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22
221화 두 영지의 멸망
레오볼드가 베파르급 골리앗을 끌고 영지로 귀환했다.
영지민들은 앞을 다투어 뛰쳐나와 그를 환영했다.
전쟁이 터지고 도통 어디에 갔는지 알 수 없었던 영주가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이상한 골리앗을 끌고서.
카슨 행정관이 맨발로 달려왔고 골리앗에서 내린 레오볼드가 선언했다.
“전쟁은 끝났다. 오하멜 자작은 우리의 공격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영지는 내 부하들이 점령했다. 뿐만 아니라 자이움에서 온 하이 나이트 또한 내가 제압했다. 이 골리앗이 바로 그 증거다.”
그의 옆에 서 있는 골리앗은 바그란에서 볼 수 있는 기종과는 확실히 달랐다.
한눈에 보기에도 자간이나 라움급과는 차원이 다른 고급품임을 느낄 수 있었기에 영주의 선언에 신빙성을 더했다.
곧이어 회관에서 달려 나온 외부인들이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남작님! 알테마호에 어떻게 골리앗을 실었습니까? 엘브랑데도 못하던 것인데!”
“자작령에서 출발한 골리앗 부대는 아직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쪽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리고 하이 나이트의 위치는 어떻게 포착하셨습니까? 일급기밀일 터인데!”
“그가 순순히 따라오던가요?”
벌떼처럼 몰려드는 걸로 봐서 궁금한 게 많았던 모양이다.
레오볼드는 이마를 찡그리곤 말했다.
“내게는 정보를 말해 줄 의무가 없다. 어떤 정보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음대로 상상해라. 지금까지 실컷 떠들던 것처럼.”
여태 회관에 눌러앉아 레오볼드와 영지에 대한 악담을 퍼부었던 사람들이 머쓱해했다.
따지고 보면 지금 그들의 행동조차 귀족에 대한 예법은 아니었다.
만약 여기가 란티스 백작령이었다면 그들은 감히 질문을 꺼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레오볼드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내 영지에 머무르는 건 자유지만 헛소문을 퍼트리다가 입을 피해에 대해선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러니까 입을 조심하도록.”
“…….”
다들 말문을 잃고 하늘과 땅만 쳐다봤고 그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카슨 행정관은 환희에 젖었다.
직책상 회관이나 여관에 자주 드나들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곧 망할 영지니 영주가 제정신이 아니라느니 하는 헛소리를 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제 영주가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그런 헛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카슨에겐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행정관, 아르마.”
“예, 영주님.”
둘이 고개를 숙이자 레오볼드가 지시했다.
“앞으로는 바빠질 테니 정신 바짝 차리고 업무에 임하도록. 당장 지시할 것이 있으니 저택으로 따라오고.”
그들이 사라지자 외부인들은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베파르급 골리앗을 살펴봤다.
“세상에… 진짜 베파르급이야…….”
“자이움 하이 나이트의 상징이라고 들었는데 설마…….”
“아직도 못 믿겠습니까? 하이 나이트가 반다스 남작, 아니, 남작님에게 패배한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 영지에 있던 건 고작해야 자간과 라움뿐이었어!”
“차라리 코볼트가 오우거와 싸워 이겼다는 걸 믿는 게 낫지.”
코볼트는 약한 몬스터의 대명사이고 오우거는 골리앗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강력함을 뽐냈던 몬스터였다.
외부인들의 시선에서 자간이나 라움급 골리앗은 코볼트보다 못한 존재였다.
일단 골리앗이니만큼 그렇게 약하다는 말은 아니고 여러 강국의 제식 기종에 비하면 그렇다는 소리다.
그런데 눈썰미가 좋은 상인 중 한 명이 베파르급 골리앗에 덮어놓은 천이 허전하다는 걸 눈치챘다.
“저거 혹시 어깨와 팔이 없는 거 아닙니까? 좀 허전해 보이는데?”
“그렇게 말하니 진짜 그렇게 보이는구만…….”
“뭘로 자른 거지? 베파르급이라면 상당한 중장갑인데.”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볼 간 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영지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했을 뿐만 아니라 병사들이 골렘을 데리고 와서 골리앗을 이동시켰기 때문이다.
