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다섯 개의 재난
현재 상황에서 플레이그에게 제대로 먹히는 무기는 딱 세 개뿐이다.
하프늄2 폭약과 핵무기, 그리고 반응탄.
다른 무기로는 유효한 피해를 줄 수 없었고 나이트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하프늄2와 전술핵도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등급이 더 올라가면 이제 전략핵조차 불꽃놀이와 다를 바 없어진다.
오로지 기가톤급 반응탄으로만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었고 지금까지 인류연합의 플레이그 대응책도 거기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플레이그 방어시스템이 반응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플레이그엔 비스트부터 퀸까지 이어지는 정규 병종 외에도 아주 다양한 아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철사병을 일으키는 플레이그 스웜부터 생명체의 몸에 들어가 조종하는 패러사이트, 어설트 아머를 모방하는 도플갱어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렇듯 인류와 플레이그는 수십 년 동안 싸우면서 서로를 모방했고 또 진화했다.
메가시티의 방어시스템에도 그런 노하우가 녹아들었지만 아직까지는 미완성이었다.
다만 현재 출몰하는 정규 병종에 대한 대응은 그럭저럭 완성 단계였다.
이 시스템은 중력자 레이더나 에테르 스캐너와 연결되어 플레이그로 확정된 개체가 있으면 무조건 작동된다.
플레이그가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자동으로 작동하며 주 무기는 반응탄이다.
리플렉터나 플라즈마 실드 등 방어대책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플레이그를 유인하거나 기만하기 위해 쓰일 뿐이었다.
메가시티의 방어시스템이니만큼 메가시티의 위협에만 작동하지만 범위가 워낙 넓어서 주변 도시까지 포함될 경우가 많다.
이 방어시스템은 아르마가 전적으로 운영하며 유지하의 허가가 필요 없다.
플레이그가 강습하기 일보 직전인데 일일이 허가를 받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플레이그가 전면 침공하는 것은 아니라서 평소에는 시스템을 꺼놓는다.
아르마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플레이그가 방해할 것을 대비해서 모든 통신수단을 동원해 관리국의 제어컴퓨터를 작동시킨다.
메가시티 퍼시픽 전체에 요란한 경보가 울렸다.
「경보. 우주괴물 경보입니다. 모든 시민들은 즉시 근처의 쉘터나 자택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곳곳에 설치된 전광판에 영어로 대피 문구가 떴다.
시민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곧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렸다.
우주괴물에 대한 훈련은 평소에도 자주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이라고 해봐야 근처로 대피하는 것뿐이었고 관리국이 모든 상황을 통제한다.
그러니까 열심히 달리면 된다는 거다.
“뛰어! 뛰어!”
“거기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 드론 뒤만 따라서 달리세요!”
“다들 갑자기 왜 이래요?”
“우주괴몰이에요! 플레이그!”
언젠가부터 우주에서 온 괴물을 플레이그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부른 건 아니고 유지하 대통령이 그렇게 지정한 것이다.
전염병이라는 뜻인데 플레이그의 습성을 잘 모르면 이상한 작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여튼 이 괴물은 각국의 사람들뿐 아니라 메가시티의 시민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겼다.
덕분에 통제에 불응하고 멋대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A32구역의 쉘터는 이쪽입니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으니 내려가시면 됩니다.”
거리 곳곳에서 드론과 안드로이드가 시민들을 안내했다.
그렇게 대피가 체계적으로 이뤄진 덕분에 경보가 울린 뒤 10분도 되지 않아 거리에서 시민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쉘터 혹은 자택으로 피신해 관리국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청취하고 있었다.
「플레이그 코쿤이 지구에 접근 중. 관리국은 3급 비상사태를 발령했습니다.」
「사태가 완전히 종료될 때까지 외출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생필품은 관리국에서 공급합니다.」
모든 물류와 교통은 땅속에 위치한 언더시티에서 이뤄지기에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각 메가시티끼리의 연결은 끊기지만 평소 충분한 물자를 비축하고 있으므로 큰 문제는 없었다.
