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596
595화. 추수 감사 자선 파티 (1)
11월 중순의 어느 날.
유순태 부부와 강소, 그리고 김지은과 고영민이 양춘각에 모였다.
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의논 중이었다.
“우선 무조건 월요일로 해야 합니다.”
“알바 오빠의 말대로예요. 그날이 양춘각의 휴일이니까요.”
“확실히 월요일이 스케줄 조정도 편하기는 합니다.”
“그럼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월요일로 한정하면 실제로 선택 가능한 날짜는 두어 개뿐이군요.”
“그렇죠. 12월로 넘어가면 너무 바쁘니까요.”
그들이 열심히 의논하는 건, 바로 유하영이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저번에 VCR을 촬영할 때 유하영은 스케줄 때문에 일찍 환상의 섬을 떠나야 하는 이들과 약속했다.
꼭 다시 만나서 재미있게 놀자고.
이에 대해 강소는 김지은에게 말했고, 그녀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무려 고영민을 양춘각으로 호출한 것이다.
김지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는 고영민은 즉시 양춘각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유하영을 위해서 ‘파티’를 열 날짜를 정하고 있는 것.
그때 김지은이 말했다.
“세 번째 주 월요일 어때요?”
“나쁘지 않네.”
유순태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강소가 말을 이었다.
“이왕 이렇게 파티를 열게 되었으니, 이름을 정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름이요?”
“네. 그게 좀 더 그럴 듯해 보이지 않겠습니까?”
강소의 말에 고영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이번 파티에 대해 언론에서도 주목할 텐데, 그냥 파티라고 하는 것보다 이름이 있는 게 인식 면에서도 좋으니까요.”
고영민의 말이 맞았다.
연예인들이 ‘파티’를 한다고 하면 뭔가 유흥을 즐긴다는 선입견 때문에 좋지 않게 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파티에 노민아와 유하영이 참석한다?
그럼 더더욱 문제가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파티에 괜찮은 이름을 붙인다면 사람들의 인식은 ‘유흥’에서 멀어질 터.
“실장님 말대로예요.”
고민하던 김지은이 말했다.
“그럼 추수 감사 파티는 어때요?”
“추수 감사 파티?”
임소영의 반문에 김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 미국에서는 11월 네 번째 목요일부터 4일간을 추수 감사 주간으로 하지만요.”
“추수 감사 주간이 뭡니까?”
강소의 물음에 김지은이 설명해 주었다.
“아주 오래전, 미국에 이주한 이들이 고생 끝에 첫 번째 수확한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고 파티를 연 것에서 유래된 전통이에요. 목요일부터 4일 동안 휴가를 가지면서 가족들이 모두 모여 파티를 열죠.”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따지면 추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군요.”
“솔직히 연예인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아자아자 할 수 있는 자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미국의 추수 감사 파티의 의미를 차용하면 어떨까 싶어요.”
“좋은 생각입니다.”
고영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영화제나 연예대상 같은 시상식이 있지만 그건 엄연히 따지면 스케줄이니까요.”
강소가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모이는데 추수 감사 파티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합니다.”
그 말에 김지은이 고개를 저었다.
“시대에 맞게 생각해야죠. 오빠. 추수 감사 파티가 처음 생겼을 땐 농경과 목축 사회였으니까 당연히 곡식 같은 한 해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것에 대해서 감사를 했겠죠. 하지만 요즘은 직업이 다양해졌잖아요.”
“그건 그렇군요.”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직장인들에게는 일 년의 성과가 일종의 추수일 수도 있으니까.
연예인들에게는 1년 동안의 활동이 추수였고.
그러니 1년 동안 무탈하게 활동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파티를 연다면, 의미는 충분히 맞을 것 같았다.
“그럼 날짜와 파티 이름은 이렇게 진행할까요?”
고영민의 말에 임소영이 살짝 손을 들었다.
“저, 거기에 자선이라는 것을 넣으면 어떨까요?”
“자선이라면?”
“이왕 모이는 것이니까 언론에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고영민이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 편하게 와서 놀자는 그런 의미가 퇴색될 것 같습니다만?”
“그, 그런가요?”
“내놓는 금액의 차이가 크면 아무래도 뒷말이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그 말에 임소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의견을 다시 거둘 때,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강소가 의견을 제시했다.
“작은 물건을 하나 마련하고, 기부의 의미로 그 물건을 사게 하는 겁니다.”
“좋은 방법이네요.”
“그럼 누가 얼마 냈는지에 대한 말은 쏙 들어갈 테니까요.”