그 후엔 알테마 3호까지 등장해 외부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골리앗에 대해 잘 아는 기사들은 자간급이 선창에서 나오는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짜 골리앗을 싣고 하늘을 날았다고?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군데군데 장갑판이 교체된 걸로 봐서 엄청난 경량화를 이뤄낸 모양인데…….”
“무슨 금속을 쓴 걸까요?”
외부인들 사이로 선원들이 한 명의 남자를 압송했다.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로 몇몇 상인들이 그를 보곤 웅성거렸다.
“자이움의 하이 나이트 에밀이다!”
“진짜 그를 사로잡은 건가!”
“말도 안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본인이 여기에 있으니…….”
인질로 잡힌 에밀은 참담한 심정에 눈을 감아 버렸다.
무슨 아티팩트를 썼는지 에테르가 완전히 봉쇄되어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선원들이 그를 저택으로 압송해 갔고 사람들은 그제야 상황을 똑똑히 인식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란티스 백작과 이올린 공주, 그리고 프로잔 후작의 연합이 박살난 것이다.
그들이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여력도 없었다.
오하멜 자작을 내세워 반다스 남작을 죽이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었는데 역으로 박살났으니 참으로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이제 이올린 공주님은 시집 갈 때까지 아무런 발언권이 없는 신세가 될 거야. 그냥 인형인 거지.”
“란티스 백작의 가신들도 충성심이 좀 흔들리겠는데? 오하멜 자작이 저렇게 죽었는데 손도 못 쓰니 말이야.”
“손을 쓰면 루아드 왕자가 가만히 있겠나? 안 그래도 반다스 남작을 옹호하지 못해서 안달이더만.”
“하이 나이트가 붙잡힌 이상 프로잔 후작도 더 이상 개입은 힘들겠지.”
“젠장, 반다스 남작이 죽는다는 데에 돈을 걸었는데.”
그렇게 말한 상인은 영지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는 목소리를 낮추어야 했다.
기사들도 자리를 떴고 남은 것은 엘브랑데에서 온 티렌델뿐이었다.
그는 바그란의 정세보다는 반다스 남작의 실력에 관심을 가졌다.
‘베파르급은 그렇게 대단한 골리앗은 아니지만 중장갑이다… 그런 골리앗의 어깨와 팔을 절단한 남작의 무용은…….’
최소한 에테르를 무기에 실을 수 있다는 뜻이고 앞으로 그의 방해물이 될지도 몰랐다.
‘여기서 죽일까?’
티렌델은 영주의 저택이 있는 쪽을 노려보았지만 눈에서 힘을 풀었다.
개인의 힘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엘프랑데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잊혀진 신의 유산을 얻으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래곤 부활 계획까지 제대로 추진된다면 일개 남작의 힘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당신이 아무리 수상한 힘을 숨겼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우리는 그 이상의 힘을 가질 테니까.’
그리고 그것이 아스테라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유일한 방법이었다.
티렌델은 자신이 정의를 행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반항하지 마라. 우리를 받아들여라. 그것이 너희들 인간이 평화롭게 사는 길이다.’
* * *
대부분의 영지전은 영주의 죽음으로 끝난다.
에테르 혈통을 가진 이상 영주는 전투에서 절대 뺄 수 없는 중요한 전력이었고 이는 사망률을 대폭 높였다.
덕분에 영주의 죽음은 곧 영지 전체의 항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중요한 전력을 상실했으니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오하멜 자작의 경우 꽤 젊었기에 후계자도 어렸고 식솔의 숫자도 대단치 않았다.
싸울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가 골리앗 2기의 습격으로 사망하자마자 대부분의 관료가 항전을 이어나가기는커녕 바로 항복했다.
용병대가 영지 밖으로 나가 있고 영주까지 죽은 마당에 항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카티나와 엘윈은 항복을 받아들이고 병사들을 동원해 영주 관저를 포함한 관공서를 점령했다.
그러나 영지 전체를 점령한 건 아니었다.
쇠로 만들어진 높은 울타리 너머로 영지민들이 몰려와 호기심과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카티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쟤네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레오가 빨리 와야 하는데…….”
“자작이 평소 어떻게 행동했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요. 의외로 조용한 걸 보니 그리 좋은 영주는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이곳은 바그란 동부에선 세금이 높은 대표적인 영지로 통했다.
