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84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84화
* * *
원래 던전이란 곳은 주기적인 레이드가 필요했다.
레이드를 해 주지 않는다면 이런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크르르르르-!
레오 울프가 자세를 낮추며 이빨을 드러냈다.
이곳은 MA-15라는 이름의 공용 던전이었다.
다른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슬라임만 소환되는 던전이기도 했다.
그 덕에 저레벨 각성자들도 잘 찾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관리국에서 레이드를 하며 케어를 하지만 관리국의 인력은 늘 부족하다.
때문에 레이드 할 시기를 놓쳤다. 그리고 결국 부작용인 몬스터 소환이 발생했고.
“팀장님.”
당황한 팀원 하나가 레오 울프를 흘기며 최성균을 불렀다.
관리국에서는 공용 던전의 주기적인 레이드를 흔히 청소라고 불렀다.
그리고 팀원은 MA-15 던전의 청소가 좀 늦긴 했지만 설마 청소 중에 몬스터가 소환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혹한 표정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몇 마리 같아?”
팀원과 달리 최성균은 침착했다. 그가 묻자 또 다른 팀원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완전히 포위당했습니다. 최소 마흔 마리는 넘어 보입니다…….”
그 말에 최성균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레오 울프는 트윈헤드 오우거와 마찬가지로 C등급 몬스터로 분류된다.
그 C등급 몬스터인 레오 울프가 한두 마리도 아니고 마흔 마리다.
“팀장님.”
어서 명령을 내려 달라는 듯 팀원 하나가 그를 나직이 불렀다. 잠시 후 그가 조용히 읊조렸다.
“들어오면 바로 C 대형으로 전환한다.”
“하지만 그럼 천수가 당할 위험이 있어요.”
“그거 말고 답 없어.”
“…….”
최성균이 임천수를 흘겼다. 그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최성균은 조심스럽게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레오 울프들이 달려들었다.
“C 대형!”
최성균의 외침에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하나의 원을 그렸다.
호기롭게 달려들던 레오 울프들도 이들의 방어 태세에 섣불리 달려들진 못했다.
그저 주변을 배회하며 틈을 엿볼 따름이었다.
“천수 괜찮아?”
최성균이 눈앞의 대장 레오 울프를 직시하며 묻자 바로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예!”
“여차하면 실드 풀어도 돼.”
“최대한 버텨 보겠습니다.”
“좋아.”
과연 레오 울프들은 영리했다.
지루한 대치가 이어진 끝에 임천수의 실드가 흐릿해지기 시작하자 그 틈을 파고든 것이다.
컹!
크르르르!
레오 울프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최성균은 달려드는 레오 울프에 검을 찔러 넣었다. 검은 정확히 레오 울프의 미간에 적중했지만 꿰뚫지는 못했다.
크르르!
또 다른 레오 울프가 달려든다. 이번에는 에테르를 방패에 집중시켜 놈의 몸통 박치기를 막아 냈다.
놈이 깨갱- 하며 바닥을 나뒹굴자 순식간에 방패에 몰린 에테르를 검에 주입시켜 놈의 목덜미에 찔러 넣었다.
푸욱-!
손맛이 느껴졌다.
한 마리는 해치웠다.
“한 마리 클리어!”
그의 외침에 이어 팀원들이 클리어를 외쳐 댔다. 시간이 흐르자 남은 레오 울프의 수는 스무 마리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천수, 마력 얼마나 남았어?”
“아직은…… 버틸 만합니다.”
“확실해?”
“예!”
호기롭게 소리친 임천수였지만 사실 그의 상태는 썩 좋지 못한 편이었다.
마력은 거의 동이 난 상태였다. 아까 레오 울프와의 대치 상태에서 실드 마법에 마력을 무리하게 사용한 탓이었다.
‘버텨야 돼.’
대형이 한번 무너지면 팀원들 전체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크르-!
그는 레오 울프들이 달려들 때마다 최대한 마력 소모가 적은 디그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버텼다.
마력이 완전히 떨어졌을 때는 비상용으로 사 둔 마력 포션까지 흡입하면서 대형을 지키려 애썼다.
하지만 가랑비에도 결국 옷은 젖는 법.
