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91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91화
* * *
지난달은 후텁지근한 장마철이었다.
비가 어찌나 많이 오던지 그만큼 습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장마철이 다 지난 뒤라 그런지 상쾌한 하늬바람이 머리를 훑고 지나간다.
톡-!
숙소로 돌아가다 걸음을 멈춘 서준은 하늬바람을 만끽하며 맥주 캔을 땄다.
백사장 저편으로는 파도가 부서지고 있었다.
평온한 모습들이다. 그래서 마음이 따스해지는 풍경이고, 차갑게 식어 버린 감정에 새싹이 돋아나는 느낌이다.
눈을 감고 바다 내음과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듣던 서준은 문득 고개를 돌렸다.
두식이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집 생각이 나나 보구나.”
“에?”
“왠지 눈빛이 그랬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다. 너도 마시거라.”
“감사합니다.”
서준은 두식과 시선을 나란히 했다. 두식이 바라보는 수평선 너머를 눈에 담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마신님은…….”
“형이라고 불러라.”
“하지만…….”
서준은 피식 웃었다.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니 앞으로는 둘이 있을 때도 형이라 불러라.”
“……감히 그럴 수는 없습니다.”
“괜찮다.”
“그럼 노력해 보겠습니다.”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운을 뗀 건 두식이었다.
“마신님이 왜 귀환하려 하셨는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모르겠죠?”
“아마도.”
철썩!
큰 파도가 백사장에 부딪치며 부서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식이 말했다.
“다시 마계로 돌아간다면 적응이 안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까?”
“이곳의 음식…… 이곳의 냄새…… 이곳의 자연…… 이곳의 사람…… 그리고 이곳의 모든 게 그리워질 테니까요.”
“특히 라면 말이지?”
두식이 웃음을 터뜨렸다.
“예. 라면은 바르할란의 음식과도 같습니다. 어떻게 그런 맛이 날 수 있는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 게 라면이긴 하지.”
쓰릅.
방금 밥을 먹었으면서도 서준은 입맛을 다셨다.
그런 의미로 내일 아침에는 해장 라면이 좋겠군.
“그리고 드라마도요.”
“요새도 보는 것이냐?”
“네. 그것 말고도 신기한 것들투성입니다.”
“뭐가 제일 신기했느냐?”
“……사실대로 말해도 되옵니까?”
“물론.”
“마신님이 가장 신기했습니다. 마계에 있을 때는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마신님이었는데 다른 인간들의 하대를 자연스럽게 받는 마신님이요.”
“여긴 지구니까.”
“아…… 외람되지만 하나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왜 용사 놈을 거둬 주신 것입니까?”
두식은 서준이 즉답보다는 약간의 텀을 두고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즉답이 튀어나왔다.
“갈 데가 없대서.”
“그게 전부인가요?”
약간의 텀을 둔 건 오히려 이때였다. 서준이 약간의 텀을 둔 채 말했다.
“예전에 칼락스라는 오크가 있었다. 그리고 칼락스라는 오크는 오갈 데 없는 날 거둬 줬지.”
“그럼 혹시 아틸쿠스 전투에서 검은 오크족들을 살려 주신 게…….”
“그가 검은 오크족이었지.”
“그것까진 몰랐습니다.”
“용사 놈을 거둬 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호의.”
“호의…… 요?”
“칼락스가 내게 베풀었던 호의. 그게 다다.”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던데.”
두식이 한 말은 당연히 아니었다.
박연이었다. 그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가 들으면 그대가 날 거둬 준 줄 알겠군.”
“아니었나?”
“날 거둬 준 건 연준이다! 그리고 연준은 날 필요로 하지! 내가 없으면 화장실 청소랑 설거지는 누가 할 건데? 이 무식한 오크 놈이?”
두식이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맞는 말을 하는군.”
“웬일로 인정을 다 하는 것이냐?”
“처맞는 말이니까.”
퍽!
두식이 박연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충분히 피할 수 있음에도 박연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높게 치켜든 채 피식거렸다.
“겨우 이 정도라니.”
“겨우? 제대로 힘 한번 쓰는 거 보여 줄까!?”
“보여 주든가. 누차 말하지만 나는 악룡 데이카란투마저 해치운 용…….”