메가시티 전체가 큰 쉘터가 되는 것이다.
쉘터에 들어간 사람들은 30분 만에 식량팩이 공급되는 것을 보고는 놀랐다.
안드로이드가 쉘터를 돌아다니며 환자를 찾았다.
“혹시 다치신 분 있나요? 시민번호를 말씀해 주세요.”
“식량팩 못 받으신 분?”
“저요.”
황선영이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고 루시아가 패키지를 받아왔다.
풀어보니 생수와 간단한 간식거리가 들어 있었다.
“와, 30분 만에 이게 지급되네.”
“식사를 거른 사람도 있을 거니까. 3시간 후에는 제대로 된 식사가 공급될 거야.”
“큰일이네. 너도 충전해야 하잖아.”
“난 여기 아무 데나 코드 꽂아도 돼.”
안드로이드와 지내는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게 있다면 식사를 못 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기물을 소화시키는 기능은 구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단가가 굉장히 높았다.
배출의 문제도 있어서 모든 안드로이드는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한다.
황선영은 그걸 아쉽게 여기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 구역에 이런 곳도 있었네.”
“메가시티는 지금도 공사 중이거든. 우리가 왔을 때에 비해서 몇 배나 커지고 새로운 시설도 많이 들어왔어.”
“사람도 너무 많아졌어. 나 때만 해도 비교적 한가했는데.”
“그땐 처음이라 텅텅 비어 있지 않았어?”
“응? 그랬나?”
메가시티의 인구밀도는 외부에서도 큰 화젯거리였고 시민들에게도 그랬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거리마다 인산인해였다.
한 구역에 가득 찬 빌딩에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이렇게까지 인구밀도가 높으면 문제가 생길 법도 한데 아직까지는 큰 사고가 터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어느 패거리가 싸우다가 관리국에 끌려갔다든가 누가 살인을 저질러 추방되었다든가 하는 뉴스는 곧잘 나왔지만 거리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하여튼 황선영이 보기에 메가시티의 시스템은 경이로웠다.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덕분인지 모든 것이 일정에 맞춰서 착착 진행되었다.
루시아와 잡담을 나누며 기다리다 보니 정말 3시간 후에 정확히 식사가 공급되었다.
식사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취향에 맞게 골라먹을 수가 있었고 화장실이나 수유 등도 안드로이드의 안내하에서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황선영은 몇 술 뜨다가 긴장해서 그런지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때 한 명의 목소리가 쉘터를 쩌렁쩌렁 울렸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모르고요, 알아도 별생각 없어요. 소란 피우지 말고 앉으세요.”
“내가 지금 소란 피우는 거야? 그 알량한 도시락 하나 챙기는 게 잘못된 거냐고!”
남자는 흥분한 채 안드로이드에게 대들었다.
보아하니 인원수를 부풀려 식사를 몇 개 더 챙기려다가 저지당한 모양이다.
메가시티는 최대한 저런 사람을 걸러내려 노력하지만 워낙 입주민이 많다 보니 가끔 섞여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뒷배를 가지고 있는지 떠들어 댔다.
보아하니 청와대에 친척이 있는 모양이었다.
안드로이드는 가소로운지 픽 웃었다.
“그러세요? 제 뒷배는 대통령인데.”
“뭐?”
안드로이드는 드론 하나를 불러 경고했다.
「경고 : 시민번호 IT-M-8376312의 CP를 차감합니다. 사유 : 횡령. 현재 CP : 54」
“CP가 많이 낮으시네요. 한 번만 더 이런 짓을 저지르면 제한시민 되는 거 아시죠? 주의하세요.”
남자는 순식간에 입을 다물고 눈알만 굴리는 신세가 되었다.
여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제한시민과 격리시민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CP는 평소에 사고 안 치고 생활하는 것 외에 올릴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올리는 건 매우 어려운데 내려가는 건 순식간이라 많은 사람의 원성을 사곤 했다.
