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584
583화. 열쇠 (2)
강소의 대답에 아우룸은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산 덕분에 곧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험, 험험, 인간이라고?”
“네.”
“그럼 내 진짜 나이는 어떻게 안 건가?”
“오러가 젊은이의 오러가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이건 상식 아닙니까?”
“…….”
아니었다.
그게 상식 선에서 알 수 있는 것이었다면 지금까지 그를 보자마자 진짜 나이를 알아차린 인간이…….
‘그러고 보니 그런 인간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군.’
그렇다면 자신 앞의 잘생긴 남자는 그들만큼이나 강하다는 뜻일 터였다.
당연했다.
그 팔찌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면 평범한 자는 아닐 터였다.
“험험,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 팔찌 말일세.”
“팔찌라면, 이거 말씀입니까?”
강소는 자신의 왼쪽 손목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호족 대장장이 치두가 만들어 준 팔찌가 있었다.
이번 강소의 생일 때 치두가 선물한 팔찌이다.
“그래, 그거!”
아우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어디서 났나?”
“제 친우가 만들어서 선물해 줬습니다만?”
“만들었다고?”
“네.”
그 대답에 아우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을 해도 좀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하게! 그 아티펙트 제조법이 실전된 지 벌써 30년째이고, 그 기술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 죽은 내 아버지야! 그런데 그걸 만들었다고?”
그 말에 강소는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입니다만? 보십시오. 이게 어딜 봐서 오래된 물건입니까?”
“…….”
그러고 보니 강소의 팔찌는 손때도 묻지 않은 새 물건이었다.
마치 만든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듯한…….
아우룸은 경악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그 기술은 다른 이들에게 막 전수하고 그러는 흔한 기술이 아니었다.
게다가 강소의 팔찌를 보아하니 숙련된 장인의 기술이 깃들어 있었다.
‘최소 500년 이상은 아티펙트를 만든 숙련된 자의 기술이다!’
그 말은 즉, 지금 땅요정족의 기술을 가진 이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것도 500살이 훌쩍 넘은!
그러나 그건 불가능했다. 그가 기억하는 최고로 장수한 땅요정은 80살이었으니까.
아티펙트 제조에 대한 집념으로 늙지 않는 신체를 가졌지만, 거세게 타오른 불이 쉽게 사그라들듯이 그들은 팔십 세를 넘기기 힘들었다.
즉, 아우룸의 남은 생 역시 그리 길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렇기에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자네의 친우…… 땅요정족인가?”
“아닙니다.”
인간이 아닌 건 맞지만, 땅요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땅요정이라면?”
“험, 험험!”
아우룸은 헛기침했다.
사실 땅요정족은 무척 폐쇄적이었기에 그들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아, 아무튼 그자를 만나 보고 싶은데?”
“죄송합니다만 좀 곤란합니다.”
“왜 안 되는 건가?”
“제 친우가 낯을 좀 많이 가립니다.”
강소는 시계를 보았다.
이번에 김지은이 선물해 준 시계였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약속이 있어서 가 봐야 할 듯합니다.”
그건 정말이었다.
오늘 천해진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강소는 약속 장소인 합정역 근처로 향했다. 그리고 3층에 위치한 카페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천해진이 고개를 숙여 그를 맞아 주었다.
“앉으십시오.”
“네.”
“차는 뭐로 드릴까요?”
“쓰지만 않으면 됩니다.”
강소의 말에 천해진은 초콜릿이 가득 들어 있는 음료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가주님.”
카페 사장의 말에 강소는 미소 지었다.
“가문에서 하는 사업 중 하나군요.”
그 말에 천해진이 하하 웃었다.
“이런 카페에서 오가는 이야기가 정보가 되는 법이지요.”
그건 강소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가 있던 세상에는 하오문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기루의 기녀와 식당의 점소이 등으로 이루어진, 정보를 취급하는 단체로 손님들에게서 주워들은 정보를 종합하여 더 큰 정보를 만들어 냈다.
