐬고 올까?’
그는 일어나며 항상 그랬듯이 장롱을 열고 그 안에 있던 쇠로 만든 봉을 집었다.
“후후.”
이제 더는 쓸 일이 없는 무기를 챙긴 습관에 조소가 새어 나왔다.
오랫동안 함께 해 온 그 봉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싼값에 손에 넣은 물건이다.
당시에는 행운의 여신이 힘써 주신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탁.
그는 쓰게 웃으며 다시 봉을 장롱에 넣고,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거리를 걸었다.
1월의 칼바람이 매서웠지만, 기본적으로 일반인보다는 튼튼한 각성자…….
“에취!”
그래도 추운 건 추운 거였다.
“음? 원래 이런 터널 같은 게 있었나?”
지붕이 없으니 터널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모양을 보니 원래 터널이었던 것 같았다.
길의 중간마다 귀여운 모양의 캐릭터 눈 조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허만철은 오랜만에 눈요기를 하며 걸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한 건물 앞에 있었다.
“여긴?”
눈을 들어 보니, 양춘각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그리고,
한 남자가 양춘각에서 나왔고, 손에 들고 있던 뭔가를 문 앞에 붙이고 들어갔다.
그걸 본 허만철의 눈이 커졌다.
‘숙식 가능? 숙식이 가능하다고?’
허만철은 당장 양춘각 안으로 들어갔다.
* * *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강소는 그를 보았다.
나이는 서른 살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미남형이라기보다는 호남형에 가까웠다.
키는 약 186cm 정도?
강소는 그 남자를 보자마자 그가 헌터라는 것과, 부상을 입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저…….”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홀 서빙을 구하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강소가 고개를 끄덕였고, 2층을 향해 유순태를 불렀다.
“유 사장님!”
평소 ‘순태야!’라고 불렀지만 면접을 보러 온 사람 앞에서까지 그렇게 부르는 건 좀 아닌 듯했다.
사장님의 면은 세워 줘야 했으니까.
곧 유순태가 내려왔고, 강소가 말했다.
“구인공고를 보고 오셨다.”
“아, 그러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양춘각 사장 유순태입니다.”
“네. 허만철입니다.”
유순태는 허만철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십시오.”
“감사합니다.”
허만철은 자리에 앉았고, 즉석에서 면접이 시작되었다.
“서빙 일 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처음…… 입니다.”
“이전에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사실은…… 헌터였습니다.”
허만철은 솔직하게 말했다.
어차피 신분증을 보면 다 까발려질 테니까.
“레이드를 하다가 부상을 입어서 은퇴했습니다.”
그는 얼른 말을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심각한 부상은 아닙니다. 그냥 레이드를 뛰기에 무리가 있는 거지, 일상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었다.
레이드라는 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
만전의 몸 상태로 들어가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기에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안 되었다.
강소의 끄덕임에 유순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몸이 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강소가 먼저 자를 터.
강소가 끄덕인다는 건, 몸 상태는 양춘각에서 일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럼 레이드에서 어떤 능력으로 어떤 포지션이었는지, 실례가 아니라면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뭐, 비밀은 아니니까요. 저는 봉술 능력을 각성한 D급 각성자입니다. 레이드에서는 탱커 역할이었습니다.”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원래 탱커가 부상 빈도도 높고 은퇴하는 헌터들도 많더라고요.”
“뭐, 그렇죠.”
허만철은 머리를 긁적였고, 유순태가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짐꾼 출신이라서 탱커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조금은 알거든요.”
“그러셨군요.”
“열심히 하실 거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탱커가 희생정신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포지션이니까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유순태가 고개를 저었다.
“딜러가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는 게 탱커입니다. 솔직히 어떤 인간이 그런 위험한 일을 마주하겠습니까? 그건 당연한 게 아닙니다.”
그 말에 허만철은 갑자기 눈물이 주룩 흘렀다.
탱커를 하면서 자신의 노고를 다른 이들이 알아주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누구라도 허만철의 희생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아주면 고마웠다.
그런데 그 말을 북두 길드의 길드장도, 같이 레이드를 뛰던 팀원도 아닌, 처음 만난 중국집 사장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어…….”
그 눈물에 유순태가 당황했고, 그보다 더 당황한 허만철이 얼른 옆의 티슈를 뽑아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런,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정말 고생이 많으셨군요.”
“그게 그러니까…….”
“음,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내일부터 일할 수 있으십니까?”
“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선 일주일 동안 함께 일해 보고, 일주일 뒤에 정식으로 계약하는 것으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들은 서로 월급에 대해 협상을 했다.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8시까지이고, 2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2시간은 휴식 시간으로 정했다.
월급은 최저시급보다 0.5배 더 주는 것으로 했다.
일주일 동안은 최저시급이었다.
유순태는 견습 기간에도 정식 월급을 주려고 했지만, 허만철이 사양했다.
처음이다 보니 빠르지도 못하고, 실수도 하게 될 텐데, 그 월급을 다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럼 이렇게 하고, 필요한 서류가 있습니다.”
유순태는 허만철에게 필요한 서류들을 알려 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허만철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숙식이 가능하다고 하던데…….”
그 말에 유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습니다. 3층에 숙소가 있거든요. 원룸이기는 하나 사시는 데 불편함은 없을 겁니다.”
“그럼 따로 숙박비나 밥값은?”
“그런 건 없습니다.”
즉, 조건 없이 숙식이 제공되는데, 월급도 최저시급보다 0.5배가 많다는 것.
허만철은 유순태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 * *
다음 날 아침 9시 30분.
허만철은 양춘각으로 출근했다.
“안녕하세요.”
그의 인사에 유순태와 강소, 그리고 이미 출근해 있던 황진혁이 그를 맞아 주었다.
“어서 오세요.”
“말씀 들었습니다. 오늘부터 함께 일하신다고요?”
황진혁이 주방에서 나와 자신을 소개했다.
“주방보조 황진혁입니다.”
“허만철입니다. 나이는 서른하나입니다.”
“그럼 형님이시네요. 저는 올해 스물다섯입니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하고 있을 때, 위에서 유하영이 뽀짝뽀짝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배시시 웃으며 배꼽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 아, 안녕.”
난데없이 등장한 귀여운 아이를 보고 허만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선가 많이 보던…….
“아! 유하영?”
유순태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제 딸을 아시는군요.”
“물론입니다. 워낙 유명하니까요.”
그대 위에서 임소영이 내려왔다.
“하영아. 목도리 하고 가야지.”
그녀는 허만철을 보더니 웃으며 인사했다. 그들은 어제 서로 인사를 나누었기에 구면이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유하영이 허만철을 보았고, 그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우리 아빠랑 일하는 거예요?”
“응. 맞아.”
유하영은 자신의 토끼 가방을 열었다.
강소가 선물해 준 토끼 가방은 겨울에도 그 효능을 발휘했는데, 너무 추워서 초콜릿이 꽁꽁 얼어 버리는 것도 막아 주었기 때문이다.
유하영은 초콜릿을 꺼내 허만철에게 내밀었다.
“이거 드세요.”
“어?”
“선물이에요.”
“고, 고맙다.”
허만철은 초콜릿을 받았고, 그걸 본 강소는 생각에 잠겼다.
유하영은 웬만해서는 초콜릿을 주지 않았으니까.
초콜릿을 줬다는 건,
‘허만철 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지.’
강소는 턱을 긁적였다.
‘조금, 도와줘 볼까?’
무림에서 온 배달부 43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