“그런데 물건은 어떤 거로 하죠?”
그 질문에 답한 사람은 김지은이다.
“당연히 초코빵 인형이죠.”
그 말에 고영민은 헛기침했다.
“험, 험험, 그건 곤란합니다. 초코빵 인형은 하영 양의 굿즈니까요.”
“그건…… 그러네요.”
“강제로 굿즈를 판매한다고 오해받고, 욕먹을 겁니다.”
“…….”
김지은은 멋쩍게 웃었다. 할 말이 없었으니까.
그러자 임소영이 또 다른 의견을 냈다.
“그럼 쌀 모양의 인형은 어떨까요? 그리고 모인 기부금으로 쌀을 사서 불우이웃을 돕는 거죠.”
“좋은데요?”
그렇게 유하영이 주최하는 ‘파티’의 큰 틀이 잡혔다.
훗날.
무사히 한 해를 보낸 셀럽들만 초대되고, 초대받은 것 자체가 명예가 되는 ‘추수 감사 자선 파티’의 시작이었다.
* * *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온 밀키웨이 걸즈의 리더는 고개를 갸웃했다.
동생들이 모여서 카드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왔어.”
“아, 언니 왔어?”
“다들 뭐 하고 있어?”
“초대장 보고 있어.”
“초대장?”
그녀는 동생들에게 다가갔고, 그녀들의 손에 들린 초대장이라는 것을 보았다.
[다음에 만나서 재밌게 놀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카드를 보내요. 약속 기억하시죠?]그 문구에 밀키웨이 걸즈의 리더는 빙긋 웃었다.
그 약속이라면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노민아와 유하영은 그 약속을 지킨다면서 그녀들을 초대했다.
[그래서 여러분을 추수 감사 자선 파티에 초대합니다]그리고 카드에는 장소와 시간 등이 적혀 있었다.
“와! 추수 감사 파티라니!”
“재밌겠다!”
그녀들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때 리더가 물었다.
“그런데 이건 언제 받은 거야?”
“자고 일어났는데, 탁자 위에 있었어.”
“그럼 누가 놓고 간 거야?”
“매니저 언니가 놓고 간 거 아닐까?”
그녀들에게 오는 우편물은 모두 회사로 갔고, 매니저가 따로 가져다주었다.
사생들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그 편지를 매니저가 놓고 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이날 스케줄 있을까?”
“한 번 물어봐야지.”
“스케줄 조정이 잘 되었으면 좋겠네.”
* * *
도깨비 장단은 내년 봄에 낼 새 앨범을 준비하기 위해 연습실에 있었다.
이번 앨범은 총 3곡이 담긴 싱글앨범이었다.
“아, 힘들다.”
“와! 이번 안무 엄청 빡세네. 이 안무 대체 누가 짠 거야?”
“너잖아.”
“아, 나네. 저기, 누가 과거의 나 좀 때려 줄 수 있어?”
“과거의 너뿐만 아니라 현재의 너도 때려 줄 수 있는데?”
“으아아악!”
도깨비 장단의 네 멤버들은 연습실을 뒹굴며 연습 중이었다.
“그만 쉬고, 다시 연습하자.”
“네. 형.”
그때 막내인 해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영훈 형. 형 손에 그거 뭐예요?”
“내 손에 뭐가…… 흐익!”
영훈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손에 자신은 모르는 정사각형의 분홍색 봉투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난 수건을 잡은 건데 왜 이게……?”
봉투 겉면에는 [하영이가 도깨비 장단 오빠들에게] 라고 적혀 있었다.
훗날, 화제가 될 신출귀몰한 초대장 전달 방법이었다.
* * *
탓-! 타앗-!
강소는 초대장을 배달 중이었다.
유하영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놀고 싶다고 했고, 그래서 최대한 많은 연예인에게 초대장을 배달 중이었다.
물론,
고영민과 천해진의 도움을 받아서 인성이 더러운 이들은 처음부터 제외했다.
강소가 초대장 배달에 나선 건, 연예인들은 스케줄 때문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기 때문이다.
“밀키웨이 걸즈는 배달했고, 도깨비 장단도 배달했고 다음은 어디지?”
그렇게 중얼거릴 때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 잘 지내시죠? 형님?
강소가 아우 삼은, 이신이다.
“나야 잘 지내지.”
– 지금 어디 계십니까?
“나는 지금 초대장을 돌리고 있다.”
– 네? 초대장이요?
강소는 이신도 초코빵이자, 셀럽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말인데, 초대장이 몇 장 남는데 너도 올래?”
