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462
461화. 세르핀 (1)
붉은색과 보라색이 섞인 어두운 하늘.
그 아래 서 있는 웅장한 성은, 어비스의 왕이 머무는 거처다.
그곳의 가장 높은 옥좌에 왕이 앉아 있었다.
“왕이시여.”
시종이 들어와 그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예언자가 왔습니다.”
“들라 해라.”
“네.”
곧 백발의 노인이 들어왔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회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어비스에도 예언을 하는 족속이 있었다.
예언자는 유의미한 미래를 보면, 그 예언을 위해 왕궁을 방문하곤 했다.
그리고 왕은 예언자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비스의 왕을 뵙습니다.”
“고개를 들라.”
예언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두 눈은, 눈동자가 없이 흰자위만 있어 기괴했다.
“그래, 예언자여. 오늘은 무슨 예언 때문에 이리 온 것이냐?”
“왕이시여, 오늘은 그리 유쾌한 예언은 아닙니다.”
왕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언제 네가 유쾌한 예언을 가지고 온 적이 있더냐?”
“그건 그렇지요.”
예언자는 끌끌 웃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과는 다른 겁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수정 안에 갇힌 자가 있습니다.”
“……!”
그 말에 왕의 얼굴이 굳었다.
수정 안에 갇힌 자.
그건 바로, 왕 본인을 뜻하는 것이었기에.
그러나 그걸 아는 어둠의 족속들은 없었다. 그건 왕의 치부였기에, 모두 죽여 버렸다.
그런데 그걸 지금 예언자의 입에서 듣게 된 것.
“이 예언은 그 수정 안에 갇힌 자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수정 안에 갇힌 자여, 수정 안이 가장 안전한 곳이니 굳이 벗어나려고 애쓰지 말아라. 네가 수정 안에서 벗어나는 그 날에 그가 준비한 가장 날카로운 창이 네 가슴을 꿰뚫으리. 그날 너는 달이 그림자에 가리어진 것을 보리라.”
“…….”
“여기까지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왕은 언제 얼굴이 굳었냐는 듯이, 평온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수정 안에 갇혀 있는 자의 얼굴을 보았는가?”
“…….”
예언자의 침묵이 그 답이 되었다.
왕은 인자한 얼굴로 말했다.
“그대의 예언이 내게 큰 지혜가 되었네. 물러가서 편히 쉬도록 하게나.”
“감사합니다. 왕이시여.”
“잠깐!”
그때 왕은 잠시 예언자를 불러 세웠다.
“네, 왕이시여. 말씀하소서.”
“혹시…… 그 예언을 다른 누군가에게 말했는가?”
“오직 왕께만 말씀드렸습니다.”
“그런가, 그럼 물러가게.”
“네.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그렇게 예언자는 물러갔고, 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옆의 시종에게 말했다.
“예언자를 처리해라.”
“네.”
시종이 즉시 밖으로 나갔고, 왕은 손으로 옥좌의 팔걸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콰직-!
그로 인해 옥좌의 팔걸이가 으스러지며 그의 손에 조각들이 박혔지만, 그는 상관없다는 듯이 예언자가 있던 그 자리를 노려보았다.
“절대 그럴 일은 없어! 절대로!”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자신은 수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
‘달이 그림자에 가리어진 것이라…….’
그건 즉 월식을 뜻했다.
어비스는 태양이 뜨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달이 떴고 달이 그림자에 먹히는 월식은 단 한 번 있었다.
그건 몇 달 뒤.
공교롭게도 그때가 왕이 생각하는, 자신이 수정에서 벗어나는 날이다.
‘그렇다면, 날을 앞당기거나 미루면 되는 것 아닌가?’
자신의 비원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 마련되는 날이다.
미룰 수는 없는 일.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며칠 전에 세르핀이 두 번째 인간계에 다녀왔다.
이번에 이런저런 것을 보완한 새로운 포털의 안정성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그로 인해 자신이 수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좀 늦어졌지만 상관없었다.
그녀의 힘이라면, 투자한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절망의 구슬을 가져다줄 것이다.
“세르핀을 들라 해라.”
“네!”
세르핀.
