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또 너야?
세계에 미국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거의 없으며 정찰력 또한 그러했다.
인류연합만이 유일하게 미국이 들여다보길 포기한 곳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5차 중동전쟁의 징후를 포착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단지 인류연합에 총력을 기울이느라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뿐이었다.
이스라엘이 워낙 강해져서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냐는 판단도 했고 말이다.
중동의 여러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기어코 박살내고 말겠다는 열망에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참전하지 않는 이상 어려워 보였다.
미국의 정계 인사들이 중동에 대해 언급할 때면 이런 말이 나오곤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만 잡고 있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국가는 석유로 쌓아올린 막대한 부를 이용해 미국과 인류연합의 무기체계를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그걸 바탕으로 예전부터 골치였던 예맨에 개입해 성공적으로 내전을 종식시켰다.
덕분에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지는 하늘을 찔렀다.
왕가의 보호를 위해 무슬림들이 살인기계라고 부르며 꺼려하는 드론까지 도입했음에도 별 반발이 일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사우디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한 중동에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은 믿었다.
유지하가 이란과 파키스탄의 시계바늘을 중세로 돌리는 바람에 핵무기가 유출됐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이를 추적하기가 어려웠다.
NPT가 유명무실화되고 IAEA가 힘을 잃은 만큼 핵무기 추적도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다.
다만 미국은 예전처럼 핵 확산을 강력히 저지하지는 않았다.
하프늄2 탄두가 퍼질 만큼 퍼져서 별 의미가 없다는 판단도 있었겠지만 아이언 빔을 자체 생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역설계는 진작 끝났고 집속렌즈를 만들 크리스탈이 문제였는데 러시아의 에스토니아 침공을 무마하는 조건으로 인류연합이 넘겨주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아이언 빔을 대량으로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알고리즘은 부족했지만 그 넘쳐나는 출력으로 ICBM 요격 실험까지 마쳤다.
덕분에 미국의 레이저 무기가 모조리 도태될 위기에 처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상관하지 않았다.
―아이언 빔만 있으면 본토가 핵 공격을 당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미사일의 시대는 갔다. 앞으로는 레이저의 시대다.
봉인이 풀린 아이언 빔의 성능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일설에는 어스 플릿의 인도양 해전에서 파키스탄에 핵 공격을 당한 게 이해가 안 간다는 말도 나왔다.
―부족한 알고리즘으로도 우리 탄두를 99% 확률로 요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왜 파키스탄의 구식 핵에 당한 거냐?
―일부러 당한 거다. 중국과 일본에 약점을 드러내기 위해서.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후 동아시아 전쟁의 판도를 생각해 보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어쨌든 미국은 아이언 빔으로 자신감을 얻었고 이를 사우디에도 판매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인류연합에서 도태된 무기를 도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가가 직접 나섰는지 수백억 달러를 한 번에 지출하는 바람에 국무부에서 불평했을 정도였다.
―인류연합의 무기가 중동에 흘러들어가고 있다. 이는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한다.
그러나 미국의 속내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자국의 무기를 구입하지 않은 데 대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것에 불과했다.
결국 무함마드 왕세자는 수십억 달러어치의 무기 도입 계약을 체결함으로서 미국을 달랬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미국은 예전만큼 중동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본토는 안전하고, 중동은 사우디아라비아가 꽉 쥐고 있었다.
거의 20년 가까이 끌어오던 예맨 내전이 종식되었고 아프가니스탄은 안정화되고 있었으며 눈엣가시이던 이란과 파키스탄이 박살나기까지 했다.
유일한 문제라면 이 모든 사안에 유지하가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모든 신경이 그에게 쏠렸고, 핵무기가 중동으로 흘러들어가는 걸 놓쳤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중동의 6개 국가가 이스라엘에 선전포고를 하는 걸 막지 못했을뿐더러 사전에 예측하지도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보기관이 경고는 했으나 윗선에서 별일 아닐 거라며 묵살한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5차 중동전쟁이 터지고 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시리아에서 이스라엘이 핵을 쓰면 그쪽도 핵을 쓰겠다고 통보해 왔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아무래도 파키스탄이 몰락하면서 핵탄두가 유출된 것 같다. 소량이지만 국토가 좁은 이스라엘에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당장 전쟁을 멈춰야 한다.
하지만 이집트의 기갑부대가 이미 시나이 반도를 넘은 뒤였다.
여러 국가가 핵을 가진 만큼 자칫 전면 핵전쟁이라는 참사가 터질 수도 있었다.
미국은 중재를 위해 국부무의 관료들을 예루살렘에 파견했으나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인류연합에 총리가 갔다고요?”
“무기 도입 건을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하필 지금입니까?”
