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74)
32. 정면 돌파 (6)
조금 전.
강남의 명문인 대유 고등학교에,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나타났다.
웅성웅성.
“쟤 뭐야?”
“우리 학교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구 찾으러 왔나.”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였다.
너무나도 명백히 다른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데, 익숙하게 복도를 지나가는 모양새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렇게 행렬이 형성되었다. 앞서 걸어가는 인물이 대체 어디로 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대유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말없이 뒤를 쫓았다.
그러다.
목적지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의문의 인물은 거침없이 문을 열더니,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건 말건 내부를 훑어보았다.
“저기 있네.”
저벅저벅.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창 다른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있던 한 학생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에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그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학교의 학생이 본인을 빤히 바라보는 것도 그렇고, 복도에 몰려든 친구들의 모습도 그렇고. 그래도 괜히 겁먹은 모습을 보이기 싫어, 그는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뚝.
바로 앞.
의문의 인물, 김현성이 걸음을 멈추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네가 이청수야?”
“너 누군데? 누군데 날…… 악!”
짜악-!
뺨을 날렸다.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 번 더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김현성은, 이청수가 분노한 얼굴로 반격을 시도하자 그것을 흘려보내고는 한 번 더 뺨을 날려 버렸다. 다른 친구들은 감히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친구를 도와주겠답시고 나서려던 그들은, 곧이어 벌어진 광경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누구냐고?”
훅.
콰당!
다리를 걸었다.
이청수가 볼품없이 넘어지자, 김현성은 그때부터 무차별적으로 뺨을 날리기 시작했다.
짜악-!
“네 아버지에게 말해.”
짜악, 짜악-!
“김현성이, 널 찾아왔다고.”
한 방, 한 방.
얼굴이 엉망으로 변했다.
이 대유 고등학교에서 이청수는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건만, 금방 피로 물들어 버리는 얼굴에 복도에 몰려든 학생들은 겁에 질렸다. 그들은 황급히 뛰어가 선생님을 불렀다. 이 무지막지한 폭력의 현장은, 일개 학생이 아닌 선생님을 불러야만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툭.
털썩.
이청수를 놓아주었다.
정신을 잃은 그를 내버려 두고는, 김현성은 피로 물든 얼굴로 대유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내가 왜 이청수를 때렸는지 궁금해?”
히죽, 웃음을 보였다.
* * *
이번 일.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애지중지 키워 온 늦둥이가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에, 이경철은 곧바로 윤현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
분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의 상태를 확인한 이경철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진정시키지 못했다.
[골든 서클의 보안은 완벽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애를 그렇게 만든 녀석의 정체가 바로 김현성입니다. 오피스텔 사건으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문제를 수습하느라고 우리 모두를 고생시켰던 그 녀석. 그놈이 대체 어떻게 우리 애를 찾아간 겁니까? 국회의원 이경철이 골든 서클에 소속되었다는 것을 모르고서야, 감히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그의 분노.
매우 타당했다.
국회의원이 골든 서클과 같은 집단에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루머만으로도 정치 인생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임철형과는 달랐다. 직접 찾아오지도 않고, 타당한 이유로 분노하고. 윤현민으로서는 이경철의 분노를 받아들이고 달래 주어야 하건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그 입. 다무세요.”
[지금 뭐라고? 감히 내게…….]“입 다물라고.”
이경철?
그가 거물급 정치인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태양 그룹의 돈을 받아먹고 지금의 자리에 오른 그는, 결국에 윤현민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지금은 그의 분노를 받아 줄 수가 없었다. 김현성의 행보가, 윤현민의 심기를 제대로 자극했다.
“임철형이나 너나. 판단 똑바로 해. 그동안 내 돈을 아무런 위험 없이 받아 처먹어 놓고, 지금 와서 모든 게 내 탓인 것처럼 굴지 말라고. 너도 잘 알잖아. 우리는 모두 운명 공동체라는 걸. 갑을(甲乙) 관계가 아니라, 한쪽이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는 관계가 아니라. 골든 서클에 문제가 생겼으면 똑같이 책임을 떠안고 고민해야 하는 그런 관계라고. 알겠어? 앞으로도 정치인으로서 계속 살아남고 싶으면,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명심해.”