오하멜 자작도 전형적인 귀족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는 평이었는데 그건 에테르 혈통 운운하며 영지민들을 쥐어짰다는 뜻이다.
바그란에선 그게 귀족의 기본 소양이니까 말이다.
높은 울타리 너머에서 이쪽을 쳐다보는 영지민들의 옷차림은 반다스 남작령의 그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남루했다.
“이 쇠로 된 울타리가 오하멜 자작과 영지민들 사이의 심리적인 거리를 말해 줍니다. 아주 높고 튼튼하죠? 영지민조차 자기 사람으로 인식을 안했다는 뜻입니다.”
“너 되게 유식하다. 어떻게 그런 것도 알아?”
“저도 한때는 귀족이었으니까요.”
“아 그랬지. 그러고 보니 우리 영지엔 울타리가 없네.”
한 가운데에 영주 저택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영지민의 접근을 막을 그 어떤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경계 병력도 없었고 평소 영지민들은 일이 있으면 자유롭게 저택을 드나들었다.
선대 영주가 그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입구에만은 병사를 두었던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런 행보는 식사에서도 나타났다.
반다스 남작은 배가 고프다 싶으면 식당이나 회관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귀족의 공간은 평민과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바그란의 전통 예법을 생각하면 매우 특이한 일이었다.
영지민들은 처음엔 남작의 행보를 보여 주기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의 적에겐 가차 없이 검을 내리치지만 영지민에겐 따뜻하게 품어주는 귀족이었던 것이다.
물론 레오볼드는 다정다감한 사람은 아니었다.
덩치와 외모는 우락부락했고 표정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며 말투도 딱딱했다.
하지만 그가 영지를 발전시키고 영지민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 여타 귀족과는 확연히 달랐다.
반다스 남작령이 워낙 발전한 덕분에 주변 영지에도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다.
엘윈은 울타리 바깥의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경계심 사이로 얼핏 호기심도 보이는군요. 저들은 기대하고 있는 겁니다. 반다스 남작이 우리를 지배해 줬으면, 하고 말이죠.”
“뭐 레오 성격이면 차별은 안 하겠지.”
“우리도 이제 슬슬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영주께서 기사 서임을 할 테니까요.”
카티나는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다가 물었다.
“우리가 기사라고? 무슨 헛소리야?”
“언제까지 용병으로 놀려둘 순 없잖습니까? 영주님 입장에선 기사로 임명해 박아두는 편이 낫죠.”
“그치만 난 에테르 혈통이 아닌데?”
엘윈과 달리 카티나는 귀족 출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사란 건 영주의 허락만 있으면 되는 겁니다. 물론 그걸 다른 영주나 귀족이 인정하는가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하여튼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게 공훈을 세우다 작위를 받으면 가신이 되는 거죠.”
“나도 가신이 될 수 있구나…….”
“뭐 그렇다고 영주님이 카티나를 돌아보지는 않겠지만요.”
“죽을래! 안 그래도 밤이 외롭구만!”
둘은 시시덕거리다가 영주가 이쪽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되지도 않아 비행선 한 척이 영주 관저 상공에 도착하더니 레오볼드가 내려왔다.
“영주님이 오셨다!”
“잘된 모양이군.”
레오볼드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카티나와 엘윈에게 물었다.
“이 영지의 가신이나 관료들은 감금해 둔 건가?”
“어. 감옥이 따로 있더라고. 일단 구분해서 거기에 넣어뒀지.”
“일단 데려와.”
사람들이 끌려왔고 레오볼드가 그들의 앞에 서서 선언했다.
“오하멜 자작은 죽었고 그의 영지는 나의 손에 들어왔다. 란티스 백작의 꾐에 선동당해 선전포고를 한 것도, 병력을 움직인 것도 오하멜 자작이었으므로 억울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 시간부터 오하멜 자작령은 내 영지로 편입된다. 그대들의 생사여탈도 내게 달렸다. 지금 선택해라. 나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인지, 죽을 것인지.”
일부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눈을 감았다.
주로 가신과 식솔이었다.
자작이 죽은 이상 남작이 그들을 살려둘 리가 없었다.
