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92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92화
* * *
쾅-!
굉음과 함께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멀리서 얼핏 본다면 용오름 현상으로 착각할 만큼이나 거대한 물기둥이었다.
폭발이었다.
최성균이 게이트를 살펴보기도 전에 폭발하고 만 것이다.
물기둥 뒤로 어렴풋한 실루엣이 비쳤다. 실루엣은 물기둥보다 거대했다.
최성균은 육감적으로 실루엣의 정체를 알아챘다.
‘시 서펜트…….’
시 서펜트가 분명했다.
시 서펜트의 등장에 팀원들 역시 모두 넋이 나간 것 같았다. 특히 오성식이.
“오성식! 정신 안 차려!”
“팀장님…… 저기, 저거.”
“정신 차려, 이 자식아!”
“위…… 위 좀 보시라고요!”
“위에 뭐가 있…….”
최성균은 말문을 잃었다.
시 서펜트 위에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웬 여자가 보인 것이다.
메루트스였다.
“성공적인걸?”
“메루트스 님 덕분입니다.”
“이만하면 천기도 충분해 보여. 이 정도 수준이라면 앞으로도 더 기대할 수 있겠어.”
“그렇습니까?”
“응. 이 정도 천기면…… 너희들 표현으로 S등급 각성자가 갖고 있는 천기 정도는 되겠네.”
“연구가 더 진행되면 그 이상 늘어날 수도 있겠지요?”
“아마?”
“다행입니다.”
“근데 저것들은 이 녀석을 막으러 온 건가?”
“그럴 겁니다. 시 서펜트니…… 고전 좀 하겠군요.”
“어? 우리를 본 것 같은데?”
에이스케가 슬쩍 아래를 내려다봤다.
메루트스의 말처럼 한국 측 각성자들이 입을 쩍 벌린 채 자신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전할 일은 없겠네.”
“예?”
“겸사겸사 소비한 천기 좀 회복하지 뭐.”
“송구하지만 저번에 카베니안 님께서 세 명에 한해서만 허락하신다고…….”
“나랑 널 봤잖아.”
“…….”
“이대로 살려 보내면 카베니안 님이 더 화내실걸?”
에이스케는 쓰게 웃었다.
왜 굳이 본체를 투명화시키지 않고 시 서펜트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는지 의문이었는데, 이제 보니 의도한 것이었다.
‘그래도 뭐…….’
메루트스의 말이 맞긴 했다. 목격자를 이대로 살려 보낼 순 없었다.
“자, 그럼.”
눈을 찡긋거린 메루트스가 날개를 펼쳐 시 서펜트에게 날아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무모한 짓이었다. 특히 최성균이 보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서걱!
갑자기 여자의 손에서 거대한 검이 생겨났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검이었다.
그리고 그 검이 시 서펜트에 닿는 순간.
시 서펜트의 목이 허무하리만치 손쉽게 잘려 나갔다.
메루트스는 시 서펜트에게서 방출된 천기를 황급히 흡수했다. 충만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직 부족하다.
그녀가 고개를 홱 하고 돌려 최성균을 내려다봤다.
‘저 정도면 충분하겠어.’
미소를 머금은 그녀가 날개를 펼친 채 최성균과 팀원들에게 날아갔다.
“방어 대형!”
메루트스의 살의를 느낀 걸까?
최성균이 황급히 소리치며 방패를 꺼내 들었다.
얼이 나가 있던 오성식도 그 소리에는 재빨리 반응해 거대한 방패를 꺼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어떤 충격도 전해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에 성균은 방패 틈 사이를 살짝 엿봤다.
“……?”
성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패 너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탓이었다.
“뭐지?”
“나만 본 거 아니지?”
“예. 저도 봤습니다.”
“근데 어디 갔어, 그 여자?”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리둥절한 최성균과 팀원들이었다.
* * *
메루트스는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맞았군.”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메루트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 있던 서준이 손아귀에 힘을 줬다.
“크윽.”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메루트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카달란의 말이 맞았어.’
어떻게 그가 여기 있단 말인가?
“대답해라.”
벨 것처럼 차가운 표정의 서준이 다시 물었다.
메루트스는 대답 대신 서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물론 모두 무위로 돌아갔지만.
“메루트스.”
“…….”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서준의 눈에서 살기를 느낀 메루트스는 날개를 축 늘어뜨렸다. 늘어진 날개처럼 기세도 사그라졌다.
“…….”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메루트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진심이다!’
정말 마지막 질문이었다.
그는 이 질문을 끝으로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목을 쥐고 있는 이 커다란 손으로 목을 손쉽게 부러뜨리겠지.
다른 이라면 몰라도 그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망설이는 사이.
목이 점점 조여 왔다.
“자, 잠깐!”
“…….”
“천기다.”
“천기.”
계속하라는 듯한 표정에 메루트스는 다시 한번 머뭇거렸다.
“……누설하게 된다면 난 소멸될 거다.”
“누설하지 않아도 소멸될 거다.”
“…….”
“천기.”
다시금 압박하는 서준에 메루트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천계에 천기가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천기가 사라진다는 건 우리에겐 소멸을 의미한다.”
“천기는 왜 사라지고 있는 거지?”
“모른다.”
“몰라?”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크윽. 정말이다…… 정말 모른다. 다만 짐작 가는 건 있다.”
“그게 뭐지?”
“삿된 마음을 품기 시작해서 그런 것 같다.”
“삿된 마음?”
“물론 이것도 추측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것과 지구는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그건…….”
“그건?”
“우연히 지구가 천계와 흡사한 조건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메루트스는 서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무서우리만치 무심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다른 천신장들은 지구에 인공적인 천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지.”
“그 환경이 채널과 게이트?”
“맞아.”
