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518
517화. 기억 (2)
“여기는 어떻게?”
그의 물음에 진선아가 처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에 아버지를 모셨거든요.”
“아, 그렇군요. 혹시 혼자 오셨습니까?”
“네. 어머니는 지방에 계셔서…… 어제 다녀오시고 저는 어제 일이 있어서 오늘 혼자 왔어요.”
진선아가 대답했고, 되물었다.
“만철 씨도 혼자 오셨어요?”
“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때 허만철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곧 점심시간이었으니까.
“아…….”
붉어진 얼굴로 머뭇거리던 허만철이 물었다.
“시간이 좀 이르지만, 혹시 괜찮으시면 식사…… 같이 하시겠습니까? 도시락을 싸 왔거든요.”
허만철의 제안에 진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들은 안식의 집 앞쪽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고, 그곳에 돗자리를 폈다.
진선아가 도시락을 꺼냈고, 허만철 역시 유순태와 강소가 만들어 준 도시락을 꺼냈다.
“어머!”
진선아가 허만철의 도시락을 보며 감탄했다.
“도시락이 무척 깔끔하고 예쁘네요.”
허만철이 뺨을 긁적였다.
“저희 사장님하고 강소 형님이 만들어 주신 겁니다.”
“사랑받고 계시네요.”
“그분들이 좋으신 분들이죠. 하하하.”
진선아가 자신의 도시락을 열며 말했다.
“저는 제가 싸 왔거든요.”
그녀가 싸 온 건 김밥이었다.
“아버지를 추도하기 위해 온 것이지만, 그래도 저 혼자만이라도 소풍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요.”
“그러셨군요.”
“그런데 이렇게 같이 밥을 먹으니까 정말 소풍 온 것 같아서 좋아요.”
“제가 괜히 같이 먹자고 했나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실례지만, 누구를 추도하러 오셨어요?”
“제 동료들과, 부모님을 추도하러 왔습니다.”
“아…….”
전선아가 얼른 사과했다.
“죄송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미 오래전의 일이니까요.”
“…….”
“이런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 하고, 밥 먹을까요?”
“네.”
그들은 함께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서로 헤어지기가 아쉬웠지만, 그래도 다시 만날 수 있기에 웃으며 헤어졌다.
.
.
.
그 시각.
안식의 집에 강소와 유순태 가족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임송규와 함께 오지 못했다. 그는 포터 협회장이라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곳의 의원들과 함께 단체로 방문하는 일정으로 월요일에 이미 다녀갔다.
그들은 눈물의 탑 28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임소영의 부모님을 모셨기 때문이다.
강소와 유순태 가족은 모두 검은색 옷으로 갖추어 입었다.
유채영 역시 오늘은 검은색 원피스를 입었다.
“채영아, 여기가 채영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계신 곳이야.”
임소영의 말에 유채영이 앞에 있는, 이름이 새겨진 작은 돌을 보았다.
그 이름을 읽고 기억하려는 듯이.
유순태가 준비해 간 꽃으로 갈아 꽂았다.
그리고 모든 가족이 그 앞에서 잠시 묵념했다.
묵념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유하영이 말했다.
“아빠. 그거 보러 가요.”
“그거?”
“승리한 전사 조각이요.”
그건 안식의 집, 영광의 전에 있는 커다란 석상으로 전에 강소가 눈으로도 만든 적이 있는 조각이다.
그리고 유하영은 그 조각을 무척 좋아했다.
어차피 공원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곳에 갔다.
유하영은 그 웅장한 석상을 보았다.
“하영이는 저 석상이 그렇게 좋아?”
강소의 물음에 유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소영의 품에 안긴 유채영도 그 석상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은, 서글픔이었다.
태어난 지 아직 첫 돌도 되지 않은 아기의 눈에 서글픔이라니.
강소는 의아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자, 그럼 가서 점심을 먹을까?”
“네!”
그들은 안식의 집 앞쪽의 공원에 돗자리를 깔았다.
“그런데, 만철 씨는 도시락을 잘 먹었나 모르겠네.”
유순태의 말에 강소가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라. 잘 먹었을 거다.”
“그렇겠지.”
사실 강소는 허만철이 진선아와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착했을 때, 이미 허만철이 진선아와 식사를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굳이 그걸 말하지는 않았다.
‘풋풋한 사랑은 지켜 줘야지.’
.
.
.