그녀는 증오와 복수의 여신, 그리고 악령들의 여왕이니까.
* * *
양춘각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그건 바로, 황진혁의 결혼을 앞둔 축하 파티였다.
요즘은 신붓집에 함을 지고 가는 그런 풍습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대신, 신랑과 신부는 각자의 집에서 각자의 친척들을 대접했다.
일종의 결혼식 전야제인 것.
하지만 황진혁은 친척들이 없었기에 유순태는 양춘각에서 조촐하게 결혼 축하 파티를 열어 주었다.
메뉴는 치맥이었다.
양춘각 식구들과 그녀의 어머니까지 함께 모인 가운데, 강소가 황진혁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황진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하, 부끄럽네요.”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황진혁과 최예진은 작년 여름에 만났지만, 만난 시간이 짧은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집이랑 혼수 준비는 다 된 거야?”
유순태의 물음에 황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입니다.”
예전에는 남자가 집을 마련하면 여자가 혼수로 마련한 가전제품 등으로 집을 채웠다고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풍속이 바뀌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돈을 모아서, 그 돈으로 집과 이런저런 것들을 마련했다.
“사실 장인어른께서 집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래?”
최효성은 국립 B&T 마정석 연구소의 연구실장이었고, 이런저런 실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많이 개발한 사람이다.
그리고 국립 B&T 마정석 연구소는 언제 불랙맨들에게 노려질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기도 했기에 한 가지 특혜가 주어졌다.
그건 자신이 개발한 성과가 활용되면, 그에 대한 이익을 개인이 취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3퍼센트로 이익이 고정되어 있다고 해도, 그건 꽤 짭짤했다.
특히 최효성이 개발한 것들은 현재 무척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기에 통장에 꽂히는 금액은 결코 무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좀 죄송하긴 합니다.”
황진혁의 말에 강소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냥 두 분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그 보답이 될 터이니 말입니다.”
“하하하, 그렇겠죠?”
황진혁은 어색하게 웃다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곤 했거든요. 아버지가 그렇게 게이트에서 돌아가시는 일이 있었다고 해도, 그냥 헌터로서 일했으면 좀 더 많은 돈을 벌지 않았을까 하고요. 그러면 그렇게 질 나쁜 놈들에게 당하지도 않았을 테고요.”
그러면서 저 건너편의 식탁에 앉아 임소영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았다.
유순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황진혁에게 말했다.
“헌터는, 아니야.”
“……그런가요?”
“내가 짐꾼으로 일하면서 이런저런 꼴은 많이 봤지만, 정말 헌터는 아니야.”
유순태가 말을 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중국집을 차렸겠어? 안사람 과부 안 만들고, 하영이 아비 없는 자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야.”
그 진지한 말에 황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러네요.”
그 본인이 그런 불우한 케이스였으니까.
만약 자신의 부인과 아이가, 자신 같은 상황을 겪을 바에야 그 역시 유순태와 같은 선택을 할 터.
그 앞에서 김지은이 유순태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헌터로 일하는 거 엄청 힘들죠. 진짜 사람 성격 버리는 일이에요.”
“잘 아시네요?”
전직 헌터였던 허만철의 물음에 김지은은 순간 굳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했다.
“……라고 ‘영웅’에서 그러더라고요.”
그건 헌터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무척 인기 있는 월간지였다.
“지은 씨도 그거 보시는구나.”
“그럼요. 저 애독자예요. 호호호.”
황진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도 헌터는…… 돈을 많이 벌잖아요.”
“그건 그렇죠.”
김지은은 황진혁을 보았다.
‘고민이 많은가 보네.’
현재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1위가 헌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위험했지만, 그 위험을 감수할 만큼 그 보상이 무척이나 달콤했으니까.
하지만 달콤한 열매 안에 독이 숨겨져 있음을 김지은은 어릴 때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전문가 아래에서 경제 관련 교육을 받은 덕분이다.
엄밀히 말하면 교육을 받게 한 아버지 덕분이지만.
김해철은 헌터들이 바로 서야 나라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헌터들을 가장 곤란하게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수가 아니라 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여 적룡길드 소속 헌터들은 의무적으로 경제 교육을 받게 했고, 덕분에 적룡길드 소속 헌터들은 파산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그리고 김지은과 김호은은 특별 초빙된 강사에게 수업을 들었다.
