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꼭꼭 숨어라
현재 한국에 국방무관부를 개설한 국가는 거의 100개국에 가깝다.
이는 미국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것으로 국방무관의 숫자를 보면 미국의 절반에 육박한다.
타국에서 이렇게 많은 국방무관을 파견한 이유는 다뤄야 할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신무기가 발표되고 징병제 폐지에 전쟁이 터지는 데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국방무관 중 연구원 출신이 많은 것도 워낙 무기체계가 생소해서였다.
예를 들면, 최근 발표된 컴뱃 워커는 블랙메탈과 안드로이드를 깊이 연구한 사람이 아니면 기본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블랙메탈을 오래 연구했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하여튼 그런 분위기에서 마침내 동아시아 전쟁이 터졌다.
가장 바쁜 것은 물론 한국의 군인들이겠지만 각국의 국방무관들도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계엄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거리와 대부분의 관공서가 폐되어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국방부 프레스센터와 외교공관이 거의 전부였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정보에 크게 인색하지 않았다.
수많은 기자와 외교관, 국방무관이 모인 프레스센터에 김철우 국방부 장관이 나타났다.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역임했지만 현재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기야 권한대행 노릇을 하면서 그렇게 고생했으니.
마이크가 켜졌고 그가 발표하기 시작했다.
“어제 오후 7시경, 한국은 중국과 일본 양국에 정식으로 선전포고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서해 유전과 대마도 근처에서 함대 간 교전이 발생했습니다.”
벌써 교전이라고?
국방무관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3국을 둘러싼 정세가 너무 험악해 교전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선전포고가 끝남과 동시에 저지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긴 요즘 시대에 선전포고를 한 것만 해도 충분히 이례적이다.
김철우 장관은 프롬프터가 아닌 종이에 휘갈겨 쓰인 내용을 읽었다.
“서해 교전엔 아 해군 김구함, 여운형함이 참가해 중국 055급 구축함 6척과 다수 군함을 격침 또는 무력화했습니다. 현재 서해 유전은 11전투전단에서 확보한 상태입니다.”
그간 세간에서 말이 많았던 레일건 전투함 간의 우열이 명확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중국은 자국의 레일건이 한국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지만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겨우 두 척으로 30분 만에 함대를 박살냈다고? 장난이 아니군.
―빨리 본국에 알려야겠다.
국방무관들이 바삐 정보를 송신하는 가운데 김철우 장관이 덧붙였다.
“근처에 공군 전술기도 대기 중이었지만 상호간 교전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전투기는 아이언 빔 앞에선 대함미사일의 의미가 없다는 걸 알 테고 한국 측은 교전이 승리로 끝난 만큼 중국 전투기를 요격하는 데 중점을 두었을 것이다.
잠수함은 교전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도 극비일 테니 여기서 발표하기는 좀 그렇지.
“그리고 같은 시각 대마도 인근 해상에서 일본 함대와의 교전도 있었습니다. 다만 교전에 참가한 함선은 한국 해군 소속이 아닌 어스 플릿입니다.”
어스 플릿이라면 인도양에서 그 강렬한 존재감을 보였던 그 함대를 말하는 건가?
하지만 대마도 인근엔 일본과 영국, 프랑스의 연합훈련이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
다행히도 답은 금방 나왔다.
“어스 플릿은 일본의 공고급 구축함을 포함한 다섯 척의 함선을 격침시켰으며, 잠수함 전단의 공격을 받고 현재 해당 해역을 떠난 상태입니다.”
그때 누군가가 벌떡 일어났다.
영국에서 파견된 국방무관 해럴드 중령이었다.
그는 발언권도 얻지 않고 따지듯 물었다.
“훈련함대엔 영국 구축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설마 그들까지 공격한 겁니까?”
“거기에 대해선 답하지 않겠습니다. 앉아 주십시오.”
