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일단 한 대씩 맞아라
레일건과 블랙메탈 장갑이 전력화되면서 세계의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가진 의문이 하나 있다.
―최대출력 레일건을 블랙메탈 장갑이 막아낼 수 있는가?
그러니까 창과 방패의 문제다.
레일건 탄자에도 블랙메탈이 사용되니 말이다.
둘 다 보유한 국가는 한국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최근 레일건을 개발한 곳이 늘어났다.
그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하고 성과를 기록하는 곳은 역시 미국이었다.
이 거대한 국가는 온갖 환경과 조건으로 레일건을 블랙메탈 장갑에 쏘는 실험을 했고 결과를 정리해 놓았다.
일반인들이 이 내용을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주요 동맹국은 알고 있었는데, 방패의 패배였다.
그러니까 블랙메탈 장갑이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지간한 폭발에도 견뎌내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다소 뜻밖이라 할 수 있는데 미군 연구진은 블랙메탈끼리 접촉하면서 일종의 트랜스폼 현상이 일어난다고 보고했다.
―아주 짧은 순간 트랜스폼 현상이 일어나 탄자와 장갑판 모두가 형체를 잃는다. 다만 장갑판이 완전히 분해되는 정도는 아니며 레일건에도 상당한 출력이 요구된다.
방패가 패배하긴 했지만 대함미사일의 방호에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므로 현대 전투함에 블랙메탈은 필수적이었다.
여기서 사람들은 하나의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과연 한국의 레일건을 다른 국가의 블랙메탈 장갑에 쏴도 그런 결과가 나올까?
일단 한국은 블랙메탈 관련 기술에서 원조나 다름없었고 레일건의 스펙도 다른 국가를 앞서가는 면모가 있었다.
사거리와 관통력, 내구력 등에서 다른 레일건을 월등히 능가하지만 이를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었던 것이다.
블랙메탈로 도시를 만들 정도이니 차원이 다르다는 건 확실한데 정작 한국이 입을 열지 않으니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2031년 11월, 마침내 그걸 알아볼 기회가 다가왔다.
중국과 한반도 사이 좁은 해역에 20여 척의 군함이 모였는데 이들 중 7척이 레일건함이었다.
한국은 김구함과 여운형함 2척으로 레일건을 위해 건조된 전용함이었고 중국 측은 기존의 055형 구축함을 개조했다.
일단 덩치에선 055급이 절대 밀리지 않았고 블랙메탈 장갑판을 덕지덕지 발라 상당한 위압감을 풍겼다.
그런 배가 6척이나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국 해군이 열세로 보였다.
그러나 한국 해군 장교들은 전투가 벌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쟤네들 아이언 빔 역설계도 안 끝났잖습니까. 방공망에서 상대가 안 돼요.”
“방공까지 갈 필요도 없이 자동전투 버튼 이거 누르면 그냥 끝난다니까.”
이들은 2차 한국전쟁에 참가한 베테랑이었고 빨간 버튼이 가지는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누르기만 하면 1만 5천 톤에 육박하는 순양함이 알아서 출력을 조정하고 적을 포착해 전투를 벌인다.
그 순발력과 판단력은 인간이 통제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한국 해군 연구소에선 인공지능이 통제하는 김구함을 무력화하려면 3배 이상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었다.
―그것도 인간 측이 절대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고 최선의 선택만 한다고 했을 때 나오는 결과다.
―인공지능의 성능으로 봐서 실전이라면 글쎄… 5척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붙여 볼 수가 없으니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중국의 레일건함을 상대로 실험해 볼 기회가 생겼다.
김구함 함교의 승조원들은 유지하 대통령의 선전포고를 라디오로 들으며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애들 큰일 났네요. 1년만 참으면 전역이라고 좋아하던데.”
“어쩌겠어? 저 좆같은 새끼들이 우릴 가만히 놔두지를 않잖아.”
“언젠가 한번 부딪쳐야 하긴 했죠.”
그게 하필 중국 해군과 서해에서 대치하고 있는 지금이라는 게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다만 2차 한국전쟁에서 김구급 구축함의 전사자는 한 명도 없었으므로 그런 점에선 안심할 수 있었다.