그때 초빙한 강사가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헌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직업 역시 헌터입니다.”
“어째서죠?”
“돈 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죠.”
“……?”
“헌터들이 레이드를 한 번 뛰고 받는 수당은 일반 대기업 과장의 연봉입니다. 그런 큰돈이 손에 들어오면 사람은 이성이 마비되죠. 쓰고 싶은 곳에 그냥 씁니다.”
강사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레이드는 꾸준히 있는 게 아닙니다. 운이 나쁘면 1달에 1번도 레이드를 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은퇴하게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사람이 쓰던 것이 있으니 소비를 줄이는 건 쉽지 않죠.”
강사는 비소했다.
“소비는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이 자존심이라는 것이 그걸 어렵게 하죠.”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어린 김호은의 물음에 강사가 대답했다.
“도련님, 도련님도 멋진 차를 좋아하시죠?”
“네. 저 커서 차 엄청 많이 살 거예요.”
“좋아요. 도련님이 마음에 드시는 고급 차를 산다고 합시다. 만약 그 차가 10억짜리예요. 그럼 그걸로 끝날까요?”
“어? 아닌가요?”
“고급 차라는 건 그 유지비 역시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고급 차는 수리비도 더럽게 많이 깨집니다. 보험료 역시 만만치 않죠. 또, 고급 차는 소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세금 역시 많이 매겨집니다. 즉, 고급 차를 소유하려면 구매 이후까지도 감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질문 드리겠습니다. 만약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죠?”
“차를…… 팔거나 다른 평범한 차로 바꿔야 해요.”
“정답입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자존심은 그걸 허락하지 않죠.”
“저 같아도 계속 멋진 차를 가지고 있고 싶을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차를 유지할 수 있는 수입이 있어야 합니다. 헌터로서 레이드를 뛰어서 버는 것 말고 다른 수입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마련해야 하죠?”
“그건, 저축과 투자 그리고 계획성 있는 소비입니다.”
강사는 말을 이었다.
“뻔하지만, 뻔한 만큼 중요한 사항입니다. 알면서도 실천 못 해서 파산하는 얼간이 같은 헌터들이 지금도 생기고 있거든요.”
김지은이 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모으고 투자를 해도, 레이드 도중에 죽으면 무슨 소용이죠?”
“좋은 질문입니다. 실제로 그것이 헌터들이 돈을 펑펑 써대는 가장 중요한 원인입니다. 만약 레이드 한 번 뛰고 죽을 거라면 제 말대로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서 아가씨께서는 금방 죽어버리실 건가요?”
“아뇨. 절대 안 죽어요.”
김지은은 지금까지 안정적인 투자를 계속해 오고 있었고 그건 제법 큰 자산이 되었다.
그녀는 황진혁을 보았다.
그는 마리오네트 능력 각성자.
마수와의 싸움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김지은은 그가 헌터로서 자질이 없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사람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헌터를 오래 할 수 없었다.
헌터는 자신처럼 어딘가 비틀려 버린 사람이 오래 할 수 있는 것이다.
거칠고 험한 레이드를 버틸 수 있게 하는 건, 광기 혹은 독기였으니까.
‘좋은 투자처를 소개해 줘야겠네.’
그때 유순태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결혼 선물은 뭐가 좋을까?”
“아! 그렇죠!”
“맞다. 결혼 선물에 대해 물어본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들의 말에 황진혁이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이미 웬만한 혼수는 다 마련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유순태의 말에 허만철 역시 동의했다.
“맞습니다. 이런 경사에 그냥 넘어가는 건 염치가 없지요.”
그는 말을 이었다.
“제가 보약 한 제 지어드릴까요? 제가 아는 한의사 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의 비방이 남자에게 참 좋거든요.”
“그래요?”
황진혁은 솔깃해 했고, 유순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젊은 사람이…….”
그때였다.
옆에서 치킨을 냠냠 하고 있던 유하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남자에게 참 좋은 게 뭐예요?”
“……!”
무림에서 온 배달부 46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