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232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232화
* * *
목적지에 도착한 이명섭은 심호흡을 했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지금은 국가 위기 사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려 다섯 개의 채널과 게이트에서 이상 현상이 감지됐으니 말이다.
심지어 채널 하나는 이미 폭주했다.
나머지 넷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과 같은 상태.
그런 급박한 때에 현장에서 관리국 요원들을 진두지휘해도 모자랄 자신이 여기 있어도 되는 건가 싶었다.
고민은 길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드르르르르-
쉬지 않고 진동하는 핸드폰.
이미 부재중 전화가 몇십 통이나 와 있다.
그 모든 걸 포기하고 오로지 김철준의 진술과 자신의 직감만 믿고 이곳에 왔다.
썩은 동아줄일지 금 동아줄이 될지 이제는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은 이명섭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시민들이 보내온 제보 영상입니다. 영상에 나온 요르문간드는 똬리를 튼 채 아직까지 별다른 위협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으나…….
딸랑!
풍경 소리에 TV를 보고 있던 박연이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국장님 아니시오.”
“오랜만에 뵙지요?”
박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박연은 이명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으로서 좋아하지 않다기보다는 종업원으로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가게에 오면 늘 고추장 삼겹살만 시켰다.
다른 것도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고추장 삼겹살만 시킨단 말인가?
‘그게 얼마나 접시에 기름이 많이 묻는데…….’
기름기가 많이 남으면 설거지하기가 더 번거로워진다. 자연히 아까운 퐁퐁을 더 쓸 수밖에 없다.
물론 가게 비품이니 자신의 것은 아니지만, 퐁퐁을 모으는 입장의 박연으로서는 남의 것이라도 퐁퐁 한 방울이 그렇게 아까울 수 없었다.
“그나저나 국장님이 이 시간에 가게는 어쩐 일이시오? 설마 아침 댓바람부터 고추장 삼겹살을 먹으려는 건 아니시겠지?”
“하하. 누가 보면 제가 삼겹살 못 먹어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줄 알겠습니다. 큰 사장님은 안 계십니까?”
“헉!”
박연이 크게 당혹스러워 했다.
그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하나 있었다.
나는 체질적으로 거짓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오.
특히 채진명에게는 이 말을 귀에 인이 박히도록 했을 정도로 박연은 거짓말을 잘 못한다.
가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건 거짓말의 대상이 서준이거나 두식일 때의 경우에 한해서다.
특히 콜라와 관련됐을 때.
그런데 다른 주제의 거짓말을 하려니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박연 씨?”
“아, 그게. 음. 마…… 아니, 그, 서준은 거기 갔소. 그, 어디더라. 아! 장! 장 보러 갔소.”
순간 이명섭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장을 보러 가셨다고요?”
딴에는 급조한 것 치고 괜찮은 변명이라 생각한 걸까?
박연이 뿌듯해하며 대답했다.
“그렇소. 무슨 문제라도 있소?”
“없지요. 장은 마트로 보러 가셨겠군요.”
“그럴 거요.”
“언제 나가셨는지 아십니까?”
“음…… 40분? 아니다. 50분은 됐으려나. 근데 그건 왜 묻소?”
“40분이나 지났다면 곧 돌아오시겠군요. 사장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기다리겠습니다.”
박연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말과는 다르게 서준이 가게를 나선 건 고작 10분 전.
그리고 서준이 가게를 나선 목적은 간단했다.
-아아…… 지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논산훈련소 채널이 막 폭주했습니다. 출현 몬스터는 바질리스크라고 합니다. 훈련소 인근에 계시는 주민들은 모두 군경을 따라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천신들이 수를 쓴 게 분명한 몬스터들을 처치하기 위해서.
‘마왕이라 해도 요르문간드에 바질리스크, 거기에 본 드래곤이랑 마르티코라스까지 해치우려면 몇 시간은 걸릴 텐데…….’
박연은 이명섭을 힐끔거렸다. 그는 서준이 오기 전까지 기다릴 기세였다.
“그럼 안 되는데…….”