강소도 몇 번 그곳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그의 물음에 천해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사실 강소도 그가 자신을 보자고 한 이유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자신의 가문에서 운영하는 카페이다. 그리고 3층에 있는, 간판도 작은 카페에 올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천해진은 약간 민감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때 카페 사장이 음료를 가져왔고, 천해진은 목이 타는 듯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저…… 그러니까. 혹시 강소 님께서는 레아에 대해서 아십니까?”
“레아라…….”
강소는 잠시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누, 누구 맘대로 내 소중한 실험 재료들을 가져가?”
그러고 보니 호족 아이들을 실험 재료로 삼으려던 한 어둠의 족속이 있었다.
이에 화가 난 그는 그녀에게 말했었다.
“너야말로 누구 맘대로 저 아이들을 네 실험 재료로 삼으려는 거지? 누가 너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지? 그 누구도, 생명을 욕되게 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자신은 그녀가 불러 온 바다의 마수들을…….
“아……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마정석을 탈곡…… 아니, 얻을 수 있었지요.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얻은 마정석이 어찌나 많았는지 아직 반의 반도 쓰지 못했다.
“그, 그러십니까? 하하하.”
“그런데 레아라는 자에 대해서는 왜?”
“사실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열쇠가 있습니다. 이렇게 목걸이로 목에 걸고 다니는 열쇠인데, 그 윗부분에 일곱 개의 붉은 보석이 박혀 있습니다.”
“…….”
“아마 몇 개는 투명한 보석으로 변했을 겁니다.”
“…….”
“그 열쇠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있다.
강소가 습득해서 한동안 그의 인벤토리에 있었으니까.
“사실 그 열쇠의 이름은 공간이 열쇠라고 합니다.”
그것도 알고 있다.
호족 족장 하랑이 알려 줬으니까.
강소는 표정 관리를 하며 천해진에게 물었다.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혹시 그 공간의 열쇠라는 것이 나쁜 겁니까?”
그 물음에 천해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사실은 제가 그걸 찾아서 왕에게 가져다 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결론은 공간의 열쇠를 12월 20일까지 찾아서 가져다주지 못하면 그는 맹약을 어긴 대가로 소멸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천해진은 모든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의하면, 강소에게 거짓은 의미가 없었으니까.
정보를 다룬다는 건 정보교란, 즉 거짓말에도 특화되어 있다는 것.
하지만 그것도 속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나 말에 거짓을 섞는 것이다.
그의 설명에 강소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큰일이군요. 소멸이라니!”
“어쩔 수 없죠. 제가 선택했으니 어쩌면 자업자득입니다. 하하하.”
천해진은 체념한 듯 말했다.
“지금까지 영겁의 시간을 존재해 왔으니, 소멸한다고 해도 별 미련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영이의 콘서트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 아쉽군요.”
그랬다.
천해진은 초코빵이었다.
“티켓팅에 성공하셨습니까? 들으니까 3분 만에 전석 매진이라던데…….”
“성공했습니다. 제 휘하의 수하들을 동원했죠.”
“그러셨군요.”
이번 티켓팅은 정말 치열했다.
그가 수하 백 명을 동원해서 겨우 한 장 구했을 정도로 말이다.
천해진은 커피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결국 강소 님께서도 그 열쇠를 보지 못하신 거군요.”
강소는 잠시 고민했다.
자신 앞의 천해진은 어둠의 족속이긴 했지만 유하영의 팬이었다.
게다가 유하영이 연예계 생활을 할 때 든든한 인맥이 되어 줄 자이기도 했다.
그런 자가 소멸한다는 건 상당히 큰 손해이다.
그렇기에 강소는 그에게 희망을 주기로 했다.
“그 열쇠, 본 적 있습니다.”
“……!”
그 말에 천해진의 두 눈이 커졌다.
“어, 어디서 말입니까?”
“레아의 목에 걸려 있던 그거, 제가 습득했습니다.”
“네? 그, 그럼 그거 저에게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 대가로 그 무엇이라도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강소는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거…… 지금 그대로 사용하기는 좀 그렇게 되었습니다.”
