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23
222화 전쟁의 후폭풍
영지를 점령한 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재산과 인재 확보다.
레오볼드는 카티나와 엘윈, 그리고 휘하 병력에게 불필요한 거친 짓을 하지 않도록 명령했다.
“이곳 또한 장차 내 영지가 될 것이니 고향처럼 생각하고 근무하도록. 그리고 비행선을 이용한 강습은 처음일 텐데 아주 잘 해주었다.”
입 바른 소리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레오볼드는 보상에도 후했다.
강습에 참가한 병력 전원에게 3골드가 지급되었고 2주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단, 이는 전쟁이 완전히 끝난 다음에 쓸 수 있었다.
레오볼드가 자작령을 점령하긴 했지만 행정적인 절차가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 기름칠과 협박이 필요했다.
오히려 전쟁보다는 그게 더 힘들지도 모른다.
루아드 왕자는 어지간하면 그의 편의를 봐주겠지만 란티스 백작은 아닐 테니까.
가장 중요한 바그란 3세는 건강이 워낙 좋지 않아서 루아드 왕자에게 처리를 일임하고자 할 것이다.
“조만간 만나자고 할 텐데 프로잔 후작이 오려나 모르겠군.”
사실 이번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선 그의 의지가 제일 중요했다.
인구 1억을 자랑하는 자이움 제국의 대영주인 그가 한 발 물러서면 란티스 백작의 처지도 볼품없이 추락한다.
하지만 그가 앙심을 품는다면 앞으로 상당히 피곤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르마는 프로잔 후작의 성향상 확전은 하지 않으리라고 추측했다.
“매우 계산적인 성격입니다. 이번에도 손해는 보지 않으리라 계산하고 뛰어들었죠. 마스터께서 그의 기사를 생포하신 걸 알게 되면 충격이 클 겁니다.”
“그렇게 계산적인 자라면 무턱대고 달려들기보다는 나와 란티스 백작을 저울질할 것 같은데?”
“기사 에밀이 복귀한 뒤에 정황을 보고하면 그렇게 될 겁니다.”
에밀은 자신과 레오볼드가 어떻게 싸웠는지 낱낱이 보고할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무기에 에테르를 실을 수 있는 하이 나이트급이라는 것과 비행선을 이용한 강습, 그리고 골리앗에 신소재를 적용한 건 알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리빙메탈은 엘브랑데에서도 극비인 금속으로, 정보국에서 달라붙어 모든 연구 과정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걸 시골 영주가 썼다는 걸 알게 되면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엘브랑데가 문제인데, 그쪽은 지갈레온이 잘 해주었다.
레오볼드는 갑작스레 나타난 드래곤 한 마리가 데노바를 박살 냈다는 소식을 듣곤 고개를 갸웃했다.
“완전히 박살 내라고 하진 않았는데.”
“돈을 떼먹겠다는 소리를 들은 인내심이 부족한 드래곤이 저지를 수 있는 짓은 많지 않죠. 브레스에 광역살상마법까지 곁들이는 바람에 대부분의 수뇌부가 사망했고 여러 재산과 채권, 거래내역까지 증발했습니다.”
“증거가 깔끔하게 사라졌겠군.”
엘브랑데는 레오볼드가 리빙메탈을 썼다는 소식을 듣고 조사에 나서겠지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데노바가 유력한 범인이었는데 지갈레온의 깽판으로 모조리 날아가 버렸으니까.
남은 건 지갈레온이 가져온 금고가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였다.
최종적으로 지갈레온은 140만 골드를 보고했는데 그 1/10이나 되면 다행이었다.
“녀석한테 이쪽으로 날아오라고 해. 적당히 뒤를 봐주고.”
“엘브랑데가 그를 추적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들의 에테르 추적 시스템은 확실히 대단하지만 이곳은 너무 멀리 떨어진데다 차단기까지 동원했기에 들킬 일이 없었다.
아르마는 서류를 뒤적이더니 보고했다.
“그리고 마스터, 그랜든 경이 영지로 복귀하겠다고 합니다. 딸은 믿을 만한 상단에 맡기고 뿔새를 타고 오겠다는군요.”
“급했던 모양이군. 둘 다 이쪽으로 오라고 해. 앞으로는 여기가 영지의 중심이 될 테니까.”
기존 영지는 바다에 연해 있고 암염광산이 있다는 것 외에는 장점이 전혀 없었다.
영토의 크기나 자원 등 대부분의 측면에서 오하멜 자작령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특히 수자원이 풍부하다는 게 컸다.
