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6)
6화 마도지존 (2)
태공심법을 수련한지도 어느덧 한 달.
명운은 손가락 반 마디만 한 내단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첫 관문은 넘었다.’
완성된 내단은 부드럽게 움직였다.
‘하단전을 넓히는 데는 태공심법만 한 것이 없다.’
그는 내단을 완성한 뒤, 그것을 반 시진 정도 움직였다.
그러자 단전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것은 하단전에 기가 쌓이고 있다는 신호였다.
명운은 이 쌓인 기를 내력으로 전환시키는 법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것을 몰라 난감했었지.’
그는 내단이 긁어 온 기를 조금씩 단전에 저장했다.
암한지경을 이뤘기 때문일까?
단전에 모이는 기의 양이 적지 않았다.
‘이 정도 속도라면…… 삼 년 안에 중단전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명운이 아장아장 걸음을 내딛는 아기였다면, 지금의 명운은 성큼성큼 큰 걸음을 걷고 있는 청년이었다.
‘하나 방심할 수는 없다.’
그의 형들은 이미 크게 앞서 나가고 있었다.
명운은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딱. 딱. 딱.
세 번의 타경 소리.
‘벌써 인시(03시부터 05시)란 말인가?’
명운은 기운을 거두었다.
“무리하지 않으려 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한번 연공에 들어가면 몇 시진은 기본이었다.
‘집중이 잘되는 것은 좋지만, 수면 시간이 부족할까 걱정이 된다.’
그는 성장기에 접어든 소년이었다.
충분한 수면은 정신을 이완하고, 육체를 성장시키는 데 반드시 필요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는 가부좌를 풀고, 침상에 누웠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일이 생각나는군.’
명운의 스승 왕준은 자는 법도 따로 있다며, 잘 때 역시 마음을 풀지 말라 했다.
그러나 명운은 스승과 생각이 달랐다.
‘잘 때는 잘 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효율이 좋다고 생각했다.
‘잘 때 싸우는 것을 생각하면, 육체와 정신은 제대로 쉬지 못한다.’
물론 언제든 호흡법은 신경을 써야 했다.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시녀들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공자님, 공자님, 기침하실 시간입니다.”
시녀들이 명운을 깨우자 그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물었다.
“몇 시인가?”
침상에 가장 가까이 선 시녀가 대답했다.
“묘시 초(05시)입니다.”
명운이 잠든 것이 인시 초(03시), 그렇다면 그는 겨우 한 시진을 잤을 뿐이었다.
‘겨우 한 시진밖에 자지 않았는데도 몸이 그리 무겁지 않다.’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태공심법의 영향이 클 터였다.
명운은 몸을 부드럽게 일으켰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리도 빨리 들어왔느냐?”
앞서 대답했던 시녀가 이번에도 그의 물음에 답했다.
“공자님, 오늘은 교주님을 뵙는 날입니다.”
명운은 아차 싶었다.
‘이런…… 벌써 날이 그렇게 된 건가?’
천마신교 교주 명증은 두 달에 한 번 성년이 되지 않은 아들들과 식사를 함께했다.
대명궁 사람들은 이 식사를 부면이라 불렀다.
‘하지만 부면이 있는 날이라고 해도 깨우는 것이 너무 이른데 말이야.’
부면은 보통 점심이었다.
시녀가 덧붙이듯 말했다.
“조금 전, 태화전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태화전은 천마신교 교주 명증의 침소가 있는 곳이었다.
“어떤 전갈이더냐?”
“진시 초(07시)까지 태화전에 들라는 전갈입니다.”
명운이 물었다.
“진시 초라, 하면 오늘 부면은 아침인가?”
“그런 듯합니다.”
명운에게는 대략 한 시진의 시간이 있었다.
‘한 시진이면 천천히 준비해도 늦진 않겠구나.’
그가 손을 뻗자 시녀가 세숫물을 가져왔다.
“강 총관을 들라 하라.”
뒤에 서 있던 시녀가 그의 명을 받았다.
“지금 전하겠습니다.”
명운이 씻고 옷을 입는 사이 총관인 강하원이 도착했다.
“속하, 공자님을 뵙니다.”
옷매무새가 삐뚤어진 것을 보면, 오늘 아침 식사는 예정에 없었던 일이 분명했다.
“오늘 부면은 아침이라 합니다.”
강하원이 허리를 펴며 말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일정이 변경된 것 같습니다.”
“짐작 가는 일은 없습니까?”
강하원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그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교주의 일정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뿐이었다.
“평소처럼 할 것입니다.”
강하원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평소처럼 말입니까?”
명운이 두 팔을 위로 올리자 시녀들이 허리띠를 묶었다.
“아직은 얼굴빛을 바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며 힘을 키운다.
이것이 명운의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공자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준비가 끝나자 명운은 강하원과 함께 태화전으로 향했다.
‘이십 년 만에 만나는 아버지인가?’
예전에는 아버지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하나 이제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앞으로 있을 만남 한 번 한 번이 모두 기회였다.
* * *
태화전.
이곳을 처음 건설한 이는 삼대 교주 명천이었다.
그는 호화로움보다는 견실함을, 웅장함보다는 단단함을 강조했다.
그 덕분에 태화전은 화려한 궁전보다는 요새나 성곽에 가까운 모습이 되고 말았다.
명운은 태화전에 올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농성한다면 능히 열 배의 적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두 개의 성문과 세 개의 작은 문을 지나서야 내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태화전의 시녀장 석비연이었다.
명운은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미모와 무공을 모두 지닌 실력자.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지만, 측실이 되는 것만은 허락하지 않은 여인.’