* * *
“후우…….”
이건호는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대한민국에서 이건호를 모르면 고립인이라는 말이 있다.
극악한 고음으로 유명한 노래를 힘들이지 않게 부르는 그는 명실상부한 현 대한민국 보컬 중 황제라 할 수 있었다.
가을비보다 햇살이 좋아를 비롯하여 그가 불러 온 수많은 노래는 모두 그가 만든 곡이다.
그는 그냥 가수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니까.
그런 그가 지금 머리를 쥐어짜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다음 곡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나도 이제 다 된 건가?”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뒤편의 소파에 털썩 앉아 몸을 뒤로 젖혔다.
“하…… 정말 미치겠다.”
사실, 악상이 떠오르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괜찮다 싶어서 작업했지만, 막상 작업물을 보면 이전의 자신보다 못한 것 같았다.
그랬다.
이번에 내놓을 곡은 이전의 자신보다 뛰어나야 했다.
만약 이번에 내놓은 곡이 이전보다 못한 성적을 거둔다면 주변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는 그게 두려웠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형, 저예요.”
“들어와.”
그의 대답에 문이 열리고 매니저가 들어왔다.
“저녁 사 왔어요. 치즈버거 먹고 싶다면서요?”
“아, 고마워.”
매니저는 텅 빈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물었다.
“아직…… 이에요?”
“응.”
그때 이건호가 매니저에게 물었다.
“연우야. 나 이대로 은퇴할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놀란 매니저가 물었다. 지금까지 장난으로라도 은퇴라는 말은 입에 담은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 뭘 어떻게 해도 좋은 노래가 나오지 않으니까.”
“…….”
“나도 이제 다 된 건가? 창작은 창작자의 생명을 갉아먹는다는데…… 진짜였나 보다.”
매니저 최현우가 상심한 그를 위로했다.
“그냥, 단순히 슬럼프예요. 곧 이겨 내고 좋은 곡을 쓰실 수 있을 거예요.”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슬럼프?
지금의 그의 상태는 그런 단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상태는 두려움에 더 가까웠다.
그러니까, 추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
.
.
그날 밤.
이건호는 꿈을 꾸었다.
“헉, 헉, 헉, 헉.”
그는 마수에게 쫓기고 있었다. 언젠가 TV에서 본 듯한 마수였다.
검은색 피부의 마수는 빠른 속도로 그를 쫓아왔고, 이건호는 필사적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자신의 다리는 느렸고, 어느새 곧 따라잡힐 것 같았다.
그때 그의 앞에 낭떠러지가 나타났고 그는 그대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이건호는 정신을 차렸다.
꿈이었다.
“아, 또 이런 꿈을…….”
사실 쫓기다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꿈을 꾼 건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만큼, 그가 느끼는 중압감이 크다는 뜻이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축축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차가운 냉수를 들이켰다.
그러자 좀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후우…….”
그때,
식탁 위에 정사각형의 편지봉투가 보였다. 봉투 겉면에는 [하영이가 이건호 삼촌에게] 라고 적혀 있었다.
“하영이?”
그는 편지를 집어 들었다.
“연우가 놓고 갔나?”
그는 편지 봉투를 열었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분홍색 초대장을 꺼냈다.
[우리 신나게 놀아요. 다른 언니 오빠들도 많이 와요. 그러니까 꼭 참석해 주세요]밀키웨이 걸즈와는 다른 버전의 초대장이다.
그는 이번에 환상의 섬에 가지 않았다.
이번에 노민아와 유하영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하고자 신청했고, 제비뽑기에서 행운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유하영이 이런 초대장을 보내게 된 자초지종을 잘 몰랐다.
그래도, 이런 기분전환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혹시 모르지, 뭔가 영감을 얻을지도…….’
그는 작은 와인 셀러에서 와인을 꺼냈다.
자야 했지만, 이대로는 잠이 오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문득, 손을 멈추었다.
“이러다가 정말 알콜 중독이 되겠어.”
알콜 중독 때문에 커리어를 망친 이들이 떠올랐기에 와인을 다시 와인 셀러에 넣고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누웠지만 역시 잠은 오지 않았다.
그때 문득 유하영 생각이 났다.
‘하영이의 오르골 스튜디오’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본 순간 초코빵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영이 노래를 들어 볼까?”
그는 핸드폰으로 블루투스를 연결했다. 그리고 재생목록에 담겨 있는 유하영의 노래를 재생했다.
포근하고 따스한 유하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이건호는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59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