“그럼 각성자들은?”
“그들도.”
메루트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준은 실소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또 다른 진화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천신들이 본인들을 위해 만든 흑막이었던 것이다.
실소하는 서준에 두려움이라도 느낀 걸까?
그녀는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놨다.
“하, 하지만 그 시험은 실패했어.”
“시험?”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묻는 서준에 메루트스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지만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처음에는 각성자라 불리는 자들의 에테르를 천기로 변환시키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건 안 되더군. 흡수는 가능하지만 지구에 천기가 순환하게 할 순 없었다.”
“계속하지.”
“그래서 우린 다른 해법을 찾았다.”
“그게 뭐지?”
“마물.”
“마물?”
“그들이 머금고 있는 마기가 채널과 게이트를 통과하면 천기로 바뀐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마물들을 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
서준이 마계에 소환되기 전까지 마계는 천계에 비해 전력이 밀리는 형국이었다.
각자 찢어져 독자적인 그룹을 이룬 마족들과 달리, 천계의 천신들은 한데 똘똘 뭉쳐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서준의 등장으로 힘의 균형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천계에서 마계의 침공을 두려워해야 할 정도로 기울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인세에 내려가서 마물들을 복제하는 거였지.”
“호문클루스?”
메루트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준은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됐다.
일반적인 마물들은 그의 기운에 압도되어 절로 경배를 한다.
두식이 그 예였다.
하지만 지구의 마물들은 달랐었다. 기운이 다른 탓이었다.
한데 그게 호문클루스였기에 그런 거라면 모든 게 납득이 가는 일이었다.
복제품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거기서 변수가 생겼다.”
“무슨 변수였지?”
“인간들이 빠르게 뭉친 거지.”
“뭉쳐?”
“우린 시스템으로 인간들이 전쟁을 벌일 줄 알았다. 대규모 전쟁. 인간은 원래 그런 종족이지 않나. 지구라고 다를까 싶었지.”
“…….”
“하지만 다르더군. 금방 뭉쳐서 힘을 합친 인간들은 채널과 게이트를 봉인하기 시작했다. 그건 우리로서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서준은 실소했다.
그가 본 천신들은 교만했고 방종스러웠다. 그래서 그들은 본인들이 인간들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만의 대가는 실패였다.
“다른 방법들을 찾으려 했을 것 같은데?”
멈칫!
“지금까지 잘 털어 놨잖나. 이제 와서 망설일 이유가 있나?”
“……인간들이 봉인할 수 없는 채널과 게이트를 만들려고 했다.”
“봉인할 수 없는 게이트?”
“그래. 그거라면 인간들의 표현대로 천기를 양식할 수 있을 테니까.”
“그 과정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은 생각해 봤나?”
“그건 신성의 피다.”
실소한 서준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시험은 어디까지 진행된 건가?”
“일단 어느 정도 성과는 보였다. 시 서펜트가 마기를 소실하지 않은 채로 게이트를 통과했으니까. 남은 건 봉인이지.”
“봉인.”
“인간들이 이전처럼 게이트를 봉인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게 관건이다.”
서준이 침음하자 그의 눈치를 살피던 메루트스가 말했다.
“내가 아는 모든 걸 실토했다. 난 이제 놓아주는 거지?”
“물론.”
메루트스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던 그때.
난데없이 아공간이 생겨났다.
“……!”
서준은 발버둥 치는 메루트스를 완력을 이용해 아공간에 밀어 넣었다.
‘앞으로 물어볼 게 더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보다…….’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흐읍!”
온몸이 굳어 있던 에이스케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상대는 메루트스마저 꼼짝하지 못하게 만든 실력자.
심지어 자신도 지금 미지의 힘에 의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 미지의 힘의 근원은 아마 저자일 터.
“사, 살려 주십시오!”
“그러지.”
서준이 아공간을 열었다.
* * *
영상을 확인하던 이명섭은 침음했다.
“장난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영상의 출처는 최성균의 바디캠이었다.
정지된 화면 속에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시 서펜트가 소환된 상태였다.
그리고 하나 더.
옛 그림 속에 흔히 등장하는 천사.
영상 속에는 천사하면 누구나 떠올릴 만한 새하얀 날개를 가진 여자가 오연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날아왔다.”
“그냥 날아온 게 아니라 시 서펜트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날아왔다니까요.”
“계속 돌려 봐.”
탁!
천사의 형상을 한 여자의 손에서 갑자기 거대한 검이 생겨났다.
한 손으로 들기도 버거워 보이는, 흡사 참마도와 같아 보이는 크기의 검을 여자는 무리없이 휘둘렀다.
그리고 그 검이 시 서펜트에 닿자마자 시 서펜트의 목이 허무하게 잘려 나갔다.
너무도 가볍게, 마치 두부 자르듯이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사라졌다고?”
“네. 보다시피요.”
“흠.”
“분명 살의는 느꼈습니다.”
“확실해?”
“확신합니다. 분명히 살의였어요. 그리고 저렇게 죽자 살자 달려드는데 만나서 반갑다고 하이 파이브 하려고 한 거였겠습니까?”
“사라질 때 뭔가 감지됐다거나 변화가 생긴 건 없었고?”
“예. 귀신이 곡할 노릇처럼 그냥 사라졌어요.”
이명섭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가뜩이나 골치 아픈 일이 산재해 있는데 이런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종의 몬스터라니…….
‘아니, 몬스터가 아니지.’
분명한 천사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인간들에게 적대적이란 면에서는 몬스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젠장.”
“국제기구에 보고해야 되지 않을까요?”
“당연히 해야지. 해야 하는데…….”
이명섭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 모습을 해도 천사의 모습이란 말인가.
“광신도들 또 날뛰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