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한국을 포위하라
그런 시대가 있었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이 한창일 때, 너도나도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급기야는 화성에 가겠다고 하던 시대가.
그 분위기는 한 야심 찬 기업가에 의해 주도되었고 별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요즘엔 흔한 발사체 재사용 등의 트렌드가 대두되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월면기지 건설 계획이 이야기되던 시대였다.
일각에서는 기술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지만 그 기업가는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 우주발사체 프로그램을 연이어 성공시켰다.
그리하여 아르테미스 프로그램과 화성 식민지 개척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
NASA에서 전자를 도맡아 추진한다면, 후자는 전적으로 그 기업가의 취미였다.
화성은 달과 달리 왕복하는 데만도 어마어마한 시간과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궤도 문제 때문에 지구와 화성의 상대 위치가 가장 가까운 때를 노려야 하는데 그게 26개월마다 돌아온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연료를 쓰는 한 26개월마다 화성에 우주선을 보낼 수 있다는 뜻이고 복귀할 때도 마찬가지다.
걸리는 시간도 문제였는데, 최소 6개월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그 좁은 우주선에서 몇 명이 부대껴야 하는데 정신 질환이 안 생기면 그게 이상하다.
물론 그런 일까지 대비하는 게 우주 비행사 훈련이고, 그 기업가도 단기지만 훈련을 수료하긴 했다.
NASA 등 우주산업계 종사자들은 그 외에도 스타십 프로그램 전체에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주장했다.
―화성에 도착하는 데에만 최소 6개월이고 탐사 계획 전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이르려면 적어도 2년은 걸린다. 당신은 화성 유인 착륙 1호가 되고 싶은 모양인데, 그 기간 동안 회사는 어떻게 하나?
―기술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 스타십 발사체는 일단 좋게 보이지만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달과 화성은 궤도 계산부터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그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스타십 발사체는 기업가와 8명의 우주인을 싣고 화성으로 떠났다.
유지하가 세틀러호와 함께 동해에 떨어지기 1년 전의 일이었다.
원래라면 2026년까지 돌아올 계획이었지만 스타십 발사체가 랜딩 연소에 실패하면서 그대로 낙하, 완전히 파손되고 말았다.
총 9명의 우주인이 사망하는 바람에 화성 유인 착륙 계획 자체가 폐기되었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도 여러 문제로 지지부진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경제도 어려운데 막대한 돈을 들여 우주에 진출한다는 것 자체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2030년에 접어들면서 진지하게 우주 탐사에 열의를 쏟는 국가를 들자면 한국밖에 없었다.
거의 전 세계가 한국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었다.
인류의 우주과학 기술을 선도하던 NASA는 뒷전이 되었고 항우연과 스타필드에 돈을 대는 물주로 변신했다.
미국 민주당은 바로 그런 부분에 대해 비판했으나 정작 그들이 내놓은 대책도 별거 없었다.
―의존도를 줄인다는 건 참 좋다. 하지만 어떻게 줄일 건지는 전혀 쓰여 있지 않다.
―이온 추진기의 추력과 블랙메탈 분해기의 해상도를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도 안다. 돈은 그렇다 치고 사이커는 어떻게 할 거냐?
―한국에 등록된 사이커가 상당히 적은데 아무래도 데이터를 숨기는 것 같다.
사이커는 인위적으로 육성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쓰는 에테르란 게 뭔지도 모르는데 당연한 일이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만 미국은 다급했다.
이대로는 우주 탐사의 주도권을 뺏기고 질질 끌려갈 판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유지하가 화성 탐사, 개발, 기지 건설을 발표하자 당황했다.
―화성엔 왜 관심을 가지는 거지? 차라리 블랙메탈 동체를 활용해서 금성 탐사를 하는 게 낫지 않나? 그 내구도면 금성의 대기권에서도 끄떡없이 버틸 것이다.
―설마 그 기업가의 뒤를 이을 거라면 말리고 싶다. 화성엔 그 어떤 경제적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연구용이라면 우리와 협력하자. 그동안 모은 데이터가 많다.
하지만 유지하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했다.
“화성 기지는 인류연합의 힘만으로 진행합니다. 투자도 받지 않을 것이고 정보 공개도 없습니다.”
비협조적인 태도에 우주산업 관계자들의 원성이 터져 나왔다.
―문라이트 프로젝트를 시동할 때엔 많이 도와 달라고 하더니 어떻게 된 건가?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이거지. 돈도 많이 벌었고 노하우도 충분히 쌓였으니 괜히 눈치 볼 필요 없이 진행하겠다는 거다.