마력은 점차 동이 났고, 레오 울프들은 그가 한 가지 마법만 사용한다는 걸 간파하고 다른 유형으로 달려들었다.
가젤처럼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디그 마법을 무력화시킨 뒤, 그의 머리 위로 착지를 시도한 것이다.
일반적인 각성자들이었다면 무기를 이용해 무방비 상태인 레오 울프의 복부를 노릴 수 있었겠지만 마법사인 임천수는 달랐다.
“……!”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공격 마법을 사용 할 마력은 한 줌도 남지 않은 것이다.
“끄아악!”
순식간에 레오 울프에 어깨를 내준 임천수가 반사적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천수야!”
레오 울프는 여태 장애물이 되었던 임천수의 팔을 절단 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물어뜯었다.
극심한 통증에 눈이 절로 감겼지만 애써 참아 낸 임천수가 레오 울프의 복부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레오 울프의 단단한 가죽을 단검 따위로는 뚫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팀원들도 그를 도울 처지는 못 됐다. 각자의 자리에서 레오 울프를 상대하기도 벅찼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바닥을 뒹굴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천수를 힐끔거리는 것 외에는 없었다.
결국 임천수의 팔이 너덜너덜해졌다. 핏줄이 다 튀어나왔고 팔꿈치 뼈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극심한 통증에 임천수는 의식을 잃은 지 오래였다. 이대로라면 임천수의 목숨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그때였다.
“최 팀장!”
저 너머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원 요청한 다른 팀들이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여기!”
곧이어 도착한 지원 병력들에 의해 남은 레오 울프들은 금방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팀원들 모두 부상이 심각한 편이었다. 특히 임천수의 부상이 심각했다. 팔이 기괴하게 덜렁거리고 있었다.
* * *
가게 안으로 최성균이 들어왔다.
늘 씩씩하던 그는 웬일인지 어두운 표정이었다.
“소주 한 병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안주는 어떻게 드릴…….”
“괜찮습니다.”
연준이 기본 안주와 소주를 내주자 최성균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소주를 병째 들이켰다.
단번에 소주 한 병을 비워 버렸음에도 그는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다시 소주를 주문할 뿐.
“제가 따라 드리겠습니다.”
소주를 가져온 연준이 말하자 최성균은 머뭇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쪼르륵-
벌컥!
쪼르륵!
벌컥-!
최성균은 술을 따라 주는 족족 한번에 털어 넣었다.
“마카로니라도 좀 드시지 않고요.”
“입맛이…… 없네요.”
“그러다 속 버리십니다.”
“이까짓 속…… 버리면 어떻겠습니까?”
연준은 더 이상 술을 따라 주지 않았다. 그의 의도를 알아챈 건지 최성균이 피식 웃었다.
“사장님은 역시 좋은 분 같습니다. 주방에 계신 사장님도…….”
“…….”
“제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사실 연준은 최 팀장의 별명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의 팀원들과도 이따금 술집을 찾기도 했던 그였으니 말이다.
최성균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만년 A등급입니다. 이 이상으로 변성을 할 수가 없어서 만년 A등급이란 별명으로 불리죠.”
“…….”
“지금까지는 딱히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회의감이 자꾸 들더군요.”
“회의감…… 이요?”
“무기력한 제 모습에 대한 회의감이랄까요. 특히…….”
최성균은 지난 밤섬 채널 사건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을 희생시켜 밤섬의 채널을 봉인시키려 했다.
그건 거창한 희생정신이나 봉사 정신이 있어서 자처한 게 아니었다.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에 의거한 자원이었을 뿐이다.
10년 동안 A등급인 자신과 B등급인 부하 직원이 있다고 치자.
이 경우 지금 당장은 A등급인 자신이 관리국의 전력에 보탬이 될지 몰라도 B등급의 부하 직원에게는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S등급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
격변 이후 사람의 생명에는 가치가 매겨졌고 그건 각성자라 해도 다르지 않다.
어차피 희생시켜야 할 목숨이라면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이보다는, 가능성조차 없는 이를 희생시키는 게 나았다.
성균은 그런 마음으로 자원에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그를 추켜세우며 영웅시해 준다.
영웅다운 모습은 전혀 보여 준 적이 없고 오늘은 부하를 잃을 뻔하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후…….”
