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손 많이 가네
북태평양에 코쿤이 낙하하면서 대량의 데이터가 들어왔다.
이번에 온 플레이그 개체는 나이트급으로, 이전보다는 코쿤도 크고 사이필드의 농도도 높았다.
「필드의 농도를 비교한 결과 초기의 나이트급과 비슷합니다.」
“제대로 된 녀석이라는 거군.”
더 효율적으로 지구의 생물이나 무기를 모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강하기도 해서 1메가톤급 폭발로는 죽지 않을 것 같았다.
“어스 플릿을 보내 사이필드 차단해.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겠어.”
원거리에서 반응탄을 쏴서 코쿤 째로 박살 내지 못하는 이유는 귀중한 사이필드 차단기를 어스 플릿에 탑재했기 때문이다.
전면전이라면 이기는 게 최우선이므로 사이필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녀석을 보낸 게 누구인지 모르니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플레이그를 죽일 때는 차단기와 반응탄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아르마가 어스 플릿을 통제해 코쿤이 낙하한 바다 근처에 접근시켰다.
코쿤의 열기로 인해 깊은 바다가 통째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차단기 작동… 사이필드가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다이므로 사이커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스 플릿이 접근하자마자 코쿤이 벌어지더니 갑자기 플레이그가 튀어나왔다.
「현 시간부로 감마 원으로 판별합니다. 플레이그 나이트급입니다… 아, 도망가네요.」
녀석은 근처에 아무것도 없고 자신의 사이필드가 차단되자 불리함을 느끼고 잽싸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나이트급이라서 그런지 지나가던 고래를 모방해 형체를 바꾸었다.
체장 100미터짜리 기계고래가 해저로 잠수했다.
유지하는 녀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좀 플레이그답군.”
플레이그는 절대 앞뒤도 구분하지 않고 날뛰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위험한 생명체다.
이전에 지구에 온 두 개체는 그런 면에서 좀 얼빠진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진짜였다.
「감마 원이 해저 2,000미터 이하로 내려갔습니다. 반응탄을 터트리려면 유인해야 할 것 같네요.」
우주에서 활동하는 녀석인 만큼 심해저에서도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
망간단괴나 주변 금속을 흡수할 수 있어서 집만큼이나 편안하게 느낄질 것이다.
“하는 수 없지. 내가 나서야겠군.”
겁을 먹고 도망친 녀석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같은 사이필드를 펼칠 수 있는 개체가 필요하다.
차단기가 활성화된 상태이므로 어마어마한 농도로 펼쳐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것은 유지하밖에 없었다.
“어설트 아머 준비해. 바로 가지.”
「무장 포드 사출되었습니다.」
유지하는 서울에 온 어설트 아머에 탑승하는 와중에도 여러 지역에 떨어진 코쿤의 상황을 둘러봤다.
“다른 녀석들은 인구가 별로 없는 지역에 떨어졌는데 뉴욕이 문제로군.”
「현재 뉴욕시에 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만 피난율은 70%도 되지 않습니다.」
“왜 도망가지 않는 거지?”
「마스터와 합작한 정부의 음모라고 믿으니까요. 플레이그 자체가 가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아예 존재조차 의심한다고?”
「네. 직접 겪기 전엔 못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죠. 직접 겪어도 갑자기 말을 돌리겠지만요.」
“혹시 달에 기지가 있는 것도 안 믿는 사람이 있나?”
「미국인에 한해서 말씀드리자면 최소 20%는 됩니다. 지구평면설을 믿는 사람들과 겹치죠.」
“도와주기 싫어지게 만드는군.”
유지하는 원래 인류연합 근처의 개체를 제외하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려 했었다.
메가시티만 지키면 문제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이 시대로 돌아온 건 플레이그를 박살내고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인류연합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인류가 사망하긴 했지만 본말전도라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누가 그걸 믿어 주진 않겠지만 그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음모론자들을 보니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놔둬야 하나… 아니지. 시민이 될 수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아르마.”
「네, 마스터.」
“그런 사람들을 전부 기록해 둬. 내세우길 좋아하니까 어떤 식으로든 온라인에 주절거릴 거야.”
「메가시티 입주를 불허할까요?」
“당연히 그래야겠지. 음모론을 믿는 건 자유지만 그런 사람들을 메가시티에 들이지 않는 것도 자유야.”
메가시티에 그런 사람들을 들였다간 음모론을 내세우며 난리를 피울 것이 분명하다.
아예 받지 않는 게 맞겠지.
「마스터, 바로 밑에 플레이그가 있습니다.」
유지하는 어설트 아머를 해수면 위 100미터 지점에 고정시켰다.
봉인하고 있던 사이필드를 개방하자 해저에서 반응이 왔다.
‘처음 겪는 사이필드지? 난 너의 적이 아니야.’
