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50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50화
* * *
박 경위는 문득 밖에서 경적 소리가 들리자 정신이 들었는지 괜히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이거, 제가 이 정도로 술이 약한 편은 아닌데 소맥 몇 잔에 취했나 봅니다. 헛소리를 다했네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십시오.”
그렇게 말한 박 경위가 시계를 봤다.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시간이 제법 흘러 있었다.
“가 봐야겠네요.”
“벌써 말입니까?”
“늦으면 덕순이한테 혼나거든요. 12시 안에는 들어가 봐야 됩니다. 그러려면 지금 가야죠.”
“그렇군요.”
“다 해서 얼마죠?”
“괜찮습니다.”
“에이, 제가 한두 잔 마신 것도 아닌걸요. 김치전도 너무 맛있게 먹었고요. 게다가 저 이래 봬도 경찰입니다. 공짜 밥을 먹을 순 없죠.”
“정 그러시다면 이만 원만 주십쇼.”
“이만 원이면 술값도 안 되겠는데요?”
“이만 원이면 됩니다.”
박 경위는 “안 되는데…….” 하고 중얼거리더니 잽싸게 오만 원권 한 장을 테이블에 놓고 가게를 뛰쳐나갔다.
“대신 다음에 서비스 왕창 챙겨 주십쇼! 다음에는 아주 술만 배 터지게 먹을 테니까요!”
서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뒷정리를 하던 서준은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아공간을 열어 채상현을 불렀다.
“물어볼 게 있다.”
“잘못했어요…… 제발, 제발 저 좀 여기서 꺼내 주세요. 제발요, 크흐흐흑.”
“채상현, 너는 살면서 동정심이란 걸 가져 본 적이 있나?”
“동정…… 심이요?”
잠시 멈칫한 채상현이 미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요. 동정심 가져 본 적 있죠. 저도 사람인데요. 거리에서 구걸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TV에 나오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면 딱하고, 마음도 아프고…….”
“두 모녀는.”
“예?”
“두 모녀에게는 동정심을 가졌나?”
“애선이랑 아이 말입니까?”
“그래.”
“예! 가졌습니다. 당연히 가졌죠. 아무리 그래도 제가 사랑했던 사람인데 일말의 동정심이 없었겠습니까!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이 뭐지?”
순간 채상현의 미간에는 골이 깊게 파였다. 고심하는 것이리라.
잠시 후 그는 자신감 있게 소리쳤다.
“희진! 희진입니다! 제 딸아이 이름은 희진이에요.”
“그렇군.”
희진이와 희민.
한 끗 차이긴 하군.
고개를 끄덕거리던 서준이 별안간 피식하고 웃었다.
-그 시발년들 때문에 내가 여기 갇혔는데 이딴 걸 묻고 있어. 얼른 꺼내 주기나 할 것이지. 아…… 존나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고 싶어 미치겠어!
-여기서 나가면 바로 혜연이 년부터 만나야겠다. 그리고 미나 그년도 좀 만나야겠어. 그러니까 이제 좀 꺼내 줘라 시발!
“집에 가고 싶나?”
“네? 아…… 예! 가고 싶습니다. 제발 보내 주세요. 제 죄가 뭔지도 다 뉘우쳤고요. 애선이랑 희진이한테도 몹쓸 짓 한 거 다 인정합니다. 정말 저 풀어 주시면 앞으로는 착하게 살 자신 있어요. 그리고 어디 가서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도 일절 안 할 자신도 있습니다.”
“그럼 집에 보내 줘야겠군.”
“가, 감사합니…….”
말과는 다르게 아공간은 슬슬 닫히기 시작했다. 그에 채상현이 빽 소리쳤다.
“뭐, 뭡니까! 집에 보내 준다면서!”
“거기가 네 집이다.”
“꺼, 꺼내 줘! 꺼내 달라고!”
“그리고 그 아이 이름은 희진이가 아니라 희민이다.”
“희진이건 희민이건 꺼내 달…….”
채상현은 말을 맺지 못했다. 아공간이 완전히 닫혀 버린 것이다.
닫힌 아공간을 멍하니 바라보던 서준이 문득 침음을 흘렸다.