“예? 뭐라 하셨습니까?”
“아니, 그게…… 그, 언제 올지 모르는데 기다린다고 하니 망부석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하하! 아하하하!”
“설마 망부석이 될 동안 안 오시겠습니까.”
“사람 일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데 혹시 모르지 않소. 그, 서준이 놈에게 할 말이 있으면 내게 하시오. 내가 전달해 주리다. 아니면 전화를 해도 괜찮고.”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박연.
이명섭이 아니라 초등학생이 봐도 수상하다 여길 만큼 그의 연기는 어설펐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꼭 그래야만 속이 후련하시겠소?”
“왠지 박연 씨는 절 못 보내서 안달 나신 것 같습니다.”
“허허. 허허허. 못 보내서 안달이라니 오해요.”
“그럼 기다리고 있어도 되지요?”
“아니, 그…… 음. 그러면 좋겠지만 나도 마침 볼 일이 있어서 나가 봐야 돼서 말이외다.”
“밖에서 기다려도 됩니다.”
선선히 가게를 나서는 이명섭에 망연히 서 있던 박연이 얼른 핸드폰을 꺼내 서툰 타이핑 실력으로 문자를 입력했다.
* * *
솜사탕 같은 구름들이 몽실몽실 피어난 까마득한 상공.
놀랍게도 한 남자가 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서준이었다.
띠링!
[용사][오전][10:38] 국장님 왔다. 내가 기지를 발휘하긴 했지만 말실수를 한 게 있어서 널 기다린다고 한다. 얼른 와야 될 것 같다.박연에게서 온 문자에 서준은 감탄했다.
“이제는 오타도 없고 꽤 많이 늘었네. 다희 씨 덕분인가?”
여담이지만 이건 서준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박연은 이 문자를 보내기 위해 장장 5분이 넘도록 사투(?)를 벌였다.
그런 사정은 꿈에도 모르는 서준은 멀리 보이는 요르문간드에게 날아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급히 피난을 가는 일반인도 보였고 각성자 무리도 보였다. 각성자 무리에는 반가운 얼굴도 있었다.
-헨리 씨. 어떤 작전으로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까? 저희는 전적으로 헨리 씨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아직 요르문간드에게서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건 녀석이 배가 부른 상태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 조심스럽게 사방을 포위하고 대기하십시오. 공격은 슐레머가 도착하는 대로…….
바로 헨리였다.
헨리의 지시에 따라 요르문간드와 얼추 7~8km 쯤 떨어진 헨리와 한국 측 각성자들이 움직였다.
늦으면 곤란한 상황이 생길지도 몰랐다.
서준의 몸이 빠르게 구름을 갈랐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요르문간드가 똬리를 튼 신대포구.
포만감에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던 요르문간드는 바람처럼 쌩- 나타난 서준이 흥미로운지 눈을 치켜떴다.
‘러시아에서와 같은 실수는 안 하는 게 좋겠지.’
사할린에서의 일을 떠올린 서준은 조심스럽게 요르문간드에게 접근했다.
그 손에는 어느 새, 하나의 창이 생겨났다. 무려 4m에 이르는 창이었다.
키엑! 키에엑!
요르문간드는 서준의 모습이 마치 재롱처럼 보였는지 기괴하게 웃어 보였다.
서준은 웃는 요르문간드를 향해 창을 내던졌다.
쐐애애액!
요르문간드는 위협적인 파공성과 다르게 느릿하게 날아오는 창에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막 식사를 끝낸 참에 소환되어 어리둥절했었건만 이런 재미난 곳으로 소환되다니?
반신의 신격을 가진 자신이 타의에 의해 소환된 건 아직도 영문 모를 일이지만, 어쩌면 자신이 영토로 삼았던 밀림보다 더 재미난 곳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밀림에서는 그 어떤 인간도 감히 자신을 대적하지 못했다.
오히려 밀림의 입구에 인간 제물을 바치며 자비를 구했다.
한데 저 인간과 멀리서 다가오는 놈들은 다르다.