유지하의 사이필드는 레비아탄급 플레이그와 맞먹는다.
그만큼 강렬한 사념파를 발산할 수 있으나 전면전에선 의외로 써먹을 기회가 적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위 개체를 유인하는 데에는 탁월했다.
지금쯤 녀석은 유지하를 상위 개체로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아르마가 기쁜 목소리로 보고했다.
「감마 원이 움직입니다. 해수면으로 솟구치고 있습니다.」
마치 낚시를 하는 것 같았다.
유지하는 낚시를 좋아하지만 할 여유가 없었다.
‘나중에 쉬게 된다면 실컷 해야겠군.’
그게 가능할진 의문이지만.
아무튼 그는 어설트 아머를 서서히 상공으로 솟구치게 했다.
감마 원의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다.
마침내 금속으로 된 거대한 고래가 해수면 위로 솟구쳤을 때에는 어설트 아머가 사라지고 반응탄 한 발만이 남아 있었다.
반입자와 입자가 결합되며 순수한 에너지를 토해냈다.
감마 원은 그 튼튼한 외피에도 불구하고 한 방에 결합구조가 무너져 내렸다.
「감마 원 다운을 확인했습니다.」
“코어는 저기 있군.”
유지하는 코어를 회수한 뒤 테라섬으로 복귀했다.
메가시티 퍼시픽이 입구를 개방해 그를 받아들였다.
* * *
감마 원을 제외한 다른 플레이그는 코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유지하는 근처에 있는 국가들의 수장들을 화상회의에 초대했다.
UN의 대책회의가 있었지만 모든 수장들은 유지하의 회의에 참가했다.
어차피 그쪽은 논의만 이어갈 뿐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탈퇴했고 러시아도 조만간 탈퇴할 조짐을 보였기에 현재의 UN은 허수아비 그 자체였다.
그걸 대신하는 것은 아마도 인류연합과 미국의 양강체제일 것이다.
미국은 확고한 동맹국을 중심으로 효율적인 연합을 구성하려 노력했지만 인류연합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안은 유지하가 결단을 내리는 걸로 끝이라서 협조를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공조를 할 일이 있으면 이런 식으로 회의를 하면 그만이었다.
아무튼 이번 회의에는 미국은 참가하지 않았다.
원래 번스타인 대통령은 인류연합과의 갈등을 잠시 잊고 참가하려 했지만 상원에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거기 가서 지시만 듣다 올 생각입니까? 당신이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지 자각하길 바랍니다.”
“미국은 인류연합의 도움 없이도 우주괴물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번에 그걸 세계에 각인시킬 겁니다.”
못해먹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번스타인 대통령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의회의 꼭두각시나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지만 어쨌든 임기는 버텨내야 했다.
그건 대통령이 된 자로서의 의무였다.
유지하는 참가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그와 대화했다.
“미국은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요.”
“없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그런 체할 뿐이죠.”
이 양반도 연임할 생각은 그다지 없는 모양이다.
매킨리에 이어 볼드윈, 번스타인… 다음은 누굴까?
아마 민주당의 정책을 충실히 이어갈 사람이 선택되겠지만 그도 대통령 자리에 앉는 순간 느낄 것이다.
미국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무튼 번스타인 대통령은 반입자탄으로 도와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물었다.
“혹시 내 가족이 메가시티에 가도 되겠습니까?”
“현재 메가시티는 심사만 받으면 입주권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어드밴티지는 없다는 뜻이로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왜, 내가 대통령이라서요?”
“1년 몇 개월이 지나면 앞에 전직이 붙겠지만, 하여튼 지금까지 메가시티의 시민이 된 전직 대통령은 없었습니다.”
“어차피 민주당 꼴통들은 나 대신 말 잘 듣는 리트리버를 앉힐 계획을 짜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나도 살 길을 찾아야죠.”
번스타인은 월가에서 이름난 가문 출신인 데다 대통령 전에도 정계에서 꽤 영향력이 있던 인물이었다.
퇴임 후에는 여러 예우는 물론 장례식까지 국장으로 성대하게 치러질 예정이었다.
그걸 다 포기하고 메가시티에 입주를 원한다는 건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상엔 이걸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여튼 번스타인을 받아들인다면 미국은 심각한 입장이 될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그것도 인류연합에 가서 사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니.
나름 재미는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입주신청을 하시면 잘 살펴보겠습니다.”
OK 사인이나 다름없다.
번스타인은 그제야 안심하고 대화를 종료했다.
이후로는 각국의 수장들과 플레이그 대책회의가 이어졌고 어스 플릿이 나서는 데에 동의했다.
러시아의 미하일로프 대통령은 자국의 힘으로 처리할 순 있지만 인류연합과의 우애를 과시하는 측면에서 도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북아프리카와 대서양쪽의 코쿤은 처리할 국가가 없어서 나서야 할 것 같았다.
