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196
196
第四十章 정파(正破) (1)
스스슷! 사사사삿!
지극히 은밀한 움직임이 일어난다.
하늘에는 별빛 한 점 없다. 온 세상이 칠흑처럼 캄캄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 마을은 유난히 밤이 길고 어둡다.
스슷!
또 움직였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도 드러나지 않는 작은 움직임이다.
스스슷! 사사사사삿!
이번에는 아주 미세한 소리가 울렸다.
역시 온 신경을 귀에 집중시키고 있어야만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소리다. 순간,
확! 화아아아악!
횃불 수십 개가 찰나 간에 밝혀졌다.
“들켰다! 도주해!”
“하하하! 가긴 어딜 가나! 여기서 죽엇! 공격!”
쒜에에엑! 쒜에에에엣!
급박한 외침들이 오가는가 싶더니 이내 검은 하늘에서 비 오듯 화살이 쏟아졌다.
“컥! 제길!”
“크윽!”
야밤을 틈 타서 밀행을 하던 자들이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어서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시작일 뿐이다.
화살이 쏟아져 내린 직후, 검은 하늘을 찢어발기는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쒜에에에엣! 쒜에에엑!
무엇인가가 밤하늘을 무척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허공을 찢어발기면서 날아간다.
퍼퍼퍼퍼퍽! 쒜에엣! 퍼퍼퍼퍼퍽!
횃불 켜진 곳이 난타되었다.
횃불이 화살에 맞아 터져나갔다. 불꽃이 분분히 피어났다. 횃불이 켜진 곳을 중심으로 방원 일이 장은 화살에 벌집이 되었다.
그러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이런 일, 이미 예상했다. 횃불이 켜지면, 켜진 횃불이 공격 대상이 된다.
한두 번 경험한 일이 아니다.
실체가 보이면 실체를 공격하고, 실체가 보이지 않으면 적이 있을 만한 곳을 공격한다.
“하하하! 얼마든지 넘어와라! 꼬치를 만들어 줄 테니.”
“키키킥! 두더지처럼 숨어있으니 좋냐? 기다려. 곧 잘디잘게 포를 떠줄 테니까.”
어둠 속에서 욕설이 오고 갔다.
무당산 초입에 있는 작은 다리.
대여섯 걸음이면 건널 수 있는 작은 다리가 정과 마의 경계선이다.
나라와 나라의 구분처럼, 앞집과 뒷집을 가르는 담장처럼 명확한 경계선이 형성되었다.
작은 다리를 기점으로 동에서 서에 이르는 줄이 그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다. 암묵적으로 형성된 임시 경계선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선이다.
마인은 경계선 너머로 진입하지 않는다.
정도인들 역시 경계선 너머로 발길을 옮기지 않는다.
경계선 너머로 들어선다는 것은 그쪽 사람들과 언제든 드잡이질을 하겠다는 의사표시다.
싸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계선을 따라서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진다. 사람이 넘어오면 즉각 추살하거나 생포한다. 건너편에 사람이 보이면 화살을 날려 죽인다.
경계선 너머에서 오가는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죽여도 무방한 사람들이다.
정사대전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다섯 명이 말을 타고 경계선을 따라간다.
활을 든 사내 두 명이 앞에 서고, 남여가 나란히 뒤에 섰으며, 맨 마지막에 장창을 든 사람이 뒤따랐다.
“좌상(左上).”
여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자 왼쪽에 있던 궁수가 좌측 상방을 향해 활을 쏘았다.
쒜에에엑! 퍽!
화살이 날아가고 묵직한 타격음이 울렸다.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누가 죽는다는 느낌도 없었다. 실제로 그는 사람을 쏘지 않았다.
“우정(右正).”
이번에는 우측에서 앞서 나가던 궁수가 우측 정중앙을 향해 활을 쏘았다.
쒜에에엑! 퍽!
이번에도 둔탁한 울림이 일어났다.
저쪽 대응은 없다. 좌측에서도, 우측에서도 일절 대응하지 않는다. 아니, 대응하지 못한다.
“저 새끼들! 음악오귀 맞지?”
“두 놈이 없는데?”
“음악오귀 맞아. 음악오귀 저 새끼들이…….”
