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55
54화. 모델 제의 (2)
니바스는 뮐렝의 말에 움찔했다.
“네? 코, 코발 님 말씀입니까?”
“명산 아트홀 사건을 반대하다가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잔뜩 토라져서 이곳 두 번째 중간계로 돌아갔다고 들었는데?”
“저,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정말인가?”
니바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왜 하필 뮐렝 님이야!’
뮐렝의 서열은 니바스나 아스모데에 비하여 별로 높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그분’의 시종장이라는 것이었다.
니바스는 뮐렝도 무서웠지만, 뮐렝의 뒷배가 더 무서웠다.
뮐렝은 틀림없이 자신이 코발의 거처를 알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만약 말하지 않는다면……
‘아스모데 님하고 나란히 빙설지옥은 절대 싫다!’
그는 결국 입을 열었다.
“제, 제가 알려 주었다는 것을 절대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비밀은 지켜 주지.”
“코발 님이 있는 곳은…… 엘레닌스 본사에 있는 모델 아카데미입니다.”
* * *
아침이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활기찬 인사와 함께 김지은이 출근했다.
유순태는 김지은을 보며 언제나 참 유쾌한 아가씨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좋은 아침이야.”
“좋은 아침입니다.”
뒤이어 강소가 인사를 했고, 김지은은 강소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언제 봐도 알바 오빠는 참 멋지단 말이지.’
김지은은 평소대로 김치와 양파 등을 준비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사장님. 오늘은 양파가 평소보다 적네요.”
“아, 그거? 일부러 조금 썬 거야.”
유순태가 대답했다.
“오후에는 하영이 데리고 엘레닌스 모델 아카데미에 가야 하거든.”
“네? 모델 아카데미요?”
유순태는 김지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고, 김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하영이가 아동복 모델이라니! 하영이를 볼 때마다 모델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모델이라니! 너무 잘되었어요.”
“하하하. 우리 딸이 좀 예쁘기는 하지.”
그 모습을 보며 강소는 언젠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봤던 단어가 떠올랐다.
‘딸바보…… 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나?’
그날 점심 장사를 마친 후, 그들은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외출 준비를 했다.
가게 앞에는 ‘금일 휴업’이라는 팻말을 내걸었다.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의 수입을 포기하고 저녁 장사를 접는 것임에도 유순태는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내 딸이 모델 제의를 받았다는 거지? 내 딸이. 흐흐흐.”
그 모습을 보며 강소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어 버렸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는 갔다.
모델이 뭘 하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모델 제의를 받았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나는 일인 것 같았다.
유순태와 강소 그리고 임소영과 유하영은 가게를 나섰고, 엘레닌스 본사에 있는 모델 아카데미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 * *
엘레닌스.
그곳은 격변의 시대가 오기 전부터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던 월계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였다.
월계그룹의 전대 회장의 장녀가 사장으로 있는 엘레닌스는 고가 브랜드였기에 모델도 아무나 쓰지 않았다.
항상 쟁쟁한 스타들이나 톱 모델을 고용하기도 했지만 주로 엘레닌스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모델 아카데미 출신 모델들을 썼다.
그들은 엘레닌스만을 위한 모델이었다.
그렇기에 엘레닌스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것도 무척이나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엘레닌스 전속 모델이 되어도 실제로 런웨이에 서는 기회를 잡는 건 30퍼센트의 모델들뿐.
나머지는 화보 모델만 전전하거나 아니면 피팅 모델로 쓰였는데, 그렇게라도 쓰이면 다행이었다.
유명무실하게 스러져 가는 모델들도 많았으니까.
– 쾅!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번 정장 모델로 제가 발탁된 것 아니었습니까?”
올해 모델 경력 15년 차인 우민수는 부원장의 책상을 손으로 내리치며 항의했다.
그의 항의에 부원장 박무연은 혀를 찼다.
“진정하게나.”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지금 저를 가지고 노신 거 아닙니까!”
