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33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33화
* * *
“우와…… 안은 이렇게 생겼구나.”
“모던하고 분위기 있는데요?”
“그러게요. 술이 아주 술술 들어가겠어.”
“그래도 오늘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그럼요.”
가게를 두리번거리며 들어오는 뜻밖의 손님들이 있었다.
“원장님 아니세요?”
“아, 서준 씨.”
다름 아닌 나래 어린이집의 원장과 교사들이었다.
“다들 여긴 어떻게?”
원장 대신 원피스 차림의 교사가 이라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긴요.”
의미심장하게 웃는 교사에 원장이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회식하러 온 거예요.”
“회식이요?”
“네. 저희도 한 달에 한 번씩은 회식하거든요. 오늘은 어쩌다 보니 여기로 오게 됐네요.”
“아.”
“근데…… 혹시 서우도 가게에 있나요?”
“아뇨. 오늘은 혜진이 집에서 놀기로 해서요. 혜진이 집에 있을 겁니다.”
원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서우 있으면 다른 곳으로 가야 되나 싶었는데…….”
“서우가 가게에 있는 게 무슨 문제…… 아.”
서준은 금방 원장의 의도를 파악했다. 사실 의도라기보다는 동심을 지켜 주기 위한 배려였다.
아이들에게 어린이집 교사는 부모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존재였다.
그런 교사들이 몸에 안 좋다고 배운 술을 먹고 술에 취해 풀어진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에게는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원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희가 여기서 회식하는 게 서준 씨랑 서우 아버님한테 부담이 될까요?”
아무래도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는 아이라는 매개로 이어졌기에 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로서는 괜히 교사에게 실수라도 하면 내 아이에게 신경을 덜 써 줄 것 같은 생각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원장의 질문도 이와 비슷했다. 그들이 여기서 회식을 한다면 서준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물론 서준은 개의치 않았다.
“부담은요.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근데…… 서우 아버님은 어디 가셨나요? 안 보이시네요?”
“마침 저기 오네요.”
서준이 뒤를 가리키자 교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엔 벙 찐 표정의 연준이 두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 * *
술 한잔해요에서 숙식을 대가로 박연이 하는 일은 화장실 청소와 설거지였다.
박연은 서준이 이외의 일을 시키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마치 용사인 자신이 마왕 따위에게 부림을 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는 부림(?)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시종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십만 원이면…… 흐헤헤.’
처음 박연의 한 달 용돈은 60만 원이었다. 그러던 게 지금은 80만 원까지 올라갔다.
박연은 이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가끔 콜라를 사 먹을 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퐁퐁을 사거나 고무장갑을 사는 일에 돈을 썼다.
돌아가거든 대륙의 식모들을 고통 속에서 해방시키겠다는 일념하에 말이다.
그런데 무려 한 달 용돈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십만 원을 받았다.
무려 십만 원을 말이다!
십만 원이면 고무장갑이 열 개였다. 그리고 고무장갑이 열 개면 열 명의 식모들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십만 원을 대가로 하는 일도 엄청 쉬운 편이었다. 연준이 하던 서빙을 대신할 뿐이니까.
단지 걸리는 게 하나 있다면…….
“안주 나왔소.”
“……네.”
자꾸 이라희와 마주치게 된다는 것.
물론 이라희에 대한 마음은 식다 못해 굳어 버린 지 오래였다. 다만 마주하기가 껄끄러웠다.
‘그래도 십만 원이면 뭐.’
이따위 껄끄러움.
백 번이고 참아 낼 수 있다.
암, 그렇고말고.
박연이 새삼 다짐하고 있을 때.
연준은 주방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정신 사납다.”
“어쩌자고 받았어?”
“뭘?”
“원장님이랑 선생님들!”
“손님으로 왔는데 그럼 내쫓아?”
“내쫓는 건 아니어도…… 구도가 좀 이상하잖아.”
“이상할 게 뭐가 있냐? 이상하다고 생각하니까 이상한 거지. 선생님들은 사람 아냐? 술 한잔할 수도 있지 뭐.”