“뉴욕에 떨어진 코쿤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누군가 물었고 유지하는 천천히 답했다.
“그쪽은 미국이 처리한다고 합니다. 초강대국이니 알아서 하겠죠.”
정상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은 최근 들어 체면을 구기는 일이 많아졌지만 아직은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국가였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우주괴물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정상이 1:1 회담을 요청했고 유지하는 그걸 받아들였다.
첫 타자인 미하일로프 대통령이 심각한 어조로 이야기를 꺼냈다.
“플레이그의 위협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군요.”
“지금은 평화로운 겁니다. 내가 본 미래에서 인류는 멸망했으니까요.”
인류의 멸망은 솔직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이 세계가 하루아침에 멸망할 수도 있다는 걸 믿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그가 다섯 놈이나 동시에 출현하는 걸 보면 정말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러시아는 인류연합과 긴밀히 공조하고 있었으므로 이번 사태를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현재 러시아는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지고 있어서 대단히 어지러웠다.
미하일로프 대통령이 중심을 잡고 유지하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고 있어서 티가 안 나는 것일 뿐.
그런 상황에서 우주괴물까지 다섯 마리나 나타나니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듯 시끄러웠다.
―우주괴물이 러시아를 멸망시키러 온다!
―우리가 살 길은 메가시티에 들어가는 것뿐이야.
―젠장, 귀찮은데 그냥 인류연합하고 합병하면 안 되나? 그럼 편하잖아.
러시아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푸틴이 사망한 후에 더욱 인류연합과 가까워졌다.
메가시티에 들어가는 방법 중 가장 빠르고 확실한 게 인류연합 국적을 얻는 거라는 게 밝혀지고 나서는 더더욱 그랬다.
물론 메가시티 관리국은 심사 외에는 그 어떤 제한도 없다고 설명했지만 아무래도 인류연합에 있으면 수월한 게 사실이었다.
이걸 노리고 동시베리아에 진출한 인류연합 소속 근로자와 결혼한 러시아인도 있을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러시아인들은 유지하의 외모를 생각했다가 충격을 받기도 했다.
티브이에 나온 유지하만 보곤 연합인들은 다 그렇게 생긴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통합은 거대한 흐름이었고 러시아마저 이를 바꿀 순 없었다.
미하일로프 대통령의 고민도 그런 것이었다.
“메가시티에 사람들을 입주시키는 건 좋지만 그 외는 어떻게 할지 고민입니다.”
“미국에 멍청이들이 있듯, 러시아에도 인류연합에도 있지요. 신경 안 써도 됩니다. 그들은 알아서 떨어져 나갈 테니까요.”
“메가시티 이외의 사람들은 다 버린다는 말씀이십니까?”
“버린다는 말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겁니다. 메가시티에 들어가는 조건이 과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뭐 그렇긴 합니다만.”
미하일로프 대통령은 국민을 버린다는 발상이 찝찝한 모양이었지만 유지하를 설득하진 못했다.
하긴 메가시티는 정말 어지간히 하자가 있지 않으면 다 받아준다.
그간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해 시위를 해왔던 사람들까지 거절당하지 않은 것을 보면 조건이 가혹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어쨌든 둘은 자세한 논의를 한 끝에 우크라이나 행정구의 시민들도 같은 조건이 적용된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우크라이나인은 없습니다. 그냥 러시아인일 뿐이죠. 그러니까 메가시티에 얼마든지 입주할 수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우크라이나에 가서 할 말이 생겼군요. 사실 요즘에는 이것 때문에 동유럽에서 문의가 많습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진지하게 합병 논의를 제의받기도 했고요.”
국가의 정체성을 버린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지만 구 소련의 위성국들은 조금 입장이 다른 모양이었다.
하긴 프랑스가 망할 뻔하고 미국조차 전전긍긍하는 형편인데 동유럽의 작은 나라는 어떻겠는가.
우주괴물이 자국 영토에 떨어지지 않기를 빌 뿐이었다.
요즘에는 인류연합이 다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긴 했지만.
하여튼 유지하는 그들이 러시아와 합병된다면 똑같은 조건을 적용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미하일로프 대통령이 웃으며 화면을 껐고 다음 정상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 * *
어스 플릿이 지구를 돌며 코쿤에서 플레이그를 끄집어내 박살내고 있을 무렵.
미국은 피해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것에 전율했다.
백악관에선 인류연합의 도움으로 코쿤이 육지가 아닌 바다에 떨어졌다는 사실에 환호했지만 피해 현황을 보고받으면서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대피하지 않았던 시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최소 수천 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특히 브루클린은 폐허로 변했습니다.
―현재 10만 명이 행방불명이고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방위군으로는 대처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즉시 연방군을 투입해야 합니다.
