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너희가 원한 전쟁이다
독재자는 영원한 권력을 꿈꾼다.
하지만 그게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고 심지어 죽을 때까지 권력을 유지한 독재자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거의 성공에 근접한 편이었다.
80줄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권력을 쥐고 있으니까.
하지만 유지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결코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유지하가 넌지시 운을 떼자 털어놓고 말았다.
같은 독재자끼리 뭔가 통하는 게 있어서일까?
“실은 심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꾸준히 체력 단련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심장이란 놈이 더 이상 못 버티겠는가 봅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심장이 약해지고 철혈의 독재자도 그건 벗어날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아직은 정정하시잖습니까?”
“요즘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힘들더군요. 매일 잠들 때 내일 아침은 일어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그리 오래는 못 버틸 것 같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행이었다.
유지하가 배신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을 테니까.
그의 후계자로는 두 명이 있지만 카리스마나 능력 면에서 푸틴에 미치지 못하는 열화판이었다.
물론 푸틴도 완벽하게 국정을 운영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기회를 잡을 줄은 아니 둘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그가 모기처럼 가는 목소리로 제안했다.
“전쟁의 위협에 직면했다고 들었습니다. 내 짐작으로 동아시아에서의 마지막 전쟁일 것 같은데, 도와줄 수 있습니다.”
“미국이 타국의 개입을 불허하겠다고 천명했는데 괜찮겠습니까?”
“그치들은 언제나 그래 왔죠. 마치 자기네들이 평화의 수호자인 것처럼… 중남미에 마구잡이로 개입해 파탄에 이르게 한 건 완전히 잊어버렸나 봅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가 강하게 나가면 미국도 타협안을 제시할 겁니다. 본토나 서유럽이 위협받지 않는 한.”
미국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둘이고 나머지는 어찌되든 별로 상관없다는 뜻이다.
물론, 우방국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전략 중의 하나였다.
상대가 거의 동등한 핵전력을 가진 러시아라면 더욱 그렇다.
“러시아의 도움은 든든하겠지만 이번은 예외로 두고 싶군요.”
“그건 왜 그렇습니까?”
“중국과 일본이 맛만 보고 달아나면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꼭 전쟁을 원하는 것처럼 들리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혹시 이번 건도 계획한 대로입니까?”
“나라도 모든 걸 알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행동했으면, 하고 바라긴 했죠.”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뜯어내기 위해 우리가 개입해선 안 된다… 이거, 땅을 넘겨준 게 다행스럽게 여겨지는군요. 안 그랬으면 강제로 가져갔을 거 아닙니까?”
“러시아를 상대로요?”
잔잔한 웃음이 흘러나왔지만 푸틴 대통령은 그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
상대가 그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자신감.
안트론과 하프늄이 있으니 실질적으로 핵무장을 한 거나 다름없고 재래식 전력에서는 절대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하긴 테라섬에 무엇이 있는지는 우리나 미국이나 잘 모르니까…….’
세간에서는 컴뱃 워커라는 무기체계를 양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예측했지만 푸틴 대통령의 판단은 달랐다.
전쟁이 시작되면 스마트 팩토리에서 줄줄이 뽑혀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건 중국, 일본과의 전면전을 의미한다.
두 국가는 해전을 중심으로 전쟁을 끌고 나갈 계획인 것 같지만 그렇게 흘러갈 확률은 극히 낮았다.
유지하는 진짜 전쟁을 원한다.
‘이쯤 되니 내 사후가 걱정되는군…….’
그가 러시아에 호의를 가진 것은 분명하지만 후계자까지 그렇게 봐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드미트리와 보르첸코.
나이는 적당히 들었지만 유지하에 비하면 애송이나 다름없다.
그런 주제에 혈기는 넘쳐서 유지하와의 관계를 재고해야 한다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관계를 완전히 끊자는 건 아니고 재협상을 이끌어 내려는 것 같지만 그게 통할지는 의심스러웠다.
‘가급적 내가 죽기 전에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는데…….’
러시아에 초대해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 보고 싶었지만 동아시아 3국이 휘말리는 전쟁이 그렇게 쉽게 끝날 리가 있나.
건강이 안 좋은 지금 한국을 방문할 수도 없으니 자칫 잘못하면 후계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날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삶에 미련은 없지만 단 하나, 소비에트 연방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점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전쟁이 끝난다면… 아니, 승리를 굳힌다면 너무 늦기 전에 크렘린에 들러줄 수 있겠습니까? 꼭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절절한 심경이 목소리에 묻어났고 유지하는 그것을 알아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통합 러시아의 꿈은 내가 이뤄 줄 테니까.’