“그런데 이 화살, 저 새끼들이 쏜 거 맞아? 사술(邪術)을 부린 건 아니지?”
“음! 검왕이 몇 수 가르쳐줬나 보지.”
“부럽네. 저 새끼들.”
마인들이 음악오귀를 알아봤다.
음악오귀…… 마인들 세상에서는 발밑에 낀 때 정도 되는 인물들이었다.
행실도 더럽고, 마인다운 긍지도 없고, 밑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남이 먹다 흘린 부스러기나 주워 먹는 인간들이다. 그것도 눈치를 슬슬 보면서.
그랬던 자들인데…… 검왕 앞에서 검왕을 호위한다.
그들이 경고성 화살을 날려온다.
화살은 바위를 뚫고 깊이 박힌다. 철시(鐵矢)도 아니고 평범한 화살인데 빼낼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박힌다.
상당히 위협적인 화살이다.
속도도 무척 빠르다. 화살을 쏘는 모습만 봤는데, 어느새 코앞으로 날아와 푹 박힌다.
이런 화살은 막기 힘들다.
설혹 막을 수 있다고 해도 검왕을 향해 화살을 날릴 수는 없다. 검왕이 정과 마의 경계선을 타고 있지만,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헌데 검왕은 왜 정도와 마도, 양쪽 전부에다가 화살을 쏘는 것일까? 마인들은 검왕을 돕고자 달려온 것이 아닌가. 허니 정도라는 작자들에게만 쏘아야 마땅하거늘.
“저 여자, 막수선자의 제가가 아닌가.”
“맞아. 유가장 제삼주 유가청의 여식이야.”
“그런데 왜 검왕과……?”
“유가청이 검왕과 어울린다는 소문이 전부터 있었긴 한데.”
“그거야 검왕이 검성에 있었을 때 아니오.”
“음! 이해할 수 없는 일이군.”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저자들이 왜 저쪽에다가 화살을 쏘느냐는 거요. 우리에게 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같은 편에다가 쏘는 것은……?”
“정사의 경계선으로 움직이는 것도 이상하외다.”
정도 역시 눈살만 찌푸렸다.
검왕에게 화살을 날리고 싶다. 화살 한 무더기를 쏘아내면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쏘지 못한다. 그에게 쏘았다가 잡지 못하는 날에는 바로 반격을 받을 것이고, 허면 바로 이 자리에서 정사대전의 서막이 오른다.
싸움은 언제든 일어날 것이다.
싸움을 마다하지도 않는다. 서로가 공멸하는 한이 있어도 마인들을 쓸어낼 수 있다면 값진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인다.
언제 어느 때든 싸울 준비는 되어 있다. 다만, 그 싸움을 검왕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것은 부담스럽다. 십마를 간단히 제압해 버린 강자이지 않은가.
“여기서 쉬자.”
검왕이 개울가에 자리를 잡았다.
정사 무인들의 경계선이 된 곳, 이름 없는 나무다리 앞이다.
밤낮으로 화살이 날아다니고, 죽음이 있는 곳이다. 아직도 개울가 바닥에는 붉은 피가 흥건하다.
“집중 표적되기 딱 좋은 곳이네요.”
유화아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물론 공격해 올 사람은 없다.
검성 시절의 검왕은 정도 무림의 신성(新星)이었다. 허나 마인으로 변모했다. 마도의 주구가 되어서 소림사를 멸문시켰다. 그 후, 상황이 역전되었다. 검왕은 마도의 횃불이 되었고, 정도 무림에는 재앙으로 다가왔다.
마도 무림은 검왕이라는 기치 아래 모여들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검왕 앞에 나서지 못한다.
검왕은 십마조차도 요절낸다.
정도 무림 역시 검왕 앞에 나서지 못한다.
검왕은 정사 구분을 두지 않는다. 자신에게 반하면 치고, 반하지 않으면 내버려둔다. 그가 천하에 다시없는 악인에 별 볼 일 없는 푼수들이라고 해도.
대표적인 예가 음악오귀와 유화아다.
그들은 검왕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특히 음악오귀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 검왕은 외로운 늑대다.
무리에서 홀로 떨어져서 방황하는 늑대, 앞을 가로막는 것은 곰이든 호랑이든 무조건 물고 보는 난폭자.
