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2
남매는 오랜만에 마주하자마자 작은 목소리로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언뜻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에게 무척이나 반갑다는 말을 돌려서 표현하는 것.
이를 잘 알고 있는 어머니는 딸과 아들을 번갈아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 짓다가,
“딸, 아들! 그만!”
세 단어로 둘을 통제한 후 등을 떠밀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매의 다툼 아닌 다툼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바로 종료되었다.
이어지는 여행 이야기로 어느새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우희의 입담과 어머니의 웃음, 그리고 우진의 흐뭇함이 차 안을 가득 메웠다.
* * *
“우와, 집 개쩔어!”
한참을 달려 우진이 새로 이사한 청담동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희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집 안을 둘러보느라 바빴다.
“손발부터 씻어라, 백우희.”
우진이 캐리어를 들고 들어오며 말했지만,
– 벌러덩.
우희는 그대로 거실 소파에 몸을 맡겼고,
“소파가 진짜 편해. 에이플 침대 저리 가라야~”
“…내가 그냥 신경을 쓰질 말아야지.”
우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어머니는 아들의 성공에 감격하셨는지, 붉어진 눈시울로 말없이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계셨다.
우진은 그 모습에 콧등이 찡해졌다.
“아, 맞다. 너 차기작 정했다며?”
우희가 화제를 돌리며 살짝 진지해진 분위기를 바로 깨었다.
“어떻게 알았어?”
“비행기에서부터 입국장 게이트까지 사람들이 네 얘기만 하는데, 어찌 모를까?”
우희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제목이 뭐라더라, ? 무슨 내용인지 이 누님에게 썰 좀 풀어 보아라, 동생아~”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우희와 눈을 마주친 우진은 이내 시선을 떨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야, 갑자기?”
“엄마, 그리고 누나. 잠깐만 여기 앉아주세요.”
우진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우희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어머니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이어 우진이 방에서 들고나온 시나리오를 모녀 앞에 내려놓았다.
“차기작 대본이에요.”
“이게?”
“이미 하기로 결정이 났지만, 그래도 엄마랑 누나한테는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한번 읽어봐.”
우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본을 천천히 넘겼다.
어머니도 누나의 손을 따라 천천히 대본을 읽어나갔다.
“…….”
“…….”
종이가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모녀는 말이 없었다.
대본을 쥔 우희의 손은 어느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우진은 어머니와 누나의 손을 하나씩 맞잡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이 작품 꼭 하고 싶어요.”
57화
늦은 새벽.
우희는 거실에서 홀로 맥주 한 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탁.
불을 끈 그녀는 베란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 야경이 이렇게 예뻤구나.”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관이 펼쳐졌다.
잠시 야경을 눈에 담으며 짧은 감탄사를 내뱉던 그녀는 방으로 들어갔다.
1인용 침대를 옆에 그대로 두고, 어머니가 바닥에 깔린 이부자리에 누워계셨다.
우희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살며시 어깨를 흔들며 깨웠다.
“엄마, 침대에서 자. 허리도 안 좋은데, 왜 바닥에 눕고 그래?”
“…으음, 우리 딸 왔어? 이제 잘 거야…?”
어머니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우희는 어머니의 팔을 주무르며 말을 이었다.
“엄마, 일어나. 침대에서 자요. 내가 바닥에서 잘게, 얼른!”
“아니야. 아까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 와서 내려온 거야. 엄마는 바닥이 편해. 네가 침대에서 자.”
“…….”
“알았지, 예쁜 우리 딸?”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로 딸의 얼굴을 매만졌다.
참으로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
어머니는 다시 돌아누우시며 잠을 청하셨다.
난감한 표정으로 일어선 우희는 이내 어쩔 수 없이 침대 위에 올라갔다.
“아오, 백우진! 그러길래 퀸사이즈로 주문하라니까… 말 참 드럽게 안 들어. 침대 한 번도 안 사본 티를 꼭 내요.”
그녀는 혼잣말을 구시렁대며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조용한 적막만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때,
“후우.”
눈을 감은 채로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우희가 한숨을 내뱉었다.
‘잠이 왜 이렇게 안 오냐….’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가.
머릿속으로 양을 수백 마리는 센 거 같은데,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던 우희의 시선에 바닥에 옆으로 누워있는 어머니의 등이 보였다.
“엄마, 자?”
“…아니. 우리 딸, 왜?”
어머니가 목이 잠긴 목소리로 조용히 답했다.
“그냥 잠이 안 와서.”
“…우리 딸, 왜 잠이 안 와?”
“집이 너무 넓어서 좀 낯설어. 우진이가 성공해서 이렇게 좋은 집에 산다는 게, 뭔가 신기해. 이게 꿈인가 싶기도 하고.”
“…엄마도 그래.”
우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어머니의 표정 또한 그렇겠지.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우희는 어머니의 등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있잖아, 엄마. 우진이 차기작, 어떻게 생각해?”
“…….”
이번에는 어머니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엄마, 자?”
“…….”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잠드셨나 보네.’