하지만 그건 사고 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평생 경찰서 드나들 일 없는 사람들은 CP도 잘 관리하는 편이었다.
소란이 가라앉자 황선영은 그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저 사람은 얼마 못 가겠네.”
메가시티에 살다 보면 주민이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분된다.
이런저런 사고를 쳐서 CP가 출렁이면 운명은 거의 정해졌다고 할 수 있다.
격리시민이 되어 우주감옥에 갇히거나 더 사고를 쳐서 추방자가 되거나 하여튼 평범한 삶을 살지는 못한다.
남자는 기세가 꺾여서 언제 그렇게 CP가 내려갔냐며 투덜거렸지만 자업자득이다.
황선영 같은 무던한 사람은 여기에 온 후로 CP가 내려간 적이 없었다.
“결국 내려갈 CP는 내려간다는 거지.”
루시아가 뜬금없는 말을 했고 황선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구 입에서 나온 건지는 몰라도 틀린 말은 아니다 싶었다.
그 후로 쉘터는 전체적으로 조용했으나 갑자기 전광판 내용이 바뀌었다.
인류연합에서 통제하는 위성이 찍은 실시간 우주 영상이 나타났다.
「플레이그 코쿤이 대기권 진입 중. 이번에 낙하하는 코쿤은 총 5개로 그 중 하나가 북태평양에 낙하할 예정입니다.」
코쿤의 낙하 궤도가 전광판에 나타나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테라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뭔 하나도 아니고 다섯 개야?”
“큰일 났네…….”
“여기는 괜찮은 건가?”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전광판에 알림이 떴다.
「4급 해일에 대비하기 위해 메가시티의 외벽을 100미터로 증설합니다.」
「동쪽 해안가 시민들은 즉시 높은 곳으로 대피하세요.」
메가시티 동쪽의 외벽에서 트랜스폼 현상이 일어나며 높이가 100미터로 올라갔다.
수많은 빌딩의 상층부가 모습을 바꾸며 하늘을 완전히 가렸다.
그러자 메가시티 전체가 돔 형상의 구조물이 되었다.
시민들은 도시가 외형을 바꾸는 건 자주 목격했으나 전체에 적용되는 건 처음이었다.
“와, 여기 진짜 미쳤네.”
“메가시티 전체가 거대한 방어시설이네요.”
“근데 플레이그 한 마리 상대하려고 이런 게 필요한가 모르겠네.”
“대통령이 예지 능력으로 봤다잖아요. 앞으로는 더 많이 온다고 그랬는데.”
“핵폭탄 한 방이면 깔끔하게 죽던데 필요가 있나 하는 거죠.”
“앞으로도 핵폭탄 한 방에 죽는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이런 대화가 나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불안해한다는 뜻이리라.
하나도 아니고 다섯 개의 코쿤을 어떻게 상대할지 걱정이었다.
프랑스 사태에선 최종적으로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황선영이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루시아가 그녀를 뒤에서 안았다.
“걱정하지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는데…….”
여기는 메가시티가 있어서 안전하다고 쳐도 다른 곳은 어떻게 할지 걱정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코쿤은 빠른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충돌 20초 전, 19, 18, 17…….」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황선영은 자신을 안은 루시아의 팔을 붙잡았다.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충돌」
순간 메가시티 전체가 약간 흔들렸다.
북태평양에 떨어진 코쿤이 주변의 바닷물을 증발시키며 높이 70미터에 달하는 해일을 만들어 냈다.
메가시티를 비롯한 주변의 섬과 육지에 해일 경보가 울렸다.
* * *
각국은 5개의 코쿤이 지구에 접근하고 있다는 걸 인류연합에서 데이터를 넘기고서야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천문, 특히 우주는 미국을 제외하면 관측이 어렵고 운석 경보는 극히 투자가 미미한 분야였다.
대중은 미국이 지구 전체를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2,500개의 위성을 통제함에도 코쿤 하나 발견하지 못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었다.
지구가 워낙 커야 말이지.
어쨌든 코쿤의 낙하 궤도를 확인한 각국은 경악했다.