김철우 장관이 앉으라고 말했음에도 해럴드 중령은 물러서지 않고 영어를 쏟아냈다.
“현재 영국과 한국은 교전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영국 구축함을 공격했다는 건 양국의 관계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즉시 관련 정보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장관의 태도는 여유로웠다.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코멘트는 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지금 앉으라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외교부에서 페르소나 논 그라타를 발동시킬 겁니다. 앉으십시오.”
페르소나 논 그라타.
당신은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니 추방하겠다는 이야기다.
국방무관은 특성상 민감한 정보에 개입되어 있을 때가 많지만 실제로 지정을 당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일단 발동하면 상대국도 같은 조치를 할 수 있기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라 한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해서 뭐라고 할 국가는 거의 없었다.
국방무관은 그 특성상 정중해야 하는 위치인데 전쟁 중인 국방부 장관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다?
바로 본국으로 송환 조치되어도 할 말이 없다.
해럴드 중령은 입술을 달싹거리긴 했지만 더 버티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발표는 거기에서 끝났고 각국의 국방무관들은 한국군 7군단이 집결지를 떠났다는 사실을 추가로 알아냈다.
워낙 덩치가 커서 소문이 안 날 수가 없는 부대다.
미국과 영국의 국방무관 여러 명이 외교공관에 모여 심각한 이야기를 나눴다.
“왜 7군단에 대한 발표가 없을까요?”
“별도의 작계가 없든지, 혹은 기밀사항이든지.”
“7군단이 허수아비 롤을 맡았을 리 없으니 후자겠군요.”
“지금쯤은 떠났다?”
“30분 뒤면 밝혀지겠죠.”
지난 2차 한국전쟁에서 한국 육군 7군단은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육군의 선두에 서서 진격했고 북한군이 자랑하는 정예 땅크부대를 혼자서 깨부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 부대는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게도 초유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현재 레일건과 이온 추진기를 탑재한 전차로선 유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드론 시스템이 실제 전장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확인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겠지.
그래서 미국은 평소 7군단의 훈련과 기동에 많은 신경을 써 왔고, 이를 동맹국인 일본에 알려 주기까지 했다.
다만, 일본은 7군단이 자기들 영토에 상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하고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 많은 수상함 전력을 생각하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고 대신 그들은 인류연합의 어스 플릿에 관심을 쏟았다.
하여튼 유지하 대통령이 선전포고를 했을 때, 미국은 황해 유전과 쓰시마 근해 외에 7군단을 살폈다.
하지만 저궤도 인공위성의 특성상 약 1시간 40분마다 해당위치를 정찰할 수 있었다.
미국 정보조사국은 7군단의 중요성을 감안해 두 대의 키홀 정찰위성을 배정했지만 그 간격을 1시간 안으로 줄일 수는 없었다.
30분 전에 유지하 대통령이 선전포고를 했으니 7군단 역시 움직였을 것이다.
그 결과가 30분 뒤에 나온다.
원래 이 자리엔 프랑스도 끼고 싶어 했지만 미국은 앵글로색슨이 주류인 국가에게만 정보를 공유했다.
아무리 한국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봐야 그들의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지하 대통령이 미국에 삐딱하게 나오는 것도 그런 사실을 알아서인지도 모른다.
노력해도 계급이 오른다는 확신이 없으면 노력 자체를 포기하지 않겠는가?
거기에 더해 미국 민주당의 씽크탱크는 그가 판 자체를 박살낼 가능성이 지대하다고 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전쟁을 벌여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흔드는 것도 자신이 중심이 되겠다는 발상의 발로라는 것이다.
아까 면박을 당한 해럴드 중령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만주를 원한다고 했으니 선양시로 갔을 것 같지 않습니까?”
“어쩌면 다롄으로 진격했을 수도 있네. 거기에 유전이 있으니까.”
