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83)
34. 고대하고 고대했던 순간 (3)
지난 반년.
김현성은 최덕수만 만난 게 아니었다.
수능을 대비해 공부에 몰두하면서, 틈틈이 골든 서클의 피해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정찬수로부터 얻은 정보로 피해자의 신분을 특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들과 직접 접촉해서 원하는 방향을 끌어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십수 년의 세월.
골든 서클은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그들 중 무려 수십 명이, 학교 폭력 방지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김현성은 그들을 만나 물었다.
대체 왜 그렇게 사느냐고.
이찬주라는 30대 청년이 말했다.
“……처음에는 그 악몽 같은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30년의 세월 중, 괴롭힘을 당했던 시간은 고등학교 딱 1년. 중간에 학교를 자퇴했으니, 겨우 1년의 악몽에서 벗어나면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학교를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는데, 예전처럼 사람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어요. 상대방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높아지거나 손을 들면, 저는 움찔하면서 겁에 질린 표정을 보였어요. 그렇게 십 년을 방구석에서 살았어요. 군대는 면제를 받았고, 부모님 재산을 갉아먹으면서 폐인처럼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절 괴롭혔던 동창’의 소식을 들었어요. 의대에 진학해서 잘나간다는 소문. 이건 아니잖아요. 세상에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존재한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사연이 비슷했다.
피해자 본인.
혹은 피해자의 부모님들.
그들은 망가진 인생에 어떻게든 가해자들에게 복수하고자, 그리고 이 불합리한 사회를 똑바로 바로잡고자 목숨을 걸고 학교 폭력 방지 위원회에 가입했다. 사실 당연한 현상이었다. 골든 서클의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자연스레 ‘최승필’을 중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사연.
똑같은 아픔.
그런데 그들은 진실을 몰랐다.
사실 그들이 겪은 일들은 우연이 아니라, 골든 서클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김현성이 말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에게 진실을 말씀드릴게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골든 서클이라는 뿌리가 존재하며, 그로 인해 당신들이 겪은 고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누구는 분노를.
누구는 당혹스러움을.
누구는 허탈함을 표출했다.
김현성은 피해자들이 필요했다.
식물인간 상태로 가장 완벽한 계획을 구상하면서,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계획은 있어도 피해자들의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야 불길에 기름을 끼얹을 수 있다. 김현성의 폭로만으로는 사그라질 수도 있는 불길은, 또 다른 증언들로 인해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렇다 한들.
강요하지는 않았다.
“저를 반드시 도와달라고 강요하지는 않을게요.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된다면, 같이 동참해서 골든 서클을 무너트리고 싶다면. 언젠가 찾아올 폭로의 순간에 제가 말한 대로 움직여 주세요. 그때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여러분의 이야기에, 대한민국 전체가 귀를 기울여 줄 테니까요.”
* * *
그리고 지금.
피해자들은 카메라 앞에 섰다.
최승필이 피해자라고 말하자, 기자 회견을 진행하는 주최 측에서도 더는 어떻게 말릴 수가 없었다.
정한일보의 카메라.
이 상황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막는다면, 어떤 악의가 있음을 의심할지도 몰랐다.
이찬주가 무대 위에 올랐다.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기자들의 시선에 눈물이 차올랐다.
“……개새끼들.”
웅성웅성.
기자들이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개새끼라니.
그들로서는 이찬주의 사연을 몰랐다.
이찬주가 폭로를 결심하고 학교 폭력 방지 위원회에 가입했을 때, 아무리 악에 받쳐 아득바득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그 목소리를 들어 주지 않았다. 의대에 진학한 가해자? 그 녀석은 비웃음으로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 의사는 천룡인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이찬주가 들쑤시는 폭로 정도로는 그의 삶이 추락하는 결과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이 광경을 보라.
김현성이 목숨을 걸어야 귀를 기울였다.
19살에 불과한 학생이 자신의 인생을 담보로 해야만, 겨우겨우 폭로의 무대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찬주가 소리쳤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전교 1등의 성적을 제치고, 제가 처음으로 그 자리를 차지한 적이 있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공부만큼은 제대로 지원해 주겠다며 온갖 고생을 하시던 부모님은, 그 성적에 정말 기뻐하셨죠. 그때부터였습니다. 전교 1등이었던 녀석을 필두로 친구들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때리고 괴롭히고, 방과 후에도 그 녀석들의 심부름을 하고.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서 선생님에게 말했는데, 선생님은 친구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며 이죽거렸죠. 그때는 몰랐습니다. 전교 1등이었던 그 녀석이 골든 서클에 소속되었으며, 골든 서클에 저를 의뢰했다는 것을요.”
악의적이었다.
전교 1등은 의뢰인이면서, 주도적으로 이찬주를 괴롭히는 일에 동참했다.
“기자님들은 제 말이 믿기지 않겠죠. 예나 지금이나, 의사에 집안이 빵빵한 그 녀석의 말이 더 옳다고 생각하시겠죠. 제가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금 보여 드리는 증거는, 그때 당시에 의뢰인에게 가담했던 녀석들의 거래 내역입니다. 고등학생에 불과한 녀석들에게 수백만 원의 입금 내역이 존재합니다. 아무런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부모님이 잘사는 녀석들도 아닌데. 그들은 제가 괴롭힘을 당하는 그 기간에만 누군가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게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골든 서클은 대담했다.
거래를 계좌로도 진행했다.
본인들을 특정할 수 없다는 자신감에, 지금과 같은 증거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잘못된 건 아니었다.
실제로 아무리 계좌 내역이 존재한다고 한들, 그것이 골든 서클의 존재를 입증하고 윤현민과의 연결 고리를 형성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단 한 명뿐이었다면, 저희는 골든 서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을 겁니다.”
