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556
555화. 8월 회담 (5)
그 물음에 J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초코빵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자신 앞의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그가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영이에게 경고 편지를 보내셨죠?”
“……!”
J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줄은 몰랐다.
그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우선 하영이를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가 대답하지 않았는데도 상대방은 그가 그런 일을 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왕 이렇게 된 거 협조 좀 해 주시죠?”
J는 자신 옆에 쓰러져 있는 동료를 보았다.
자신보다 높은 서열의 그를 이렇게 쉽게 처리했다는 건 단 한 가지 사실만을 뜻했다.
강하다는 것.
그때 저 앞에서 파란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었다.
“저 연기, 무슨 뜻입니까?”
그자의 물음에 J는 순순히 말했다.
“폭탄을 설치했고, 자신들을 저곳에서 빼내 달라는 신호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어찌하시겠습니까?”
그 물음에 J는 자신의 두 손을 내밀며 말했다.
“체포하십시오. 하지만 딱 한 번만 능력을 쓰게 해 주십시오.”
“……?”
“하영이를…… 하영이를 구해야 합니다.”
J의 애원에 그 남자, 강소는 웃으며 말했다.
“하영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 *
그날 수복절 행사는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음으로는, 애국가 제창이 있겠습니다.”
사회자는 유하영을 소개했고, 유하영은 여전히 귀염뽀짝한 발걸음으로 무대 위에 올라왔다.
그녀는 공식 석상에 어울리는 단정한 무채색의 옷차림이었다.
두두두둥!
장엄한 경음악이 울렸고, 유하영이 입을 열어 노래를 시작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녀의 애국가에 사람들은 왠지 가슴이 뜨거워지며 동시에 벅차올랐다.
‘아, 왜 눈물이 나지?’
‘울면 안 되는데…… 젠장!’
결국,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건 TV를 통해서 생중계하는 수복절 행사를 보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애국가와 관련이 없는 외국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뒤에서 강소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하영에게 직접 음공을 알려 주었기에, 강소는 유하영이 사용하는 게 음공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 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플로라 여왕을 만나러 가 봐야겠군.’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까.
강소는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져 있는 다섯 개의 작은 구슬을 바라보았다.
그건 블랙맨들이 설치했지만, 강소가 수거한 폭탄들이었다.
덤으로 좀 많…… 아니, 적당히 대화를 나누었다.
* * *
그날 밤.
강소는 꽃의 정령계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전에 플로라가 납치당했을 때, 정령들이 알려 준 그 통로는 아직도 건재했다.
아니, 점점 더 넓어지고 있었다.
스윽.
강소는 손을 내밀었다. 그 통로는 강소를 거부하지 않았다.
“다행이군.”
그에게는 ‘공간을 가르는 검’이 있었지만, 그걸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걸 사용함으로 꽃의 정령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플로라는 그 검으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했지만, 그게 그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강소는 그 통로를 통해 꽃의 정령계로 들어섰다.
꽃들이 만발한 곳.
꽃의 정령계는 여전히 비현실적이었다.
– 어서 오세요.
뒤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소가 뒤를 돌아보니 플로라가 서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 당신은 저를 오랜만에 보지만, 저는 아니에요.
프레이가 손을 젓자, 그녀의 손에 꽃잎들이 나풀거렸다.
– 세상의 모든 꽃은 제 눈과 귀가 되어 주니까요.
“그렇군요.”
플로나는 미소 지었다.
– 덕분에 하영이가 노래하는 것도 보았답니다. 그 아이도 프레이와 같은 운명을 타고났지만, 당신이 옆에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강소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검을 내밀었다.
“전에 이 검, 이름이 아다마스라고 했던 것 기억하고 있습니다.”
– 맞아요. 프레이의 호위기사가 가지고 있던 검이자 어둠을 잡아먹는 검이죠.
그녀는 빙긋 웃었다.
– 당신이 올 것을 알고 있었어요. 이제 그 아이의 일곱 번째 생일이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유하영의 생일은 9월 10일, 얼마 남지 않았다.
강소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일곱 번째 생일이 되면, 무슨 일이 생기는 겁니까?”
