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13
212화 둥지를 떠난 드래곤
레오볼드는 에테르 캐논에 두들겨 맞고 레어로 돌아와 징징대는 지갈레온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건 생각보다 훨씬 약하지 않은가?
자기 입으로 약하다고 했으니 어느 정도까진 이해하려 했는데 설마 비행선 수십 척의 포격에 쫓겨날 줄은 몰랐다.
그 부정확하고 빈약한 위력을 자랑하는 에테르 캐논에 말이다.
아르마는 에테르 캐논 자체에 방어막을 뚫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드래곤의 방어막 마법은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보통 도시 방어 등에 쓰이는 방어막은 일점 타격에 약합니다. 에테르 캐논도 모드를 바꿀 수 있는 것 같네요.」
“레이저처럼 한 점에 집중해서 관통력을 높일 수 있단 말이지? 그래도 마법을 동원해서 안 맞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인비지빌리티로 모습을 감춰도 되고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기동력을 살려 공격을 회피해도 된다.
하지만 아르마가 보여준 전투 영상에는 라이트닝 브레스를 뿜을 준비하다 캐논을 얻어맞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을 뿐이었다.
「전투 경험이 거의 없는 개체임이 확실합니다.」
약한 데다 마음가짐도 소심하고 싸움은 무조건 피하려 하니 경험이 쌓일 리 없다.
아마 지갈레온의 수백 년 용생은 도망으로 점철되었을 것이다.
“드래곤 전쟁 당시 도망만 다녔다니 진짜 그랬나 보군.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용할 정도야.”
「다르게 생각하면 그렇게 도망만 다녔기에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거죠. 다른 드래곤들은 다 죽었으니까요.」
“하긴 나름의 처세술이라고 봐도 되겠군.”
다만 그 처세술을 인간이나 엘프에게 쓰고 있는 건 확실히 문제였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만큼 적당히 찍어 눌러도 될 텐데 조금만 아파도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니 드래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비행정의 상륙을 배제한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다행인가?”
「비행선들이 후퇴한 건 드래곤이라는 존재 자체에 놀랐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이긴 하네요.」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은 격이 되겠다.
하여튼 비행선들은 정말 드래곤에 놀랐는지 후퇴해 본대로 복귀했다.
자기들끼리 충돌한 사건도 있어서 당분간은 상륙이 어려워 보였다.
애초에 현재의 부유석에 장착되는 에테르 회로로는 더 이상 고도를 높이는 게 불가능하지만.
상승기류를 노려야 하는데 고도 10km 지점의 대기가 워낙 불안정하다 보니 거기에 올라타는 건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였다.
잘못 올라탔다간 거대한 파도에 내팽개쳐지는 쪽배 꼴이 되기 쉽다.
알테마호처럼 작은 비행선도 최소 수천 골드의 재원을 투입해 건조하는데 그걸 가능성 낮은 도박에 걸고 싶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선원들의 체력 소모가 심합니다. 워낙 기온이 낮고 산소가 희박해서 다들 심각한 고산병을 앓고 있습니다.」
고도를 급격하게 바꾸다 보니 고산병에 시달리다 못해 졸도하는 사람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거기에 기온은 영하 40도를 넘나들고 산소까지 희박하다 보니 선원들의 사기가 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부유대륙에 올라가기만 하면 대부분이 해결되는데 거기까진 생각을 못하겠지.”
희한하게도 부유대륙 대지의 온도는 영상 10도 정도로 괜찮은 편이고 기압과 산소까지 지상과 엇비슷할 정도였다.
아르마가 원인에 대해 조사하고 있지만 특별한 게 나오진 않았다.
「현재 비행선 선원들과 본대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너희들이 올라가라며 탈주하는 비행선도 있네요.」
“당분간은 그냥 놔둬도 되겠어.”
언제나 그렇듯 생명은 답을 찾아내겠지만 환경이 이렇게 혹독하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그들이 그걸 극복할 때쯤엔 부유대륙에 온갖 시설이 세워질 테니 큰 걱정은 없었다.
레오볼드가 우려하는 건 지갈레온이 모습을 보였다는 것 자체였다.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을 테니 결국 보여 주어야 하긴 할 텐데 우리 계획에 악영향은 없을까?”
「그 점에 관해서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아르마가 영상 하나를 보여 주었다.
엘브랑데가 전쟁으로 얻어낸 땅에서 뭔가를 발굴하는 내용이었다.