―5개나 된다고? 그것도 두 개는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
―지금 즉시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5개의 코쿤은 각각 북태평양과 시베리아, 북아프리카, 그리고 대서양과 북미에 떨어질 예정이었다.
대부분 사람이 없는 지역이었지만 딱 한 곳, 미국 동부의 뉴저지가 문제였다.
2만 톤이 넘어가는 코쿤이 대도시 근처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대재앙이 펼쳐진다.
미국의 멸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 하나 정도는 충분히 박살 낼 수 있는 위력이었다.
그리고 속도가 너무 빨랐다.
NASA에서는 인류연합에서 보내 온 초속 55km라는 데이터가 맞는지 의심했으나 빨리 행동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코쿤의 낙하 에너지만으로도 10메가톤 핵탄두와 맞먹는다! 즉각 대피해야 한다!
그런데 인류연합이 제시한 대피 범위에 뉴욕이 포함된 게 문제였다.
백악관에서 대책회의에 나섰으나 다들 난감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천만 명을 대피시킨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대피하다가 죽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대통령님.”
“이상하지 않습니까? 코쿤의 낙하 지점이 계속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건 코쿤이 낙하 지점을 계속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오. 지능이 있다고 했으니 어디에 떨어지면 피해가 클지 아는 거겠지.”
인류연합에서 보내 온 정보다.
다만 이 정보는 상당히 미심쩍었는데, 지금까지의 코쿤은 바다에 낙하했기 때문이다.
피해를 증가시키려는 게 플레이그의 목적이라면 전부 육지에 떨어졌어야 한다.
유지하는 다섯 마리라서 사이필드가 증폭되어 탐지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까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다가 박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번스타인 대통령은 고민하다가 인류연합에 핫라인을 연결했다.
“이 정보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습니까?”
“100%입니다. 지금 대피시키지 않으면 수십만 명이 죽을 겁니다.”
“정말입니까?”
“6,721초 남았습니다. 대통령께서 얼마나 지시를 빨리 내리느냐에 따라 사망자 앞자리 숫자가 달라집니다.”
“…….”
번스타인 대통령은 묵묵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지시했다.
“주지사에게 연락하시오. 시민 전체를 대피시키라고.”
대피령이 내려졌고 뉴욕에 프랑스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좁은 도로에 차량이 꽉 찼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한 것이다.
인구가 천만에 육박하는 만큼 프랑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짐을 끌고 가다가 버리기도 했고 아이를 놓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총소리도 들리는 등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뉴욕시 당국은 30분이 지났음에도 시민 태반이 대피하지 못했다는 걸 보고받고 공포에 질렸다.
“퀸즈버러 브릿지가 완전히 주차장이 됐습니다! 통행이 불가능합니다!”
“브루클린 남부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즉각 증원을 요청합니다!”
혼란을 틈타 민가를 급습하고 상가를 약탈하는 폭도들도 문제가 되었다.
뉴욕 시경은 넘쳐나는 시민들을 통제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잠들지 않는 도시가 그렇게 대혼란에 빠진 와중에도 코쿤은 지구의 중력권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인류연합은 충돌 30분 전에 최종적으로 코쿤의 낙하궤도를 확정했다.
「테라섬의 북동쪽 1,530km 지점, 시베리아 노릴스크 북쪽 320km 지점…….」
낙하지점 전부가 공개되었고 미국은 뉴욕의 로우어만에 떨어진다는 걸 알고는 전율했다.
주변에 인구가 너무 많았다.
피난민이 한꺼번에 몰려 대부분의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했고 시민들은 짐 하나만 챙기고 뛰는 형편이었다.
대피령을 무시하고 집안에 숨어 있거나 난동을 부리는 자들도 많았다.
뉴욕 주지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피를 지휘했으나 시민의 30%도 채 대피하지 못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절망적이었다.
다들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때, 느닷없이 강렬한 빛이 폭발했다.
백악관에서는 운석이 벌써 떨어졌나 기겁했지만 아니었다.
