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20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20화
* * *
“그런다고 뚫어지겠어요?”
“네?”
“너무 뚫어져라 쳐다만 보고 계시길래요.”
“아, 그랬나요.”
“혹시 쪽파나 맛살을 못 드시는 건 아니시죠?”
산적 꼬치의 또 다른 말은 삼색 꼬치였다. 이름처럼 세 가지 색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삼색 꼬치다.
그리고 이 삼색 꼬치는 집집마다 만드는 레시피가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게 있었으니 그게 바로 쪽파와 맛살이었다.
다만 산적 꼬치의 쪽파를 못 먹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특히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꼬치의 쪽파만 똑 빼서 먹는 경우가 허다했고.
연준은 산적 꼬치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는 철준이 혹시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마왕이라 불리는 김철준이라 해도 기피하는 음식이 없는 건 아닐테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오랜만이네요.”
“예?”
“추석에 도란도란 얘기하며 추석 음식 해 먹는 거요.”
어딘가 씁쓸한 김철준의 모습에 연준은 언젠가 TV에서 본 김철준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연준 자신이 격변 때 아내를 잃었듯 김철준은 부모를 잃었다.
김철준은 가장 힘든 때가 언제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명절이라는 대답을 내놨었다.
괜히 어색해진 연준이 헛기침을 터뜨리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형은 식혜 사러 간다더니 식혜를 만들어서 오나.”
그의 독백 이후 반 박자 늦게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 만들어서 왔다.”
“양반은 못 되겠네. 무슨 식혜 하나 사러 가는데 삽십 분이나 걸렸어?”
“가는 곳마다 다 떨어졌더라고. 이것도 겨우 사 왔다.”
“큰아빠 칸쵸, 칸쵸는요?”
서준이 씩 웃으며 품에서 과자 하나를 꺼냈다. 서우가 신신당부하던 과자였다.
“자.”
“와아!”
“그리고 이건 혜진이 거.”
“저두요?”
“혜진이는 목캔디 좋아하지? 자.”
바쁜 고경수를 대신해 주로 혜진이 할머니가 혜진이를 키우다 보니 혜진이의 입맛은 꽤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기대도 안 한 목캔디를 받게 된 혜진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주변 사람도 덩달아 미소 짓게 만드는 웃음이었다.
그 모습들에 철준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공허해진 마음을 채워 주는 따스함이었다.
* * *
박연은 오랜만에 두식을 데리고 영화관에 가는 길이었다.
서준이 곽경철 명인의 전통 소주를 뇌물로 받았다면 박연은 영화 티켓을 뇌물로 받은 것이었다.
물론 뇌물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고 순수한 추석 선물이라 생각하는 박연이지만…….
영화관을 가던 중.
두식이 문득 걸음을 멈춰 섰다.
“갑자기 왜 멈춰?”
“무슨 속셈이지?”
“속셈?”
“날 바보로 아는 것 같군.”
“오크들 바보 맞잖아?”
“난 아냐! 왜 아닌지 말해 줄까?”
“그러든지.”
“여긴 영화관 가는 길이 아니다. 저쪽 길로 가야 영화관이 나오지. 자, 영화 보러 가자던 네놈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긁적긁적.
“다른 영화관에 가려는 의미 아닐까.”
“흥, 역시 위선…… 응? 뭐라고?”
“다른 영화관에 가려는 의미일 거라고.”
“다른 영화관이라면 CGB?”
“그래.”
“기가박스는 어쩌고?”
“앞으로는 거기로 안 다닐 거다.”
“영화관은 거기 아니면 안 갔잖아?”
“앞으로는 안 다닐 거라고!”
“그래? 왜?”
“그야…….”
가야 할 이유가 사라졌으니까.
말을 삼킨 박연이 말했다.
“그것보다, 여태 날 어떻게 봤길래 그런 불순한 생각을 다 한단 말이냐!”
민망해진 두식이 헛기침을 터뜨렸다.
“가던 길이나 가지.”
“사과부터 해라.”