이찬주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를 필두로.
피해자들이 나서서 각자의 사연과 증거를 내밀었다.
그들의 사연은 모두 구구절절했고, 정찬수로부터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나름대로 골든 서클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것은 확실히 특정하는 증거는 아니었다. 계좌 내역과 같은 정황적인 증거에 불과하나, 그런 증거가 무려 수십 개나 쌓이자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계속되는 폭로.
기자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번 사건은 이제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
확실했다.
살아 있는 증인들.
그들이 불길에 몸을 내던짐으로써, 골든 서클과 관련한 음모론은 활활 불타오를 것이다.
* * *
골든 서클.
윤현민.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김현성의 폭로에 이어 피해자들이 나타나자, 사람들로서는 더는 단순한 문제로 취급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는 당연히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갔다.
민심(民心)은 곧 표심이다.
변영당은 회의를 소집했다.
“이번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민심이 골든 서클의 존재를 명명백백하게 밝혀 달라고 요구하는데, 곧 있을 선거를 생각하면 저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당대표의 말이었다.
그의 발언에.
번영당의 간판스타인 양민구가 말했다.
“저희는 한발 물러나시죠.”
“방관하겠다는 말씀입니까?”
“방관이라기보다는, 굳이 벌집을 쑤실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민심은 광기에 휩싸였습니다. 골든 서클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하며, 당장에라도 윤현민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처럼 거센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진실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실질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겨우 19살 고등학생의 말을 믿고 정치인들이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태양 그룹에서 대대적으로 이번 사건을 해결하고 무고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여론에 휩쓸린 행보는 오히려 치부가 될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괜히 무리할 필요 없습니다.”
다들 말을 보탰다.
지금, 이 시각.
다른 곳들도 비슷했다.
번영당과 마찬가지로 회의를 소집한 정당들은, 결국에는 나서지 말자는 뜻을 모으고 있었다.
당대표가 말했다.
“그렇다면 일단 방관하는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선거를 앞두고는 경쟁자들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진정한 성패를 가리는 포인트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양민구 의원의 말씀처럼 만약 태양 그룹이 결백을 밝혀낸다면. 잘못 목소리를 높인 정치인들은, 광기에 휩쓸린 대가를 치르게 되겠죠. 지금부터는 다들 언행을 조심하십시오. 당의 입장을 결정했으니, 이에 어긋나는 언행을 할 경우…….”
“저는 반대합니다.”
순간.
의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발언한 인물.
“이번 일. 국회의원으로서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바로 김판호였다.
* * *
일련의 상황.
김판호는 돌아가는 판이 보였다.
‘회의를 표방하나, 진실은 모두가 골든 서클이 밝혀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거겠지.’
골든 서클.
그들은 대한민국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예전에는 자식의 성취를 위해 인연을 맺었다면, 지금은 카르텔을 형성하기 위한 주체가 되었다.
김판호도 마찬가지였다.
미래투자증권의 임철형이 은근슬쩍 골든 서클의 존재를 언급한 이유는, 김판호와 같은 권력자들을 가담시키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그들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힘을 보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주는 일이었지만, 대권을 생각하는 김판호는 오점을 남기기 싫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매우 우스웠다.
정치인이라는 사람들.
대한민국에서 권력자로 통용되는 이들이, 골든 서클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다.
‘골든 서클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공공연한 존재. 그런데도 번영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방관을 입에 올리는 이유는 본인들에게 켕기는 것이 있다는 의미겠지. 이건 회의가 아니야. 이미 정답은 결정되어 있지만, 절차를 해치우듯 한자리에 모였을 뿐이지.’
김현성의 폭로.
그로 인한 여파.
예상했던 상황이다.
김판호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당대표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지금 당의 의견을 반대하겠다는 겁니까?”
“예. 정확히는 이번 일이 이렇게 지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폭로를 주도한 김현성은 겨우 19살 고등학생에 불과하나, 수능에서 만점을 맞을 정도로 머리가 뛰어난 학생입니다. 장래가 촉망받는 학생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일을 벌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태양 그룹에서 주도한 기자 회견에서, 골든 서클에게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자들이 대거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이번 일. 저희가 여당으로 발돋움할 기회입니다. 민심을 받아들여 이번 문제를 잘 해결한다면, 번영당은 대한민국 최고 정당이 될 수 있습니다.”
“김판호 의원. 그러다 만약 아니면. 그때는 본인이 책임지실 겁니까?”
양민구였다.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그가 살쾡이처럼 김판호를 물어뜯었다.
“상대는 태양 그룹입니다, 태양 그룹! 그들이 대한민국에 실질적으로 끼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무고하다고 밝혀졌을 때의 여파를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미 당 내부의 의견은 한곳으로 모였습니다. 일단은 방관 후에, 명확한 결과가 나왔을 때 확실한 대응을 보여 주는 것으로요. 김판호 의원도 우리와 같은 소속인 것을 생각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십시오.”
“맞습니다. 당의 뜻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김판호에게는 힘이 없었다.
아무리 거물급 정치인이라지만 당대표가, 그리고 당내 간판스타인 양민구가 주도하는 판을 깨는 것은 불가능했다.
김판호가 씰룩, 웃었다.
어쩌면 이렇듯.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단 말인가.
“당의 뜻은 이미 결정되었다라…….”
시선이 집중되었다.
대부분은 적의 어린 시선을 보였지만, 몇몇은 김판호를 향해 묘한 눈길을 보였다.
“알겠습니다. 당의 뜻이 그러하다면, 저는 제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탈당(脫黨)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