구 소련의 위성국뿐만이 아니라 동아시아까지 통합하게 되겠지만 어쨌든 푸틴의 꿈은 이뤄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지하는 러시아의 좋은 친구였다.
진면목을 확인한 러시아인들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 * *
동아시아에 전운이 무르익으며 한국은 총동원령을 발령했다.
징병제를 폐지했으면서 동원령이라니 이를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한국을 상대해야 하는 중국과 일본은 비웃을 수 없었다.
이 전쟁은 해전에서 시작해 해전으로 끝낼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전략적 목표가 쓰시마와 황해 유전인 걸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사실 동아시아에서 진정한 의미의 총력전을 치른 국가는 한국뿐이었다.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조차 남의 땅, 남의 바다에서 전쟁을 치렀고 대륙에선 제대로 된 전투가 일어난 적이 없었다.
만약 미국이 상륙전을 감행한다면 핵전쟁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엄포 덕분이었다.
그런데 한국이 민감하게 대응하자 양국은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웬 총동원령이냐? 설마 양면전쟁을 하려는 건가?
―그것보다 우선 분위기를 가라앉혀야 한다. 주변은 우리가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해전에서 끝낼 계획이었는데 상륙전이라고? 육군은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다.
―특사를 보내서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해야 한다.
―전면전이 아니라 적당히 해군으로 견제해 무릎 꿇릴 의도라는 걸 해명한다고? 무시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양국이 대응을 고심하는 동안에도 한국의 총동원령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예비군과 민방위가 모였다.
군경이 거리를 점령했고 여기저기에서 군용 트럭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한국인들은 이런 분위기에는 꽤 익숙한 듯 통제에 잘 따랐다.
그렇게 며칠 만에 전쟁 준비가 끝났고 중국과 일본은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 버렸다.
이제 와서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해 봐야 제대로 듣지도 않을 것이다.
상황은 그들의 생각과 상관없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었고 이제는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일본 내에서는 미국에 중재를 요청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금 총력전을 해선 안 된다. 한국은 몰라도 우리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야 쓰시마를 탈환할 수 있겠나? 이렇게 된 이상 억지로라도 개전을 해야 한다.
―다들 제정신인가? 안트론 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이 날아오면 어떻게 막을 거냐? 한 발이라도 못 막으면 모든 산업이 중지된다.
―총리가 직접 미국에 요청해라. 총력전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만약 미국이 나선다면, 쓰시마는 영영 한국의 영토가 될 거다.
그렇기에 마츠다 총리는 함부로 미국에 중재를 요청할 수 없었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영토를 동결한다는 결정을 내릴지 누가 안단 말인가.
그러나 요청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벌어지는 사태도 감당할 수 없었다.
‘총력전이라고? 장난하지 마. 우리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다른 상황은 몰라도 총력전에는 메뉴얼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고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는 걸 마츠다는 잘 알고 있었다.
한편 양안전쟁을 치른 중국조차 접경지대의 7군단이 주둔지를 버리고 집결지에 모이자 심히 당황했다.
예전에도 충분히 버거운 상대였지만 지금의 7군단은 완전히 괴물이 되어 있었다.
드론 시스템과 레일건을 탑재한 신형 K3A2 전차의 배치가 끝났고 대공방어는 아이언 빔이 담당했다.
과연 동수로 맞상대할 부대가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물론 전쟁은 집단군 수준도 못 되는 군단 하나로 좌우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술 수준에선 중국의 군사 전문가들도 7군단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건 자살행위라고 경고했다.
―가용전력 때문에 휴행탄수는 많지 않겠지만 하나하나가 치명적이다. 일단 맞으면 죽는다고 봐야 한다.
―드론 시스템은 별다른 정찰 없이도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도와준다. 상대하는 부대는 아마 저들을 보지도 못하고 외곽에서부터 무너져 내릴 것이다.
―항속거리가 어마어마하게 길다. 보급 없이 곧장 베이징으로 밀고 들어올 수 있다.
―아이언 빔 때문에 공습도 여의치 않다. 답은 상대를 안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곧장 베이징으로 진격할게 뻔한 7군단을 어떻게 무시한단 말인가?
왕쉬안 상장은 고민 끝에 크렘린으로 통하는 수화기를 들었다.
다른 부대는 몰라도 저 7군단과는 도저히 맞상대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목소리는 냉담했다.
“전쟁을 원한 것은 당신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전면전을 원한 것은 아닙니다.”
