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93)
35. 지나온 삶의 대가 (3)
대화는 끝을 보지 못했다.
김현성이 머물렀던 자리를 바라보며, 박정학은 조금 전에 김현성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을 떠올렸다.
“정확히 3일 드리겠습니다. 3일이 지나고 나면, 그때는 어떤 선택을 내리든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무려 대기업 계열사의 대표나 되는 사람이, 곧 성인이 되는 핏덩이에게 아무런 소리도 못 하고 이리저리 휘둘렸다. 감정이 부글부글 들끓었다. 익숙하지 않은 무력감에 자리를 엎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치솟았지만, 박정학의 본능이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경고를 보냈다.
김현성.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겨우 일개 고등학생이, 골든 게이트라고 명명된 지금의 사태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그가 지금껏 보여 주었던 행보를 생각한다면, 눈앞에서 내뱉은 발언이 단순한 협박은 아닐 것이다.
‘윤현민을 배신하라니.’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배신도 쉽지 않았다.
이경철 의원을 벼랑 끝에서 밀어 버린 윤현민의 잔인한 성향은, 내부의 배신자들을 찢어 죽이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임철형’을 묻어 버릴 계획을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윤현민은 골든 서클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배신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갑갑했다.
복종도 익숙해지는 법이다.
처음에는 목줄을 잡혀 적당히 타협했다면, 지금의 박정학은 윤현민의 존재감이 두렵게 느껴졌다.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을까.”
수년 전.
골든 서클에 발을 들인 것이 문제였다.
알 만한 권력자들 대부분이 가담한 집단인 데다, 관행처럼 이루어지는 일들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안일한 판단이었다. 자식의 교육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혹시라도 자식을 내세워 더한 권력을 얻을지 모른다는 탐욕스러운 욕심에. 결국에 스스로 목줄을 내주었다.
혼자서는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박정학은,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박정학입니다.”
천상의 멤버들.
아무래도 그들을 다시 만나야 할 것 같았다.
* * *
똑같은 자리.
똑같은 멤버.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서로의 관계를 비밀에 붙어야 하는 그들로서는, 이렇게 빨리 만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불편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반드시 필요한 만남이었다.
조금이라도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한 몸처럼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박정학의 물음에.
국회의원 홍동영이 말했다.
“김현성의 제안을 흘려들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놈은 사람을 가지고 놀 줄 아는 녀석입니다. 일개 고등학생이 골든 게이트를 터트렸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가 포섭한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하면 화려합니다. 명진건설의 고창범, 학교 폭력 방지위원회의 최승필, 정한일보의 방현태, 번영당의 김판호, 중앙지검의 강동철, 그리고 이번에 임철형 대표까지. 그 사람들이 미쳤다고 아무 생각 없이 고삐리의 제안을 받아들였겠습니까? 이면에서 이루어지는 알 수 없는 계획이, 그만큼 위력적이라는 의미겠죠.”
“그렇다면 정말 김현성의 제안을 받아들이자는 겁니까? 상대는 태양 그룹의 후계자 윤현민입니다.”
“압니다. 그런데 뭐 어찌합니까. 양자택일이라면, 그래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곳에 베팅하는 수밖에요.”
슥.
시선을 마주쳤다.
박정학, 전상철을 포함해 6인의 모임.
엄청난 권력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김현성이 보통 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홍동영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이경철 의원의 죽음이 마음에 걸립니다. 저도 정치판에서 십수 년을 굴러먹은 놈이지만, 이경철 의원은 한참 권력이 물이 오른 여당의 핵심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정도라면 저 또한 희생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김현성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윤현민을 감싸고 도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윤현민이 골든 서클의 역린이기에, 같이 파멸하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보호할 뿐입니다. 그런데 내부자 문서가 우리 모두를 위협한다면, 그 명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최악이 아닌 차악이라는 말. 그에 동의하시는 겁니까?”
“……예. 이미 임철형이 넘어갔습니다. 정황적인 증거를 주절거릴 뿐이라지만, 내부에서 배신자가 나온 순간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만약 윤현민이 출혈을 감수하고 끝까지 골든 서클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면, 차라리 골든 게이트에 이름이 박제될지언정 배신이라는 선택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리 사태가 심각해진다고 한들 권력은 여전할 테니까. 미래를 보고, 이 관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였을 겁니다.”
이경철은 일종의 시그널이었다.
언제든, 누구든 버릴 수 있다는 시그널.
실제로 골든 서클이 문제를 수습하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을 버려서 본인의 안위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윤현민은 본인의 안위만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그것이 골든 서클을 위한,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라도 ‘천상의 멤버’로 특정되는 순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희생을 받아들여야만 할 겁니다. 그게 싫습니다. 언젠가 찾아올 순간이 두려워서라도, 그리고 주종의 관계처럼 형성된 이 상황이 불편해서라도. 이대로는 안 됩니다. 윤현민은 더는, 안락한 권력을 보장해 주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크흐음.”
다들 심각한 표정을 보였다.
섣불리 선택을 내리지는 못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만큼, 그들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대화 내내.
똑같은 문제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었다.
‘더는 윤현민을 믿을 수 없다.’
가장 큰 문제였다.
윤현민에게 버림받아 파멸할지도 모른다면, 윤현민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김현성에게 연락해, 일단 상세한 계획을 들어 보겠습니다.”
박정학의 발언이 모두의 결정을 대변했다.
* * *
대한민국 재계 서열 3위.
그리고 최근 빠른 성장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1위의 자리를 쟁취하리라고 평가받는 거대 기업.
그런 태양 그룹이 흔들리고 있었다.
