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432
431화. 태양이 떠오른다.
강소는 달력을 보았다.
“올해도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구나.”
창 밖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었다.
올해는 예티들의 분노 때문에 더 많은 눈이 와서 작년보다 더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강소는 이번에도 눈 속에 터널을 뚫었다.
보통 눈 속에서는 방향감각을 잃기 쉬웠지만 이미 동네의 모든 곳을 꿰뚫고 있는 강소에게 최단 거리로 최적의 터널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었다.
강소가 터널을 뚫은 이유.
그건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유하영 때문이었다.
유하영이 심심해하니까.
“옷 단단히 입었어?”
“응! 안에 내복도 입고 잠바도 입고 목도리도 했어!”
유하영은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은 터널 탐험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눈 조각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임소영은 유채영 때문에 외출할 수 없었고, 유순태는 임소영만 두고 갈 수 없어서 강소가 유하영을 데리고 다녀오기로 한 것.
이번에 행복상가 근처에서 행복상가의 상인회장배 제1회 눈 조각 대회가 열렸다.
참가 자격은 행복상가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나 직원들의 직계가족까지였다.
강소는 유하영과 함께 터널을 통해 눈 조각 대회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강소는 저번에 터널을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서 채광을 위한 천장의 구멍은 물론이고 길 양옆의 눈 녹은 물을 처리하기 위한 배수로까지 만들었다.
중간마다 이정표는 기본이었고.
게다가 미끄럼 방지를 위해 길에 요철을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
“오빠! 저기 봐봐! 꽃의 전사 밍밍도 있어!”
유하영이 가리킨 것은 강소가 만들어 놓은 꽃의 전사 밍밍이라는 만화 영화 캐릭터였다.
강소는 유하영을 위해 터널 곳곳에 눈으로 조각을 만들어 놓았고, 그것이 눈 조각 대회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누군가 “우리도 이런 눈 조각을 만들어 보자!”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행복 상인회장이 “그럼 눈 조각 대회를 열어 보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강소가 만든 터널 때문에 행복 상가의 교류가 활발한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곧 그들은 눈 조각 대회가 열리는 공터에 도착했다.
“하영이랑 강소 씨도 왔네?”
“안녕하세요.”
그들을 본 행복 상인회장이 반겨 주었다.
행복 상인회장 김병철은 근처 세탁소의 사장인데, 올해 70세의 할아버지임에도 무척 건장했다.
“유 사장에게 전화는 받았어. 사정이 있어서 참석 못 하고 대신 강소 씨하고 하영이가 참가한다고.”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럼 수고해 줘.”
“네.”
사실 터널 곳곳의 눈 조각상을 조각한 사람이 강소인 만큼, 그가 이번 대회에 참석하는 건 좀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강소는 참가를 사양했지만, 그 누구도 강소가 빠지는 건 원하지 않았다.
“뭐, 어때? 이게 국제 대회도 아니고.”
“그냥 우리끼리 으싸으싸 하는 거잖아?”
“즐기려고 하는 건데 다큐로 만들지 말자고.”
“그냥 한 해를 보내기에 아쉽잖아. 이런 식으로 우리끼리 축제를 하는 거지.”
“어차피 1등 해도 상품이…… 험험.”
그렇게 해서 강소도 참석하게 된 것.
참가 팀은 강소와 유하영 팀을 포함하여 15팀이었다.
우선 그들은 제비를 뽑았다.
눈 조각을 할 자리 배정을 위해서였다.
강소와 유하영이 뽑은 자리는 9번이었는데, 별 의미는 없었다.
공터가 둥근 모양이라서 시계방향으로 자리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9번 자리는 7시 방향에 가까웠다.
자리가 정해지고, 김병철은 에헴 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참가 팀들을 향해 말했다.
“에, 그러니까, 이렇게 제 1회 행복 상인회장배 눈 조각 대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대회가 유구한 역사를 이어 나가길 바라며, 에, 그러니까…….”
옆에서 김병철의 부인이 소리쳤다.
“영감, 규칙 말해야죠!”
그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치! 에, 그러니까 규칙은 2시부터 시작해서 5시까지 3시간 동안 눈 조각을 만들면 됩니다. 어떤 방법으로 만들든 상관은 없지만, 그로 인해 다른 팀에 방해가 되면 자동 탈락입니다. 그리고 주제는 자유입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말한 김병철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그건, 호루라기였다.