―그래도 돈은 많아서 나쁠 게 없는데…….
사실 화성 개척을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화성에 선지자의 유물이 많이 오기 때문이다.
2031년 여름을 시작으로 20개가 넘는 유물이 도착하는데 이는 인류가 확보하는 유물의 50%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그중에는 절대 공개할 수 없는 것도 있어서 가지고 오느니 기지를 건설해 연구하는 편이 나았다.
또한 화성에는 중요한 자원이 하나 존재한다.
구 인류연합에서 미스릴이라 명명한 금속으로 진은이라고도 한다.
이 은색의 금속은 인공 에테르 회로를 그리는 데 사용되므로 향후 에테르 관련 산업에선 절대 빼놓을 수 없었다.
매장량도 상당히 풍부한데 가장 가까운 산지가 화성의 매리너 계곡이다.
9번째 행성 녹스에도 많을 것으로 예상이 되지만 거긴 플레이그가 지키고 선 곳이다.
인류가 선지자의 부름을 받은 것이 못마땅하기라도 한 걸까?
‘녹스…….’
언젠가 유지하가 목적을 달성했을 때 가야 하는 곳이다.
그때가 되면 제대로 된 개척선단을 갖추었겠지.
태양계는 평화로울 것이고, 인류연합은 제대로 된 정부가 들어섰을 것이다.
개척선단을 끌고 선지자의 고향으로 가는 것.
바로 그게 유지하의 두 번째 목적이었다.
‘과연 잘될지는 의문이지만.’
유지하는 그렇게 생각하며 경악한 눈의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끝마쳤다.
“화성에 갈 겁니다.”
이 미친놈도 죽으려고 거기 가는구나.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었다.
* * *
인류연합이 화성 진출을 선언한 이후, 우주 관련 단체와 관계자들은 일제히 반대에 나섰다.
그들이 우려하는 것은 인류연합의 화성에 대한 배타성이었다.
―문라이트 프로젝트는 여러 국가를 참여시켰으면서 갑자기 왜 이러나?
―화성은 개인이나 특정한 국가의 소유가 아니다. 인류가 공동으로 가꾸고 연구해야 할 소중한 천체다.
―현재 인류연합은 UN 소속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화성을 독점해도 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의 우주 탐사는 수많은 과학자, 관계자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것이다. 부디 그 의미를 헤아렸으면 좋겠다.
엄청난 양의 비판과 요청이 쏟아졌지만 유지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한테 정보 내놔라 요구하지 말고, 당신들도 직접 화성에 가십시오.”
그가 이렇게 나오자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직접 하라는데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화성에 가는 것도 어려웠다.
대부분의 우주 예산이 동결되거나 축소된 마당에 화성에 기지를 건설하자는 구호는 정치인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화성, 아주 친숙하죠.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거기 왜 기지를 건설해야 합니까? 파먹을 게 좀 있습니까?
―달은 언옵테늄과 헬륨3가 있으니 도전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죠. 하지만 화성은 아닙니다. 두 번 다시 제안서를 내 사무실에 보내지 마십시오.
과학자들은 언제나 정치인에게 예산을 구걸해야 하는 처지다.
전성기 NASA도 예외가 아니어서 언제나 물주가 될 만한 사람에게 영업을 해 왔다.
현시점에서 돈 생각 안 하고 팍팍 우주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람은 유지하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정작 비밀주의로 나가고 있으니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당신도 어릴 적 과학책을 보고 우주에 대한 꿈을 키우지 않았나? 소년 시절 9번째 행성의 공전궤도를 추측했다는 말을 들었다. 부디 그 꿈을 잊지 않았길 바란다.
급기야 그의 감정을 건드리는 발언까지 나왔지만 유지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건 원본 유지하의 꿈이었지 그의 꿈이 아니었기 때문.
‘내가 녹스에 관심이 많은 건 맞지만.’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당장은 가기도 힘들고 가 봐야 별 의미도 없다.
녹스에 워프게이트가 열리는 시점은 대략 2130년.
타임라인이 당겨진 것을 감안하면 2090년 정도로 계산할 수 있다.
‘시간이 별로 없어.’
유지하는 답답한 가슴을 안고 아르마와 화성 기지 계획에 나섰다.
“플레이그가 침공하는 그 순간까지 잘 숨겨져 있어야 돼.”
“다행히 플레이그는 지구 외엔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니까요.”
정확히는 지구에 있던 무엇인데 그 정체에 관해선 나오는 게 없었다.
플레이그를 다시 만나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정작 그들이 대화를 해 줄지는 의문이지만.