“서울급 전투순양함에서 미사일을 쐈다고?”
“예. 급해서 허가를 얻지 못한 점 양해 바란다고 전해 왔습니다.”
“…그 배는 지금 어디 있지?”
“어, 정확한 위치는 말해 주지 않았으나 우주에 있답니다.”
우주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코쿤 근처에서 폭발해 밀어낸 것이다.
예의 반입자탄이겠지.
그 결과 코쿤의 낙하 궤도가 조금 바뀌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낙하 지점이 롱아일랜드 남쪽 90km로 변경되었습니다!”
“이거면 됐어!”
다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코쿤이 파괴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궤도를 튼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한 발의 미사일이 대피하지 않은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코쿤이 대기권에 진입하자 미군이 고고도 방공망을 가동했으나 속도가 너무 빨랐다.
초속 55km는 장난이 아니어서 대응하기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운 좋게 직격시킨다 해도 코쿤이 타격을 입을지도 의심스러웠고 말이다.
아무튼 코쿤은 미군의 모든 발악을 무시하고 불꽃에 휩싸인 채 롱아일랜드 남쪽 해상에 낙하했다.
대량의 바닷물이 증발하며 주변 공기와 해수가 한꺼번에 밀려나갔다.
롱아일랜드 등 육지에선 벌써부터 해일 경보가 울려 시민들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난리도 아니었다.
곧이어 해일이 들이닥쳐 수만 채의 집을 부수고 일대를 정전시켰다.
그렇게 코쿤 다섯 개가 차례차례 낙하했다.
이제 미국의 시선은 해저에 가라앉은 코쿤에 쏠렸다.
“유인해야 합니다.”
백악관 벙커에서는 괴물이 나오는 즉시 유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 가까이에서 메가톤급 핵탄두를 터트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함대를 동원해야 하는데 지능을 가진 녀석이 따라올지 걱정이었다.
번스타인 대통령 침중한 얼굴로 보고서를 뒤적이다가 비서관의 귓속말을 들었다.
“북태평양에서 메가톤급 폭발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 그쪽은 섬멸한 모양이군.”
“예. 어스 플릿은 곧장 시베리아로 향한다고 합니다.”
미사일을 발사하는 게 아니라 굳이 함대를 동원한 이유는 무언가 조치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인류연합은 플레이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지구를 순회하며 하나하나 격파할 예정이었다.
미국은 순서상 마지막이라서 도움을 기대하지 못한다.
번스타인은 있을 리 없는 냉기에 몸을 잠깐 떨었다.
그는 미국이 양보해서라도 인류연합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시민 여론과 정계의 의견은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 큰 피해를 입게 되면 과연 그 자존심을 꺾을 수 있을까?
‘어렵다고 봐야지…….’
통계적으로 약 15%의 미국인이 지구평면설을 믿는다.
현대의학을 거부한 채 자가치료에 몰두하는 사람도 널렸고 심지어 플레이그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특히 유지하에 대한 음모론을 신봉하는 세력이 많았다.
―괴물이 왜 지구에 오는가? 유지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지하를 죽이면 괴물도 오지 않을 것이다.
―유지하의 목적은 괴물로 세계를 파멸로 이끈 다음 지배하는 것이다. 각국은 유지하의 제거를 1순위로 삼아야 한다.
세계를 파멸시킨 다음 무슨 지배를 한단 말인가?
이런 망상을 진지하게 믿고 있는 미국인의 숫자가 천만을 넘었다.
인류연합이 갑자기 부상함에 따라 경제가 나빠지고 일자리고 줄어들고 하니 그에게 원망이 쏠린 것이다.
진짜 문제는 민주당이 그들을 지지자로 삼아 유지하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 있었다.
‘우리의 이익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다.’
민주당을 비롯한 그들의 지지자들은 그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거겠지.
벙커에서 함대의 동원 문제로 시끄러운 토론이 일어났고 번스타인 대통령은 열기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바다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정말 큰 재난이 터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