이윽고 함장이 패널을 쳐다보고 말했다.
“곧 개전이군.”
그와 동시에 군함 전체가 자동전투 모드로 바뀌었다.
이 모드에 들어가면 승조원들은 대미지 컨트롤 외에는 할 것이 없어진다.
“총원 전투배치. 따로 할 것은 없고 주변 사물을 꽉 잡아라. 이 배는 사람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그때 임무컴퓨터가 낭랑한 목소리로 함 전체에 전달했다.
「작전명령 31-15에 의거, 현 시간부로 김구함은 제가 통제를 맡겠습니다.」
이건 한국인에게 아주 익숙한 루시아의 목소리다.
원래는 음성 없이 패널로 현 상황을 표시했지만 기능이 업데이트 된 것이다.
이온 추진기가 가동되며 레일건 포탑이 빠르게 회전했다.
이는 여운형함도 마찬가지였고 중국 해군도 눈치를 챘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리미터 해제, 레일건 1번, 2번 최대출력.」
「냉각 시스템 문제없음, 속사 모드로 변경.」
「전투 개시.」
순간 4문에 달하는 레일건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탄자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크 방전이 사라지고 탄자가 포구를 떠나는 그 짧은 순간, 이미 축전지가 전력을 밀어 넣고 있었다.
너무 빠르게 탄자를 발사하다 보니 마치 포구에 푸른 섬광이 맺힌 것처럼 보였다.
쿠쿠쿠쿵!
그렇게 4문의 레일건이 수백 발이 넘는 탄자를 발사했고 드디어 중국 함대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교! 한국군이 레일건을 쐈습니다!”
“전함 회피 기동 실시!”
그러나 너무 늦었다.
탄자는 마치 중국 함대의 움직임을 예측이라도 한 듯이 선체를 두들겼다.
블랙메탈 장갑이 버텨 냈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가지 못하고 트랜스폼 현상을 일으켜 분해되어 버렸다.
가장 앞서서 무력화된 것은 55급 구축함 난창함이었다.
이 배는 시범적으로 레일건함으로 개수된 만큼 온갖 오류가 많았고 포탑조차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다.
거기에 수십 발의 탄자를 얻어맞자 말 그대로 포신이 분리되어 버렸다.
그리고 급기야 엔진실에 구멍이 뻥뻥 뚫리더니 추진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전투가 시작된 지 1분 만에 군함 한 척이 무력화된 것이다.
다른 군함은 이제야 회피기동을 중지하고 포탑을 회전시켰는데 놀랍도록 느렸다.
레일건을 탑재하는 데에만 신경 써서 임무컴퓨터와 연동도 되지 않았고 사격제원 입력도 수동이었다.
말 그대로 레일건을 쏠 수 있는 수준으로만 만들어 배치한 것인데 그게 실전에선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사격제원 입력 완료!”
한 교관이 목청이 터져라 외쳤고 준이함 함장은 사격을 지시하려 했다.
하지만 그를 포함한 모두가 절망적인 얼굴이 되었다.
레이저 화면에 수백 개의 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화면이 갱신되는 그 짧은 순간 점은 상당한 거리를 이동해 있었다.
모두의 머릿속에 대체 뭐하는 레일건이기에 냉각절차도 없이 저 지랄이냐는 의문이 떠올랐다.
중국에서 개발한 레일건이 몇 발의 사격 후 포신을 강제로 냉각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저놈들 대체 뭘 만들어 낸…….”
함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초속 7km로 날아온 탄자가 준이함을 두들겼다.
튼튼하던 블랙메탈 장갑이 순식간에 분해되며 함교에 구멍이 숭숭 생겨났다.
그리고 구멍이 밑으로 내려오더니 급기야 VLS와 연결된 탄약고를 건드렸는지 대폭발을 일으켰다.
준이함은 충격파를 일으키며 두 쪽이 났고 주변 군함들은 100km 밖에서 날아온 탄자와 파편을 동시에 뒤집어써야 했다.
비록 기습으로 시작된 전투지만 승패는 명확해 보였다.
그제야 다른 레일건함이 사격을 시작했지만 한국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느려서 좀처럼 명중탄이 나지 않았다.