유지하는 의자에 앉아서 아르마가 즉석에서 화성 기지를 설계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EU 등에선 한국을 배제한 우주 프로젝트를 제의했다.
―이온 추진기는 우리도 개발 중이다. 아직 전통적인 로켓만큼은 아니지만, 빠른 시일 내에 효율까지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정보를 독점하려는 유지하의 횡포를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 그와 한국을 배제하는 글로벌 우주탐사 전문 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
말은 많았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목소리가 유독 높다는 것에서 그 저의를 알 수 있다.
틈만 나면 서로의 발목을 걸어 댄 걸로 유명한 양국은 미국을 종용하기에 바빴다.
―NASA에서 나서 주면 우리도 전폭적으로 협력하고 예산도 대겠다.
그러나 미국은 당장 움직이지는 않았다.
달 기지에서 상당한 이득을 얻고 있는 데다 화성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EU가 추진하는 전문 기관의 설립은 유지하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오기 때문에 즉흥적이며 오래 갈 수는 없다는 것까지 꿰뚫고 있었다.
―단적으로 유지하가 정보만 살짝 풀어도 그 기관의 가치는 0으로 수렴한다.
―NASA도 예산 낭비 소리를 듣고 있는데 돈을 더 쓰면서 의미 없는 기관을 만들 필요가 있나?
그러나 일각에선 유지하의 독선적인 행동을 저지할 필요는 있다는 발언이 힘을 얻고 있었다.
주로 대통령 배출이 확정적인 민주당 상원 의원들 사이에서 나오는 얘기였다.
그들은 워싱턴의 사무실과 카페 등을 오가며 각국 관료들과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눴다.
한국과 유지하를 포위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었다.
* * *
2030년 8월, 공석이던 일본 총리가 선출되었다.
신일본유신회의 간사장을 맡았던 마츠다로, 일본 정계에서는 떠밀렸다는 관측이 강했다.
―온갖 일은 다 저질러 놓고 뒤에 숨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못 한 것이다.
―미국이 얼마나 쪼아 댔으면 총리로 취임하겠나? 저 떨떠름한 표정을 좀 봐라.
실제 취임식에서 그의 표정은 솔직히 좋지 않았다.
앞으로의 포부와 계획을 밝히는 단계에서도 버벅거리기 바빴다.
하지만 한 문장만큼은 정확했다.
“쓰시마를 돌려받고 한국의 사과를 받아 내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유감이지만 쓰시마는 이미 한국이 집어삼키고 소화시킨 지 오래였다.
일본과의 갈등이 예약된 섬이라 그런지 주민은 거의 없었고 최소한의 행정기관과 낚시와 레저 등을 즐기기 위한 시설이 설치되었을 뿐이었다.
그 외에는 모조리 군사시설로, 사실상 섬은 요새화되었다.
일본 정부에선 계속해서 이 점을 국제사회에 부각시켰지만 그들이 바라는 형세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중맹이 다시 중국으로 국명을 바꾸면서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왕쉬안 상장은 설명을 요구하는 유지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더 이상 한국에 끌려 다닐 수는 없다, 그 말입니다.”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럼 국내에 위치한 배터리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어도 상관없는 겁니까?”
“마음대로 하십시오.”
한국은 중맹이 국내에 세운 공장에 블랙메탈 배터리를 공급하는 대신 땅을 받았다.
그 협정은 왕쉬안 상장을 비롯한 극소수의 인사만 알고 있었는데 최근 중맹에 알려지면서 큰 소란이 일었다.
땅을 넓히지는 못할지언정 잃기만 하는 왕쉬안에게 지도자의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가 주석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것도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대체 미국에게 뭘 약속받았기에 이럴까?
마이크로드론을 백악관과 재건설된 중난하이 등에 뿌렸지만 신통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 정보 유출을 극도로 신경 쓰고 있는 모양이다.
보나 마나 한국에 대한 세 나라의 공조일 게 뻔하지만.
유지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예전에 줬던 땅을 돌려 달란 말은 안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국은 큽니다.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요.”
“그래도 신장 위구르와 티벳을 잃어서 많이 줄어들었을 텐데.”
대놓고 신경을 긁자 왕쉬안 상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우리를 자극해서 전쟁을 벌이고 싶은 것, 다 압니다.”
“미국에게서 들었군요?”
“한국의 전차부대가 랴오닝성에 들어오는 것, 헬기가 영공을 침입하는 것, 그동안은 참고 있었습니다만 더 이상은 용납 못 합니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국경선을 굳히자는 겁니까?”
“그 문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다시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오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도 생각이 있습니다.”
