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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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九章 독보(獨步) (1)
검왕은 혼란스러웠다.
그는 누미가 자신을 막아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자리에 촌장이 나타날 줄 알았다.
그는 비밀리에 움직이지 않았다.
무당산에서 대치중인 무인들에게는 철저하게 비밀이지만, 촌장과 손을 잡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하오문이나 검성에서 보면 환히 노출된 행동이었다.
검왕이 혈루마옥 녹천 무인들을 노린다는 사실은 혈루마옥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비밀이다.
그렇기에 녹천 무인들이 그를 마중 나온 것이다.
일부는 죽어서 흔적을 남기고, 일부는 죽어서 확인을 하고, 나머지는 결단을 내고자 한다.
이 모든 것이 검왕이 일으킨 행보를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당연히 촌장도 이번 행보를 알 것이다.
촌장에게 선택 기회가 주어졌다.
녹천을 죽이겠느냐, 누미를 죽이겠느냐, 혈루마옥의 해독제인 혈오를 죽이겠는가.
촌장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곳에서 최후 결전은 촌장과 치를 것이다. 기련산에서 가리지 못한 승부를 벌인다. 이번에도 자신이 질 것이 뻔하지만…… 이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
촌장이 나타날 것을 확신한다.
헌데…… 누미라니!
“어떻게?”
“뭐가?”
“어떻게 네가……?”
“검왕, 그렇게 안 봤는데 답답한 사람이구나? 할 말이 있으면 똑 부러지게 해야지. 뭐가 궁금한 건데?”
“놀랍군.”
“뭐가 놀랐다는 거야?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알고 왔을 테니, 그건 놀라운 게 아니고…… 아! 내 무공?”
“…….”
“검왕은 참 천재야. 혈루마옥에서 보기에는 혈영마공도 그리 특출난 무공은 아니거든. 그런 무공으로 혈루마옥 사람들을 펑펑 자빠트리고 있잖아.”
“내 무공이 보이나?”
검왕의 물음은 의미심장했다.
물음의 의미를 아는 사람만 대답할 수 있는 물음이다.
“풋!”
누미는 웃는 듯 비웃는 듯 묘한 웃음을 흘렸다.
“언제 제게 적벽검문 무공을 제대로 가르쳐 주기나 했어? 내 사부가 누군지 알지? 그런 무공으로 뭘 가르쳐, 가르치긴. 적벽검문 무공은 잘 모르지만…… 대답하지, 보여.”
“무공이 보인다?”
“보여.”
“그럼 파해도 간단하게 하겠군.”
“그건 금방 시험해 볼 거니까 물을 필요도 없는 말이고…… 안 그래? 어차피 이곳에 올 때는 날 죽일 생각이었잖아.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끄덕끄덕! 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면에 드러난 무공은 혈영마공이다. 하지만 내면에 깃든 무공은 유기(有氣)다.
유기를 볼 수 있느냐?
검왕은 지금도 유기를 드러내고 있다. 혈영마공은 펼치지 않았지만 유기는 은은히 흐른다.
이것을 볼 수 있다면 촌장의 유기도 볼 것이다.
보이느냐 하는 간단한 질문, 유기를 볼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누미는 유기를 본다.
“놀랍군. 혈루마옥에 들어갈 때만 해도 어린 소녀에 불과했는데.”
“이젠 애 엄마야.”
“…….”
“검왕, 참 이기적인 사람이야. 자신은 하루가 다르게 무공이 쭉쭉 늘면서 다른 사람은 그러면 안 되나?”
누미가 들고 있는 검을 어깨에 얹었다.
“내가 왜 말을 많이 하는지 알아?”
“…….”
“나랑 살자. 나 검왕 좋아했잖아. 지금도 좋아해.”
“누미.”
“제길! 안 된다는 말을 들은 것보다 더 기분 나쁘네. 됐어. 그럼 이제부터 내 낭군을 죽인 복수만 하면 되는 건가? 난 무림 공적이니 뭐니 하는 건 모르니까.”
“누미, 미안하다.”
“뭐가?”
“네게는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스읏!
검왕이 검을 들었다.
혈영마공도 피어났다. 전신이 붉게 변하고, 검에도 은은하게 붉은 기운이 어린다.