전화기 너머.
정적이 내려앉았다.
한참을 대답하지 않던 이경철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그도 인정했다.
윤현민은 똑똑했다.
십수 년간 골든 서클을 운영하면서, 이제는 윤현민을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받아 버렸다. 운명 공동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윤현민이 골든 서클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권력자들이 먼저 나서서 감추어야 하는 치부가 되었고,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같이 책임을 떠안아야 했다.
딱 거기까지.
선을 긋고, 윤현민은 당근을 제시했다.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김현성이 이렇게까지 발악하는 이유는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상황에 발악하는 것일 뿐입니다. 곧 김현성은 처리될 겁니다.”
[……믿겠습니다.]“예. 늘 그렇듯, 믿으시면 됩니다.”
툭.
통화를 끊었다.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임철형, 이경철 등 천상의 멤버를 들쑤신 것은 유례가 없는 사건이지만, 덕분에 이번 사건을 빌미로 내부의 권력 체계를 재정비할 수 있었다. 결국에는 자신이 주도권을 틀어쥐고 있음을. 이번 일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골든 서클에 소속된 사람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돌아설 수는 없다.
이 거대한 세력이 주는 이익을, 그리고 이미 틀어쥔 목줄에.
늙어 버린 너구리들은 타협하는 것만이 가장 편리한 생존 방법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비서를 불렀다.
“이번 사건을 빌미로 김현성을 반드시 퇴학시켜. 이왕이면, 퇴학생이 죽는 게 보기가 좋을 테니까.”
“……그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시선이 곱지 않았다.
문제가 반복되는 지금, 문제라는 단어가 매우 거슬렸다.
비서가 말했다.
“대성 미래 고등학교에 확인한 결과. 김현성은 이미 자퇴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 * *
그 시각.
김현성은 조사실에 있었다.
경찰관은 김현성을 보며 이죽거렸다.
“웬일이래. 평소에는 경찰 따위는 무섭지 않은 것처럼 지껄이더니, 이번에는 묵비권(默祕權)을 행사하겠다?”
조사받는 내내.
김현성은 입을 다물었다.
변호사라도 부르면 이해가 되는 행동일 텐데, 김현성은 따로 연락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경찰관은 여유로웠다.
어차피 증거가 명백했다.
박민철 사건은 일방적인 가해자로 만들기 위해 조작이 필요했지만, 이번 사건은 대유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일방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특히 이청수의 아버지가 국회의원 이경철이라는 사실에, 경찰들은 더욱 강압적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때였다.
경찰관이 누군가의 연락을 받더니, 김현성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받아.”
예상했다는 듯이.
핸드폰을 받았다.
그러자 핸드폰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 대체 무슨 생각이야?]“무슨 생각이긴. 보이는 그대로야.”
[네가 이경철 국회의원을 어떻게 특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리한 상황에 발악하듯 그의 아들을 건드린 거겠지. 왜. 내분이라도 일으키려고? 참 어리석어. 그따위 방법으로, 십수 년간 명맥을 이어 온 권력 체계를 무너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결국에 전체적으로 이 그림을 내려다보면, 넌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한데. 김현성. 넌 어떻게든 학교에 남았어야 했어.]이죽거렸다.
김현성을 대놓고 조롱했다.
[너도 알고 있었잖아. 우리가 그동안 널 건드리지 못한 이유는, 건드릴 수 없었던 게 아니라 겨우 너 따위를 처리하기 위해 위험 부담을 감수하기 싫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스스로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던졌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네 기사는 볼품없이 끝나고 말겠지.]김현성의 자퇴는 의외일 뿐, 단언컨대 최악의 자충수였다.
사실상 끝났다.
김현성의 팔다리를 자르고, 배경을 없애고, 궁지로 몰아넣은 이유는 학생의 신분을 벗겨 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스스로 자퇴하겠다니. 이 얼마나 우습고 어리석은 선택이란 말인가. 윤현민은 결국에 본인이 상대하던 존재가, 이토록 한 치 앞을 모르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마지막 통화일 것이다.