그때였다.
둘의 모습을 피식거리며 지켜보던 서준이 돌연 표정을 굳혔다. 그러더니 그의 눈썹이 역으로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서준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강림한 메루트스는 날개를 접었다. 그녀의 등이 쩍 벌어지며 날개가 사라졌다.
인간과 구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사라지자 그녀는 겉모습만 본다면 인간 그 자체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이스케가 반기자 메루트스는 그를 살짝 흘기고 말았다.
“카달란 그 겁쟁이 자식 때문에 아까운 내 천기만 낭비하는구나.”
“…….”
“실험 준비는 끝났겠지?”
“예. 하오나 카달란 님께서 당분간 실험은 멈추라 하셨습니다.”
“아직도 불완전한가?”
뜻 모를 말에 에이스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그렇다면 더더욱 실험을 멈출 순 없지.”
“…….”
“뭘 꾸물거리는 거지, 에이스케? 실험을 멈출 순 없다니까!”
난처한 에이스케였지만 그에게는 카달란보다 메루트스가 더 두려운 존재였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나도 참관하지.”
“메루트스 님께서 직접 말입니까?”
“안 될 이유라도 있나?”
“그건 아니지만…….”
“그럼 질질 끌 거 없이 바로 시작하자고.”
* * *
국제협약에 의하면 각성자들은 어떤 목적으로든 타국에 방문 시 당국에 신고하게 되어 있었다.
물론 비밀리에 들어올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국제협약을 준수하는 편이었다.
비밀리에 입국한다 해도 에테르 레이더에 발견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었다.
그리고 적발 시 해당 각성자에게는 국제협약에 의한 강력한 페널티가 주어진다.
처벌은 바로 에테르 몰수.
각성자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이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밀입국을 하진 않는 것이었다.
단, 대부분이란 표현은 100퍼센트를 의미하진 않았다. 극히 일부는 밀입국을 하기도 했다.
지금의 에이스케처럼.
“저기인가?”
“예.”
“시험을 강행하기에는 기온이 꽤 높아 보이는데?”
“이번에 준비한 시험은 바닷속에서 진행되는 시험이라 괜찮을 것입니다. 알아보니 현재 수온도 27도라더군요.”
“그 정도면 되긴 하겠군.”
그사이.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발을 디딘 곳은 통영시 한산도라는 지명을 갖고 있는 곳이었다.
섬을 한 차례 쓱 훑어본 메루트스가 말했다.
“굳이 지체할 필요 없이 바로 시작하지.”
“예.”
* * *
관리국은 각 도시마다 지국(支局)을 두고 있었다.
통영은 구 충무초등학교 자리에 지국이 설치되었다.
늘 한산하기만 하던 지국이 분주히 움직였다. 비번이던 직원들까지 잠옷 차림으로 지국의 통제 센터로 몰려들 정도였다.
“뭐가 어쩌고 저째?”
그건 지국장 김만길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을 맞아 집에서 단잠을 자고 있던 그는 비상 전화에 부리나케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제승당 게이트의 수치가 비정상적입니다!”
“CCTV 화면 띄워 봐.”
으레 봉인된 게이트에는 다각도로 CCTV들이 설치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금방 제승당 앞바다의 모습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CCTV 화면만 본다면 평화롭기 그지 없는 풍경이었다.
제승당 앞바다의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만 빼면 말이다.
“에테르 수치는 어때?”
“천천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김만길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제승당 게이트는 봉인된 이후 한 번도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이건 그의 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그는 곧바로 중앙 관리국에 경보를 넣었다.
중앙 관리국에서도 금방 응답이 왔다.
“통영 지국장 김만길입니다. 방금 데이터들 보내 드렸는데 확인하셨습니까?”
-지금 막 확인 마쳤습니다. 근데 정확한 현장 상황은 어떤가요?
“비상 대응 6단계 수준인 것 같습니다.”
수화기 너머 웅성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에 김만길이 말했다.
“각성자들 파견되겠습니까?”
-통영 지국 요원들로는 감당이 안 되겠습니까?
“제승당 게이트는 과거에 시 서펜트가 출몰했던 게이틉니다. 지국 요원들로는…… 어렵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여러 말들이 들려왔다.