오브강은 바그란의 동부를 횡단하는 거대한 강으로 1년 내내 유량이 풍부해 여기저기 쓸 일이 많았다.
목화와 같은 작물 재배와 각종 산업기술에는 대량의 물이 필요한데 반다스 남작령에 있는 물로는 충족시킬 수 없었다.
“자작이 데리고 있던 인재들은 회유해. 아무 기술도 지식도 없는 놈들은 란티스 백작에게 넘겨 버리고.”
원래는 죽이려 했지만 아르마가 란티스 백작에게 보내자는 의견을 냈다.
그의 입장에선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백작의 보호 아래에 들어간 유족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레오볼드에 대한 복수심에 이런저런 일을 획책할 테고 그건 명분이 된다.
“공방의 드워프는 어떻게 대우할까요?”
“이 영지에 드워프가 있었나?”
“네. 사정을 들어 보니 선대 영주와 맺은 계약 때문에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하멜 자작이 죽었으니 이제 돌아가려고 하고 있고요.”
“드워프면 꽤 유용한 인재일 텐데…….”
에테르라는 힘에 대한 연구는 엘프쪽이 훨씬 앞섰지만 기계와 소재, 물리 쪽은 드워프가 압도적이었다.
심지어 자이움 제국마저 드워프들의 국가인 이미르 공화국에서 골리앗 제조를 위한 부품을 공급받고 있는 실정이다.
드워프들의 폐쇄성을 생각하면 이 영지에 있다는 게 신기한 일이었다.
“사실상 이 영지의 산업기술을 이끌어가는 인재라고 봐야 할 것 같네요. 문제라면 오하멜 자작이 소심한 데다 돈이 없어서 충분히 받쳐주지 못했다는 점일까요.”
“그러면 우리가… 아니지.”
굳이 먼저 나서서 회유할 필요는 없다.
드워프는 엘프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종족이다.
어지간한 금액으로는 눌러앉히는 게 불가능에 가깝고 협박은 통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이쪽의 기술력을 슬쩍 유출하는 게 나았다.
“골리앗 정비하는 척하고 분해기로 리빙메탈 다루는 걸 보여 줘. 직접 여기에 눌러앉겠다고 말할 거야.”
“알겠습니다.”
얼마 후 지온이 점령지에 도착했다.
그는 화가 나서 데노바를 박살 냈다고 실토했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사과했다.
“내 브레스가 워낙 강력하잖아? 금화고 돈이고 남은 게 하나도 없더라고.”
“그러면 금괴 같은 것도 빼돌릴 수 없었겠군.”
“그… 렇지?”
지온은 잔뜩 긴장했다.
이 괴물 같은 영주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두려웠던 것이다.
금괴 운운하는 걸 보면 눈치챈 것 같긴 한데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알 리가 없었다.
‘그렇게 에테르가 어지러운데 마법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어! 이 녀석은 나를 시험하고 있는 거야!’
트루아이 같은 원거리 마법은 에테르를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지만 환경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브레스와 온갖 살상마법으로 어지러운 마당에 트루아이 같은 정교함을 요구하는 마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온은 그렇게 단정하곤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나도 금괴 같은 게 있나 찾아봤지만, 없더라고. 참 아쉽게 됐지. 투자금 1만 골드가 날아갔으니 말이야.”
“그걸 받아내야겠는데, 누가 좋을까?”
“글쎄? 데노바는 망했고 내 정체를 알릴 수는 없을 테니 누구에게 받아내는 건 어려울 거야.”
“좋은 방법이 있어.”
레오볼드가 손가락을 까닥까닥하자 지온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입에 귀를 가져다댔다.
“뭔데?”
“바로 내 금괴를 숨기고도 모른 체하는 시건방진 드래곤을 반쯤 죽이는 거지. 그다음에 이야기를 들어 보는 거야. 대체 왜 그랬는지.”
“…그…….”
“지금 내놓으면 목숨만은 보전해 주마. 전부 내놔.”
“젠장, 누가 들으면 산적이 말하는 건 줄 알겠어.”
“그런 소릴 듣기 싫었으면 숨기질 말았어야지.”
“나도 한몫 좀 챙기려 했을 뿐이라고. 데노바에 가는 게 내 일은 아니잖아.”
“좋아서 헐레벌떡 짐 챙긴 게 누군데. 그리고 내가 알아서 안 챙겨줄까 봐? 어지간히도 나에 대한 믿음이 없는 모양이군.”
지온은 흠칫했다.
생각해 보면 레오볼드는 언제나 그에 대한 편의를 봐주려고 애써왔다.