식사를 마치고, 잠시 돗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푸르른 공원의 모습, 그리고 그 아래 앉아 각자 도시락을 먹으며 떠나간 이들을 추억하는 모습에 강소는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유하영이 강소에게 말했다.
“있잖아, 오빠. 왜 이곳에 온 사람들은 다 슬퍼?”
“그렇게 보이냐?”
“응.”
유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기억하기 때문이지.”
“기억?”
강소가 말을 이었다.
“누군가와의 추억과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기에, 슬플 수밖에 없지.”
“슬프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
“글쎄다. 내가 볼 때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 위해서는 잊어버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에 유하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잊어버리는 것도 슬픈 일이야. 잊어버리면 그 사람과 함께한 행복했던 기억도 잊어버리게 되잖아.”
“…….”
“기억은 슬픈 기억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좋은 기억도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슬픈 기억이 싫다고 좋은 기억까지 잊어버릴 순 없는 거잖아.”
“그렇구나.”
유하영의 말은 양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진리를 꿰뚫는 말이었다.
강소는 하하 웃으며 말을 이었다.
“참 어렵구나.”
“응. 어려워.”
잠시간의 침묵.
문득 유하영이 고개를 들어 강소를 보며 말했다.
“내가 노래를 불러서 이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싶어.”
“위로해 주고 싶다고?”
“응.”
그때,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순태가 말했다.
“하영이의 생각이 참 예쁘네. 그럼 팬클럽에 공지를 올리고, 팬 미팅 같은 형식으로 해야 하나?”
그 정도는 사비로도 감당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유순태의 말에 유하영이 고개를 저었다.
“초코빵 언니 오빠들 말고 다른 사람들도 위로해주고 싶어요.”
“그래, 그럼 언제가 좋을 것 같니?”
“금요일이요.”
그 말에 강소와 유순태는 고민에 빠졌다.
유하영의 생각과 결심은 칭찬할 만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눈앞에 있었다.
오늘이 화요일인데, 금요일에 콘서트를 열고 싶다는 것도 그렇고 그 대상 역시 광범위했으니까.
유순태가 말했다.
“하영아.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아. 시일도 촉박하고 또 장소 대여도 힘들 것 같아.”
“그래요?”
유순태는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역시 교육이라고 생각했기에 말은 했지만 안 된다고 말하는 마음이 좋지 않은 건 당연했다.
“……?”
강소는 뭔가 의아했다.
안 된다는 말에 실망할 법도 하지만, 유하영은 그런 표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저…….”
한 남자가 다가왔고, 그를 본 순간 강소는 그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이 사람 역시 양춘각의 단골인데?’
항상 배달을 시켰기 때문에 그들 중에 강소만 그 남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뵙네요.”
그는 강소가 자신에게 인사를 하자 당황했다. 엄청나게 잘생긴 남자를 본 적이 없는데 자신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저, 누구신지?”
“양춘각 배달부입니다. 엊그제도 짜장면을 주문하셨었죠?”
“아……!”
그의 두 눈이 커졌다.
그 남자의 이름은 이금동.
‘금동의 검증해 봅시다.’ 프로를 운영하고 있는 인기 개인 방송인이다.
전에 양춘각의 총알 배달부에 대한 검증을 하면서 강소의 얼굴을 보여 달라는 시청자들의 요청을 받았지만 강소의 얼굴을 보여 주지 못했다.
지금,
그는 왜 시청자들이 강소의 얼굴을 보고 싶어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정도면 천상계인데?’
그때 강소가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이금동은 그제야 얼른 정신을 차리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들어서요. 그래서 혹시 이 방법은 어떨까 하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어떤 방법인지?”
“인터넷 방송을 이용하는 겁니다. 물론 현장감은 떨어지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위로해 주고 싶다는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인터넷 방송도 나쁘지 않거든요.”
“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법에 그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강소는 왜 유하영이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알고 있던 것이다.
누군가 해결책을 제시해 줄 거라는 것을.
이금동이 하하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초코빵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제약 때문에 하영이 노래를 듣지 못한다니! 오지랖인 건 알지만 안타까워서 저도 모르게 이렇게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훌륭한 방법을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유순태는 곧장 고영민에게 전화를 했고, 고영민은 좋은 생각이라면서 즉시 준비하겠다고 했다.
“수고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수고라니요! 하하하! 광고비가 얼마인데요. 아이쿠! 저도 모르게 본심이 나왔네요.”