몇 발이 겨우 명중했으나 튼튼한 블랙메탈 장갑을 뚫지 못하고 탄자가 형체를 잃었다.
김구함과 여운형함은 빠르게 기동하면서 중국 유전함대 전체를 상대했다.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5척의 군함이 침몰했고 나머지는 대응하는 대신 도주를 선택했다.
레일건의 사거리가 이 해역 전체를 커버하고도 남는다는 걸 잠깐 잊은 모양이다.
그들의 머리 위에 블랙메탈 탄자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 * *
유지하가 갑작스럽게 양국에 선전포고한 그 시각.
쓰시마 남쪽 해상에선 일본과 영국, 프랑스 함대의 연합훈련이 행해지고 있었다.
일단 대외적으로는 한반도에서 만약의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해 훈련을 진행한다고 발표했지만 근본 목적은 다른 데에 있었다.
이 함대는 전쟁이 터지면 어스 플릿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 역할을 할 예정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한국과 관계가 험악하긴 했지만 전쟁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어스 플릿이 훈련함대와 대치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중국군이 기습공격으로 유전지대를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물론, 어스 플릿은 잠수할 수 있으니 훈련함대의 추격을 뿌리치고 곧장 유전지대로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경우 훈련함대는 해체되고 호위함대가 편성되어 쓰시마를 공략하게 된다.
간단한 기만작전이지만 유전과 쓰시마를 동시에 지켜야 하는 입장이고 보면 이리저리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계획은 양국의 희망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유지하는 두 나라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움츠러들지 않고 곧장 선전포고를 함으로서 의표를 찔렀다.
갑작스런 선전포고에 당황한 양국의 수뇌부가 허둥대고 있는 동안 서해의 중국 함대가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기습공격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당해 버린 것이다.
함대 전체가 너무 빨리 와해되는 바람에 소식이 전해질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쓰시마의 연합함대 수뇌부는 갑자기 부상한 어스 플릿에 흡족함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계획대로군.”
“이대로 거리를 벌려서 견제만 합시다. 어스 플릿을 여기에 붙잡아 두면 성공입니다.”
어디까지나 훈련함대라서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지휘체계도 다소 어수선한 구석이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구축함 네 척이 돌아가면서 지휘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런 반쪽함대로 어스 플릿을 붙잡아둘 수 있다면 대단히 수지맞는 장사임에 틀림없다.
불안한 점이 있다면 일본 정부의 행동이 오락가락한다는 점일까…….
이즈치 사부로 제독이 보기에 일본 정부, 특히 마츠다 총리는 도저히 믿을 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특기는 책임 떠넘기기와 몸 숨기기로, 총리가 아니라 일개 자위관으로 복무했어도 대단치 않은 평을 들었을 것이다.
유신회의 중책이라고 해서 총리의 자리에 오른 것은 일본 전체의 치부였다.
‘그러나 도리가 없다.’
그 혼란기에서 누군가는 총리의 자리에 있어야 했다.
비록 소인배이고 일선부대를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총리는 총리.
책임을 질 정치인이 있어야 군인들은 안심하고 싸울 수 있다.
물론 여기서는 싸우면 안 되지만.
그는 마이크의 키를 잡고 말했다.
“제군들에게 알린다. 소문의 어스 플릿이 마침내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놈들은 우리를 공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곁엔 영국과 프랑스의 구축함이 있기 때문이지.”
아무리 막나가는 유지하라도 설마 두 국가의 배를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들 약간의 긴장감 속에서 어스 플릿의 함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생각보다 더 검다는 말이 나왔고 일부는 한번 붙어 보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일단 훈련함대에도 레일건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함대는…….”
이즈치 제독이 뭔가를 더 말하려 했을 때였다.
갑자기 어스 플릿 선두함의 포탑이 회전하더니 기함을 조준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시커먼 포신의 구멍까지 보일 정도였다.
훈련함대 기함의 함교에선 마른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아니겠지…….”
“안심하도록. 놈들은 절대 쏠 수 없다. 단순한 위협 행위일 뿐이야.”
저 함대의 주인인 유지하는 한국의 대통령이다.
공격 명령을 내린다는 건 곧 양국과 전쟁을 한다는 뜻이었다.