이스라엘 대통령은 어디까지나 명예직으로 대부분의 권한은 총리가 갖고 있었다.
그 총리가 개전 직후 미국이 아닌 인류연합에 갔다는 게 미국 정부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대통령은 별다른 변명을 대지 못했고 백악관을 비롯한 미국 정계가 부글부글 끓었다.
―이스라엘이 우리가 아닌 인류연합을 선택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근 10년간 이스라엘에 가져다 바친 군사원조금만 500억 달러에 육박한다. 그건 대체 뭐였나?
―이스라엘 내 인류연합의 영향력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이걸 배제하지 않으면 중동에서 우리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축소될 것이다.
백악관은 이스라엘을 전면적으로 돕지는 못하더라도 정전을 유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인류연합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을 보곤 굉장히 떨떠름해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여러 부침을 겪어왔지만 그래도 결코 떨어질 수 없는 확고한 동맹이었기 때문이다.
그 동맹이 제일 먼저 인류연합에 달려갔으니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유지하를 만나는 데 성공한 이스라엘의 총리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우리로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도 신경 써야 하니까요.”
“무기라면 얼마든지 구입하겠습니다. 어스 플릿은 무인함대이지 않습니까? 딱 한 번만 빌리면 됩니다.”
이스라엘은 어스 플릿을 원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쓴 그 신형 폭탄은 제외해도 좋다는 조건을 단 것으로 보아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하지만 유지하는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소중한 고객이니까.
그는 누군가와 통화한 후 이스라엘 총리를 다시 만났다.
“유감입니다만 어스 플릿 파견은 어렵겠습니다. 대신 양국과의 입장을 고려하여 당분간 무기 수출은 중단하겠습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손을 쓴 게 분명했다.
아마 이스라엘을 무릎 꿇린 후 대규모의 무기 도입 사업을 약속했겠지.
이스라엘 입장에선 나쁜 상황이지만 최악은 아니었다.
유지하는 중동에 대해서는 지극히 담백한 태도로 일관했고 그건 이스라엘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돈만 주면 얼마든지 무기를 팔겠지만 양국의 전쟁에 영향을 주는 모양새가 될 수 있으므로 지금은 자제하겠다는 것.
죽음의 상인다운 태도에 이스라엘 총리는 실망하고 곧장 귀국길에 올랐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바쁘게 뛰어다니며 국제사회에 호소했으나 전쟁을 중단하지는 못했다.
애초에 그들이 국제사회의 공조를 무시한 때문이니 누구를 탓할까.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이 불타올랐다.
* * *
개전 초기 이스라엘은 형편없이 밀렸다.
사우디가 K-3 전차를 이집트와 시리아에게 공여했기 때문이다.
골란 고원과 시나이 반도 일대에서 전차전이 펼쳐졌고 이스라엘 기갑부대는 엉망진창으로 깨져 나갔다.
이스라엘에도 K-3 전차가 있긴 하지만 수량이 적었다.
아무래도 아이언 빔이나 드론 등 방어체계에 투자해야 했던 탓이다.
그에 반해 사우디아라비아는 넘쳐나는 자금으로 도태된 한국의 무기체계를 싹쓸이했다.
심지어 1선에서 퇴역한 김구함과 여운형함까지 구입하길 원했고 그게 이뤄지진 않았지만 레일건을 도입하는 데는 성공했다.
사우디 해군은 홍해 북쪽의 아카바 만에서 레일건 포격으로 이스라엘의 도시를 두들기는 방법을 썼다.
탄두 직경이 보잘것없어서 파괴력은 크지 않았지만 손도 대지 못하는 지역에서 날아오는 포격은 매우 공포스러웠다.
그렇게 가자지구와 예루살렘이 두들겨 맞자 이스라엘에선 즉각 대응에 나섰으나 사우디 공군도 만만치 않았다.
서로가 아이언 빔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영공 침입은 꿈도 못 꿨고 자연스레 공중전이 펼쳐졌는데 아무래도 사우디군이 우세였다.
상황이 이렇듯 불리하게 흘러가자 미국은 참전국에 종전을 제안했으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미국이 그렇게 이스라엘의 편만 들어주니 중동에서 깡패짓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이스라엘을 박살내고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
예루살렘은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중동의 여러 국가를 활활 불태울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다.
이곳을 점령당한다는 건 이스라엘의 종말을 의미했고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상실됨을 뜻하기도 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미국이 병력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인류연합에 달려간 이스라엘의 행태는 아니꼬웠지만 망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중동 국가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전투 병력은 제외하고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고 무기를 판매하기로 했다.
텔아비브 국제공항에 미국의 수송기가 쉴 새 없이 날아들었고 이스라엘을 제외한 참전국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바라봤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인류연합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 미국을 말릴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총리는 자국의 신성한 영토가 침략당하는 즉시 핵을 쓸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스라엘의 모든 땅은 너무도 신성하기에 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적국이 이를 침범할 경우, 우리는 망설임 없이 핵을 쏠 것입니다.”