물론 광고비도 있지만, 고영민은 유순태에게 부담 가지지 말라는 뜻으로 그리 말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유하영의 콘서트가 결정되었다.
콘서트의 이름은 ‘기억’.
유하영이 정한 이름이었다.
* * *
밤이었다.
피리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은 홀린 듯이 잠이 들기 시작했다.
산속에 들어온 이들이 모두 잠이 들자, 그제야 피리를 들고 있는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웃통을 벗고 있었는데 근육들이 알맞게 자리 잡고 있어 야성적인 매력이 있는 남자였다.
“그럼 이제, 식사를 해 볼까?”
그는 인간의 꿈속에서, 즐거운 꿈을 꿀 때 생기는 오러를 흡수했다.
그가 부는 피리 소리를 듣고 잠이 들면, 인간은 즐거운 꿈을 꾸었다.
바라던 것, 원하던 것을 꿈에서 이루는 것.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남은 건 허탈함뿐이었고, 오러를 흡수하여 비어 버린 곳을 그 허탈함이 채웠다.
한두 번이라면 모르지만, 오랫동안 그런 상태가 반복된다면 인간은 견딜 수 없었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저벅, 저벅.
그때 그곳으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었군요. 패니.”
“베노트.”
그는 왕의 새로운 시종이다.
“그대의 여동생이 사라졌습니다.”
“뭐?”
피리를 든 남자, 패니가 그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뭐라는 거야? 누가 사라져?”
“당신의 여동생, 릴리스 말입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왕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릴리스의 행방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대가는?”
“패니 님이 원하던 것을 드리지요.”
“좋아.”
사실 릴리스는 그의 여동생이었고, 그렇기에 대가 없이도 그 행방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어둠의 족속은 그런 건 없었다.
여동생이라 해도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였으니까.
다만, 누군가 여동생을 해했다면 그자를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건 여동생을 위해서라든지 그런 건 아니다.
그냥 기분이 나빴으니까.
“릴리스의 행방이 끊긴 곳이 어디지?”
“대한민국이라는 곳입니다.”
* * *
수요일 아침이었다.
1층 홀로 내려온 강소는 TV를 켰다.
[뽀드득! 뽀드득! 이 소리를 직접 경험해 보세요!]주방세제 광고와, 음료수 광고 등이 이어졌다.
강소는 그 광고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에게 광고란 언제나 신기한 것이었으니까.
‘저런 식으로 뭔가를 알리다니. 참 놀라운 곳이야. 이 세계는.’
그때,
갑자기 TV에서 유하영이 나왔고, 그게 강소의 눈을 사로잡았다.
[위로가 필요한 그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유하영과 노민아 그리고 국내 최정상급 가수들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어?”
강소가 두 눈을 깜빡이자, 2층에서 내려오던 유순태가 말했다.
“아, 저 광고가 벌써 나오네?”
“그러게…….”
인터넷 방송을 통한 콘서트 이야기가 나온 게 불과 어제이다.
그런데 이렇게 광고가 나오는 것.
“정말, 고영민 실장님이 실행력이 대단하신 것 같다.”
.
.
.
사실, 이 광고에는 김지은의 입김이 닿아 있었다.
“우리 하영이가 하는 콘서트인데, 하영이가 콘서트 하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어야지!”
하면서 긴급 광고를 편성하게 한 것.
이번 콘서트는 인터넷 방송으로 진행되었고, 그건 예상외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해외의 반응이었다.
마수 때문에 오가는 것이 힘들어도 인터넷은 전 세계에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들었어? 페어리 걸이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 [물론 알고 있지.] [너무 기대돼.] [하지만 너무 들뜨는 건 안 될 것 같아.] [맞아. 추모 주간을 맞이하여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콘서트니까.] [우리도 그런 콘서트가 필요해.]미국은 물론이고,
[여러분, 모두 들으셨습니까? 하영 상이 콘서트를 한다고 합니다.] [저 벌써 머리띠 제작했습니다.] [하영 상의 이번 콘서트, 주제가 기억이라고 합니다.] [한국에는 추모 주간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획한 콘서트라고 합니다.] [우리도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콘서트를 봅시다.]일본 등 수많은 국가에서 유하영의 콘서트에 관심을 보였다.
저번 세계 헌터 대회 당시에 한국에 왔던 헌터들에 의해 유하영의 이름이 알려진 것이다.
그렇게 전 세계의 초코빵들은, 유하영의 콘서트를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51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