우민수의 말에 박무연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섭섭하지. 내가 자네를 명단에 올리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그런데 위에서 자네를 빼라잖아. 내가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박무연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어 우민수의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자, 이걸로 술이나 한잔하고 털어 버리게.”
“됐습니다.”
“잔말 말고 받아!”
우민수는 그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엘레닌스의 전속 모델이 되면 한 달에 100만 원의 지원비를 받지만 그것으로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런웨이에 서면 건당 1억이 넘는 돈을 받는 것에 비하면 천지 차이였다.
“조만간 있을 화보촬영에는 내가 좀 더 힘써 볼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겠습니다.”
우민수는 부원장실에서 나갔고, 그 모습을 보며 박무연은 피식 웃었다.
‘멍청한 인간.’
그는 자신의 서랍을 열어 엘레닌스 정장 모델 명단을 보았다.
우민수의 이름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의 말대로, 박무연은 그를 가지고 논 것이었다.
‘저 녀석을 마지막으로 이제 슬슬 이곳도 떠야겠어. 이러다 꼬리가 잡히면 곤란하니까.’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박무연이 고개를 들었을 때, 문 앞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오랜만이군. 코발.”
그 이름에 박무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제 몸의 이름은 박무연입니다. 박무연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주시지요. 뮐렝 님.”
저벅, 저벅.
지팡이를 들고 연미복을 입은 뮐렝은 그대로 부원장실에 들어와 앞의 소파에 앉았다.
“저를 잘도 찾아내셨군요.”
박무연은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뮐렝 앞의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원래 내가 잠수 타고 있는 존재들을 잘 찾아낸다네.”
“또 애꿎은 아래 녀석들을 쥐어 짜셨겠죠.”
“그럼 안 되나? 약육강식이 바로 우리가 속한 세계의 법칙인데 말이지.”
“안 될 건 없죠.”
“그래서, 모델 아카데미의 부원장이라……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군.”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모델 아카데미인가?”
“제가 이런 쪽 전문이라서 잘 아는데, 이곳이 제법 일할 맛이 나는 곳입니다. 절망하는 영혼이 다른 곳도 많지만 이곳이 그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으니까요.”
그의 말대로, 모델계는 화려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참담한 수준이었다.
끊임없는 경쟁과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젊고 예쁜 후배들에게 밀려 소리 없이 사라지는 모델들의 절망은 코발에게 만족할 만한 열매를 가져다주었다.
“덕분에 이렇게 많이 모았지요.”
박무연은 책상 뒤쪽의 금고를 열었고 그 안에서 나무로 만든 검은색 상자를 꺼냈다.
탁.
“여기 절망의 구슬입니다.”
뮐렝은 상자를 열어 보았다.
안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검은색 구슬 백여 개가 들어 있었다.
“제법 많이 모았군. 현명해. 그분이 맡기신 사명을 내팽개쳐 두는 건 용서받지 못할 일이니.”
“압니다. 제가 이곳 두 번째 중간계에 있을 수 있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니까요.”
“이런 곳이라면, 차라리 원장으로 있는 게 더 낫지 않나?”
“원장은 안 됩니다. 눈에 너무 잘 띄니까요. 그리고 너무 바쁩니다. 저는 절망의 구슬을 모으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지 모델 아카데미 운영하러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몸은 어떻게 얻은 건가?”
“이 몸의 주인인 박무연이라는 자가 생각보다 욕심도 많고 야망도 많아서요. 그래서 원하는 것을 들어 주겠다고 꾀어서 계약을 했죠.”
“그 결과 그 몸을 뺏었군.”
“흐흐흐. 자고로 계약은 신중하게 해야 하는 법이죠.”
그때 전화기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 부원장님. 원장님께서 견학 손님이 오셨다고 부르십니다.
“알았어. 곧 나가지.”
박무연은 옷걸이의 양복 재킷을 입으며 말했다.
“그럼 저는 나가 봐야 해서 이만.”