레오볼드는 처음엔 뭐가 뭔지 몰랐지만 흙더미가 파헤쳐져 회색의 뼈가 드러난 것을 보고 흠칫했다.
“뼈치고는 꽤 큰데.”
「드래곤일 확률이 높습니다. 아마도 드래곤 전쟁 당시 사망한 개체겠죠. 종명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뼈만 보고 어떤 개체인지 특정하기는 어렵나 보군. 그건 그렇고 저걸 발굴해서 뭘 할 생각이지?”
「현장의 엘프들도 잘은 모르는 모양입니다. 가끔 고위직이 등장하긴 하는데 상당한 수준의 마법이 펼쳐져 있어서 뚫기는 어렵습니다.」
“그 정도의 보안을 펼쳐서 하는 짓이라면 드래곤 부활 같은 불길한 거 아닐까?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엔 200년 전까지 네크로맨서라는 존재가 있었으므로 가능성은 있습니다.」
현재는 없는데 흑마법을 역겨워한 엘프들이 죄다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흑마법에 대한 혐오는 놀랄 정도여서 최후의 한 명까지 추적해 죽이고 시신까지 불태웠다고 한다.
엘브랑데에선 많은 기록을 무한의 도서관에 감췄지만 네크로맨서 말살에 대한 건 당당히 공개해 놓고 있었다.
아마도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고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말살했으면서도 숨겨 두고 이용하려 한다… 나와 비슷한 부류군.”
그뿐만이 아니라 지성을 가진 개체는 어지간하면 그런 경향을 가진다.
내로남불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현재로선 데이터가 부족해 섣불리 추측할 수는 없습니다만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당장 어떻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 두고 보기로 하지. 저 뼈와 관련 인력은 철저히 추적해 둬.”
「알겠습니다.」
“그리고 에테르 관련 인력의 수배는 해뒀나?”
「루아드 왕자가 추천해 준 몇 명에게 연락을 했습니다만 다들 별로 내키지 않는 것 같네요.」
“돈을 많이 주는 것 정도로는 부족한가?”
「아무래도 영지가 구석이라… 자리를 잡은 인재는 올 이유가 없고 대학을 갓 졸업한 인재는 첫 직장이 매우 중요하니까요.」
“하긴 나 같아도 안 오겠어.”
구직자에게 첫 직장은 매우 중요하다.
이상한 성격을 가진 영주에게 걸리거나 환경이 받쳐주지 못하면 앞으로의 커리어가 왕창 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뭔가 메리트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반다스 남작령은 전형적인 졸부 이미지만 있는 게 문제였다.
「다만 이쪽에 흥미를 보이는 인재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한 마법사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네요.」
“그나마 다행이군. 어떤 사람이지?”
「스테피나라는 마법사로 20대 여성입니다. 마스터의 원본 육체와 비슷한 이유로 가문을 뛰쳐나와 용병으로 전전하다 이번에 정착할 영지를 찾는 중이랍니다.」
“실력은 확실한가?”
「평균 이상은 되는 모양입니다. 어디까지나 그녀의 주장이지만요.」
“그럼 됐어. 성격이 아주 개판만 아니면 괜찮으니까 받아들여.”
일단 영지에 정착하면 떠나기 싫도록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임금은 물론이고 에테르석이나 기타 자원의 수급도 다른 곳과는 비교를 불허할 테니까.
레오볼드는 그 외에도 사그리스 은광 확보 등 몇 가지를 더 지시하곤 여전히 징징거리고 있는 지갈레온을 만났다.
* * *
비행선과 맞먹는 덩치가 레어 구석에 처박혀서 아프다고 투덜거리는 광경은 참으로 볼썽사나웠다.
“마법은 어디다 팔아먹고 무식하게 그걸 다 맞고 있었나.”
“젠장! 누가 그렇게 공격할 줄 알았냐고! 감히 아인종 주제에!”
“그 아인종에게 두들겨 맞고 도망간 건 어디의 누구냐? 그리고 네 앞에 있는 나도 엄연히 인간인데.”
지갈레온은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했다.
레오볼드는 한숨을 내쉬며 녀석에게 다가가 다리를 툭툭 두들겼다.
“죽진 않았으니까 됐어. 상처는 치료하면 되잖아. 힐 같은 마법은 없는 건가?”