“그게 아니라…….”
연준은 답답하단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 오늘은 왜 또 손님도 없어. 하아…….”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오늘은 손님도 딱 한 팀밖에 없었다.
바로 선생님들.
손님이라도 많으면 뻘쭘하지라도 않겠건만…….
서준은 한숨을 내쉬는 연준을 흘겼다. 사실 손님이 없는 건 그의 안배 때문이었다.
그는 일부러 가게에 사기(邪氣)를 둘렀다.
인간은 사기에 취약하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이를 꺼리게 된다. 자연히 가게를 찾으려다가도 발길을 돌리게 되는 거고.
물론 굳이 가게에 사기를 두른 이유는 간단했다.
서준은 냉수를 들이켜고 있는 연준을 바라봤다.
“뭐가 문제야?”
“어?”
“너 그런 말 들어 봤지? 백 살 먹은 할머니한테 여든 살 된 아들은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애 같다는 말.”
“부모 마음이 다 그렇지 뭐.”
“너야 형 사라진 10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형한테는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애나 다름없어.”
“뭐…… 옛날에는 형이 거의 키우다시피 했으니까.”
“그래서 묻는 거야. 뭐가 문제냐?”
“문제라니?”
“시치미 떼지 말고.”
“…….”
“왜 자꾸 답답하게 굴어? 삼자인 내가 봐도 서로 호감 있는 거 뻔히 다 보이는구먼. 오죽하면 눈치 없는 두식이도 눈치챘더라.”
“두식 씨가?”
“어, 왜 저 두 사람은 교미…….”
“……?”
“아니, 안 사귀냐고 물어보더라. 왜 자꾸 어물쩍거려?”
“라희 씨는 젊잖아.”
“너도 젊어.”
“하지만 애가 있지.”
“그게 왜?”
“왜라니…….”
“누가 결혼하랬냐? 연애라도 하면서 사람 구실하고 살라는 거지.”
서준은 진심으로 연준이 행복하길 바랐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며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낄 때는 사랑을 할 때다.
인생은 사랑 빼고 논할 수가 없다. 오히려 사랑에서 사랑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
연인과 연인의 사랑.
자식과 부모의 사랑.
태어나서 부모에게 사랑받고 자라고 이성에게 사랑받으며 늙어 가며 자식에게 사랑받는 것이다.
연준은 주방 너머를 힐끔거렸다. 마침 이라희와 눈이 마주쳤다. 연준은 얼른 시선을 피했다.
그런 연준과 이라희를 바라보며 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둘 다 마음이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누구 하나 선뜻 다가서질 않는다.
이라희는 천성이 소극적이라 그런 것 같고 연준은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 같았다.
‘자존감이라…….’
아무래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 * *
“라희 씨는 어때?”
“…….”
“라희 씨!”
“에? 아…… 네네.”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어. 혹시…….”
원장이 피식 웃었다.
“아, 아니에요. 그런 거…….”
“내가 뭐라고 했는데 아니래?”
“…….”
“삼겹살 맛 어떠냐고 물어봤잖아.”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맛있어요.”
“희한하게 옷에 냄새도 안 배는 것 같아. 미리 구워 주셔서 그런가?”
“그런가 봐요.”
“안 그래도 여기 SNS에 맛집으로 소문 자자하길래 한번 와 보고 싶었는데 라희 씨 덕분에 왔다. 고마워.”
“저, 저 때문이라뇨.”
원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이라희는 그녀보다 한참 어렸다. 원장이 마흔다섯이니 엄마뻘은 아니어도 이모뻘은 되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지 뭘 해도 귀여웠다. 그리고 다른 교사들보다 더 신경이 쓰였다.
“받아.”
원장이 이라희의 잔에 소주를 채워 주었다.
그리고 본인의 잔에도 따랐다.
“짠?”
잔을 들어 올린 원장에 이라희도 따라서 잔을 부딪혔다.
단숨에 술을 들이켠 원장은 삼겹살을 한 점 집고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음에 걸려서 그러는 거지?”
“네?”
“서우 아버님 말이야.”