– 무슨 일이 생긴다기보다는, 그 아이의 운명이 확실해지는 거죠. 그로 인해 그 아이가 태생부터 지니고 있던 능력이 확실하게 나타나게 되고요.
플로라가 말을 이었다.
– 그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으로, 그 아이가 타고난 운명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힘이기도 하지요.
강소의 눈이 빛났다.
그게 바로 그가 듣고 싶었던 대답이었다.
플로라가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세상은 그런 운명을 가진 자를 ‘영웅’이라고 부르지요.
그랬다.
유하영이 타고난 운명은 바로, 세상을 구할 ‘영웅’의 운명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강소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며 물었다.
“프레이라는 여자가 그리 오래 살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만.”
– 그랬죠.
“호위기사가 이런 공간을 가르는 사기적인 능력이 있는 검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녀 자신은 세상 만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까지 지녔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는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죽은 겁니까?”
그 물음에 플로라는 움찔했다.
“저는 그게 궁금하군요.”
강소의 물음에 잠시 침묵하던 플로라가 대답했다.
– 그건, 저도 몰라요.
“방금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꽃은 여왕님의 눈과 귀라고. 그런데 정말 모르신다고요.”
– 네.
플로라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저도 알고 싶어요. 이상하게…… 그때의 기록만이 사라져 버렸어요. 마치 가위로 싹둑 잘라서 그 부분만 오려 내 버린 것처럼.
강소는 플로라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렇군요.”
–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어요.
“……?”
– 신은, 그 아이를 사랑하고 또 그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셨다는 거예요.
.
.
.
강소는 양춘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플로라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되짚어 보았다. 그런데 문득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 플로나는 말했다.
그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으로, 그 아이가 타고난 운명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필요한 힘이기도 하지요.
라고.
그렇다면 뭔가 이상했다.
확실히 유하영은 모두를 끌어모으는 힘이 있지만, 그게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광휘의 족속도, 어둠의 족속도 모두 유하영을 중심으로 하나로 모이고 있었으니까.
‘전에 윤진 씨가 그랬지. 하영이의 존재는 양쪽 모두가 원하는 존재라고.’
그렇다면 현재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이다.
유하영이 타고난 운명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플로라는 알지 못하지만, 광휘의 족속들은 알고 있는 운명을 하나 더 타고 난 아이라는 가설이 성립되었다.
.
.
.
강소가 떠나고,
플로라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마도 그때의 그 일을 떠올렸기에 드는 감정일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세상 모든 만물의 생육을 담당하기에 그녀는 세상 모든 기록을 살필 수 있었다.
덕분에 알게 되었다.
프레이가 죽었을 때의 상황처럼 마치 가위로 잘라 내 버린 것 같지만, 그것과 조금은 다른 현상이 또 한 번 이 세상에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 * *
각성자 협회 옆의 숙소.
그곳의 꼭대기 층에 마련되어 있는 회의실에서는 한창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발견된 금괴는…….”
“제 3국의…….”
“이번 일로 인해 각국의 손해는…….”
“그보다 마정석은…….”
다른 것도 아니고 블랙맨 본부를 소탕한 건이었고, 그곳에서 발견된 재원들 역시 어마어마했기에 회담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밀고 당기는 마라톤 회의는 3일간 꼬박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회의가 끝났다.
“이번 회담으로 인해 결정된 사안들의 초안입니다. 각자 읽어 보십시오.”
의장의 말에 각국 회담 참가자들은 초안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몇 가지 사항을 수정하기 위한 회담이 다시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그날 저녁 각국 회담 대표들이 사인함으로 최종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
.
.
“하-! 힘드네.”
성진호는 자신의 사무실에 돌아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지원 1과 1팀장 이연곤은 성진호에게 피로회복제를 내밀었다.
“아, 미안하지만 사양할게요.”
“네?”
그 말에 이연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과, 과장님이 피로회복제를 사양하시다니! 대체 무슨 일입니까?”
“왜요? 내가 피로회복제를 안 마시니까 이상합니까?”
“네.”
그 즉답에 성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요?”
“지금까지 한 번도 사양하신 적이 없으니까요.”
“…….”
생각해 보던 성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군요.”