“넌 아무것도 모르는군. 200년 전에 신이 대부분 죽었잖아. 신성력을 내려줄 신이 있어야 뭘 하든가 하지.”
드래곤 전쟁으로 신과 드래곤이 양패구상한 결과 신성교국 팔마의 영향력이 대폭 줄었다.
다만 살아남은 신이 없는 건 아니어서 가끔 판테온에 신탁이 내려온단다.
이번에 성녀가 신성기사단을 대동하고 각국을 방문하는 것도 신탁의 누군가를 찾는 것 때문이라고.
“그런 거군. 하여튼 이 상처를 빨리 회복할 수단은 없는 거지?”
“내버려 두면 나아. 상처 입은 내 마음은 회복되지 않겠지만.”
꼬리를 말며 궁시렁대는 걸 보면 이번 공격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하긴 그간 부유대륙에서 지상을 관찰하며 미개한 아인종이라고 얕잡아봤을 텐데 그렇게 도망쳤으니 자존심이 많이 깎였겠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레오볼드의 입장에선 녀석이 계속해서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여선 곤란했다.
장차 제국의 수호룡 역할을 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진짜 비행선에 질 정도는 아니고 멘탈 문제인 것 같은데…….’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기에 약간의 고통에도 겁부터 먹고 도망간 것에 가깝다.
용기를 북돋아주고 제대로 된 지시만 내려주면 충분히 잘 싸울 수 있는 녀석이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밖에서 골렘으로 위장한 워커들이 커다란 궤짝을 가져왔다.
“열어 봐.”
“…….”
지갈레온은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호기심을 이기지는 못했는지 발톱으로 궤짝을 열었다.
안에는 순도 높은 에테르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음? 오오…….”
“선물로 주는 거야. 매달 주기로 한 것과는 관계가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둬.”
“흠, 일단은 고맙다고 해두지.”
와그작와그작.
드래곤이 에테르석을 말 그대로 씹어 먹는 모습은 참으로 진풍경이었다.
“먹으면서 들어. 네가 약한 건 싸우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야. 본신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아.”
와그작와그작.
“그런 의미에서 네가 펼칠 수 있는 마법을 전부 알려 줘. 효과부터 유지시간부터 세세한 거 전부. 우리가 그걸 알아야 네가 어떻게 싸울지 지시를 내려줄 수 있어.”
영 흥미 없는 얼굴로 에테르석을 씹어 꿀꺽 넘긴 지갈레온은 콧잔등을 찌푸렸다.
“드래곤에게 뭘 가르쳐 준다고?”
“싸우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네가 하도 약하니까 하는 소리야.”
“후… 조금 추태를 보였다고 나를 너무 얕잡아보는군. 이렇게 보여도 나는 블루 드래곤이다. 700년 이상을 살아왔으며 수많은 마법을 익힌…….”
“한 번 더 붙어 볼까?”
날개를 쫙 펼치며 포효하려 했던 지갈레온은 레오볼드의 한마디에 다시 쭈그리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비행선과 싸웠으면 싸웠지 그 하늘을 나는 골리앗과는 절대 붙고 싶지 않았다.
레오볼드는 의욕을 잃은 것 같은 그를 위로했다.
“아르마가 지시를 내릴 거니까 따라하기만 하면 돼. 그럼 비행선 따위는 상대가 안 된다고 장담하지. 아스테라에 너를 이길 수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아.”
“…진짜 그럴까?”
지금으로선 그렇다는 뜻이다.
당장 행성 마레의 마족, 플레이그가 조금만 더 진화해도 드래곤 따위는 씹어 먹는 우주괴물이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이쪽에서 나서겠지만.
아무튼 지갈레온은 거듭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꽤 자신감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레오볼드는 그에게 반다스 영지에 들어오도록 권했다.
“당분간은 비행선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 같으니 영지에 와서 지내. 적당한 집도 구해뒀으니 거기서 살면 될 거야.”
“인간과 함께 사는 건가. 흠,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
“거기서도 노는 게 아니라 임무가 있어. 일단은 마법사로 알고 있을 테니 거기에 맞춰서 행동하면 돼.”
“후후, 내 위대한 마법을 인간들에게 선보일 때가 왔군.”
“미리 경고하는데 드래곤 폼으로 돌아가거나 하면 안 돼. 알겠나?”
“감당하기 힘든 적이 나타나면 변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왜냐하면 지금도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전장 700미터짜리 우주선과 시비리 전투위성이 위험요소를 사전에 제거할 테니까.