참전국들이 그에 격렬히 반발하면서 5차 중동전쟁은 시궁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전 세계의 관심이 중동에 쏠렸을 때 유지하는 달에 신경을 쏟았다.
선지자의 유물이 곧 달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스타필드가 태양계 경보 시스템을 마련하고 각 행성의 궤도에 투입했기에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스터, 선지자의 유물이 왔습니다. 열변환기입니다.」
이번에 온 유물은 열을 손실 없이 전력으로 변환하는 매우 중요한 장치다.
이제 거대한 핵융합 플랜트를 건설할 필요가 없다.
핵융합로와 열변환기만 있으면 매우 간단하게 전력을 뽑아낼 수 있다.
여러 국가에서 의심이야 하겠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을 것이다.
진회색의 캡슐이 고요의 바다에 처박히자 곧장 로버와 워커가 달려들었다.
하필 미국이 짓고 있던 달 기지 근처였던지라 우주비행사들이 이를 발견했다.
“저 깡통들이 뭘 들고 가는 거야?”
“모르겠어. 갑자기 땅이 울린 건 확인했는데…….”
NASA에선 이를 경시하지 않고 곧장 백악관에 보고했다.
백악관 참모들은 선지자의 유물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골든 레코드와 에테르 코어, 초대질량 입자가속기에 이어 새로운 유물이 도착한 것 같습니다.”
“현재 유물은 인류연합이 확보해 문라이트 기지로 운송하는 중입니다.”
“…그걸 보고만 있었소?”
NASA 국장은 이 상황이 곤혹스러운지 화면에서 연신 이마를 훔쳤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달에서 우리 우주비행사가 할 수 있는 작업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안드로이드를 동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런 극한환경에서 운용할 정도는 아닙니다.”
미국에도 안드로이드는 있지만 대부분 초기형으로 달과 같은 극저온 환경에서는 제대로 운용할 수 없었다.
시범적으로 들여온 워커 또한 지상에서 운용할 것을 전제로 제작되어 있었기에 달에서 활동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연합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개량을 진행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를 예로 들면, 초기 루시아와 지금의 루시아는 같은 모델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화성의 기지엔 아마 더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다.
번스타인 대통령은 혀를 차며 지시했다.
“인류연합에 연결하시오. 내놓으라고는 못하겠지만 뭔지 물어볼 수는 있겠지.”
중동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얼마 후 핫라인이 연결되었고 유지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열변환기입니다.”
“그게 뭡니까?”
“열을 손실 없이 전력으로 변환하는 장치입니다. 현재 역설계에 들어갔는데 크게 어려운 건 없는 것 같군요.”
“열을 전력으로 변환한다? 그게 대단한 겁니까?”
이번 대통령은 이과가 아닌 모양이다.
유지하는 친절하게 핵융합 플랜트에 빗대어 설명해 주었다.
“미국에도 핵융합 플랜트가 있지 않습니까?”
“세 군데나 있지요.”
현재는 양국의 관계가 냉각되어서 도입이 중단되었지만 이전에 도입한 게 있어서 쏠쏠히 써먹고 있었다.
“그 플랜트의 규모가 어떻습니까? 핵융합로 자체는 비교적 작지만, 온갖 설비가 따라붙어 엄청나게 거대하지 않습니까?”
당연한 말이었다.
핵융합로에서 전력을 뽑아낼 수 없으니 물을 끓여서 터빈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화력 발전소나 원자력 발전소도 그런 식이었다.
번스타인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기 수화기를 꽉 쥐었다.
“설마 그런 설비 없이 전력을 뽑아낼 수 있는 겁니까?”
“정확하게 맞추셨습니다. 열변환기 자체도 그리 크진 않군요. 앞으로 전력 걱정은 없겠습니다.”
양산하는 데 성공한다는 전제하에서겠지만 그가 실패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이게 의회에 알려지면 난리가 나겠군…….’
요즘 인류연합은 핵융합로의 소형화에도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었다.
우주선에 핵융합로와 열변환기를 탑재하는 것도 꿈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급 전투순양함은 어떻게 전기를 뽑아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주에서 가스터빈을 운용하는 것도 아닐 텐데.
여러 정보기관에서는 저만한 덩치를 운용하려면 가스터빈이나 원자력 전지, 태양광 발전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계산을 한 바 있다.
결국 핵융합밖에 없는데 우주에서 물을 끓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특별한 설비를 탑재했다는 뜻이 된다.
‘역시, 선지자의 유물을 이미 갖고 있었군.’