“좋아. 사과는 받을게. 내 인생 개판으로 만들어 놓은 게 적벽검문이지만 또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으니까. 적벽검문에서 평생 수련한들 이만큼 강해지겠어?”
누미의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다.
츠으으읏!
검에서 은은한 서기(瑞氣)가 피어난다.
유기다. 서기의 어림이 자신보다 훨씬 부드럽다. 자신의 유기는 투박해 보이는데, 누미의 유기는 매우 안정되고 고요하다. 서기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촌장과 버금가는 무공이다.
요미검체…… 하나를 배우면 백, 천을 깨우친다는 성골(聖骨).
누미는 혈루마옥의 모든 무공을 흡수해버렸다. 녹천 무공뿐만이 아니라 증평 무공까지. 거기에 혈오를 통해서 촌장의 유기까지 파악해냈다.
유기는 수련한다고 터득되는 게 아니다.
내공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피어나는 기운이다.
“잘 봐. 이건 내 마지막 호의야.”
쒜에에엑!
누미가 검을 쏘아왔다.
“웃!”
검왕은 즉시 천축 무공인 요마랍기를 떨쳐냈다.
파르륵!
전신이 떨린다. 검이 떨린다. 들고 있는 검을 가려준다. 검은 보이는데 실체가 파악되지 않는다.
“어쩌나, 이제 그 수는 안 돼!”
파파파팟! 파파파팟!
누미는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검세를 떨쳐냈다. 일초에서 이초로, 이초에서 삼초로, 삼초에서 사초로…… 한순간도 멈춤이 없이 유연하게 흐른다.
그 말은 검왕이 검세를 억제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누미가 검세를 줄줄이 풀어내는 동안, 검왕은 연신 뒤로 물러섰다는 말이다.
여인이 펼치는 검공이 아니다.
누미의 검 속에는 뜨거운 열양지기가 내포되어 있다. 양강(陽綱) 무공의 정수를 보는 듯하다.
이 무공, 본 적이 있다.
‘증평 무공!’
증평주가 이런 검공을 사용했다.
그렇다. 증평 무공인 화혈역심공 구수 오십사초다.
“훅!”
검왕은 이십초를 채 받지 못하고 헛바람을 토해냈다.
증평주가 펼친 화혈역심공과는 질적으로 다른 무공이다. 누미는 어느새 증평주를 넘어섰다.
“뭐야, 벌써 넘어가는 거야?”
누미가 검세를 늦췄다.
“아!”
검왕은 탄식을 쏟아냈다.
누미의 무공은 촌장에 비해서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그녀가 어떻게 이런 무공을 터득했을까? 분명히 정상적인 방법으로 터득한 것은 아니다.
“이걸로는 안 되겠다. 너무 싱거워.”
누미가 검세를 거뒀다.
무인에게 이만한 치욕이 있을까? 화혈역심공을 계속 펼치면 받지 못할 테니 검을 거둔다?
“내 낭군의 무공인데, 이건 받을 수 있으려나?”
쒜에에엑!
누미가 다시 지쳐왔다.
헌데…… 누미가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서 갑자기 훅! 꺼져버렸다. 안개처럼.
‘월음천라보!’
화천이 사용하던 신법이다. 허나 누미가 월음천라보를 펼치자 전혀 다른 신법이 되었다.
쒜엣! 퍽!
짧은 격타음이 허리에서 피어났다.
검왕은 휘청거렸다. 손이 저절로 옆구리를 향했다. 그리고 붉은 핏물을 흠뻑 묻혔다.
“뭐야, 이 수는 너무 뻔한 건데 이것도 못 받는 거야? 검왕이 뭐 이래?”
“후욱!”
검왕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누미는 혈루마옥 무공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다.
혈루마옥 무공이 그녀다. 그녀가 무공이다. 그녀의 움직임이 무공이다. 너무 완벽해서 혼연일체가 되었다.
츠으으읏!
검왕은 혈영마공을 극성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펼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공부…… 잔양화소(殘陽火燒)까지 끌어냈다.
내공을 불사른다. 원정도 끌어낸다. 세맥에 포함되어 있는 잔기까지 모두 끌어낸다.
이 한 판을 끝내고 나면 텅 빈 껍데기만 남는다.
이번 일초를 실패하면 길 가는 어린애도 이기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만다.
퍼엉!
주변 공기가 터져나간다.