둘 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고 현재 괌에서 출발한 SR-72 정찰기가 다롄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정찰기는 최대속도가 마하 6에 달해 현존하는 그 어떤 방공망으로도 요격이 불가능했다.
중국과 러시아조차 이 정찰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여러 번 항의했으나 미국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원래 이 정찰기는 한국의 오산, 일본의 오키나와에 배치되어 있었으나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주일미군이 감축을 선언하며 괌까지 내려갔다.
덕분에 전쟁이 선포되었음에도 바로 정찰에 투입되지 못하고 열심히 날아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고 미국 국방무관 제임스 준장은 본국에서 연락을 받았다.
“7군단이 주둔지에 없다는군. 지금 이동 경로를 추적 중인데 아마 다롄 쪽으로 갔을 것 같다고 하네.”
“만주를 바란다고 해놓고 유전을 더 중요시했군요. 동시베리아의 유전이 시원치 않았던 모양이죠?”
“그럴 리가 없는데…….”
동시베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부존자원이 많은 곳 중의 하나다.
괜히 한국이 초기술들을 러시아와 공유했겠는가.
해럴드 중령은 한결 편한 표정이 되어 소파에 등을 기댔다.
“전쟁이 생각보다 그리 확대되지는 않을 것 같군요.”
“그게 최대의 의문이야. 공격적인 성향을 봐서 반드시 북진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대놓고 만주에 시비를 걸어대는 바람에 다들 목적을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것도 기만작전으로 봐야 하나?
“미국의 정찰위성까지 피해 움직인 것치고는 좀 약하군요. 만주 일부분이라.”
“다롄 유전이 좀 크지. 그리고 중국 육군과 정면으로 부딪치기가 부담스러웠을 거네. 전차의 성능에선 압도하겠지만 육군에 전차만 있는 건 아니니까.”
“중국의 포병전력에 로켓군까지 합하면 군단급 정도는 충분히 돈좌시킬 수 있죠.”
어쩌면 총력전 자체가 기만이었을 수도 있었다.
누가 봐도 현재의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상대할 체급이 아니었다.
인류연합까지 끌어모으면 전투에선 우세할지 모르나 단시간에 양국을 항복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엔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그런 점에서 다들 한국의 목적이 만주 전체가 아니라 랴오둥 반도라고 오해했다.
육군의 최주력인 7군단이 다롄으로 갔으니 그렇게 판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만주 전체를 원한다는 유지하의 정신 나간 구상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이지 않은가.
그마저도 중국이 쉽사리 내주진 않겠지만.
* * *
일본의 훈련함대가 박살난 후, 어스 플릿은 곧장 잠수해 근처에 매복하고 있던 잠수함 전단의 추적에서 벗어났다.
원래 잠수함에서 잠수함을 탐지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대잠작전에 이골이 나 있는 미국이나 러시아조차 가끔 충돌사고를 일으킬 정도니.
덕분에 일본 통합사령부에선 어스 플릿을 완전히 놓쳐 버렸고 마츠다 총리는 단단히 화가 났다.
“선전포고가 끝나자마자 공격한다고? 이 자식들이 완전히 미쳤군!”
그는 내심 영국과 프랑스에서 나서주길 기대했으나 군 내부에서는 큰 피해가 없었으므로 무리라는 판단이 나왔다.
“네 척의 구축함이 함대와 뒤섞여 기동하고 있었는데 사격이 워낙 절묘해서 약간의 피해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공고급 한 척이 무력화되면서 파편을 약간 뒤집어쓴 게 전부입니다.”
그에 반해 일본 해군의 피해는 막심했다.
레일건 개수를 받은 다섯 척의 전투함이 모조리 격침됐거나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현장에 급파한 헬기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이즈치 제독이 승선한 기함 마야급은 거의 벌집이 되었다고 한다.
침몰하진 않았지만 함교와 레이더, 엔진, 레일건 포탑까지 모조리 박살 났으므로 떠다니는 관짝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마츠다 총리는 한국의 음험함에 치를 떨었다.