윤현민은 이 통화를 끝으로 김현성을 배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미안한데. 넌 지금은 날 어찌하지 못해.”
[계획이 있다는 건가.]“당연하잖아. 그런 대비도 없이 자퇴하면 죽임을 당할 게 뻔한데.”
슥.
경찰관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웃었다.
“지금 당장 정한일보의 기사를 확인해 봐. 아주 재밌는 이야기가 실려 있을 테니까.”
* * *
기사는 헤드라인부터 자극적이었다.
[이 세상에는 신분 제도가 존재한다.]언론사는 정한일보.
기사를 작성한 인물은 방현태였다.
[어느 날, 한 통의 제보를 받았다. 대유 고등학교. 강남의 명문으로 유명한 그곳이, 사실상 이경철 국회의원의 셋째 아들인 이청수의 세상이라는 제보. 진실을 확인한 결과 충격적이었다. 이청수는 그야말로 학교에서 특별한 취급을 받았다. 학교에 지각해도, 마음대로 나가지 않아도, 동급생을 괴롭혀도. 면죄부가 적용되는 사람처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특히 작년에는 이청수에게 괴롭힘을 당한 학생이 차도에 뛰어든 사건이 있었는데도, 학교에서는 이를 문제 삼기는커녕 징계위원회도 진행되지 않았다. 이는 이 세상에. 아직도 신분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청수의 아버지가 이경철 국회의원이 아니었다면, 과연 학교에서는 이만한 권력과 자유를 부여했을까?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신랄한 비난 기사였다.
이경철.
이청수.
두 인물의 실명을 거론하며, 대담하게 비난을 이어 나갔다.
[최근 들어 학교 폭력이 사회적인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XX 오피스텔 사건처럼, 권력자의 자식이라고 해서 예외를 둔다면 영원히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피해자를 대표해 대유 고등학교에 묻는다. 이청수는. 대체 왜 처벌받지 않는가. 만약 결백을 주장한다면, 다음 기사에는 구체적으로 이청수의 죄를 증명할 증거를 다룰 것이다.]저격 기사였다.
정한일보는 그동안 과감한 행보로 명성을 떨쳤지만, 이토록 대놓고 ‘한 사람’을 특정한 경우는 없었다. 고소를 비롯해 온갖 법적인 처벌이 돌아올 수 있는데도. 방현태는 뒷감당을 떠안았다.
다른 언론사도 아니고 정한일보다.
없는 소리를 다루는 언론사가 아니기에, 순식간에 관심사로 떠올랐다.
물론.
다른 언론사에서도 나섰다.
골든 서클의 명령을 받은 그들이, 정한일보의 기사는 말이 되지 않는 내용이며 사실상 의도적으로 이경철 국회의원을 매도한다고 떠들었다. 순식간에 개판이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서 거짓 뉴스가 판을 치는 상황에, 사람들은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경철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
의심을 심어 놓는 것.
그것이 김현성이 정한일보에게 바라는 점이었다.
* * *
아직도 전화는 끊지 않았다.
김현성이 말했다.
“만약 지금 내게 특별한 문제가 생긴다면. 아무리 언론을 동원한다고 한들 사람들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 강남 오피스텔 사건의 주인공. 그 주인공이 이경철 국회의원의 셋째를 찾아가서 무자비하게 폭행했는데, 그 뒤로 갑작스럽게 실종되어 버린 상황. 정한일보가 이에 대해 다룬다면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할 거야. 김현성은 대체 왜 이청수를 건드렸는가. 오피스텔 사건부터 시작해서 학교 폭력의 배후에는 누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김현성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될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권력으로 틀어막는다고 한들,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이 분명했다.
지금, 이 순간.
김현성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윤현민을 쓰러트릴 계획을 완성할 시간.
그 시간을 벌어들이기 위해 이청수를 찾아가는 과감한 판단을 내렸다.
김현성이 말했다.
“해 봐, 어디. 지금 난 여기에 있고. 네가 원한다면 당장에라도 날 죽일 수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