잔양화소를 제대로 펼치면 방원 십 장은 초토화된다. 헌데 검왕은 그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일으킨 잔양화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질식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누미는 웃었다.
“검왕이 모험을 하네?”
그녀는 잔양화소를 안다. 그렇기에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혈루마옥에 갔을 때…… 그때, 임신했을 때거든. 아이를 가졌는데 누구에게 의지할 사람이 있어야지. 참 외로웠어. 헌데 그때, 날 친딸처럼 보살펴 준 사람이 있어. 아! 물론 그게 그 사람 할 일이니까 그랬지만 그래도 고마웠거든.”
검왕은 누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듣고 있을 짬이 없었다. 전신 진기를 검에 모으려면 올곧이 집중해야 한다. 누미는 지금 혼잣말을 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혈루마옥에서는 그 사람을 석화선생이라고 불렀어. 혈루마옥 사람들은 웬만한 의술은 모두 알고 있는데, 석화선생은 그중에서도 으뜸이었거든. 그 사람이 내 아이도 받아주었고.”
스읏!
누미가 검을 두 손으로 잡았다.
상반신을 옆으로 돌리고, 검신을 하늘로 향하게 곧추세웠다.
“이건 그 사람 무공이야. 동영 검술인데, 냉전류(冷電流)라고. 무척 빨라.”
쉐에엣!
검왕은 고함도 지르지 않고 고요하게 급습했다.
모아진 진기를 정심하게 쏟아낸다. 일점이라도 허튼 곳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한다. 오로지 누미에게 집중되도록 한다. 모든 것을 일시에 터트린다.
“안 된다니까!”
누미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검을 쏘아왔다.
냉전류, 번개 같다. 일섬이 홱 긋고 지나간다. 검왕이 잔양화소를 터트리기도 전에 이미 심장을 가른다.
펙! 푸와와앗!
검왕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누미는 쓰러진 검왕을 잠시 쳐다봤다. 애잔한 눈빛으로. 하지만 그 눈빛은 이내 사라졌다.
“누산, 선택해. 모든 걸 줄 거야?”
“허허!”
“주려면 따라와. 너희는…… 귀찮다. 가고 싶은 대로 가. 말하기도 귀찮아.”
누미가 손을 휘휘 저었다.
누산은 누미를 쫓아갔다.
배알도 없는 사람처럼, 아니면 강자를 쫓는 불나방인 듯, 그것도 아니면 적벽검문의 요원을 이룰 다른 비책이라도 있는 듯…… 누미에게 모욕을 받으면서도 쫓아갔다.
유화아는 검왕 곁에 남았다.
누미는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녀 입장에서는 건드릴 가치도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언제든 손만 들어도 죽일 수 있는 자는 위협거리가 안 된다.
음악삼귀도 남았다.
그들은 쓰러진 검왕 곁에 모였다.
“전에 검왕이 화천에게 이 수를 썼는데…… 그때도 검왕은 죽었거든. 헌데 혈천혈도가 살려냈어.”
“혈천성으로 데려가 볼까?”
음악삼귀는 무당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사대전을 알지 못했다.
혈천성주는 무당산에 있다. 금방이라도 무당파를 짓밟고 싶어한다. 만약 검왕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장 정사대전을 벌일 것이다.
유화아는 조용히 검왕을 안아 일으켰다.
“조용히 하고…… 길을 열어요.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야 돼요.”
“왜? 무슨 수가 있어?”
유화아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검왕, 아직 안 죽었어요. 마지막 순간에 잔양화소로 전신 혈맥을 보호했어요.”
그녀는 검왕의 상태를 정확하게 꼬집어냈다.
검왕은 누미와 결전을 벌이는 대신, 자신을 보호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한 것이다.
“그럼 검왕이…….”
“쉿! 길이나 열어요.”
유화아는 검왕을 엎고 빠르게 신형을 쏘아냈다.
“한 번이야. 한 번만 살려주는 거야.”
누미가 쓴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유화아를 놓아준 것…… 그녀가 아니면 검왕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검왕이 잔양화소로 심맥을 보호했지만, 그녀의 검은 매섭다.
솔직히 검왕이 살아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아니, 살아날 게다. 검왕이니까.
“다음에는 죽어. 그러니까 내 눈에 띄지 마.”
누미가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