“정면에선 상대하기 어려우니까 기습을 가했다 이거지…….”
하지만 정작 해군에선 이번 실전의 데이터를 받아 보고 하나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기습을 했다 하더라도 대응도 못하고 전멸당한 건 이쪽의 전력이 엄청난 열세에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레일건의 관통력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높습니다. 블랙메탈 장갑이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화력함과 드론모함은 나서지도 않았는데 이 지경이면…….”
하지만 해군의 누구도 총리에게 이런 보고를 올리지 못했다.
겁쟁이라고 매도당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육군이 바다만 열어 주면 쓰시마를 확보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상황에서 얕보일 수 없다는 내부의 사정도 있었다.
훈련함대가 박살나고 이즈치 제독이 전사한 사건임에도 의외로 파장은 크지 않았는데, 이후에 더 큰 파장이 닥쳐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마도에 배치된 레일건이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했다.
이 레일건은 지상형인 만큼 함상형과는 차원이 다른 전력을 밀어 넣을 수 있었다.
통제 권한은 육군이나 합참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유지하에게만 있었다.
그 무기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자 일본 해군이 기겁했다.
―쓰시마의 레일건이 가동됐다! 모든 함대는 회피기동을 실시한다!
사실 함대가 아니면 레일건을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다.
관통력은 확실하겠지만 고폭탄을 넣지 못하므로 대단한 파괴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프늄2 탄두를 탑재한다면 그건 국제사회의 지탄을 불러오는 계기가 된다.
안 그래도 지금 UN에선 한국의 하프늄2 탄두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국에서 외교관을 철수시켰기에 그 의향이 전해지지 않았지만, 일본 열도에 버섯구름이 피어오른다면 각국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미국조차 한국의 하프늄2 탄두 사용에 따라 전술핵 재배치를 고려할지도 모른다고 발표할 정도니 오죽할까.
일본은 세계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이 이란이나 파키스탄과는 차원이 다른 국가였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리미터가 완전히 풀린 레일건은 굳이 하프늄2 탄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걸.
대마도의 레일건이 사격을 시작하자 사세보 근처에 있던 함대가 수백 발의 탄자를 뒤집어썼다.
차례차례 날아온 게 아니었다.
함대는 마치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순식간에 벌집이 되었다.
“하늘에서 탄자의 비가 쏟아진다! 이대로는 함대가 궤멸한다!”
근처에 있던 방공부대에서 나름의 대응을 했으나 탄자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요격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렇게 수백 발의 탄자가 국지성 소나기처럼 쏟아지자 기지의 핵심시설이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사세보지방대 완전 침묵! 움직일 수 있는 배가 없습니다!”
“수륙기동단의 피해도 궤멸적입니다! 대응 불가능!”
대마도의 레일건은 민간지역은 건드리지 않고 집요하게 군사시설만 노렸다.
그 어마어마한 관통력에 건물은 물론이고 콘크리트 진지와 장갑차까지 관통당해 남아나는 게 없었다.
유류고까지 박살나는 바람에 사세보 군항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마츠다 총리는 사세보에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는 보고를 듣고 희희낙락해 통합사령부에 연락을 넣었다.
“한국 놈들이 하프늄2를 썼군! 맞지?”
“아, 아닙니다! 확인 결과 유류고의 폭발인 것 같습니다!”
얼굴 표정이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일단 전쟁은 피할 수 없었고 어떻게든 미국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한국이 그럴 여지를 주지 않고 있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그는 즉각 쓰시마 공격을 명했다.
“쏠 수 있는 건 모조리 쏟아부어!”
비교적 연계가 잘 되는 공군과 해군이 나서서 가용한 대지미사일을 쏟아부었고 대마도 측에서도 요격에 나섰다.