“그래, 사과하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재촉하는 박연에 두식이 나직이 읊조렸다.
“……는 내가 왜 사과를 해?”
* * *
“이거 괜찮군. 이거 보면 되겠다.”
“블랙 프리스트?”
포스터를 세심히 살피던 두식이 고개를 저었다.
“줄거리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
“난 마음에 든다. 사제들이 악(惡)을 퇴치한다는 스토리…… 이 얼마나 가슴이 웅장해지는 스토리더냐. 꼭 소싯적의 나를 보는 것 같군.”
“서준이 형한테 퇴치당한 주제에.”
“그게 여기서 왜 나와!”
“소싯적의 너를 상기하고 싶으면 이거 보는 게 딱이겠네.”
두식이 한 포스터를 가리켰다.
“화랑 관창?”
별생각 없이 영화 제목을 읽고 그 밑의 헤드 카피마저 눈에 담던 박연의 눈에 쌍심지가 돋아났다.
“어때, 딱이지? 서준이 형이 몇 번이나 살려 주셨더라…… 기억이 안 나네.”
“…….”
“그 일화는 마계에도 소문 파다하게 났는데. 그래서 마족들이 다른 건 몰라도 벨테브레이라는 이름은 기억하잖아. 한때는 벨테브레이라는 말이 자비라는 뜻으로도 쓰였을 정도니까.”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반박할 수가 없는 박연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화제를 돌릴 거리를 찾는 것이었다.
운명적으로 박연의 레이더에 화제 전환을 시킬 수 있을 고마운 존재가 잡혔다.
“그만하고, 황 사장님한테 인사나 드리러 가자.”
“황 사장님?”
두식에게 황태수는 고마운 존재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게 해 주는 사람이었으니까.
박연이 저 앞에 티켓 발권기 앞을 서성이는 익숙한 실루엣을 가리켰다.
과연 황태수가 무인 발권기에서 티켓을 뽑고 있었다. 그 모습에 두 사람은 사이좋게 황태수에게 다가갔다.
한편.
“여보, 뭐 볼까?”
“당신은 어떤데?”
“난 블랙 프리스트 괜찮은 것 같은데?”
“괜찮네. 그거 나도 한번 보고 싶었어. 그걸로 끊자.”
황태수는 티켓을 뽑았다. 그리고 아내에게 돌아가려는 그때.
“아이고, 황 사장! 반갑구먼! 반가워요!”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아니, 이게…… 아니, 그 뭐냐…… 그게, 왜?”
황태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솔직히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부러 여기 왔는데…….’
황태수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은 기가박스였다. 그런데도 CGB를 찾은 건 변수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박연은 CGB는 절대 가지 않았다. 꿀이라도 발라 놨는지 늘 기가박스만 갔었던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기가박스에 갔다가 박연을 마주칠 수 있으니 일부러 이 CGB에 왔다.
그리고 변수는 완벽히 제거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괴물2가 왜 여기있냐고!’
하필 CGB에!
그것도 하필 이 시간대에!
“황 사장님?”
“아? 예. 박 선생님.”
“허허. 사장님도 놀라셨나 보구려.”
시펄, 존나게 놀랐지.
“사실 나도 놀랐소. 황 사장님께서 이 CGB에, 그것도 이 시간대에 계실 줄 짐작이나 했겠소? 이리 보니 더 반갑구려.”
“에…… 저도 반갑습니다. 근데 기가박스는 어쩌고 CGB에 다 오셨습니까?”
“그야…… 이제 갈 이유가 없으니까.”
씁쓸히 웃는 박연.
“누구셔?”
“어?”
“아는 분들 같은데 나도 인사드려야 되지 않나 싶어서.”
“아…… 그게, 음. 그게 말이지.”
황태수가 횡설수설하는 사이 두식이 꾸벅 인사를 했다.
“사장님께 신세 지고 있는 박두식이라고 합니다!”
태수의 아내 박예희가 환히 웃으며 박연에게 시선을 옮겼다.
“황 사장님의 장미 되시오?”