뒷말을 삼킨 최성균은 한숨을 토해 냈다.
“이번에 제 밑에 있는 직원이 크게 다쳤습니다.”
“혹시 TV에 나온…….”
“맞습니다.”
“…….”
“신경이 상해서 앞으로는 오른팔을 쓸 수 없을 거라더군요. 이제 불구로 살아야 되는데도 의사는 이만한 게 천만다행이라네요. 레오 울프에 물렸는데도 팔이 안 잘려 나간 게 기적이라나요.”
연준은 순간 캐리커처로 묘사된 레오 울프의 이모티콘을 떠올렸다.
앙증맞게 묘사되곤 하는 레오 울프지만 실상은 다르다. 살상력이 어마무시한 몬스터인 것이다.
의사의 말처럼 레오 울프에게 물렸는데 팔이 안 잘려 나간 게 기적일지도 몰랐다.
“봤습니다.”
“예?”
“천수가 몸부림치고 있는 거요. 레오 울프가 천수 위로 올라타서 팔을 마구 물어뜯고 있는데도 저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수 팔이 너덜너덜해질 동안…….”
연준은 말을 아꼈다. 왠지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이 독이 될 것 같았다.
최성균은 자조 섞인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S등급이라거나…… 그 윗등급의 각성자였다면 그럴 일은 없었겠죠.”
“자책하지 마세요. 최 팀장님은 최선을 다하셨잖아요.”
“최선을 다했지,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진 못했습니다. 최고의 결과는 부상자 없이 귀환하는 거였죠.”
“…….”
“아, 죄송합니다. 비아냥거리려고 했던 건 아닌데 저도 모르게 그만…….”
“이해합니다.”
그렇게 말한 연준이 생각난 게 있다는 듯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김밥을 들고 나타났다.
“김밥이네요.”
“네. 형이 만들었는데 맛있더라고요. 팀장님도 맛 좀 보세요.”
최성균은 작게 웃었다.
맛 좀 보라는 거 치고는 꽤 많은 양이다.
조심스럽게 김밥 한 개를 집어 먹었다.
“맛있네요.”
“그렇죠?”
“예.”
“팀장님은 김밥에 얽힌 추억 같은 거 없으십니까?”
“추억이요?”
“네. 누구나 김밥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있더군요.”
연준의 말에 지금껏 침울한 표정이던 최성균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나갔다.
그는 뭔가를 회상하고 있는 듯했다.
“있으신가 보네요?”
“사장님도 있으십니까?”
“저라고 없을까요.”
연준은 서준에게도 말해 주었던 일화를 털어 놨다. 짐짓 안타깝다는 표정이던 최성균에 연준이 말했다.
“팀장님 추억은 어떤 건가요?”
“저는…….”
피식.
“집사람하고 연애하던 때였을 겁니다.”
“연애요?”
“네. 한 4개월쯤 만났을 때였나…… 집사람하고 한강에서 데이트를 했었습니다.”
“한강 좋죠.”
“아내가 김밥을 싸 왔더군요. 둘 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어머니한테는 죄송스럽지만 어머니가 만든 것보다 더요. 그런데…….”
최성균이 풉,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있었나 보네요?”
“날이 더워서 그랬는지 김밥이 상했었던 모양이더라고요. 집사람이랑 같이 걷고 있는데 표정이 안 좋더군요.”
“사모님 표정이요?”
“예.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무것도 아니래요. 그리고 다시 걸었죠.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뿌웅- 귀여운 방귀 소리가 들리지 뭡니까.”
“아…….”
“집사람 방귀 소리였어요. 연애 초반 때기도 하고 집사람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서 어쩔 줄 몰라 했죠. 근데 전 그게 어찌나 귀엽던지.”
“이해가 가네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상대가 뭘 하더라도 예뻐 보이는 법이다.
최성균이 그랬으리라.
“그러면서 변명을 하더라고요. 자기는 원래 방귀 같은 거 잘 안 뀌는 사람인데 뭔가 잘못됐다고…….”
“그래서 어떻게 말씀 하셨나요?”
“그 변명도 귀여워서 알았다고만 하고 말았죠.”
최성균은 회상에 잠긴 듯 피식피식 웃었다. 그에 연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