번스타인 대통령은 대책위를 소집해 가용한 모든 자원을 투입하는 한편 코쿤의 상황에 대해서도 보고를 받았다.
“현재 코쿤은 뉴욕 앞바다 350미터 해저에 가라앉아 있으며 자세한 좌표는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프랑스의 사례도 있어서 전방위로 감시하는 중입니다.”
놈들에겐 지능이 있다.
유지하 대통령은 나이트급은 제대로 사고할 줄 안다고 했고 프랑스 사태에서 그게 증명되었다.
또한 여러 경로로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이번에 낙하한 녀석들은 다양한 모습을 취할 수 있었다.
북태평양에 출현해 제일 먼저 박살난 감마 원은 고래 형태로 보고되었으며 시베리아의 녀석은 특이하게도 불곰으로 트랜스폼해 러시아인들을 놀라게 했다.
체고 100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기계 불곰이 나타나는데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 쪽엔 뭐가 나올지 걱정되는군.’
플레이그가 처한 상황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형태를 취한다고 했는데 과연 어떨지?
번스타인 대통령은 군 장성들과 회의한 끝에 항모전단을 동원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놈들을 유인하는 것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는 정보원이 내게 연락해 주었소. 강한 사이커들을 동원하면 된다고 하더군.”
참모들 중에서 밝힐 수 없는 정보원의 정체를 캐묻는 사람은 없었다.
유지하인 게 뻔하지.
그는 미국의 연이은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반입자탄을 동원해 도와주기도 하고 정보도 전해주었다.
하지만 이번으로 그게 끝인 모양이다.
번스타인 대통령은 미국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완전히 손을 뗀다고 말했소. 앞으로는 그의 도움을 바랄 수 없으니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 할 거요. 합참의장.”
“예, 대통령님.”
“녀석을 유인할 수단이 뭐가 있겠소?”
“현재 태스크포스 70이 구성되었습니다. 이 그룹에는 2함대 소속 항모전단을 비롯하여…….”
보고가 길어질 것 같자 번스타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놈의 구식 교리는 변할 생각을 않는군. 해군 내의 파벌싸움 때문인가? 어쨌든 잘 들으시오. 유… 정보원은 플레이그를 유인하기 위해선 아주 빠른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했소. 가능하면 초계기가 좋겠지.”
“초계기로 유인하고 대기 중인 항모전단으로 타격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대놓고 항모전단이 버티고 있으면 녀석이 따라오겠소? 잠수함을 동원해야겠지. 거듭 말하는데 이번의 녀석은 이전보다 훨씬 섬세하고 똑똑하다는 걸 잊지 마시오.”
“…명심하겠습니다.”
이후로 작전이 입안되자 해군 내에선 대통령이 과도하게 전투에 개입하려 한다는 불만이 나왔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대통령들은 환경만 조성해 주고 작전을 일임하면 한 발짝 물러나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해군은 최초의 플레이그를 박살낸 성과를 바탕으로 자신감에 차 있기도 했다.
―그깟 외계 괴물 따위, 하프늄2 탄두가 안 통하더라도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다.
―그 누구도 우릴 경시할 수 없다. 인류연합마저도.
―이번에 온 우주괴물은 다섯 마리인데 인류연합이 네 놈이나 맡았다. 우리도 최소 한 놈은 처리할 수 있어야 체면이 선다.
해군이 이렇게 나서는 건 엄청난 예산을 쓰고 있으면서도 우주괴물과의 싸움에선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군대가 한둘은 아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다 보니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아야 했다.
그런고로 미 해군은 이번에 반드시 자력으로 플레이그를 해치워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하지만 플레이그를 유인할 사이커를 모으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대부분은 내가 왜 미끼 역할을 해야 하느냐며 거절했고 그나마 군 소속의 연구원을 동원했는데 숫자가 모자랐다.
밝힐 수 없는 정보원에 의하면 최소 100명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70명밖에 못 모았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심해에 설치한 카메라에선 코쿤의 균열이 관측되었다.
미 해군은 더 이상 시간낭비를 할 수는 없다는 판단하에 사이커들을 초계기에 태워서 대기하도록 했다.
여기까진 아무 문제없이 진행되었고 해군도 승리를 확신했다.
이제 녀석을 유인해 핵탄두를 먹여주면 되는 것이다.
이윽고 코쿤이 깨지며 플레이그가 튀어나왔고 녀석은 해수면 가까이 접근해 비행하는 3대의 초계기에 관심을 보이며 따라왔다.
“역시 멍청한 괴물이라 어쩔 수 없군.”
“좋아, 이대로 작전을 진행한다. 핵탄두 탑재 준비하도록.”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의 갑판에서 한참 작업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마치 돌고래처럼 바다를 질주하는 감마 파이브를 구경하던 번스타인 대통령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건 가짜입니다. 진짜는 뉴욕으로 가고 있습니다.
가짜라고?
그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