지금 남는 인원들 전부 어디 있어?
아니, 일단 연락부터 넣어 보고.
그래? 그럼 그 데이터부터 보내 봐.
지금 스크롤 아낄 때야?
……등등.
김만길은 묵묵히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지금 바로 스크롤 편으로 안전정찰 18팀 보내겠습니다.
김만길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18팀이라면 얼마 전 S등급으로 상등했다던 최성균 팀장이 있는 곳이었다.
“헬기 대기시켜!”
김만길이 소리쳤다.
중앙 센터에서 스크롤 편으로 18팀을 보내겠다고 했지만 스크롤이 지정된 위치는 통영 지국이다.
그 말은 제승당 게이트까지 가기 위해서는 운송 수단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그 운송 수단으로는 헬기가 적합했다.
* * *
투투투투투-!
“하아…… 이게 다 무슨 일이랍니까.”
현장에 투입될 때면 긴장감 때문에 늘 말이 많아지는 오성식이 바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헬기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안 들려야 정상이지만 그들 모두 오감이 극도로 발달한 각성자였다.
이 정도 소음은 대화에 지장을 줄 수 없었다.
“팀장님, 요새 게이트 폭발이 부쩍 잦아진 것 같지 않습니까?”
최성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는 밤섬이었다. 그리고 그전에는 12-K98 게이트.
오성식의 말처럼 폭발 빈도가 늘고 있었다.
‘원래는 두세 달에 한두 번 꼴인데…….’
그마저도 전국구 단위로 한두 번이었다. 게다가 낮은 등급의 채널과 게이트인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그런데 요즘은 달라.’
확실히 이상해졌다.
12K-98 게이트에 이어 밤섬 채널이 폭발하지 않나, 이번에는 제승당 게이트까지…….
‘테러?’
최성균은 순간적으로 테러란 단어를 떠올렸다.
테러라면 이 모든 일이 설명이 된다.
실제로 봉인된 게이트 테러는 세계적으로 골칫거리인 문제였다. 미국에서는 작년에만 두 차례의 게이트 테러가 있었다.
올해에는 프랑스에서 IJ로 의심되는 이들이 봉인된 에펠탑 게이트를 폭발시키는 테러를 일으켰었다.
다만 이 테러들은 통계상 84퍼센트의 확률로 서구권에서만 발생했다. 나머지 16퍼센트에서는 중국에서 발생한 비중이 컸다.
하지만 지금까지 없었다고 해서 테러가 아니라 확신할 순 없었다.
‘북한의 공작 시도도 있었으니…….’
사전에 알아채서 막을 수 있었지만 북한이 게이트 테러를 시도한 정황은 수차례 포착되었다.
게다가 2년 전에는 일본에서 극우 성향의 각성자가 밀입국을 시도해 테러를 일으킨 적도 있었다.
이 역시 무위로 돌아갔고 해당 각성자는 에테르 몰수 처벌을 받으며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이 역시 배제할 순 없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격변 이후 중국은 엄청난 인구와 막대한 자본을 통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어 하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었다.
그러니 중국 역시 배제할 순 없다.
‘……골치 아프군.’
테러가 맞다면, 그래서 삼국 중 한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건 골치가 아픈 건 매한가지였다.
그사이 헬기는 제승당에 도착했다.
“와…… 저거 폭발하면 엄청나겠는데요.”
“그나마 주변에 민가가 없어서 다행이네.”
“그러게요. 저게 도심에서 일어난 폭발이었다면…….”
“12-K98보다 끔찍한 사태가 일어났겠지.”
해저에 있는 채널과 게이트는 폭발력이 비교적 약한 편이었다. 방심할 순 없지만 통계상 그랬다.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 내가 내려갔다 올 테니까.”
“팀장님 혼자서요?”
“게이트 살펴보다가 괜히 폭발하기라도 하면 살아 나올 자신 있냐?”
“…….”
해저에 있는 채널과 게이트가 제아무리 폭발력이 약하다 해도 그 주변에 서성이다 폭발에 휘말리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후딱 살펴보고 올 테니까 기다려라.”
“그럼 위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