“그럼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시작해 주시면 됩니다.”
삑-!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눈 조각 대회가 시작되었다.
“오빠! 우리 얼른 눈 조각 만들자.”
“하영이는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생각해 봤어?”
“응.”
유하영이 대답했다.
“나는 그거 만들고 싶어. 안식의 집에 있던 거.”
“안식의 집에 있던 거라면, 탑을 말하는 거냐?”
“아니, 사람들이 이렇게 무기를 들고 서 있는 그거 있잖아.”
“혹시…… ‘승리한 전사’를 말하는 거냐?”
강소는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여 사진을 보여 주었고, 그걸 본 유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그건 유명한 미술품으로, 약 10여 년 전 한국의 한 조각가가 돌을 조각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른 가장 큰 전쟁에서 승리한 일을 기념하여 만든 것인데, 그 조각상의 작품성은 물론이고 그에 담긴 의미로 인해 안식의 집 중앙에 놓여 그때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있었다.
솔직히 강소는 유하영이 만화영화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승리한 전사’를 만들고 싶다니!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이걸 만들고 싶은 거냐?”
강소의 물음에 유하영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나, 이거 좋아해.”
“쫑이나 도도보다?”
“음, 모르겠어. 그냥 좋아. 그리고 쫑이랑 도도는 터널 안에 많아. 그러니까 여기에는 이걸 만들 거야.”
유하영의 진지한 말에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네가 만들고 싶다니, 만들면 되지.”
강소는 심호흡을 했다.
‘이럴 땐 당황하지 않고, 평소대로 하면 되겠지.’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크기에 대한 견적을 냈다. 그리고 눈을 가져와 뭉치기 시작했다.
‘승리한 전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눈이 돌덩이만큼이나 단단해야 했다.
그렇기에 강소는 내공으로 눈을 꽉꽉 뭉쳤고, 곧 눈은 단단하게 굳었다.
“눈 더 가져올까?”
“그러면 고맙지.”
유하영도 열심히 눈을 날랐다.
그렇게, 만들어진 눈 덩어리는 약 2m 정도.
강소는 심호흡을 하고 조각을 시작했다.
* * *
이혁과 백현미도 근처에서 눈을 조각하고 있었다.
그들도 강소와 유하영이 참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까 만나서 인사했으니까.
그들이 조각하는 것은, 예쁜 집이었다.
백현미가 금손이었기에 점점 눈 조각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오! 이 사장 부부는 뭘 만드는 건가?”
금별 노래방의 김춘영 사장의 물음에 이혁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중에 저희가 살고 싶은 집을 조각하고 있습니다.”
“집이 무척 멋지군. 2층짜리 단독주택인가?”
“네. 맞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들의 감탄이 들려왔다.
그 감탄에 이혁과 백현미 그리고 김춘영 사장은 그곳을 보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삭삭삭-!
사사사삭-!
서걱-! 서걱-! 사사사삭-!
강소가 신들린 솜씨로 조각을 하고 있었는데, 점점 윤곽이 드러나며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어? 뭘 조각하는 거지?”
“뭔가 엄청난 것이 탄생하고 있어!”
“그런데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지? 전문 도구인가?”
그 말에 강소가 잠시 뒤를 돌아보았고, 대답했다.
“이거 말씀입니까?”
강소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거, 과도입니다.”
“뭐? 과도라면 과일 깎을 때 쓰는 칼?”
“네.”
하지만 조각은 마치 전문 도구를 사용한 것처럼 깔끔하게 조각되어 가고 있었다.
사실 강소에게는 과도도 필요 없었다.
그저 보는 눈이 있어서 과도를 사용하는 것뿐이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강소가 조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설마 저거…… 승리한 전사인가?”
“그 안식의 집에 있는 석상을 말하는 거야?”
“그런 것 같은데?”
그때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1시간 남았습니다!”
그 목소리에 참가자들은 얼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열심히 조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즐기자는 생각이었지만 강소의 조각을 보자 마음이 바뀌었다.
‘그런 대작 옆에 있으면 너무 못나 보이잖아.’
‘비웃음은 당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시간은 5시가 되었다.
삑-!
행복 상인회장 김병철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이제 대회를 마칩니다.”
그 말에 참가자들은 하나둘 눈 조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김병철이 관객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에, 그러니까 심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훌륭한 조각상이라고 생각되는 조각상 앞에 이 사탕을 놔주시면 되겠습니다.”