연이어 터지는 악재에, 태양 그룹 최상부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윤현민이 고개를 숙였다.
눈앞의 인물.
의자를 돌려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남성은, 윤현민의 아버지이자 태양 그룹의 회장인 윤병호였다.
윤병호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죄송해야지. 그동안 네가 쌓은 공로를 완전히 무너트릴 만큼의 잘못을 저질렀으니, 무릎이 닳도록 네 죄를 빌어야겠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현민아. 이 아비는 말이다. 네가 태양 그룹을 등에 업고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했지. 어떻게 고등학생의 머리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떠올리고, 또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걸까. 골든 서클은 위험한 집단이지만, 그런데도 방관한 이유는 내 아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첫 사업이기 때문에. 그리고 네가 날 단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팎으로 시끄러웠다.
이경철을 먹잇감으로 던져 주었다고는 하나, 윤현민으로 인해 태양 그룹의 평판이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최근.
임원 회의에서는, 윤현민의 사임도 논의되었을 정도였다.
“넌 내 아들이다. 그렇기에 이번 사태로 네 자리가 위태로워질 일은 없겠지만, 나는 아버지이자 태양 그룹의 회장으로서 무한한 기회를 줄 생각은 없다. 태양 그룹은 이 윤병호로 인해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다. 하나뿐인 아들이 내 업적을 망치려고 한다면, 나로서는 결단을 내려 그룹에 득이 되는 방향을 택해야겠지. 네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인지 아느냐.”
“……골든 서클을 만들어 그룹을 위험하게 만들었습니다.”
“반은 맞았다. 골든 서클로 인한 도덕적인 문제에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다. 실제로 골든 서클은 그룹에 득이 되었고, 그것은 네 공로로 인정될 몫이었지. 문제는 결국에 골든 서클의 만행이 세상에 밝혀져 그룹에 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명심하거라.”
“알겠습니다.”
윤병호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아들의 얼굴을 계속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 당분간 근신하며 잘못을 만회할 방법을 찾거라.”
* * *
쿵.
회장실 문을 닫았다.
아버지 앞에서는 대역죄인처럼 반성하던 윤현민이, 회장실을 나서자마자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빠드득.
“……김현성, 그 새끼만 아니었어도.”
아버지의 말처럼.
골든 서클은 윤현민이 만들어 낸 위대한 업적이자, 훗날 회장의 자리에 올랐을 때 자신의 공로로 인정될 몫이었다. 그런데 고등학생 한 명으로 인해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 내부자 문서까지 공개되는 바람에, 사태를 잘 수습한다고 한들 예전처럼 운영된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은 윤현민이건만, 최근에는 오락가락하는 감정을 컨트롤하기 쉽지 않았다.
이번 일.
아직은 회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윤병호 회장의 유일한 자식이면서 출중한 능력으로, 그동안 언론에서는 윤현민이 회장 자리를 물려받는 것을 기정사실처럼 보도했다. 실제로 잘못된 내용은 아니었다. 윤병호의 뜻도 그러했고, 윤현민이 빠르게 이사 직함을 달았던 것도 승계 과정 중 하나였다.
그런데 방금.
아버지는 기회가 무한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과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면, 윤현민일지라도 자리가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후우-”
숨을 골랐다.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이럴 때일수록 평정심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반드시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골든 서클도, 나를 향한 평판까지도 전부.’
걸음을 옮겼다.
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등장하는 한 사람의 모습에, 윤현민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
확실했다.
김현성이.
분노의 대상인 그가.
태양 그룹 최상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조금 전.
윤병호 회장은 비서실로부터 이런 연락을 받았다.
[임철형 대표의 라인을 통해 ‘김현성’이 직접 만나 뵙고자 한다는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의외였다.
정확히는 상식 밖이었다.
윤현민을 궁지로 몰아넣은 녀석이, 감히 호랑이 아가리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설칠 줄은 몰랐다.
같잖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든 게이트를 주도한 그의 능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일개 고등학생에게 휘둘릴 만큼 태양 그룹은 만만하지 않다. 어떤 계획을 구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을 직접 만나겠다는 김현성의 같잖은 의도에, 윤병호 회장은 비서를 통해 ‘회장실’로 부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일부러 텀을 두었다.
윤현민과 김현성이 마주치도록.
아들의 교육을 위해 의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었다.
예상대로였다.
김현성이 도착했다는 말에 들어오라고 말하자, 김현성을 뒤따라 들어오는 윤현민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이게 대체…….”
“나가거라.”
“하지만…….”
“어서!”
바락, 소리를 질렀다.
노여움을 드러내는 윤병호의 표정에, 윤현민은 분한 얼굴을 보이면서도 결국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윤현민을 우러러보게 하는 후계자라는 평판. 그건 모두 윤병호로부터 비롯되는 후광이었다. 윤현민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를 악물면서 한발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쿵.
다시 문이 닫혔다.
윤병호의 시선이 김현성을 향했다.
아들에게는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했으니, 지금부터는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를 대면할 차례였다.
“그래. 무슨 이유로 날 찾아왔지?”
시선을 마주쳤다.
의외였다.
일반인은 평생을 마주할 수 없는 대기업 회장을 대면하는데도, 김현성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김현성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앉으라는 말이 없었는데도, 자리에 앉으며 윤병호를 바라보았다.
“대화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제 앞으로 오시죠.”
윤병호는 미동도 없었다.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상대가 자신을 우습게 본다고 한들, 김현성은 이 판을 주도할 무기를 확보한 상태였다.
김현성이 웃음을 보였다.
“회장님과 아드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