어머니가 잠들었다고 생각한 우희는 다시 천장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엄마, 사실….”
그녀는 문득 말을 멈췄다.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가 확실히 주무시는 것인지 재차 확인한 뒤에야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아빠를 이해했었거든? 그런데, 우진이는 그동안 아빠 얘기를 한 적이 없었잖아. 그래서 우진이가 지금도 아빠를 미워하는 줄 알았는데….”
우희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까 대본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착각했었다고. 우진이도 아빠를 이해하고 있었던 건데….”
어느새 우희의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아, 나이가 몇인데, 새벽 감성 터져서 이게 뭔… 빨리 자야지.”
그녀는 눈물을 훔쳐내며 이불을 얼굴까지 덮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우희가 끝내 알아채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그녀의 이야기를 숨죽여 듣고 있었던 어머니의 떨리는 어깨였다.
항상 의젓하고 밝은 모습만 보여주었던 딸이 여태껏 단 한 차례도 털어놓지 않았던 내면의 슬픔.
그 솔직한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 어머니는,
“…….”
혹여라도 딸이 알아챌까, 소리 없이 울음을 삼켜내고 있었다.
‘우리 딸, 우리 아들… 엄마가 미안해.’
오늘따라 먼저 간 그이가 그리우면서도 한없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길고 긴 밤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어머니와 누나를 본가에 데려다주고 우진은 회사로 향했다.
이제 곧 프로모션 스케줄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이기에 매니지먼트팀 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있었다.
“우진 오빠!”
회의실에 들어서자 다희가 그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누가 신블리 아니랄까 봐.
오랜만에 봤음에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그녀의 매력은 여전했다.
“잘 지냈어요?”
“그럼. 넌 요즘 어때? 검술 배우느라 정신없다고 들었는데.”
다희의 차기작은 고려 말을 배경으로 한 무협 액션 영화 .
그녀는 세 명의 주연 중 한 명인 월기(달의 기운) 역에 캐스팅되었다.
때문에, 우진이 그랬던 것처럼 일주일에 다섯 번씩 액션 스쿨에 다니며 무술 삼매경이라고….
그녀는 자신의 팔뚝을 내보이며 말했다.
“말도 마세요~ 진짜 힘들어 죽겠어요. 이거 봐, 저 한 달 만에 5kg 빠졌어요.”
다희가 울상을 지으며 응석을 부렸다.
“네가 빠질 데가 어딨다고. 밥 좀 잘 챙겨 먹어. 그리고, 액션 스쿨은 일주일에 세 번만 나가도 충분하니까 무리하지 말고.”
“에이~ 오빠도 연산군 준비하면서 다섯 번씩 나갔다면서요. 저도 오빠처럼 열정 뿜뿜 할 겁니다!”
주먹을 불끈 쥐는 다희에게 우진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희의 얼굴이 남모르게 살며시 붉어졌다.
그때였다.
김태곤 팀장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자, 프로모션 일정 얘기하기 전에 우진이랑 다희한테 전달할 사항이 하나 생겼어.”
“전달 사항이요?”
“다름이 아니라, 특별출연 제의가 왔어. 너희 둘한테.”
특별출연.
극에서 비중이나 분량은 적지만, 특별한 의미를 지닌 배역에 이름값이 있는 배우가 출연하는 것.
대부분 제작진·출연진과의 친분과 의리를 앞세워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우정 출연과 비슷해 보이지만.
특별출연은 우정 출연과 달리 개런티가 지급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
“작품이 뭐예요?”
“.”
오성철 선배의 차기작인 드라마.
반 사전으로 제작된다고 들었었는데.
그렇다면?
“생각하는 게 맞아. 오성철 선배님이 직접 전화 주셨어. 둘 다 출연해줬으면 좋겠다고.”
김태곤의 말에 우진과 다희는 곧바로 출연을 수락했다.
오성철 선배의 부탁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우진아.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
“네?”
“우정 출연 배우가 몇 명 더 있는데… 거기에, 안종훈도 있다고 하네.”
이미 우진과 안종훈의 관계를 알고 있는 김태곤은 뜸을 들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의 걱정과 달리 우진은 정작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는 모습이었다.
“…….”
“게다가, 대본 보니까 너랑 씬이 겹치더라고.”
“그래요?”
“일단 봐봐. 다희도.”
“아, 네!”
김태곤은 우진과 다희에게 8화 대본을 한 부씩 건넸다.
대본을 넘기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잠시 후.
“…재밌겠네요.”
우진이 빙그레 웃어 보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김태곤과 다희는 그의 미소를 보고 흠칫했다.
뭐지, 대본에만 시선을 두고 있는, 가만히 앉아있는 우진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이 감정은?
촬영장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강한 에너지가 물씬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우진은 자신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는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촬영은 언제예요?”
* * *
일주일 뒤.
우진과 다희는 함께 논산의 한 촬영장에 도착했다.
의 메인 세트가 제작되어있는, 일명 ‘션샤인 랜드’라 불리는 곳.
6월에 접어든 날씨는 여름 특유의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와, 날씨가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