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59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59화
* * *
쿨럭!
벽에 기대어 있던 남자가 피를 토했다.
“카일(Kyle)…….”
헨리가 그런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남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몇 명?”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헨리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여든아홉 명.”
“……전부 산 거지?”
“응. 다 살았어.”
“다행이네.”
쿨럭!
카일이 한 움큼의 피를 토해 냈다.
“카일!”
“호들…… 갑 떨지 마. 나 아직 안 죽었다.”
카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교실 벽 곳곳에는 혈흔이 낭자했다. 그 주위로는 상당한 수의 좀비들이 머리가 잘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머리가 잘린 좀비들 틈에는 그가 아는 얼굴도 있었다.
“대니얼(Daniel)…… 저 자식, 자기는 절대 좀비한테 안 물린다더니 결국은 처물렸나 보네.”
카일이 말한 대니얼의 그로테스크한 머리를 흘긴 헨리는 카일의 어깨에 난 이빨 자국을 바라봤다.
그에 카일이 또 한 번 피를 토해 내며 말했다.
“얼마 남았을까?”
헨리는 답하지 못했다.
“헨리.”
“…….”
“얼마나 남았을 것…… 같냐니까.”
헨리는 점점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카일의 얼굴을 살폈다. 푸른색의 반점이 나타나고 있었다.
보통 좀비에 물린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리고 이 경우 대부분은…….
“10분에서 15분.”
“아직 존나 오래 남았구나. 큭큭.”
낮게 웃은 카일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담배 있냐.”
헨리는 비흡연자였다. 하지만 죽은 동료인 대니얼은 아니었다. 헨리는 대니얼의 사체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그리고 불을 붙여 카일에게 건네줬다. 담배를 몇 모금 하던 카일이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카일?
“엄마.”
-카일, 너 괜찮니? 지금 TV에서…….
“뭐 여쭤볼 게 있어요.”
-응?
“마당에 잔디는 다 깎으셨어요?”
-앞집에 사는 주근깨 소년 있잖니?
“에이든(Aiden)이요?”
-응. 에이든한테 맡겼는데 이 녀석 너무 건성으로 깎았지 뭐니. 나중에 다시 한번 깎아야 될 것 같아.
카일은 낮게 웃었다.
건성으로 잔디를 깎는 주근깨 소년 에이든의 모습이 떠올랐고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에이든의 손에 용돈을 쥐여 주는 어머니의 모습도 절로 상상이 됐다.
-근데 너 출동한다고 하지 않았어?
“했어요, 출동.”
-몸은 괜찮지?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사람들도 많이 구했어요. 특히 아이들이요. 헨리 몇 명이라고 했지?”
“……여든아홉 명.”
“들었죠? 여든아홉 명이나 구했어요.”
-카일…… 너 괜찮은 거 맞지?
“엄마, 사랑해요. 아빠한테도 대신 전해 주세요.”
-카일! 카일!
카일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헨리가 물기를 가득 머금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헨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쪽팔리네.”
“…….”
“헨리.”
“말해.”
“있잖아. 네가 예전에 말했지? 좀비가 될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그때 내가 한 대답 기억나지?”
“카일, 난…….”
“부탁할게. 사람으로 죽고 싶어.”
헨리는 카일의 눈에서 굳은 의지를 읽었다. 그러는 사이, 카일의 얼굴에는 검푸른 핏줄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변이가 시작된 후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자신의 몸에 나타난 변화는 본인이 더 잘 아는 법.
카일은 검푸른 핏줄들을 무기력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헨리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주춤거리던 헨리가 바닥에 바닥에 내려 뒀던 대검을 꼬나들었다.
그 모습에 카일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헨리.”
“……응.”
“넌 나처럼 허무하게 뒈지지 마라. 뒈질 때 뒈지더라도 섹스는 존나 많이 하고 죽어. 내 몫까지.”
“그동안 수고했어. 카일.”
푸욱-!
심장이 꿰뚫린 카일의 몸이 이내 축 늘어졌다.
그와 함께 헨리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카일이 쥐고 있는 담배에서 나는 연기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 * *
9년 전, 첫 살인에 대한 기억을 곱씹던 헨리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탈칵!