북한이라면 모를까 한국의 체급으로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상대한다?
인류연합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버거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즈치 제독 휘하 수뇌부는 약간 놀라긴 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행동해야 영국과 프랑스 구축함 앞에서 면이 선다는 주장이 나왔다.
“과연 그렇겠군. 본 함대는 지금부터 기동훈련을 실시한다. 저 함대 주변을 천천히 선회하도록 하지.”
이는 우리에 갇힌 맹수를 도발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 우리가 튼튼하다면 모르겠지만, 맹수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부수고 나올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일본의 훈련함대가 움직이자 영국과 프랑스의 구축함 네 척도 순순히 따라왔다.
이번 기회에 어스 플릿의 전투함을 상세하게 관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저건 포탑이 없는데 화력함인가? 미사일 한 방이라도 맞으면 그대로 박살나겠는데.”
“대함미사일 세례에도 끄덕도 없었는데 그렇게 될까? 저걸 무력화하려면 핵탄두밖에 답이 없어.”
“우리도 하프늄2에 대해서 연구하고는 있으니까요. 조만간 성과가 나올 겁니다.”
“그나저나 저 배는 아무런 무장이 없는데…….”
“드론 모함입니다. 이란의 F-14를 격추한 게 저기서 나왔죠.”
“우리 항자대… 아니, 공군의 F-3와 대결하면 어찌 될지 궁금한데.”
“아무리 그래도 스텔스기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무인기는 무인기일 뿐이죠.”
F-3는 아직 양산되지도 않았지만 추종하는 무인기와 함께 전투를 벌인다는 그 컨셉 덕분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일본 내에선 F-3만 양산된다면 인류연합의 캘리버 드론을 압도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온 추진기를 성공적으로 국산화하고 이를 F-3에 문제없이 이식한다는 큰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은 슬그머니 숨겼다.
여하튼 일본군은 정부의 대대적인 국방비 증액 발표 이후로 많은 관심을 받아 자신감에 차 있는 상태였다.
그런 분위기가 훈련함대에까지 전해져 어스 플릿의 레일건에 노출된 채로 주변을 유유히 돌아다니기에 이르렀다.
“긴장하지 마라! 저 인공지능은 절대 우리를 공격하지 못한다!”
이즈치 제독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가 함대에 전해졌을 때였다.
사령부에서 날아온 통신을 해독한 부관이 찢어지듯 비명소리를 질렀다.
“제독! 한국이 선전포고했습니다!”
“뭐? 어디에?”
바보 같은 질문이다.
한국이 선전포고하는 대상이 중국과 일본 이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단지 그게 실제로 일어나리라곤 믿지 않았기에 얼간이 같은 질문을 한 것뿐이었다.
“대한민국은 중국, 일본과 전쟁에 돌입했다는 것을 통보한다, 이상입니다!”
이즈치 제독은 자신도 모르게 콘솔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선전포고라면 전면전인가?
하지만 그는 상부로부터 전면전을 벌인다는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일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쓰시마였고 제한적인 해전만 벌일 예정이었다.
“설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양면전쟁을 벌인다고? 그놈은 완전히 미쳤어!”
경악한 반응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즈치 제독은 섬뜩한 무언가를 느꼈다.
기함을 향한 포신에서 푸른 방전이 일어난 것이다.
그가 포신을 똑바로 바라봤을 때에는 이미 의식이 날아가고 없었다.
어스 플릿의 레일건 전투함 세 척이 본격적으로 포격을 개시했다.
주변을 유유히 돌아다니던 구축함들이 순식간에 탄자를 뒤집어썼다.
* * *
두 함대가 박살나는 그 시각.
신의주시 인근에 집결한 한국군 7군단은 일제히 단차에 시동을 걸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30분 내로 집결지 떠난다! 필요한 건 몽땅 차에 실어!”
“드론은 놔둬! 차에 시동 걸면 지들이 알아서 날아오니까!”
권준호 병장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욕설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느꼈다.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전역인데 전쟁이라니!
“집에 가고 싶다고! 아 진짜아!”
이 모든 상황이 훈련이길 빌었지만 사단장이 뛰어다니는 걸 보니 전쟁이 터진 게 확실했다.