곧 사람들은 사탕을 하나씩 집었고, 그걸 자신이 생각하기에 훌륭한 조각상이라고 생각되는 곳 앞에 놓기 시작했다.
결과는…… 뻔했다.
강소와 유하영 팀의 조각상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안식의 집에 있는 진품보다 더 진품처럼 느껴졌다.
“아! 이게 품격이라는 건가?”
“내 안의 애국심이라는 것이 폭발하고 있어!”
“강소 씨 솜씨가 정말 좋구나.”
강소가 조각한 ‘승리한 전사’는 새하얀 눈으로 조각해서인지, 뭔가 더 숭고해 보였다.
“에, 그러니까 우승자는!”
김병철이 우승자를 발표했다.
“강소 씨랑 하영이 팀!”
“와! 우리가 우승했어!”
유하영은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2등은, 이혁 사장 부부 팀.”
“감사합니다!”
“3등은, 한도명 사장 부녀 팀!”
“앗싸!”
“우승 상품은 태양 문방구의 구태영 사장님께서 협찬해 주셨습니다.”
김병철은 엄숙한 표정으로 금색으로 반짝이는 왕관을 유하영의 머리 위에 씌워 주었다.
“모두 박수!”
짝짝짝짝-!
그렇게 즐거운 눈 조각 대회가 마무리되었다.
“오빠. 잠깐 앉아 봐.”
“이렇게?”
유하영은 자신이 쓰고 있던 플라스틱 왕관을 벗어서 강소에게 내밀었다.
“이거 오빠 거야. 오빠가 만들었잖아.”
“하지만 네가 아이디어를 주었다.”
“그래도 만든 사람이 상 받아야 해. 그러니까 이거는 오빠 거야.”
유하영의 말에 강소는 피식 웃으며 왕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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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와 유하영이 양춘각으로 돌아왔을 때, 유순태는 저녁을 준비 중이었다.
“다녀왔다.”
“다녀왔습니다.”
“고생했어. 상가 회장님께 전화 왔었어. 오늘 우승했다고.”
“그랬다.”
“어떤 걸 만들었는지 궁금…….”
그때 유순태는 뒤를 돌아보았고, 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 왕관은 뭐야?”
“이거?”
강소가 자신의 머리의 왕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우승 상품이다.”
“하하하하!”
강소는 핸드폰 사진으로 찍어 온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유순태 부부에게 보여 주었다.
그걸 본 그들은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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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었다.
TV에서는 보신각 주변에서 행사하는 모습을 중계해 주고 있었다.
보신각 주변의 눈은 싹 치워져 있었는데, 강소는 그걸 치우기 위해 능력자들이 동원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영이는?”
강소의 물음에 2층에서 내려온 유순태가 말했다.
“잔다. 오늘 많이 피곤했나 봐.”
“그렇겠지.”
그들은 짬뽕에 소주를 한잔하기로 했다.
그냥 자기에는 아쉬웠다.
왜냐하면, 오늘이 이번 연도의 마지막 밤이었으니까.
유순태와 잔을 기울이며, 강소는 창밖을 보았다.
‘녀석은 잘 지내고 있겠지.’
신기하게도 요즘은 자신이 살던 세상에서 함께 살던 소녀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꽃의 정령의 여왕에게 부탁하여 메시지를 전한 후부터 안심이 되어서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이제 이쪽 세상에 완전히 적응되었기 때문인가?’
강소는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자신이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했으니까.
이쪽 세상에서 살게 된 지 거의 2년.
그는 아직도 이쪽 세상에 있었다.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의 열쇠’는 강소가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
‘나는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나는 선뜻 돌아갈 수 있을까?’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했다.
그때 TV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10! 9……!]올해의 마지막, 새해의 시작을 세는 카운트다운이었다.
[……2, 1]폭죽이 터졌다.
펑-!
퍼퍼펑-!
그와 동시에 보신각 타종이 시작되었다.
새해가 밝았다.
“강소야.”
유순태가 그를 불렀고, 강소가 그를 보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새해 복 많이 받아.”
“그래.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유순태는 2층으로 올라가고, 강소는 그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피식 웃었다.
이런 고민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순태 가족과 자신과 인연을 맺은 이들을 지키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게 강소가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새해인 오늘도, 어김없이 태양은 떠올랐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43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