그에 반해 대부분의 관료들은 희망 섞인 시선을 그에게 던졌다.
“사, 살려 주시는 겁니까?”
“그것은 앞으로 그대들의 행동에 달렸다. 내게 충성을 맹세해라. 오하멜 자작의 모든 재산 목록을 가져와라.”
“충성을 맹세합니다!”
“집무실 뒤져서 서류 가져와! 단 한 장도 빼놓지 말고!”
승자와 패자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까지 자작에게 굽실거리던 관료들이 남작에게 허리를 굽혔다.
가신과 식솔들은 그들의 얼굴을 기억해 두겠다는 듯 눈을 부릅떴지만 다음에 이어진 반다스 남작의 목소리에 눈을 감아야 했다.
“나머지는 전원 처형할 예정이니 감옥에 가둬 두도록. 단 필요 이상의 거친 행동은 용납하지 않겠다.”
그렇게 레오볼드는 오하멜 자작령을 손에 넣었지만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전쟁에 참가한 다른 영지도 있었고 급히 이곳으로 귀환하고 있는 용병대가 남았다.
무엇보다 란티스 백작과 이올린 공주의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후자는 실권 없는 인형이니 그렇다 쳐도 가신을 잃고 영역까지 빼앗긴 란티스 백작의 분노는 심상치 않을 터였다.
‘프로잔 후작에게 털리지 않으면 다행이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지금은 란티스 백작이 궁지에 몰려 있었다.
왕가를 무시하고 자이움의 귀족을 끌어들인 것까지는 좋았지만 하이 나이트가 레오볼드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게 란티스 백작의 실수는 아니었지만 분노한 프로잔 후작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하이 나이트를 돌려받으려 애쓸 것이고 레오볼드는 란티스 백작이 완전히 손을 뗄 것을 종용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골리앗은 못 돌려줘.’
프로잔 후작도 바그란 왕가에 강하게 나갈 수 없는 입장이라 그쯤에서 일을 마무리할 확률이 높았다.
‘남은 건 데노바인데 지온 이 녀석이 일을 잘 처리하고 있나 모르겠군.’
그가 지온을 보낸 것은 말로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승리는 확정적이었고 데노바는 100만 골드 이상을 변제해야 한다.
그 필리프 시장이 순순히 내놓을 리 없으니 배를 째는 수밖에.
‘인내심이 부족한 지갈레온이면 충분히 배를 째주겠지.’
그리고 그가 가져올 재물은 영지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레오볼드는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영주 관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팻말을 짓밟았다.
오하멜 자작령은 그렇게 멸망했다.
* * *
지온은 레오볼드가 자신을 여기로 보낸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영지 내에 이런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관료가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데노바에 이런저런 마법적인 방어 시설이 깔려 있는 것도 문제였다.
루시아가 만들어 준 아티팩트로 어떻게 잘 넘어갔지만 자칫 잘못하면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들킬 뻔했다.
그래도 지온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데노바 시에 대해선 겉으로만 훑어봤기에 중앙거래소 등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곳을 구경하는 건 나름 괜찮은 유희거리였다.
‘이참에 레오 그놈이 나에게 이런 업무를 전담시키려 하는지도 모르지.’
드래곤은 대개 흉포하며 탐욕적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지갈레온이 딱 그랬다.
온갖 값나가는 광물이나 보석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금은, 그중에서도 금이었다.
그런 점에서 지갈레온은 여기에 파견된 것에 대해 나쁘지 않게 생각했다.
생각 같아서는 영지로 쳐들어오는 놈들에게 브레스라도 뿜어주고 싶었지만 레오가 알아서 한다니 뭐 어쩌겠는가.
‘그랬는데… 그렇게 돈을 받아가려 했는데…….’
모든 거래의 책임을 진 필리프 시장은 그의 앞에서 140만 골드를 지불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만기일 운운하며 변명을 댔지만 지갈레온이 생각하기에 그건 떼먹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더 이상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상인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망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지갈레온은 분노했다.
‘이 새끼가 감히 내 돈을 떼먹으려 해!’
1만 골드는 공금이었고 받아내야 할 140만 골드에도 그의 몫은 없었다.
하지만 지갈레온은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돈 내놔!”