“아스모데는 지금 빙설지옥에 있네.”
갑자기 이어진 뮐렝의 말에 박무연은 깜짝 놀라 반문했다.
“……네? 그녀가 말입니까?”
“그녀가 맡은 일이 실패했거든.”
“그건 들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호되게 당하고 돌아왔더군. 그런데도 누구에게 당한 것인지 말하지 않고 있어서 괘씸죄가 적용되었지.”
“그렇군요. 그런데 그걸 왜 저에게 말씀하시는…….”
“글쎄? 왜일까?”
뮐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도 바쁜 몸이네. 이만 가 보지. 다음에 보세나.”
박무연이 말했다.
“다음에 저를 찾으시려거든 다른 곳에서 찾으십시오.”
“오? 이제 여기도 마지막인가?”
“이제 연극계 쪽으로 가 볼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주 큼지막한 구슬 하나를 얻고 말입니다.”
“알겠네.”
뮐렝은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탁 하고 쳤고, 순식간에 그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박무연은 자신의 라이벌인 아스모데가 빙설지옥에 있다는 말에 차마 웃을 수 없었다.
그건, 일종의 경고라는 것을 알아차렸으니까.
쓸모를 다 하라는 경고 말이다.
* * *
우민수는 부원장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에 탔다.
방금 지나쳐 온 복도에 서 있던 후배들은 그를 보고 인사를 했지만 뒤에서 험담하는 소리가 다 들렸다.
“저 선배는 왜 아직도 붙어 있는 거래?”
“뭐 아직까지 런웨이에 욕심이 있나 보지.”
“아직까지 못 섰으면 가망 없는 거 아니야?”
“그걸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러다 지박령 되는 거 아니야?”
우민수는 주먹을 쥐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다 들린다. 이 자식들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187의 훤칠한 키, 그리고 제법 잘생긴 얼굴은 지나가던 여자들이 뒤돌아볼 만했다.
하지만 번번이 런웨이에 서지 못하고 있었다.
모델계에는 그보다 젊고 잘생긴 모델들이 차고도 넘쳤으니까.
그의 나이 서른넷.
모델계에서 은퇴를 생각해야 하는 나이였지만 그는 아직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은퇴한다 하여도 그건 런웨이를 밟은 후여야 했다.
지금 은퇴해 버리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당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자신을 뒷바라지해 준 가족들에게도 너무 미안했으니까.
–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추고, 문이 열렸다.
우민수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한 가족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귀여운 꼬마와 부모인 것 같았다.
“자, 엘리베이터에 타자!”
“네!”
뒤에 마스크와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삼촌인가?’
그리 생각하며 그들을 지나쳤다.
‘저녁에 소주 한잔할까?’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받은 돈을 술값으로 탕진하기에는 돈이 너무 아까웠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알바를 하러 가야 했다.
* * *
“어서 오십시오. 처음 뵙겠습니다. 엘레닌스 모델 아카데미의 원장 최홍수입니다.”
“유순태입니다.”
“임소영입니다.”
“강소입니다.”
“유하영이에요.”
유순태 가족과 최홍수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최홍수는 체크무늬 중절모를 쓴 멋들어진 중년의 신사였다.
“윤 과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과연 윤 과장님 말씀대로 이번에 런칭하는 아동복과 이미지가 딱 맞는 아이군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저희 쪽 제안을 들어 보시면 그리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우선 저희 아카데미를 견학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아카데미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시설은 훌륭했고, 키 크고 날씬하고 잘생긴 모델들이 무척 많았다.
“안녕하십니까? 박무연입니다.”
그들은 부원장을 만났다.
“죄송합니다. 손님이 있어서 그분을 보내고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괜찮습니다. 하하하.”
강소는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부터 엘레닌스 모델 아카데미 건물 안에서 이질적인 마기가 느껴져 이상하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지금, 박무연을 본 순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설마 저자…… 블랙맨인가?’
무림에서 온 배달부 5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