“미국이 뭘 약속하던가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내줄 용의가 있습니다만.”
“내가 믿을 것 같습니까?”
그동안 국내외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이제야 나타나는 것일까?
왕쉬안 상장의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핵융합 플랜트 하나만 도입하게 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나한테 온 것은 대통령 명의도 아니고 비서실에서 보낸 형식적인 서신이었습니다.”
“이상하군요. 잘 생각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뭘 말입니까?”
“핵융합 플랜트를 도입하기 위해 대가로 뭘 내줄지 생각하고 제안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그걸 공짜로 들일 생각이었습니까?”
“수주금은 당연히 지불할 겁니다.”
“그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비용 말입니다. 독일을 제외한 EU가 왜 혜택을 전혀 못 받고 있는지 정말 모른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알아서 넉넉한 주머니를 준비해서 찔러 달라는 뜻이다.
바로 그 점이 왕쉬안 상장의 스트레스 원인이 되고 있었다.
참다 못한 그는 수화기에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억 위안을 북한에 투자했소! 장백산도 땅도 줬지! 그 이상 뭘 바란단 말이오?”
“내 목숨값.”
“뭐라고요?”
“내 목숨을 위협한 것에 비하면 대단히 싼 겁니다.”
“그래서 당신의 기술을 도입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놔야 한다는 거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요즘 세상에 공짜가 어딨다고.”
수화기 저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리자 왕쉬안 상장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결국 이럴 운명이었던 것이다.
한국과 친하게 지내면 기술을 받아 올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은 망상에 불과했다.
유지하는 기술 하나하나에 가격표를 매겨 놓았고, 이쪽의 제안이 기준에 못 미치면 냉정하게 거절했다.
장사치라는 입장에서 보면 당연하겠지만 왕쉬안은 좀 더 대국적인 협력을 원했다.
자연스레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당신과 한국의 의중은 잘 알겠소.”
“잊지 마십시오. 나를 죽이려 한 건 당신들이라는 것을.”
“내가 아니라 이전 정권이었소.”
“수뇌부가 바뀌었다고 이전 정권이 한 행동이 깔끔하게 버려집니까? 그거 참 편한 논리군요.”
“…….”
서로의 주장이 평행선일 때는 언제나 침묵이 이어진다.
왕쉬안 상장은 한참 동안 말도 않고 있다가 갑자기 통화를 종료했다.
유지하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아르마를 호출했다.
“포위망이 구체화되는 것 같은데, 다음으로는 어떻게 나올 것 같아?”
「군사적인 수단은 중국과 일본에 맡겨 두고, 미국은 경제적인 제재를 가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경제적인 제재라… 그리 대단한 걸 동원할 수는 없을 텐데.”
넓게 봐서 미국도 유지하가 조성해 놓은 생태계에 있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접적인 제재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현재 한성그룹이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주도권을 가져온다든가…….
「20년대 초반, 미국은 일본과 대만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삼각동맹을 구성했습니다. 한국이 불안정하다고 본 것이죠.」
“그때와 같은 방법을 쓰진 않을 거야.”
「병행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미국은 양안전쟁에서도 TSMC만은 직접 나서서 지켰습니다. 그 공급망을 확대하고 반도체 생산 설비의 공급을 통제한다면 한성전자는 확실히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신라그룹이 너무 대두되어서 그렇지 한성그룹도 재계 서열 2위의 제법 큰 기업이다.
비록 미국에 파운드리 산업을 완전히 뺏기고 메모리마저 지배적인 위치를 잃었지만 그래도 매출은 상당했다.
“너무 간접적인 방법 아니야? 몇 년 후에나 성과가 드러날 것 같은데.”
「말씀하셨듯이 미국도 마스터와 완전히 척을 지기는 어려우니까요. 조심스럽게 진행할 필요가 있죠.」
“그럼 우리는 그 포위망을 완전히 깨 버리는 방법으로 진행하도록 하지.”
현시대의 반도체는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이라 도무지 쓸 데가 없었다.
유물해석기관 아크에서 진행하던 에테르와 블랙메탈 연구도 계속해야 하므로 새로운 연산 유닛의 개발은 필수적이었다.
“이거면 되겠군.”
유지하는 세틀러호의 DB에서 청사진 중 하나를 끄집어냈다.
이 반도체가 시장에 나가면 기존의 인프라는 쓰레기로 전락할 것이다.
효율과 전력 소모에서 상대가 안 되니까.
무엇보다 이 반도체는 양자 컴퓨터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유지하는 아르마에게 지시했다.
“슬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해 보자고. 이론 자료부터 구축 시작해.”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