지갈레온은 그러려니 하고는 인간으로 폴리모프했다.
미끈한 면상은 보기에는 나쁘지 않았지만 치렁치렁한 파란 머리카락이 레오볼드의 눈에 거슬렸다.
안 그래도 파란 머리카락이 희귀한데 이래서야 블루 드래곤이라고 광고를 하고 다니는 것 같아서였다.
“그거 잘라야겠는데.”
지갈레온은 흠칫 놀라 그를 바라봤다.
“내 머리카락을 자른다고? 안 돼! 이건 나의 상징이란 말이다.”
“설마 사방에 네가 드래곤이라는 걸 광고하고픈 생각은 아니겠지?”
블루 드래곤 본체의 모습이 드러났기에 각국은 찾느라 혈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반다스 남작령에 나타난 마법사가 파란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는 게 알려진다면?
지갈레온도 그걸 생각했는지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나라도 의심할 것 같긴 한데…….”
“머리카락을 감출 정도만 자르고 모자를 써. 마법사니까 무슨 아티팩트라고 주장하면 되겠지.”
“그럼 모자 줘.”
레오볼드는 녀석이 당당하게 내민 손을 보고 당황했다.
“모자 창조 같은 건 안 되는 거냐?”
“창조 마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신에게도 까다로운 영역이라고.”
만능 물질처럼 보였던 에테르에도 한계는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레오볼드는 영지에 오면 모자를 사주겠다고 약속했고 지갈레온은 거의 텅 비어가는 레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백 년 동안 여기에서 살았지만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았다.
* * *
블루 드래곤의 출현은 아스테라 전 국가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었기에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조사대가 파견되었다.
한 곳에 여러 세력이 모인 만큼 살벌한 분위기였지만 목적이 드래곤의 흔적을 찾는 것인 만큼 전투는 발생하지 않았다.
조사가 끝나고 드래곤의 존재가 공식화되었다.
200년 전 신들과 전쟁을 벌여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드래곤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자이움 같은 인간 국가는 그나마 덜했지만 엘브랑데는 말 그대로 발칵 뒤집어졌다.
“드래곤이 살아 있었다니! 당장 엘븐 나이트를 동원해서 죽여야 합니다!”
“이상하군요. 대전쟁 당시 드래곤은 깡그리 멸종된 걸로 알았는데… 최후의 드래곤 알테마의 죽음을 우리 모두 목격했잖습니까?”
“부유대륙이 떠오른 것도 그 시기이니 전투를 피하고 몸을 숨겼다면 이야기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드래곤치고는 너무 허약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수십 척의 비행선이 에테르 캐논을 쏘긴 했지만 그게 제대로 된 위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명중률도 낮아서 절반 가까이가 빗나갔는데 왜 도망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엘브랑데에선 함정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드래곤이 그 정도 공격에 도망가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모든 드래곤이 알테마 같은 전투력을 갖고 있진 않겠지만, 그들을 경시해서도 안 됩니다.”
“맞습니다. 어쩌면 녀석은 부유대륙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려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지갈레온은 너무 아파서 도망간 것뿐이지만 과거 쟁쟁한 드래곤들과 싸웠던 엘프 입장에선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숙고 끝에 대의회에서 결론이 내려졌다.
―우리는 드래곤에게 승리했지만 수백만 명의 동족을 잃었다. 놈들은 위험하니 이 시간 이후로 부유대륙에 접근하는 것은 금지하겠다.
―놈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효율적으로 말살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뿐이다. 비행선 전력의 절반을 부유대륙에 배치해 포격훈련을 개시하겠다.
느려터진 일정을 자랑하는 대의회치고는 제법 발 빠른 판단이었다.
아마도 그건 드래곤이 그들의 숙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에 느긋하게 행동하던 엘프들도 인간과 싸울 때면 눈이 뒤집어지곤 했다.
다만 속사정은 따로 있었는데, 엘브랑데는 드래곤의 뼈로 뭔가 수작을 부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관련자는 극히 적었고 마법을 펼쳐둔 덕분에 소문이 퍼져나가진 않았지만 그들이 대전쟁 당시 사망한 드래곤의 뼈를 발굴하는 건 확실했다.
그 뼈는 엘프의 편을 든 극소수에 해당하는 드래곤의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살아 있는 드래곤이 나타났으니 황당할 수밖에.