감히 자신에게 대적하려 하다니!
만 년을 넘게 살았지만 이런 재미난 경우는 별로 없었다.
녀석은 인간의 재롱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생각하며 혀를 날름거렸다.
날아오는 창을 역으로 인간에게 돌려보낼 참이었다.
“……!”
녀석의 눈이 부릅떠졌다. 창이 혀에 닿는 순간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분명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창이었는데?
쉬리릭!
인간의 재롱보다는, 일단은 몸을 피하고 사태를 파악하는 게 우선 같았다.
요르문간드가 승천했다. 흡사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늘로 솟구치던 요르문간드는 문득 혀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놈은 자신의 거대한 입안에서 기생하며 서로 상생하는 기생 웜에게 확인을 시켰다.
그의 피부 조직 사이에서 수천 마리의 웜들이 꿈틀거리며 나와 혀의 이질감을 확인했다.
그건 피했다고 생각한, 자신에게 조금의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고 생각한 창이었다.
이질감은 극심한 통증으로 바뀌어 갔다. 통증은 다시 죽음의 기운으로 바뀌었다.
난생처음 죽음의 공포를 느낀 요르문간드는 그제서야 먹이가 보통 먹이가 아님을 깨달았다.
반신의 신격을 가진 자신을 삽시간에 무력화시킨 인간.
그는 그 이상의 격을 가진 자였다.
요르문간드의 입에서 기생하는 웜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놀랍게도 그 웜들이 움직이며 공명하는 듯한 언어를 만들어 냈다.
-그대는 인간의 격을 지녔습니까, 신의 격을 지녔습니까?
서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못 느끼나 보군.”
-말씀해 주십시오.
-인간의 격을 지녔다고 해 두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내가 아는 한, 인간은 당신과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 합니다.
“그 이상을 보지 못한다면 할 수 없는 거고.”
그 순간.
-……신이시여! 살려주십시오!
반신인 요르문간드가 인간에게 자비를 바라고 있는 모습을 박연이 봤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제 의지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부디 살려주십시오, 신이시여!
“난 신이 아니다.”
그 순간 서준의 주위로 또 하나의 창이 생성됐다. 창은 정확히 요르문간드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갔다.
퍽!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말 많던 요르문간드는 절명했다.
서준은 요르문간드의 머리를 제거하고 남은 몸체는 아공간에 넣었다.
맛있는 요리 재료가 될 테니까.
멀리서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서둘러 다음 행선지로 가야 할 것 같았다.
* * *
구(舊) 논산훈련소 터.
푸른 공간이 일렁이며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락 길드였다.
“탐지기 반응은?”
길드장 박영문의 물음에 탐지기를 들고 있던 길드원이 답했다.
“아직 안전 범위 이내입니다.”
박영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봤다.
“혹시나 하고 철준이 너까지 불렀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겠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주실 건 주셔야 됩니다.”
“자식 정나미 떨어지게…… 알았어, 인마. 돌아가는 대로 송금해 줄게. 자, 모두 진입한다!”
잠시 후.
그들은 채널이 봉인되어 있는 생활관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진입 할수록 복도였던 풍경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앞서 걷던 박영문이 멈칫거렸다.
모든 채널에는 도면이 존재한다.
그건 논산 훈련소 채널도 마찬가지.
그리고 박영문이 미리 확인하고 왔던 논산 훈련소 채널의 도면에는 길이 하나밖에 없었다.
한데 지금 눈앞에 나타난 건 네 갈래 길.
“지형이 바뀐 것 같습니다. 어떡하죠?”
“어떡하긴. 네 팀으로 나누고 이동한다.”
박영문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지시했다.
따지고 보면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채널 내부의 지형이 바뀌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지형의 변화는 당혹스러울지언정 위협적이진 않다.
채널에서의 진짜 위협은 폭주다.
어떤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박영문은 사람들을 네 팀으로 나눴다. 네 팀이 각각 갈라진 길을 따라 움직였다.
김철준이 배정 받은 팀은 공현우와 차서현도 있는 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