“장미요?”
“아, 배우자란 뜻이오.”
박예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박연이 손 키스와 함께 교양 있는 인사를 건넸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오. 박연이라 하오.”
“호호호. 말투가 되게 클래식하시네요.”
“그런 말을 종종 듣소. 그런데 황 사장님께서 이런 아리따운 분과 해로를 약속하셨을 줄은 몰랐구려.”
“호호, 말씀도 예쁘게 잘하신다.”
눈치를 살피던 황태수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질투라기보다는…… 보호였다.
“근데 박 선생님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허허허. 황 사장님께서 관람권을 주시지 않으셨소? 그 덕에 이리 영화를 보러 온 거라오. 다시 한번 감사드리오.”
황태수는 뒤늦게 후회가 막심했다.
시발…… 뇌물 주는 게 아니었는데!
줘도 다른 걸로 줬어야 되는 건데!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뭘 보실지는 정하셨습니까?”
“아, 사실 아직 정하지 못했소.”
역시!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사는구나!
반색한 황태수가 말했다.
“그럼 저건 어떠십니까?”
“달빛이 그리운 시간?”
“얼마 전에 개봉한 로맨스 영화입니다. 박 선생님 로맨스 영화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하하하.”
“제목이 끌리긴 하는군. 줄거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소?”
“아, 현대에 사는 소년이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는데 그 휴대전화가 수백 년 전 조선 시대로 가게 됐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그 휴대전화를 양반집 규수가 줍게 되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서로 통화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죠.”
“호오…….”
탄성을 내지르는 박연.
줄거리만 들으면 그의 취향을 저격하는 영화였다.
“어떠냐, 오크?”
“나쁘진 않겠군.”
“고맙소, 황 사장님. 내 이걸로 봐야겠소이다.”
“하하하하. 별말씀을요.”
그때였다.
“저거 별로 재미없는데.”
“……!”
“음?”
“스토리만 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저거 별로 재미없어요.”
“여, 여보.”
“왜? 나 저거 미연 언니랑 며칠 전에 보고 왔잖아. 진짜 재미없더라. 졸고 왔어, 졸고.”
황태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괴물1, 2와 있으면 언제든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고는 했다. 이따위 변수…… 이겨 내면 그만이다.
“당신 액션 영화 좋아하잖아. 당연히 당신 취향에는 안 맞았겠지.”
“뭐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휘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데 왠지 손이 허전했다.
어라라?
방금 뽑은 티켓이 없었다. 그리고 사라진 티켓은…….
“옆집으로 이사 온 스파이? 이거 재밌겠는데?”
두식의 손에 들려 있었다.
“황 사장님, 이건 무슨 내용인가요?”
“…….”
“황 사장님?”
“이이가 오늘 왜 이래. 그거 재밌어요.”
여보, 제발…….
“요새 화제작인데 줄거리는 제목 옆집에 한 선남선녀 부부가 이사를 오게 되는데 처음에는 주인공도 좋은 이웃이 이사 왔다면서 좋아하다가 우연찮게 두 부부의 비밀을 알게 되는 걸로 영화가 시작돼요.”
제발 거기까지!
“비밀이라면?”
“제목처럼 두 부부가 스파이였던 거죠.”
그만, 그만, 그만!
“호오, 이거 재밌겠는데? 어떠냐?”
“코미디 영화인가? 나쁘진 않은 것 같다.”
“호호호호.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럼 넷이서 같이 볼까요?”
넋이 나가 있던 황태수가 버럭 소리쳤다.
“그건 안 돼!”
“응?”
“황 사장님?”
“왜 그러시오? 귀청 떨어질 뻔했소.”
“아…… 그, 그게. 아니, 두 분은 로맨스 영화 좋아하시잖습니까. 게다가 이 영화…….”
“저 영화야 내일 또 와서 보면 되지 않겠소? 황 사장님이 관람권을 몇 장이나 주셨으니까.”
“…….”
황태수는 순간 명언 하나가 떠올랐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죽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