테이블 위에 박 경위가 놓고 간 물건들이 보였다.
* * *
[덕순이][오후10:21]그래서 지금 어딘데? [나][오후10:21]지금 거의 다 왔지요. 10분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 [덕순이][오후10:22]확실해? 또 저번처럼 늦는 거 아니지? [나][오후10:22]아냐. 진짜 거의 다 왔어요~ [덕순이][오후10:23]또 늦기만 해 봐! 이번에는 진짜 가만 안 둘 거야.한동안 답장이 오지 않자 박 경위는 초조해졌다.
덕순이는 평소에는 귀염뽀짝하지만 한번 화 나면 호랑이가 따로 없다.
카톡!
알림에 박 경위는 얼른 휴대전화를 꺼냈다.
[덕순이][오후10:28]대신 집 앞에 있는 곳 말고 세탁소 옆에 있는 떡집에서 사 와야 돼. 기정떡이랑 경단으루 🙂박 경위는 흐뭇하게 웃었다.
누가 덕순이 아니랄까 봐.
알겠다는 답장을 보내려는 그때였다.
“어? 저기 경찰 아냐?”
“어디에?”
“저기 걸어오잖아.”
“오! 맞네. 경찰이네.”
앞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박 경위는 아차 싶었다.
12구역에 밤늦게 사적으로 들어올 일은 거의 없지만 있다면 사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건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이!”
건들건들 다가오는 갱들에 박 경위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비어 있었다. 허리춤에 있어야 할 홀스터가 텅 비어 있었다.
‘아!’
술 먹을 때 풀어 둔 기억이 났다.
미친놈, 놓고 올 게 없어서 총을 놓고 와?
스스로를 자책하던 즈음.
“사람이 부르면 대답을 하셔야죠, 경찰 나리?”
“뭡니까?”
“와, 시발 존나 카리스마 있네. 누가 보면 아주 각성자인 줄 알겠어. 안 그래요?”
갱이 제복의 명찰을 살폈다.
“박진후 경위님?”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경찰과 무력 충돌을 일으킬 시 곧바로 전국에 수배가 떨어질 겁니다. 어리석은 짓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호…… 배짱 봐라. 지리겠다?”
사실 배짱은 아니었다. 실제로 박진후는 속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다만 갱들에게 얕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세게 나간 것뿐이었다.
“배짱 하나는 두둑하신 우리 박진후 경위님. 하나만 물어봅시다.”
“예.”
“이 주변에 CCTV 보여요?”
박진후는 주변을 흘겼다.
CCTV는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가로등 밑에 하나가 보이긴 했지만 여기까진 비추지 못할 터였다.
“CCTV도 없는데 누가 범인인 줄 알고 수배를 내릴까? 무엇보다…….”
“…….”
“지금 너 총도 없잖아.”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알림이 계속해서 울렸다.
덕순이가 분명하리라.
예의 갱은 박진후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내 친구 중에 성현이라고 있어요. 근데 그 친구가 작년에 죽었어. 왜 죽었는지 알아?”
“…….”
“경찰이 쏜 총에 맞았거든. 그것도 머리에.”
“…….”
“경찰 나리. 사람이 머리에 5.56mm탄을 서너 발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카톡!
카톡!
카톡!
“터져. 사람 머리가 수박도 아닌데 터진다고. 뇌수를 흩뿌리면서. 우리 경찰 나리는 어떤가 한번 볼까?”
갱이 AK47을 장전한 후 박진후에게 겨눴다. 다른 갱들은 분위기를 북돋기 시작했다.
“쏴, 쏴, 쏴, 쏴, 쏴.”
결국 총성이 울렸다.
탕-!
타타탕!
사람이 죽는 순간이 오면 인생의 모든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한다.
지금 박 경위가 그랬다.
아버지가 나를 안고 번쩍 들어 올리시는 모습…… 엄마 손을 잡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모습…… 중학교 졸업식 날 자장면을 먹던 모습…… 아버지가 강도에게 맞서는 모습…… 덕순이와의 첫 만남, 그리고…… 총알.
족히 300m/s의 속도는 될 텐데도 날아오는 총알들이 생생히 보였다. 정확히 미간을 노리고 날아오는 총알들이.