약속한 에테르석은 철저히 지급되었고 연구에 필요한 자금과 재료 등도 언제나 풍족하게 제공되었다.
조수 마법사가 필요하다고 하니 스테피나를 수배해 주었을뿐더러 온갖 편의사항도 부족함이 없었다.
레오볼드는 고개를 돌리며 씁쓸하게 말했다.
“나는 너를 믿었는데, 너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군. 실망했다.”
이쯤 되자 지온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영지에서 나가 봐야 갈 곳도 없었고 부유대륙으로 돌아가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엘브랑데니 자이움이니 하는 세력들이 상륙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비행선 수십 대가 날아다니는 실정이었다.
‘상륙이 가능해지는 순간 내 레어도 들키는 거야.’
그렇게 되면 그의 평화는 끝난다.
레오볼드에게 붙어 있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여기까지 판단한 지온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었다.
“뭘 또 그런 걸 가지고. 그냥 장난친 거야. 내가 영주한테 숨길 일이 뭐가 있겠어?”
“글쎄, 못 믿겠는데.”
“아아, 진짜 대단한 거 아니라니까. 설마 내가 이걸 홀라당 삼킬까 봐? 자, 영주 주려고 가져온 거라니까.”
지온은 아공간에서 금고 몇 개를 꺼냈다.
마지막 하나는 남겨두려 했지만 레오볼드가 더 없어? 하는 시선을 보내자 눈물을 머금고 최후의 금고까지 꺼내고 말았다.
“4개라… 다른 건 안의 내용물이 얼핏 보이지만 이건 마법으로 봉인되어 있는 것 같군. 열 수 있겠어?”
“마법 하면 또 드래곤이지.”
자신만만하게 나선 지온이었지만 봉인마법진의 수준이 장난이 아니라 실패하고 말았다.
“젠장, 이게 왜 안 열리는 거야?”
“가끔은 원시적인 방법이 좋을 때도 있지.”
레오볼드는 관저 구석에 서 있는 골리앗에 탑승한 후 무기를 망치로 변형시켜 금고를 두들겼다.
작은 폭발과 함께 금고가 깨지며 지도 한 장이 나왔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지도를 분석했다.
해안선으로 보아 반다스 남작령의 동쪽 바다가 분명했다.
“거기엔 섀도우 엘프의 군도가 있는데 이 바다엔 아무것도 없는 걸로 되어 있군.”
“그야 해적군도는 200년 전 대전쟁 당시에 만들어진 거니까. 부유대륙이 그랬듯이 말이야.”
“그럼 이건 그때 만들어진 지도란 건데 왜 데노바에 있지?”
지온은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빚 대신 받은 게 지도였을 수도 있지. 귀쟁이들이 무슨 짓을 하건 이상하지 않아.”
“하긴…….”
마법으로 봉인된 금고에 보관된 걸로 봐서 꽤 중요한 지도인 모양이다.
레오볼드는 아르마를 불러 지도를 포함해 모든 금고를 넘겼다.
“지도는 정밀하게 해석해서 위치를 찾아봐. 그리고 얼마인지 대충 계산이 되겠어?”
“약 8만 5천 골드입니다. 보석 같은 경우는 이번 달의 시세대로 계산했습니다만 팔기 위해선 수수료를 꽤 지불해야 하겠네요.”
“그걸 벌써 계산했다고……?”
아르마를 일개 하녀로 알고 있는 지온은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규격화된 금괴가 주류라고는 하나 금 함유율이 다른 금화만 5종류이고 은화도 많은데!
“우리가 받아야 할 금액이 141만 골드니 역시 턱도 없군. 지도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걸로도 부족할 테니 엘브랑데에서 받아내야겠어.”
빚을 진 것은 데노바지만 뒤를 봐주는 건 엘브랑데였다.
데노바는 결국 재건될 것이고 새로운 시장이 취임하겠지만 그들은 증거가 없는 거래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 엘프들에게 변제의 책임이 있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어떻게? 엘브랑데가 귀쟁이들의 국가이긴 하지만 상당히 강력하다는 것은 영주도 잘 알 텐데.”
“두고 보라고. 나는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니까.”
“흐음…….”
지온은 의심스런 표정이 되었지만 뭐 그러려니 했다.
겁도 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데노바를 박살냈으니 그 후폭풍은 홀로 감당해야지.
* * *
왕도에 가 있던 그랜든이 영지로 복귀했다.
어찌나 서둘렀는지 제대로 자지도 않고 뿔새를 탔다고 한다.