이렇듯 양국이 쓰시마를 중심에 두고 제한적인 화력을 투사하는 동안 어스 플릿은 일본의 바다를 자유롭게 누비고 있었다.
일본의 잠수함 전단들은 복수하기 위해 기를 쓰고 바다를 수색했으나 좀처럼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어스 플릿은 거의 해저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양에서 약점을 보인 덕분에 다들 이 함대의 잠항심도가 그리 깊지 않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잠수만 가능할 뿐, 실제 잠수함과 같은 잠항심도를 가지지는 못할 것이다.
―파편을 뒤집어썼을 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걸 보면 기밀성이 그리 높지는 않다.
―그러나 그 속도만큼은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다만 바닷속에서 빠르다는 건 그만큼 긴 항적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이라는 유체를 아무런 흔적도 없이 통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해군사령부에서는 항적 추적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어스 플릿이 나타날 만한 항구와 함대 근처에 엄청난 기뢰를 뿌려놓았다.
오라이언과 대잠헬기를 총동원해 바다를 샅샅이 수색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어스 플릿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만약 겁을 먹고 움직이지 않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일본의 작전은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전력을 수습해 쓰시마를 공략하면 되기 때문이다.
마침 수백 발의 대지미사일이 효과가 있었는지 쓰시마의 레일건도 침묵한 상태였다.
이런 보고를 받은 마츠다 총리는 희희낙락했다.
“황해의 두 놈은 못 움직일 테니까 그 틈에 쓰시마를 확보하기로 하지.”
상륙전을 수행할 수륙기동단은 사세보 외에도 몇 군데에 더 있다.
불러오는 데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대로 어스 플릿이 얌전히 숨어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일본이 부담스러워하는 건 어디까지나 어스 플릿을 포함한 인류연합의 군대지 한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7군단인가 뭔가는 확실히 대단하긴 해. 우리 육군으로는 상대가 어렵겠지. 근데 바다를 어떻게 건너올 거야?
―KF-31도 양산 전이고 컴뱃 워커란 놈도 발표만 됐지 실전배치는 아직 멀었어. 그놈들이 설칠 때가 되면 우리도 F-3가 배치되니까 문제는 아니야.
―테라섬만 주시하면 돼.
다들 그렇게 테라섬과 어스 플릿에 집중하고 있을 때 중국은 다롄으로 향한 7군단을 찾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7군단은 확실한 주공이고 이번 전쟁의 키를 쥐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이 전차부대만 무력화하거나, 최소 저지하는데 성공한다면 승산은 확실히 중국 측으로 기울 것이다.
하지만 랴오닝반도로 날아든 중국 정찰기는 족족 격추당했고 인공위성조차 고장이 나 제때 촬영하지 못했다.
덕분에 중국 지도부는 몇 시간 동안이나 랴오닝반도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까막눈으로 있어야 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한국군이 진입했다고 하더라도 거긴 우리 땅이다! 우리 땅의 상황을 우리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그, 근처에 한국 함대가 있어서 정찰기가 접근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황해 해전에서 참패하는 바람에 다른 함대를 동원하는 게 여의치 않았다.
극초음속 대함미사일을 비롯한 탄도탄 전력은 아직 쓸 시기가 아니었다.
왕쉬안 상장은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
“현지와 연락은?”
“한국군이 기동하면서 통신중계탑을 박살 냈습니다! 해저케이블도 끊어진 것 같고 전파 방해도 장난이 아닙니다!”
“오토바이 부대라도 들여보내!”
잉커우에 주둔하고 있던 오토바이 부대가 다롄을 향해 달렸다.
이들은 이미 1계급 승진을 약속받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죽음을 각오한 정찰인 것이다.
하지만 기껏 오토바이 부대가 다롄에 도착했을 때에는 7군단은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것은 그들이 기동한 흔적뿐이었다.
왕쉬안 상장은 세 시간을 기다려 보고를 받고는 허탈해했다.
“그럼 7군단은 어디로 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