별로 숨길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번스타인 대통령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이제 정체를 밝히는 게 어떻습니까? 유 대통령이 말한 인류의 평화가 진심이라면, 얼마든지 협조할 의사가 있습니다.”
“나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은 잘 봤습니다. 아주 디테일하게 잘 만들었더군요.”
그런 걸 만든 주제에 협조를 말하느냐는 비아냥으로 들렸다.
번스타인은 미국은 너무 덩치가 커서 의사소통이나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리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양국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었고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중동에 대한 건을 물었고 유지하는 간단하게 답했다.
“거기엔 별로 관심 없습니다. 알아서 하십시오.”
통화는 거기에서 끝났다.
번스타인은 깊은 한숨을 쉬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 *
중동전쟁이 개전 10일 만에 중단되었다.
미국이 드디어 칼을 뽑아들었기 때문이다.
항모전단이 대놓고 홍해에 진입했고 구축함 전단이 동지중해의 텔아비브 앞바다에 정박했다.
그리고 백악관은 참전국 6개 나라에 최후통첩을 전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스라엘에 대한 잔인무도한 폭력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모든 부대와 인력, 시설을 10일 이전으로 돌릴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우리와 전쟁을 하고 싶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대놓고 협박을 하는 미국에 국제사회가 당황했다.
그간 미국은 배부른 사자의 입장이 되어 상당히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아마 그것은 인류연합이 경쟁자로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인류연합의 역할은 거의 없었지만 영향력만큼은 지대해서 이스라엘이 먼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 정도였다.
사우디에서도 미국이 아니라 인류연합에 무기 수출을 건의하는 바람에 미국의 자존심이 대폭 꺾인 것이 분명했다.
참전국들이 일제히 반발했지만 미국은 강경했다.
상원의원들이 나서서 핵 협박까지 하는 바람에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도 꼬리를 내려야 했다.
핵 몇 발을 가지고 있으면 뭐 하나.
미국에는 수천 발이 있는데.
또한 미국은 아이언 빔까지도 역설계해 대량으로 배치한 상태였다.
인류연합의 무기체계를 가장 먼저, 많이 도입한 국가인 것이다.
그렇게 미국이 주먹을 치켜들자 참전국들은 욕을 하면서도 부대를 물려야 했다.
이스라엘은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약간의 손해야 있겠지만 종전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국제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이 예전처럼 강하지 않다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인 하레디가 대거 군에 입대하면서 전투 역량이 떨어진 탓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 내 아랍인의 숫자도 계속 늘어만 가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안보 사정상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데 하레디와 아랍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가는 형편이었다.
여러 정치학자들은 이스라엘이 20년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함께했다.
―정통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애를 5,6명씩 낳는다. 2050년쯤 되면 이들이 이스라엘의 인구에서 절반 정도를 차지할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AIPAC(미국-이스라엘공공문제위원회)의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왜 이스라엘을 도와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전쟁이 일단락되긴 했지만 이스라엘이 그 자리에 있는 이상 새로운 전쟁이 또 일어날 것이다.
중동 한복판에 있는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위치가 문제라는 말이 또 나왔고 그 원인이 되는 영국이 끌려나와 지탄을 받았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종전을 환영하면서도 내심 인류연합의 개입을 원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이대로 가면 정말 나라가 망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지하에겐 사이커를 배출하는 나라도 아닌 이스라엘에 관심을 쏟을 시간이 없었다.
태양계 곳곳에 보내 놓은 에테르 스캐너를 실은 위성에서 경보가 날아왔기 때문.
3차원 태양계 지도에 5개의 코쿤이 표시되었다.
유지하는 코쿤에서 발산하는 사이필드의 농도를 보고받고는 고민에 빠졌다.
“나이트급이 다섯 놈이군. 훈련치고는 너무한데.”
「베타 원을 너무 빨리 해치워서 시스템이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테스트하는 게 아닐까요?」
의도를 알 수 없으니 난감한 노릇이다.
“시간상 세틀러호를 동원해도 한 놈 이상은 박살내기 어려워.”
우주 공간에 반응탄을 발사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녀석이 사념파를 보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차단기를 쓰면 되겠지만 전면전도 아닌 상황에서 날려 버릴 순 없었다.
최근에 개발된 것이라 양산이 어려워서 더더욱 소중한 녀석인데.
유지하는 코쿤에 대한 정보를 보고받고는 결론을 내렸다.
“역시 지구에 낙하할 때까지 놔둬야겠어.”
코쿤을 보내는 게 선지자인지 플레이그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험을 할 순 없었다.
인류의 피해가 커지겠지만 어쩌겠는가.
80억을 지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고 유지하도 거기까진 계획하지 않았다.
“우린 인류연합만 지키기로 하지. 방어 시스템 작동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