“네?”
지금 공간의 열쇠는 강소가 습득해서 가지고 있다가 게이트에 갇힌 이들을 구출할 때 쓰라고 이신에게 줬으니까.
게다가 그 안에 있던 어둠의 족속의 기운을 그가 정화해 버리기도 했고 말이다.
“어, 어째서…….”
천해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제 “됐다!” 싶었는데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니?
강소가 말을 이었다.
“제가 그 공간의 열쇠라는 것의 능력을 써먹기 위해서 그 안에 담긴 기운을 정화해 버려서 말입니다.”
“네?”
천해진은 두 눈을 깜박였다.
“써, 써 먹는다니? 그걸 말입니까?”
“네. 닫힌 게이트를 열 수 있더군요.”
“…….”
그 말에 천해진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가 알기로 왕의 권능이 닿아 있는 공간을 열 수 있어서 공간의 열쇠라고 불리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왕의 능력, 즉 왕의 권능이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천해진도, 아니 네르갈도 막연하게 왕의 권능이라는 것을 그 단어 자체로 생각했을 뿐 왕이 가진 권능이 뭔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위리의 능력은 ‘힘’, 네르갈의 능력은 ‘그림자’, 그리고 아스타의 힘은 ‘마안’처럼 왕 역시 그런 능력이 있을 텐데 말이다.
‘왕의 권능이 닿아 있는 곳의 공간을 열 수 있어서 공간의 열쇠인데…… 그럼 게이트 역시 왕의 권능이 닿아 있다는…… 잠깐, 뭔가 이상한데? 분명 게이트는 이 두 번째 세상에서 모은 절망의 구슬의 힘으로 열리는 거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절망의 구슬이 쓰이는 곳이 따로 있다는 건데? 대체 어디에?’
뭔가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개념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위리의 말을 떠올렸다.
“아직 모든 게 확실하지 않네. 그 공간의 열쇠라는 것을 찾아야 모든 게 확실해질 것 같아.”
왜 위리가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니, 실물을 본다면 모든 것이 확실해질 터였다. 그러니까 공간의 열쇠의 실물이 필요했다.
이 모든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말이다.
“저, 괜찮으십니까?”
강소의 말에 천해진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네! 괜찮습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 열쇠가 어떻든 저는 그 열쇠가 필요합니다.”
“왕이 알아차릴 텐데요?”
“…….”
그런 문제가 있었다.
공간의 열쇠에 담긴 기운을 정화해 버렸다고 했다. 그걸 왕이 보자마자 알아차릴 터.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강소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왕의 명령, 정확하게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물론입니다. 모든 왕의 명령은 문서로 기록되기 마련이니까요.”
비록 말로 명령을 하긴 하지만, 모든 명령은 문서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명령을 받은 이에게 문서를 전달했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천해진은 그 문서의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고 있었다.
“왕이 명령한다. 나의 동료이자 암흑의 12가문 중 한 축을 맡은 네르갈 가문의 가주는 내 명령이 네 귀에 닿은 그 순간부터 두 달 안에 ‘공간의 열쇠’를 찾아 나에게 가져와야 한다. 이는 어비스를 다스리는 내 이름으로 내리는 정당한 명령이니 이를 어긴 자, 맹약에 따라 그 맹약의 대가를 치르리라.”
“…….”
강소가 피식 웃었다.
“그 문서에 따르면 공간의 열쇠라고 했습니다.”
“그, 그렇죠.”
“그 힘과 권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상태의 공간의 열쇠가 아니라, 공간의 열쇠 그 자체죠.”
“아…….”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
.
.
강소가 저녁 장사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하지만 천해진은 아직 그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문득 위리의 말이 떠올랐다.
“왕을 조심하게.”
예전부터 왕에 대해 의심해 오기는 했다.
그렇기에 오늘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치 딱딱 맞지 않는 퍼즐을 보는 것 같았다.
확실히 뭔가, 있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58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