그녀는 교주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세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귀주석가 출신이었던가?’
귀주석가는 교주의 후계자를 얻는 데 실패했지만, 조미연을 앞세워 여전히 태화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명운이 예를 갖추자 석비연이 오른손을 들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녀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삼 층으로 된 화려한 누각이었다.
“강 총관은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좋겠네요.”
석비연의 한마디에 강하원이 허리를 숙였다.
“속하는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명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하나의 식탁과 네 개의 의자.
‘가운데 의자는 아버지의 것.’
나머지 의자는 명정과 명탁, 그리고 명운의 것이었다.
석비연이 명운을 자리로 안내하며 말했다.
“오늘도 공자님께서 가장 먼저 오셨네요?”
명운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막내가 빨리 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어째서 당연할까요?”
“아버님과 형님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불효라 생각합니다.”
석비연은 감이 좋은 여인이었다.
‘뭔가 달라졌어? 맑은 눈빛? 차분한 목소리? 아니면 부드러운 행동?’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우신 것 같군요.”
대명궁 사람들에게 명운의 독서량은 유명했다.
주변 사람들 중에는 명운이 신교의 교리를 연구하는 학예사가 될 것이라 말하는 이도 있었다.
“책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지만, 모든 것이 책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석비연이 한마디 더 하려는 순간, 누각 아래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안내해라!”
명운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잘 알고 있었다.
‘명탁이군.’
여섯째 명탁은 시녀의 안내를 받아 위층으로 올라왔다.
“야! 벌써 온 사람이 있네!”
그는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명운이잖아!”
명탁은 거친 소리를 내려다가 석비연이 곁이 있는 것을 보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어! 시녀장도 와 있었군.”
석비연이 오른손을 뻗으며 말했다.
“공자님의 자리는 이쪽입니다.”
명탁은 석비연의 눈치를 살짝 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명운에게 고개를 돌렸다.
“운, 넌 분명 서숙에서 왔을 텐데 어떻게 나보다 빨리 도착한 것이지?”
명운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일찍 출발했으니까요.”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니고?”
명운은 이것이 괜한 트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에도 발끈했겠지.’
그는 명탁의 트집을 가볍게 흘려 넘겼다.
“서둘러 나오느라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명탁이 식탁을 툭 치며 말끝을 올렸다.
“어쭈, 그래?”
명운은 대꾸하지 않고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석비연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알겠어. 무엇이 달라졌는지.’
이전에는 없고, 지금은 있는 것.
그녀는 그것이 여유라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 저런 여유가 생긴 것일까?’
석비연은 그것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일다경이 지나자 명탁은 지루함을 견딜 수 없다는 듯 발을 굴렀다.
“하, 아버님과 다섯째 형은 늦는 건가?”
그의 말을 들었다는 듯 오공자 명정이 나타났다.
“다들 서두른 모양이구나!”
명탁이 오른손을 내저으며 말을 받았다.
“형보다 늦으면 곤란하죠.”
명정은 목소리가 크고 과장스러운 몸짓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명운은 그가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고 행동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숨기기 위해서지.’
교주의 아들로 대명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운, 잘 지냈느냐?”
명운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명정은 그의 대답을 들은 뒤 입술 끝을 올리며 목소리를 키웠다.
“책? 넌 아직도 공자 왈 맹자 왈이구나!”
이것은 명운은 흔들어 보기 위함이었다.
하나 명운은 흔들리지 않았다.
“신교의 성전도 읽고 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명탁이 비웃듯 말했다.
“막내라 속이 편한 모양이구나. 무공 연마는 하지 않고 책이나 읽다니.”
명운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받았다.
“속이 편한 것이 아니라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입니다.”
명정은 그의 말에 뼈가 있음을 깨달았다.
‘강단이 있는 한마디군. 운이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나?’
그가 알고 있는 명운은 나약한 소년 그 자체였다.
“교주님께서 오십니다.”
석비연의 한마디에 세 공자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님께 인사 올립니다.”
천마신교 교주 명증.
그는 칠십이 넘은 노인이었지만, 고강한 내공 덕분에 서른 살 남짓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또 서 있구나.”
그는 소탈한 아버지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명운은 알고 있었다.
저 얼굴이 모든 것이 아님을.
‘독하지 않고서는 신교의 교주가 될 수 없다. 아니, 이곳은 독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명증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앉아라. 언제까지 서 있을 것이냐?”
그의 말에 세 아들이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명증은 다섯째 명정부터 살폈다.
“정, 수련에 진도가 있는 모양이구나.”
명정이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아직 미흡할 뿐입니다.”
조금 전까지 보여 주었던 과장된 목소리와 동작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명운은 그가 긴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이런 것까지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야.’
명증이 다독이듯 말했다.
“열심히 한다면 뜻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명정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명증은 명정의 노력은 높이 평가했으나 기량은 그리 높게 보지 않았다.
‘잘 다듬는다면 십이대(十二隊) 중 하나는 맡을 수 있겠지. 하지만 대업을 이룰 재목은 아니다.’
다음은 여섯째 명탁이었다.
“탁, 길은 정했느냐?”
명탁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정했습니다.”
명증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어느 길로 가려 하느냐?”
“사대호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사대호법은 고강한 무공으로 신교를 지키고, 교주의 명과 신교의 신법을 집행했다.
“무공에 뜻을 둔 것이로구나.”
명탁이 주먹을 꾹 쥔 채로 대답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명운은 그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명탁도 긴장하고 있다. 아버지와 만남이 이렇게 무거운 자리였단 말인가?’
그가 기억하고 있는 부면과 오늘의 부면은 확실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