불을 붙인 그는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후-!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다른 건 이 담배 연기 속에 태워 훌훌 털어 낼 수가 있겠는데 이놈의 살인에 대한 기억은 도저히 털어 낼 수가 없었다.
“클로이.”
“말씀하세요.”
“사람을 죽여 본 적 있나?”
“아뇨.”
“그럼 이 기회에 한번 죽여 볼래?”
“네?”
“날 죽여 보라고.”
“헨리, 그게 무슨…….”
“못하겠다면 나한테 살인을 종용하지 마.”
그 말을 끝으로 헨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주방에 있던 서준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어색하게 미소 지은 헨리는 사과의 의미로 살짝 목례를 한 뒤 가게를 빠져나갔다.
* * *
클로이의 보고에 닉은 침음했다.
“흐음.”
“어떡하죠? 이번에는 완고해 보이셨어요.”
닉은 동문서답을 했다.
“클로이, 그거 알고 있나?”
“어떤 거요?”
“카일이 헨리와 같은 학교 미식축구부에서 주전으로 뛰었다는 사실.”
“…….”
“둘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어. 그 부모님께 카일의 죽음을 알린 것도 헨리였지.”
닉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녀석,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클로이.”
“네.”
“이번에는 조금 기다려 보자고.”
“하지만 중국에서 선수를 치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닐 수도 있고. 그러니…… 되도록 아니길 빌자고.”
* * *
햇살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서준은 점심으로 간단하게 스팸 구이와 경종 배추김치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 즈음.
딸랑!
가게 문이 열리며 배가 잔뜩 나온 노신사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왔다.
“지금 영업하는 거 맞습니까?”
늙수그레한 목소리.
하지만 서준은 저게 노신사의 본모습이 아니란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노신사의 정체는 인피면구를 사용한 헨리.
노신사의 모습으로 둔갑한 헨리는 며칠째 이 시간만 되면 가게를 방문했다.
물론 서준은 늘 모른 척 헨리를 맞이했다.
“또 오셨네요.”
“이 술집 밥이 원체 맛이 있어야지요.”
“어제 박물관에 가 보신다고 하셨는데 관람은 잘하셨고요?”
“잘하고말고요. 유물들 모두 인상 깊더군요. 그리고 그 덕에 귀국 날짜도 미뤘지 뭡니까.”
“귀국 날짜를요?”
“원래 보름만 있다가 갈 생각이었는데 어제 박물관에 다녀온 뒤로 다른 것들도 보고 싶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한 달 정도 더 머물러 볼 참입니다. 이 술집 밥도 너무 맛있기도 하고.”
“오늘은 뭘로 하시겠어요?”
“그건 뭐죠?”
“스팸 구이랑 김치입니다.”
“스팸이랑 김치…… 한데 김치는 호텔 조식에서 본 거랑은 생긴 게 좀 다른데?”
“아, 이건 경종 배추라는 작물로 담근 김치예요.”
“호오…… 가정식인가요?”
“가정식이라면 가정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공깃밥에 스팸 조합은 많이들 해 먹는 조합이니까.”
“역시 우리 몽골하고는 다르군요.”
인피면구를 사용한 헨리는 굵은 목에 튀어나온 광대뼈가 인상적인, 사람들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전형적인 몽골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몽골에서는 어떻게들 드시나요?”
“나는 보통 양젖으로 만든 요거트로 때우는 편입니다. 시큼한 맛이 일품이지요.”
“어르신 말씀 기억해 뒀다가 몽골에 가게 된다면 도전해 봐야겠군요.”
헨리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럼 스팸 구이에 김치로 드릴까요?”
“그래 주시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해 오겠습니다.”
서준은 정말로 식사를 금방 내어 왔다.
그렇게 숟가락을 뜬 헨리는 이내 감탄을 터뜨렸다.
‘호오, 맛있는데?’
스팸과 김치.
피자와 피클만큼이나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 * *
산서성 서안시 임동구(臨潼區).
이곳은 진시황릉의 소재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 진시황릉은 일부 학자들에게만 허락된 비공개 유적지였다.