단차에 짐을 싣고 탄자박스를 까서 우겨넣는데 뒤늦게 탑승한 소대장이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인상 펴라. 뭐 죽으러 가냐?”
“소대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북쪽에 중국놈들 깔렸는데 거기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픕니다.”
“우리도 황당하다. 전쟁이 이렇게 쉽게 일어나도 되는 건가 싶어서.”
동아시아를 둘러싼 분위기는 험악 그 자체였지만 실제 전쟁이 터질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요즘 정치인들은 물밑 협상이나 대화 같은 것을 잊어버린 걸까?
권 병장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예전과는 달리 시끄러운 소리도 없었고 진동도 매우 가늘었다.
“그래도 이 안에 있으면 죽진 않겠네요.”
“너 혹시 그거 아냐? 지난 전쟁 때 우리 7군단에서 죽은 사람이 100명도 안 되는 거?”
“확률은 낮아도 그게 제가 되면 100퍼센트잖습니까.”
맞는 말이어서 소대장은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인정한다.
이 전차의 전투력은 타의 추정을 불허한다.
공격력은 물론이고 방어력, 기동력도 다른 전차와는 차원이 달랐다.
기존 강력한 전차 중의 하나였던 K2 전차 대대가 달려들어도 한 대로 모조리 박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전쟁 그 자체에 넌더리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집결지를 떠나면 상관들의 호통과 무전기에서 쏟아지는 온갖 지시를 이행해야 한다.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밖은 오줌줄기조차 얼어 버릴 정도로 추웠고 전쟁이 시작됐다는 긴장감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는 나날이 지속될 것이다.
무엇보다 치가 떨리는 것은 전쟁의 참혹함 그 자체였다.
귀가 먹먹한 포성과 사방에서 들리는 비명, 그리고 동료의 죽음은 위에서 지시만 내리는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한다.
“그래도 어쩌겠냐. 까라면 까는 게 군바리 운명이지.”
그나마 유지하 대통령은 모자라는 식량을 공수해 줄 정도로 병력의 고충을 잘 헤아린다는 평이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런 여유조차 없을 확률이 매우 높지만.
소대장은 갑자기 들려온 무전에 귀를 기울였다.
“요즘은 군단에서 직접 지시사항을 전파하네?”
한참 듣던 소대장은 권 병장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야, 준호야. 너 루시아 사고 싶다고 그랬지?”
“사고는 싶은데 돈도 없고 지금 예약을 걸어도 10년 뒤에나 받을 것 같던데요.”
요즘 젊은 남자들의 목표는 집이나 차가 아니라 안드로이드 구입이었다.
돈만 주면 자기만의 애인을 구입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수요가 너무 많아 공급이 따라가질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20대 초반에 예약하면 거의 서른이 되어서야 받는다고 하니 환장할 일이다.
권 병장도 전역하면 메가시티 근처에서 일자리를 구해 안드로이드를 예약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연애는 글렀으니 루시아 하나 구입해서 둘이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소대장이 뜻밖의 말을 했다.
“이번 전쟁 끝나면 원하는 사람한테 루시아 1대씩 준다는데? 그것도 바로.”
“진짜요?”
“어. 전쟁 끝나면 복무기간 상관없이 바로 전역이고 집으로 루시아 보내준다네. 루시아 필요 없으면 뭐 다른 혜택도 있고.”
“와, 진짜 말도 안 되네.”
“대통령이 징병제를 폐지하긴 할 건가 보다.”
소대장이 씁쓸해하는 데 비해 권 병장은 그야말로 엄청난 의욕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구하기 힘든 안드로이드를 바로 준다니!
그것도 공짜로!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소대장은 그 뒤에도 한참 동안 장병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에 대해 열거했지만 권 병장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어디로 가야 됩니까?”
“새끼 루시아 준다니까 어깨부터 펴지네. 잠깐만 기다려 봐. 이건 군단 지시사항이 아니고 더 윗선이라는데… 어?”
“……?”
한참 무전을 듣던 소대장은 마침내 키에서 손가락을 떼었다.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와 함께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베이징으로 가란다. 중국군 다 무시하고 베이징으로 진격하라는데?”
“예?”
권 병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