모두들 검왕이 어떻게 행동할지 주의 깊게 살펴보는 중이다.
음악삼귀가 중얼거렸다.
“나 같으면 야밤에 칼질이라도 한 번 할 텐데.”
순간 모두들 음악귀를 쳐다봤다.
음악삼귀가 한 말은 틀리지 않다. 칠흑 같은 밤이 오면 상대를 식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 밤에 직접 공격해 오는 것도 아니고 화살을 날린다면 분간해 낼 방법이 없다. 어느 쪽에서 화살을 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정도 쪽에서 쐈는지 마도 쪽에서 쐈는지.
물론 귀 기울여서 소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는 일이겠지만, 서로 안 했다고 발뺌을 하면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저들은 자신들이 안 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어김없이 공격해 올 것이다.
“쯧! 편히 쉴 수 있는 게 아니었네.”
“밤새도록 콩 볶는 소리에 시달리겠구만.”
음악오귀가 툴툴거리면서 야영 준비를 했다.
쒜에엑! 타타타타탁! 타타타탁!
화살이 사방에서 날아온다.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하다못해 낮에 걸어왔던 뒤쪽 길에서도 날아온다.
저들은 화살로 검왕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검왕의 무공이 소문처럼 하늘에 닿았는지,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검왕이 마도 진영 한복판에 있다면 이런 시험은 하지 못한다. 또 정도 진영 쪽에 있어도 시험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가 정사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화살을 날린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검왕이 유도한 것이기도 하다.
“저것들 정말!”
음악사귀가 중얼거렸다.
“저기 있었다면 상당히 피곤했겠는데…….”
음악오귀도 한 마디 했다.
그들은 야영 장소에 있지 않았다. 밤이 어둑해지자 슬그머니 빠져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정사 무인들은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음악오귀와 유화아의 무공이 그들을 지켜보는 무인들보다 몇 수 위에 있다. 최소한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움직일 정도의 무공은 지니고 있다.
“언제까지 쏘아댈 거지?”
“밤새도록 쏘겠지, 뭐. 대응을 하지 않고 있잖아.”
삼귀가 볼멘 소리를 냈다.
화살이 날아오면 불이라도 밝혀야 한다. 이쪽저쪽을 향해 고함이라도 질러야 한다. 그들을 직접 치지 않겠다면 겁박이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화살을 쏘지 않는다.
검왕은 일절 대응하지 않는다. 그러니 저들이 계속 화살을 쏘고 있는 것이다.
“너무 심한데.”
유화아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검왕 명령을 쫓아서 야영지를 빠져나왔지만…… 그곳에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다. 검왕이 있다. 검왕이 화살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존재한다.
도대체 검왕 생각은 무엇인가.
동녘에서 해가 밝아왔다.
화살은 거의 한 시진 동안 쏟아졌다. 그리고 그 후에는 아주 가끔 한두 대씩 날아갔다.
정사 무인들도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게다.
그 정도 화살이면 죽을 사람이면 이미 죽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정도 화살로도 죽이지 못한다면 그보다 두 배, 세 배 더 퍼부어도 죽일 수 없다고.
날이 밝자, 계곡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
유화아가 입을 쩍 벌렸다.
계곡은 그야말로 화살 천지다. 화살이 너무 많이 박혀 있어서 발 디딜 틈이 없다.
음악삼귀가 설치한 천막은 흔적도 없이 뭉개졌다.
계곡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이 말살되었다. 개구리, 두꺼비는 물론이고 피라미조차 몰살당했다. 작은 피라미가 큰 화살에 맞아 둥둥 떠 있는 기이한 모습이다.
그때, 천막 한 조각을 들치며 한 인형이 일어섰다.
검왕이다.
검왕은 천막을 들추고 일어서면서 옷을 툭툭 털었다.
화살들이 나뭇조각처럼 떨어져 내렸다. 화살이 아니라 작은 나뭇가지에 불과한 듯 보였다.
“아함!”
검왕은 길게 기지개까지 켰다.
“훗!”
유화아는 그런 검왕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역시 검왕이다. 검왕이 이런 화살 따위에 죽을 리 없다. 헌데 검왕은 왜 일부러 이런 수고를 한 것일까? 어쨌든 검왕이 무사하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