저건 대체 누구냐고 원로원 의원들이 정보국을 추궁하고 나섰지만 당장 조사할 방법은 없었다.
부유대륙에 올라갈 수가 있어야 말이지.
엘브랑데가 이렇게 뒤집어진 것에 비해 다른 국가들은 비교적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드래곤 전쟁 당시 상당수의 드래곤들은 인간, 아인종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인간들은 자신들의 역사서에 기록된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신뢰했다.
―드래곤이 갑자기 나타난 바람에 우리 군인들이 실수한 면이 있다. 고의가 아니었다는 입장을 피력해야 한다.
―그가 다시 나타날 때를 대비해 비행선에 문구를 써놓고 부유대륙 근처를 배회하는 게 좋겠다.
특히 자이움 제국이 열성적이었다.
어떻게든 드래곤만 영입하면 엘브랑데에 밀리지 않겠다고 판단해서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부유대륙 남쪽 공역에선 한동안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를 써 붙이고 돌아다니는 자이움의 비행선과 이에 시비를 거는 엘브랑데의 갈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포격전이 펼쳐지진 않았지만 위협적인 기동을 한 덕분에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렇듯 부유대륙 남쪽이 시끄러운 와중에 반다스 남작령에 누군가가 찾아들었다.
고풍스런 모자를 쓴 지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법사였다.
원래 그는 레온을 희망했으나 레오볼드와 너무 비슷해 지온을 선택해야 했다.
“여기가 반다스 남작령인가? 정말 쥐꼬리만 하군.”
미끈한 외모에 대놓고 거만한 언행을 풍겨댄 덕분에 영지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마법사는 거의 귀족 출신으로, 충분히 막나갈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런 구석에 처박힌 영지면 인재가 소중할 테니 영주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고 마법사도 기고만장해 막나가는 사례가 많았다.
다만 지온은 보통 인간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적당히 대우해 주었기에 큰 불만을 가지진 않았다.
“자이움의 몰락귀족 출신이오. 궁중암투에 휘말려 권력을 잃어 여기로 오게 되었지. 원래 이름은 길지만 그냥 지온이라고 부르면 충분하겠지.”
“아, 자이움 출신이셨군요.”
“그쪽은 하루가 멀다하고 귀족들이 숙청되니…….”
자이움 제국은 인구로는 아스테라 최대를 자랑하는 국가로 귀족 작위를 남발하는 바람에 그 숫자가 엄청나게 많았다.
하루에 수십 명씩 죽어나가는 궁중암투는 기본에 해를 거르지 않고 내전이 터져 도통 안정이 되질 않았다.
현재 엘브랑데와의 갈등에서 인간측이 형편없이 밀리는 것도 자이움이 내부갈등으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상이었더라도 에브랑데와 맞서는 것은 어렵겠지만.
지온은 레오볼드의 가신들을 스윽 쳐다보더니 다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흐음… 이자들이 자네의 부하인가?”
“자네가 아니라 영주라 부르도록.”
빡!
레오볼드가 지온의 뒤통수를 후려친 순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둘의 서열이 확실히 각인되었다.
지온은 이게 무슨 짓이냐고 날뛰었지만 레오볼드에게 대들지는 못했다.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해두지. 앞으로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아. 너의 실수로 수십 수백 명이 죽어나갈 수 있으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란 말이다, 알겠나?”
살기등등한 그 눈빛에 지온은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레오볼드도 너무 지온의 기를 꺾는 것은 바라지 않았기에 실력만큼은 대단하다며 추켜세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지간한 마법사는 상대도 안 될 실력을 가졌지. 우리 영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거요.”
“흠흠, 나 정도면 왕가의 초대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지.”
지온은 확실히 영지민들의 관심을 끌긴 했으나 곧 잊혀졌다.
원래 마법사란 존재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자기 할 일만 하는 족속들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몬스터 토벌 등으로 마법을 자주 썼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골리앗으로 다 해결하니 도통 볼 일이 없었다.
또한 영지에 새로운 손님이 방문한다고 거기에 관심이 집중된 것도 있었다.
신성교국 팔마의 성녀와 성전기사단이 이 구석진 영지에까지 방문한 것이다.
하얀 베일을 깊게 눌러쓴 여성과 뒤를 따르는 은빛 갑주의 기사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영지로 들어섰다.
표면적인 목적은 선교이지만 레오볼드는 그녀가 왜 여기를 방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찾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란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