“그건 더 웃긴 말이군. 적당한 전쟁이란 게 어디 있단 말입니까? 유전 하나만 쏙 빼먹고 한국을 두들겨 패면 항복할 줄 알았습니까?”
“…….”
할 말이 없다.
정보기관들은 한국군이 약한 시기라 도저히 총력전을 버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해전으로 승리를 결정짓고 일본과 연합해 한국의 해상을 봉쇄해 항복을 받아낼 예정이었다.
국경선에서 대규모 기동훈련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건 일본의 쓰시마 탈환전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7군단 같은 부대와 정면대결은 전혀 상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이 뜻밖의 말을 했다.
“유지하 대통령은 당신들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더군요. 단단히 준비한 모양이니 빠져나가긴 쉽지 않을 겁니다.”
전쟁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왕쉬안 상장은 수화기를 꽉 붙잡고 있다가 겨우 말했다.
“이번에 러시아에서 도와준다면 크게 후사하겠습니다.”
“러시아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통화가 끝났고 왕쉬안의 주먹이 책상을 두들겼다.
“빌어먹을!”
이대로는 진짜 한국과 총력전을 벌이게 생겼다.
물론 이길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로켓군은 여전히 수백 발의 핵탄두를 갖고 있었고 이는 한국에 심대한 위협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가진 무기도 이쪽에 피해를 주기엔 충분했다.
해안지대에 가득한 원자력 발전소에 안트론과 하프늄2를 탑재한 탄두가 날아들면 큰일이었다.
결과는 공멸이었고 그건 결코 왕쉬안 상장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가장 좋은 그림은 한국이 패배를 인정하고 갖가지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 * *
현 상황에서 미국은 개입이 없을 거라고 선언하긴 했지만 완전히 손을 뗀 건 아니었다.
핵잠수함이 동아시아의 해저를 누볐고 전략 정찰기가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위성까지 총동원한 결과 정보조사국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전혀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눈치챘다.
―한국과 달리 이들 나라는 총동원령을 내리지 않았다. 부대 이동도 없다. 사실상 전면전을 상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해군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데, 아마 제한전으로 전쟁을 끝낼 생각을 한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볼드윈 대통령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제한전으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이거 큰 실수를 했군.’
다만 한국의 움직임도 석연치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총력전을 대비하는 건 좋은데 한 마디 대화도 없어서야…….
지금쯤이면 UN에서 온갖 외교전이 벌어질 테니 적당히 나서서 중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UN에 파견된 외교관을 불러들이는 한편 주한주재 중국대사관에 퇴거 명령을 내렸다.
덕분에 지금 중국대사관에선 서류를 파기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진짜 전쟁을 원하는 건가?’
그것도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핵보유국과 전면전을 벌인다는 건 어지간해서는 결정하기 어렵다.
중국은 북한이 아니며, 탄도미사일의 성능도 상당한 수준이다.
한국의 요격 수준은 2차 한국전쟁과 인도양 해전에서 봤듯이 수백 발을 모두 요격할 정도는 아니었다.
국토가 좁은 특성상 한두 발만 떨어져도 감당하기 힘든 타격을 입는다.
일본은 핵무기는 없지만 어스 플릿이 약점을 보인 극초음속 대함미사일을 수백 발이나 보유하고 있다.
그게 몇 개월 전인 만큼 약점을 보완했을 확률도 있으나 완벽하진 못할 것이다.
‘가만, 이런 그림을 어디서 많이 봤는데…….’
볼드윈 대통령은 유지하에 대한 파일을 다시 살폈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유지하가 원한 그림이라고.
만주를 원한다는 발언과 쓰시마를 점령한 행동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징병제를 폐지해 약점을 드러낸 점이 미심쩍었다.
하필 이 시기에 폐지할 필요가 있었을까?
‘…설마 자작극을 벌일 셈인가.’
이미 미국 정부는 유지하가 자작극으로 상황을 주도해 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장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제재를 가했다가 반도체 기업들이 박살이 난 전적이 있지 않은가?
남은 건 전쟁뿐인데 그건 미국도 조심스러웠다.
한국을 치면 러시아가 가만히 있는다는 보장이 없고 오히려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았다.
‘3차 세계대전만큼은 안 돼.’
볼드윈 대통령은 보좌관들을 불러 대책을 물었고 미국의 스탠스를 확정지었다.
덕분에 일본의 마츠다 총리는 모처럼 용기를 내어 핫라인으로 통화했지만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유감입니다. 지금 한국을 자극할 수는 없습니다.”
“쓰시마만 탈환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뭐든 하겠습니다.”
“정치인으로서 뭐든 하겠다는 건 때에 따라선 매우 위험한 발언이 될 수 있습니다.”