그러나 최근 중앙관리처가 진시황릉을 위기 구역으로 선포하면서 아예 출입이 불가능해졌다.
중앙관리처는 진시황릉에 현재까지 보고된 적 없는 이상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지만 사실은 달랐다.
진시황을 수호했을 병마(兵馬)들이 모인 1호 갱도 안.
카달란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병마용을 둘러봤다.
“하나같이 훌륭한 예술품들이군요. 얼굴에 생동감이 있어요.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의 생동감이요.”
“하하. 감사합니다. 확실히 이 병마용들은 우리 중국인들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와 민족들은 가지지 못한 것들이죠.”
“확실히 자부심을 가질만도 하군요. 궁금한 게 있는데…….”
“뭐든 물어보십시오.”
“중국에 비한다면 일본은 어떤가요?”
“하하하. 일본 말입니까? 우리 중국에 비한다면 일본은 볼품이 없어도 너무 없는 나라죠. 비교 자체가 민망할 정도랄까요?”
“그래서 류창 님은 중국이 세계의 질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계신 거군요.”
“맞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중국이 세계 질서의 한 축을 맡았으니 앞으로도 그랬으면 하는 것입니다.”
카달란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중국이나 일본이나 카달란에게는 별 차이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재밌는 건 요시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는 것이었다.
내심을 숨긴 채 병마용을 구경하던 카달란이 입을 열었다.
“초월자가 된 소감은 어떠십니까?”
“카달란 님 앞에서 초월자란 말을 입에 담자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만…… 드디어 우리 중국이 큰 힘을 가진 것 같아 기쁠 따름입니다.”
“적응은 하셨습니까?”
“카달란 님이 주신 그 성수 덕에 수월했습니다. 저기…… 카달란 님.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육망성의 수장인 에이스케나 요시로는 감히 자신에게 이리 당당히 질문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중화단의 류창은 다르다. 공손한 태도는 가지고 있되 궁금한 게 있으면 거침없이 물어본다.
카달란은 오히려 이게 더 마음에 들었다. 어떤 일이든 적극적일수록 실험의 성공률은 올라갈 테니까.
“그럼요.”
“이제 저를 포함해 지구상에는 여덟 명의 초월자가 존재하게 됐습니다. 혹시 이들 모두 카달란 님과 다른 분들을 추종하는 이들입니까?”
사실 초월자는 게임으로 치자면 일종의 버그였다.
천신들이 시스템을 기획했을 때 초월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인간들이 알아서 갖다 붙인 SSS등급 정도의 시스템까지는 기획했지만, 초월자의 수준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답을 하자면, 초월자들 모두가 천신들을 추종하는 건 아니라 말할 수 있었다.
다만.
천신들을 전능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인간 앞에서 굳이 그런 대답을 할 필요는 없겠지.
카달란은 말없이 생긋 웃어 보였다.
“그게 궁금하신가요?”
“예.”
“예전에도 그런 호기심을 가진 분이 계셨죠. 아마 들어 본 이름이실 겁니다.”
“제가 들어 본 이름이요?”
“이치로란 이름이었죠.”
“이치로라면…… 천황에게 수호자라는 타이틀을 받은 실종된 그자 말입니까?”
“네.”
“하지만 제가 알기로 이치로는 SSS등급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건 그렇지요.”
“대외적이요?
“이치로 님은 초월자가 되자마자 딴생각을 품으시더군요. 본인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요.”
카달란은 병마용의 목을 가볍게 쳐 냈다.
흙먼지와 함께 병마용의 목이 볼품없이 떨어졌다.
“그래 봤자 인간인데 한계를 망각한 거죠.”
카달란은 떨어진 병마용의 목을 주웠다. 목이 떨어졌음에도 병마용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카달란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충분한 대답이 된 것 같은데 이제 제가 질문해도 될까요?”
“아, 예!”
“실험 준비는 어떻게 됐습니까?”
“지시만 내려 주신다면 당장에라도 실험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성공하는 것만 보여 주시면 되겠군요.”
“걱정 마십시오.”
호언하는 류창에 카달란은 생긋 웃어 보였다.
‘육망성 더 빠르려나…… 중화단이 더 빠르려나.’
자못 궁금한 카달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