“알고…… 계셨어요?”
“당연하지. 다른 선생님들도 다 아는 걸 내가 모르겠어?”
그간 못 본 척해 준 것이었다. 이라희가 목례했다.
“죄송하고 감사해요.”
“죄송하고 감사할 게 뭐가 있어.”
“아무래도 서우 아버님이 학부모시다 보니까…….”
원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래 어린이집은 다른 어린이집과 다르게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드센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치맛바람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일부 극성인 학부모들은 교사가 남편과 찍은 카톡 프사마저 지적할 정도였다.
“그간 마음고생 심했겠네.”
원장은 글라스에 소주와 맥주를 1:1 비율로 섞었다. 그러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라희 씨가 올해로 스물일곱인가?”
“네.”
“서우 아버님이 스물 아홉…… 둘 다 좋을 때다. 아! 방금 너무 꼰대 같았어?”
“아니요.”
“다행이다.”
원장은 다시금 소맥을 말았다. 그리고 또 단숨에 들이켰다.
“시간이란 게 참 빨라.”
“…….”
“라희 씨가 우리 어린이집 들어온 지도 벌써 4년 됐네. 그치?”
“그러네요. 벌써 4년이나 됐네요.”
“그때 내가 그랬을 거야. 라희 씨는 왜 어린이집 교사가 되고 싶어요? 그때 라희 씨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아뇨. 그땐 너무 긴장해서 사실 잘 기억 안 나요. 제가 뭐라고 했었어요?”
“애들이랑 같이 동심 간직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어, 그때 라희 씨가.”
“그랬어요?”
“응. 지금은 어때?”
“네?”
“동심 간직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
뜻밖의 질문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이라희였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은데. 애들은 남들 시선 상관 않잖아.”
“시선…… 이요?”
“살짝살짝씩 눈치 정도는 보지만 하고 싶은 거, 하기 싫은 거 다 티를 내잖아. 남 시선 상관없이. 근데 지금 라희 씨는 너무 남들 시선 신경 쓰는 것 같네.”
“…….”
이라희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면 원장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동심을 유지하고 있다 생각했건만 그건 갇힌 생각에 불과했다.
“학부형들 시선…… 수군거림…… 애들처럼 그냥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우리 어린이집 이미지? 그런 것도 신경 쓰지 마. 그런 건 동심 잃은 어른들이나 하는 걱정이잖아.”
* * *
“이제 줘라.”
박연의 퉁명스러운 표정과 말투에 서준은 괜히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달라니? 뭘?”
“그새 까마귀 고기라도 먹은 건가, 십만 원 말이다.”
“십만 원을 왜 나한테 찾는지 모르겠네. 나한테 십만 원 맡겨 놨나?”
순간 박연의 동공이 흔들렸다.
설마 당한 건가?
이런 제길……!
“서빙하면 준다고 했잖아!”
“그랬던가. 기억이 안 나네.”
“얼른 줘라!”
더 심술을 부렸다간 박연한테 처치당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장난 좀 쳤다.”
서준이 오만 원권 두장을 건넸다. 그러자 박연이 언제 길길이 날뛰었냐는 듯 반색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힘이었다.
그때 풍경 소리가 울리며 연준이 들어왔다.
“잘 바래다드리고 왔냐?”
이라희와 교사들은 정확히 아홉 시까지 술자리를 가졌다.
술자리치고는 일찍 파한 감이 있었지만 아직 12구역은 안심할 곳이 못 된다.
예전에 음주 후 대리운전을 불렀다면 요새는 보안업체 용역을 부른다. 일종의 안심귀가 서비스인 것이다.
다른 교사들은 원장이 불러 준 용역과 함께 각자 집으로 흩어졌고 이라희만 연준이 데려다줬다.
“이연준!”
“…….”
“야!”
얼이 나가 있던 연준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어? 어어. 불렀어?”
“선생님 잘 바래다드리고 왔냐니까 뭔 생각을 그리하고 있어.”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오물거리던 연준이 미간을 긁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집에 들어가서 연락하겠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