그는 말을 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단지 회담 동안 피로회복제만 들이부어서, 배가 부를 뿐이니까요.”
“대체 얼마나 드셨기에 배가 부르다고 하시는 겁니까?”
“하루에 열 병은 넘게 마신 거 같군요.”
그 말에 이연곤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의무실에 실려 가지 않으신 게 다행이네요. 그거 하루에 다섯 병 이상 마시면 심장에 상당한 무리가…….”
“할 수 없지요. 정신 똑바로 차릴 수밖에 없잖습니까? 여차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우리 몫을 제대로 못 챙길 수도 있으니까.”
이연곤은 눈 밑이 퀭한 성진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회담은 3일 동안 이어졌다고 들었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있기는 했지만, 그 시간에는 안건에 대해 의논하고 준비해야 했으니까.
결론적으로 3일 밤을 새웠다는 것이다.
“내가 평소 밤샘에 익숙해져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하하하.”
그 말에 이연곤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이득을 챙기지 못하면 해외에서 고생하고 있을 김명희를 볼 면목이 없어서 이리 무리한 것 같았지만…….
‘죄송합니다. 김명희 과장님께서 제대로 보고하라고 협박…… 아니, 부탁하셔서요.’
* * *
다음 날.
아침 일찍 1층으로 내려온 강소는 TV를 틀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DBS 아침 6시 뉴스입니다. 첫 소식은…….]딱 맞추어서 뉴스를 하고 있었다.
[어제 8월 회담이…….]첫 소식은 8월 회담이 끝났다는 소식이었다.
화면에서는 각국의 대표들끼리 서로 손을 잡고 사진을 찍는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다들 웃고 있었지만, 피곤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모두 하나같이 눈 밑이 퀭했으니까.
“아, 8월 회담이 끝났대?”
유순태가 내려오며 물었고, 강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젯밤에 끝났다고 하는군.”
“모두 고생들 했겠네.”
그들은 장사할 준비를 했다. 이제 아무 말 없어도 각자 맡은 일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다음 달 초에 하영이 생일이지 않아?”
“맞아.”
“생일 선물은 뭐 줄지 정했어?”
“생각은 하고 있는데 뭘 줘야 할지 모르겠네. 그럼 너는?”
그 물음에 강소가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나도 아직 정하진 못했다.”
사실 강소는 하고자 한다면 어마어마한 선물들을 해 줄 수도 있었다.
보석으로 치장한 상당히 비싼 것들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생일이 아니라 그냥 선물로도 해 줄 수 있는 것들이다.
생일 선물로는, 지금이 아니면 받을 수 없는 그런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조금 더 고민해 봐야겠군.’
그때 허만철이 내려왔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잘 잤습니다.”
허만철은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덥던 바람에 조금 한기가 섞여 있었다.
양춘각 밖을 쓸고 들어온 그가 말했다.
“이제 슬슬 가을이 오려나 보네요.”
“이제 조금 있으면 8월 말이니까.”
달력을 보던 허만철이 물었다.
“지은 씨는 내일부터 출근하는 건가요?”
그 물음에 주방에 있던 유순태가 움찔했다.
김지은의 진짜 정체도, 8월 회담으로 인해서 잠시 알바를 쉰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허만철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일.
강소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아무래도 취업준비생이니까요.”
“좋은 곳에 취업했으면 좋겠네요.”
허만철이 하하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왕이면 여기 양춘각의 정식 직원이 되었으면 좋겠지만요.”
“혹시 지은 씨에게 관심 있으십니까?”
그 물음에 허만철은 순간 왠지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마치,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허만철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크,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세요. 형님! 저에게는 선아 씨밖에 없습니다.”
“…….”
“저는 그냥, 양춘각도 좋은 직장이라는 뜻으로 말한 겁니다. 그리고 지은 씨가 일도 잘하고요. 저는 그렇게 일머리 좋게 일하는 사람은 처음 봤거든요.”
그 말에 순간 분위기가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그렇죠. 지은 씨가 일을 좀 잘합니다.”
그의 대답에 주방에 있던 유순태와, 홀에 있던 허만철의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에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언제나 변함없이 활기찬 하루가 시작되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55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