박 경위는 눈을 감았다.
‘덕순아, 집에 못 가서 미안해.’
네 발의 총알은 박 경위의 미간에 박혔다. 아니, 박혔다고 생각될 때였다.
갑자기 모든 풍경이 멈췄다.
저 멀리 드럼통에 엎드려 있던 길고양이도…… 서서쏴 자세를 취하고 있던 갱과 동료들도…… 그리고 총알도.
“참 위험한 곳이라니까.”
독백과 함께 손이 불쑥 나타나더니 총알을 집었다. 그러고는 총알을 옆으로 틱 튕겨 버렸다.
그러자 멈춘 풍경이 다시금 돌아가기 시작했다.
갱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살았네?”
“근데 이 자식은 뭐냐. 원래 있었나?”
“눈은 장식이냐? 없었잖아.”
“그럼 언제 온 건데?”
“내가 아냐, 병신아.”
티격태격하는 갱들과 달리, 박진후는 크게 놀랐다.
“사장님?”
“이걸 놓고 가셨더군요.”
서준이 권총과 홀스터를 건넸다.
“어떻게…….”
“아까 그러셨잖습니까.”
“예?”
“요새는 범죄자를 잡는 건지 없는 사람들을 잡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랬죠. 근데 여긴 어떻게……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박 경위님은 잘하고 계십니다. 박 경위님 같은 경찰관들 덕에 시민들이 발 뻗고 잘 수 있으니까요. 경위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 순간 갱이 총구를 겨눴다.
“시발, 갑자기 튀어나와서 뭐라는 거야. 너 각성자냐? 어떻게 갑자기 튀어나왔어?”
“…….”
“말 안 해? 시발 뒈지고 싶어?”
“그냥 쏘고 얼른 들어가자. 시간 끌어서 좋을 거 없어.”
“오케이.”
탕!
타타탕!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서준의 머리에 정확히 박혔다.
하지만 서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머리에 박힌 총알을 튕겨 냈다.
그 모습에 갱들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 갔다.
“어, 어떻게…….”
“가, 각성자?”
더듬거리던 갱들이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살기 위해서는 도망쳐야 한다. 저 괴물 같은 놈에게서.
문제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포감에 마비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줄에 꽁꽁 묶여 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안 그렇습니까?”
“사장님 대체 정체가…….”
“글쎄요.”
아리송한 대답을 남긴 서준이 갱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아공간을 열었다. 새까만 아공간이 곧 그들을 삼켜 버렸다.
카톡!
카톡!
“얼른 들어가 보셔야겠습니다. 사모님이 기다리시는 것 같습니다.”
그 말과 함께 박 경위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앞으로는 좋은 기억만 갖고 살아가셔도 됩니다. 경위님은 그럴 자격이 있으십니다.”
* * *
“으어헉!”
박진후는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 내며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깬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라?”
집이었다.
그것도 안방 침실.
“뭐지?”
새삼 침실을 둘러보는 그때.
“아주 쇼를 해라, 쇼를.”
“여보?”
“으이구, 이 화상아. 차라리 당신 여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진짜 당신이네?”
“당신, 당신 아니었으면 좋겠다니까?”
“근데 사장님은?”
“사장님? 무슨 사장님?”
“사장님이 분명 구해 주셨는데…….”
“술이 떡이 돼서 들어오더니 무슨 개꿈을 꿨나 보네.”
“아닌데, 분명히 맞는데…….”
“그래, 맞긴 맞네.”
“그치? 맞지?”
순간 아내가 손바닥으로 등짝을 내리쳤다.
짝짝-!
“그래, 맞다, 이 화상아!”
“아! 아아! 아파!”
“엄살 그만 피우고 이거나 마셔.”
박진후는 아내가 건넨 꿀물을 벌컥 들이켰다. 꿀물의 달짝지근함에 정신이 확 들었다.
‘진짜 꿈이었나?’
하긴…… 그런 일은 꿈이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긴 하지.
박진후는 새삼 눈에 들어온 아내에 환히 미소 지었다.
차라리 꿈이라 다행이다.
“이 인간이 뭘 잘했다고 실실 웃고 있어!”
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