점잖은 충고였지만 마츠다는 물러서지 않았다.
“쓰시마는 명백한 일본의 영토입니다. 이를 한국이 강제 지배하고 있는 것은 국제법상 무효입니다.”
“그러니까 외교적으로 협상을 잘 해서 돌려받으십시오.”
“단교를 했는데 어떻게 협상을 한단 말입니까?”
“정 안 되면 총리가 직접 날아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일국의 수장을 그리 박대하진 않을 겁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전쟁으로 돌려받는 수밖에 없지요. 그걸 원했잖습니까.”
“총력전까지 바란 건 아니었습니다.”
“이거 큰일이군. 유지하 대통령이 단단히 오해했으니 말입니다. 통화가 길었는데 나중에 따로 연락합시다.”
이로서 미국은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밝혔다.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터지면 세계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임이 분명한데도.
그건 지난 몇 차례의 전쟁에서 결국 경제는 회복된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세계 경제는 4차 산업혁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몇몇 국가는 진지하게 기본소득제도를 논의하는 단계였다.
그걸 주도하는 건 유지하였고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미국으로선 적당히 유지하와 관계를 이어나가며 달콤한 꿀을 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국이 태평양과 유럽만 넘보지 않는다면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마츠다 총리는 비서관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이맛살을 마구 찌푸렸다.
“…미국이 우리가 아니라 한국을 선택했다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주일미군은 장식이 아니라고.”
“외람된 말씀이지만, 주일미군의 상당수가 괌으로 재배치되지 않았습니까? 그 규모는 작년에 비해 30%에 불과합니다.”
“일본과 미국은 동맹이야!”
“그 동맹에서 나오는 이익이 없지 않습니까? 미국으로서는 과거 일본이 맡은 역할을 한국이 맡는 게 편할 겁니다. 아마 전후 협상에서 중재를 하려 하겠죠.”
…어쩌면 일본이 한국의 관리하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마츠다 총리는 불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비서관들을 내보냈다.
곧장 왕쉬안 상장에게 연락했지만 그쪽도 뾰족한 대책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유감이지만 러시아도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이로서 전쟁을 멈출 수 없다는 게 확실해졌다.
해군에서는 이미 육군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쓰시마 탈환전을 해군의 지휘하에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육군은 우리 없이 너희가 뭘 어떻게 하겠냐는 입장이어서 도무지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일본군이 이렇듯 협조가 안 되는데 비해 한국은 유지하의 지시 아래 똘똘 뭉쳐서 전쟁 준비를 끝내놓았다.
시위는 당겨졌고, 이제 손을 놓기만 하면 된다.
마츠다는 마지막 역할만큼은 자신이 맡기 싫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중단을 선언하는 편이…….”
“이제 와서 중단이라고요? 세계가 우리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타국의 시선이 중요합니까? 이대로는 총력전에 휘말리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한국도 여기까지 왔는데 멈추려 하지는 않을 겁니다. 최소 만주는 확보하려 덤벼들 거란 말입니다.”
마츠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서 포기를 선언해도 일본은 잃을 게 별로 없다.
물론 일본의 위신이 추락하고 쓰시마를 돌려받는 게 요원해지겠지만 그건 나중에 노려도 되는 일이었다.
한국과 중국이 싸우게 만들어 놓고 슬쩍 빠지는 게 좋지 않을까?
양국의 힘이 빠지면 향후 일본의 발언에 힘이 실릴 것이다.
이렇게 판단한 마츠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개전합시다. 한꺼번에 몰아쳐서 한국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듭시다.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서해 유전에서 해전이 발생하면 한국에 특사를 보내 빠져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마츠다 총리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무례하게도 총리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뭔가. 핫라인으로 통화중인 거 못 들었…….”
“총리대신! 한국이 선전포고 했습니다!”
“뭐라고?”
마츠다 총리는 너무 놀라 수화기를 떨어트렸다.
비서관이 황급히 모니터를 틀자 마침 거기에 유지하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담담하게 양국에 선전포고를 하는 중이었다.
“이런 태도로 봤을 때 양국에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기원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게 확실해졌다. 중국은 핵보유국이며, 일본은 엄청난 해군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실로 두려운 상대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러설 수 없다. 이 땅을 적에게 넘겨주고 유린되게 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중화민국, 일본국과 전쟁에 돌입했다는 것을 통보한다.”
그 순간 서해에 배치된 김구함과 여운형함의 리미터가 완전히 풀리고 자동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쓰시마 근해에서 훈련 중이던 연합함대 코앞에 어스 플릿의 함대가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