그가 한 걸음 나서며 크게 소리치자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필리프 시장이 걸음을 멈추고 흘깃 뒤를 쳐다봤다.
“목청도 크시군요. 누가 안 드린다고 했습니까? 드릴 겁니다. 나중에.”
그게 언제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시장뿐일 것이다.
필리프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고 직원들 사이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지갈레온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분노를 터트리며 폴리모프 마법을 시전했다.
중앙거래소 내부엔 온갖 종류의 방어마법진이 펼쳐져 있었지만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지는 에테르를 막지는 못했다.
인간이 사라지고 푸른 게이트가 열리며 거대한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어?”
“드래곤! 드래곤이다!”
직원들이 경악하고 투자자들이 그 위용에 움직임을 멈췄다.
덩치가 덩치인지라 꼬리에 벽이 관통됐고 머리는 이미 지붕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지갈레온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하고 에테르와 숨을 동시에 뿜어냈다.
―내 돈을 내놔라!
콰아아아!
두꺼운 전격의 줄기가 전방으로 뻗어나가 방어마법진과 충돌해 대폭발을 일으켰다.
브레스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그 폭발이 정말이지 엄청났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중앙거래소의 모든 것이 날아갔다.
그 위력에 버틴 것은 드래곤의 강건한 육체뿐이었다.
―내 돈 내놓으라고!
지갈레온은 레비테이션과 날갯짓을 이용해 하늘로 떠올랐다.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중앙거래소가 보였지만 그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이 사기꾼 새끼들아아아아!
다시금 라이트닝 브레스가 뿜어졌고 광역살상마법 또한 무차별로 퍼부어졌다.
데노바의 자랑이던 중앙거래소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건물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의외로 달아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는데, 브레스와 마법에 즉사했기 때문이다.
지갈레온은 잠시 자신의 작품을 내려다보다 이게 아닌데, 하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화가 나서 저지르긴 했는데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서웠던 것이다.
‘영주가 날 죽이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하진 않더라도 돈을 가지고 가지 못하면 두들겨 맞을 것은 거의 확실했다.
‘돈, 돈을 확보해야 돼.’
그는 밑으로 내려가 레비테이션 마법을 응용해 잔해를 파헤쳤다.
다행스럽게도 반쯤 부서진 몇몇 금고가 보였고 그는 아공간에 홀라당 넘겨 버렸다.
‘이건 내가 받아야 할 돈이니 가져가도 불만 없겠지.’
데노바가 박살 난 덕분에 엘브랑데 등이 난리가 났지만 지갈레온은 별 생각 없이 날아올라 영지로 향했다.
그의 중력자를 추적하던 시비리 위성이 경고를 보냈고 아르마는 곧장 탐사정과 에테르 차단기를 보내 그의 흔적을 지워 버렸다.
덕분에 뒤늦게 출동한 데노바 시의 용병대는 에테르를 추적할 수 없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중앙거래소를 비롯해서 금융구역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마법사, 마법사를 데려와!”
“그러고 있을 게 아니라 인명구조부터 해야지! 필리프 시장부터 찾아!”
그러나 필리프 시장을 포함한 핵심 수뇌부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지갈레온이 최초 발사한 라이트닝 브레스에 깔끔하게 증발해서 시체조차 남지 않은 것이다.
긴 세월을 살아온 엘프이니만큼 마법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던 필리프였지만 설마 빚쟁이가 드래곤으로 변신해 브레스를 날릴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용병들은 골리앗으로 잔해를 뒤집고 다니면서 투덜투덜했다.
“돈 줄 놈들은 전부 죽어 버린 거 아냐?”
“젠장, 그러면 우리도 뭐 좀 챙겨야 되겠는데. 금고 어디 없어?”
“그건 그렇고 데노바는 완전히 망했구만…….”
전체가 날아간 것은 아니지만 핵심지구가 완전히 박살 나는 바람에 대부분의 기록이 소실되었다.
뿐만 아니라 중앙거래소에서 보관하고 있던 귀금속과 보석 등을 지갈레온이 털어갔기에 남은 거라곤 잔해뿐이었다.
다시 시작하려 해도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이고 상인들의 신뢰도 예전 같지는 않을 터였다.
데노바는 그렇게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