레오볼드는 그에게 임무를 맡기는 대신 깨끗하게 정돈된 침실로 밀었다.
“깊은 잠을 자는 건 특히 기사에게 중요한 것이지. 한숨 푹 잔 뒤에 임무를 맡아도 늦지 않소.”
“송구스럽습니다, 영주님.”
그랜든의 입장에선 딸 때문에 영지전에 참여하지도 못한 자신을 용납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영주의 의도라고 해도 말이다.
어쨌든 그는 꼬박 10시간을 잔 뒤에 수염까지 밀고 말끔한 모습으로 레오볼드의 앞에 나타났다.
“한결 좋아 보이는군. 경에겐 용병대의 회유를 맡기고 싶소. 오하멜 자작이 고용한 용병대가 여기와 반다스 영지의 중간에서 야영을 하고 있소.”
“고용주가 죽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거군요.”
“그러니 경이 가서 말해 줬으면 좋겠소. 협박을 해도 상관없소. 어차피 그들을 받아들일 곳은 많지 않으니.”
골리앗을 16대나 보유한 용병대이고 보면 여러 곳에서 군침을 흘릴 법도 하지만 바그란 왕가가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오하멜 자작과 협력한 두 귀족이나 란티스 백작 정도인데, 전자는 경제적으로, 후자는 정치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즉시 떠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에일리는 어떻소?”
질문을 받은 그랜든의 입가에 아버지로서의 흐뭇한 미소가 나타났다.
“왕궁에서 잘 뛰어놀고 있더군요. 모든 것이 영주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입니다.”
“나중에 식사라도 같이 하기로 하지. 나 또한 에일리를 소개받고 싶으니까.”
“영광입니다.”
그 뒤 그랜든은 용병대의 투항을 전해왔다.
“다행히 용병대장은 말이 통하는 인물이더군요.”
“계산이 빠른 인물이라는 게 맞겠지. 에테르석의 보급도 없는 그들이 바그란 동부에서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소.”
“그런 것까지 감안하셨군요.”
그랜든은 일개 용병단의 내막까지 알고 있는 영주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신조차 용병단과 이야기를 나누며 설득한 끝에 알게 된 정보였는데 말이다.
어찌되었든 16기의 골리앗을 보유한 용병단은 레오볼드에게 신병을 의탁하기로 했다.
그걸 저지했어야 할 란티스 백작은 왕도에서 루아드 왕자와 프로잔 후작에게 달달 볶이느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반다스 남작령은 도합 21대에 달하는 골리앗 전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태반이 라움급이고 최고 전력인 베파르급은 큰 손상을 입어 수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포함한다고 해도 대단한 전력이었다.
이는 바그란 동부에선 란티스 백작령 다음가는 것으로, 주변 영지에 상당한 압력이 되었다.
다만 의외로 큰 이슈는 되지 않았는데 데노바에 블루 드래곤이 나타나 초토화시켰다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작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대륙 제일의 상업도시라는 명성을 가졌던 데노바가 말 그대로 박살이 났단다.
이 소식이 주변 국가에 전해졌지만 의외로 안타까워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데노바는 가증스러운 귀쟁이들의 주구에 불과했기 때문.
―귀쟁이에 수전노가 더해져서 역겨울 뿐이었는데 이번에 싹 죽었다니 다행이군.
―어차피 데노바 놈들이 잘 하는 건 억지로 돈을 빌려주고 비싼 이자를 매기는 것뿐이야. 그런 놈들이 사라졌으니 잘 된 일이지.
―내친 김에 그 블루 드래곤이 엘브랑데까지 박살 내줬으면 좋겠는데.
다만 드래곤에 대한 공포심은 여전해서 다들 병력을 충원하는 등 대비에 바빴다.
그리고 데노바가 박살 나는 것을 보고받은 엘브랑데 대의회에선 대노해서 당장 그 드래곤을 찾으라고 난리를 쳐댔다.
―데노바가 통째로 날아갔다! 그러고도 드래곤의 행방을 못 찾는다는 게 말이 되나!
―정보국은 대체 뭘 하는 거야!
―데노바 방면 에테르 추적을 담당하는 직원이 출산 휴가를 떠나는 바람에…….
―전의 엘드그라실 순례를 떠난 놈은 왜 안 돌아오는 건가!
다급해진 대의회에선 정보국을 밀어내고 소수의 엘븐 나이트를 파견했다.
그러나 금융지구가 워낙 깔끔하게 날아가는 바람에 증거가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그 드래곤이 브레스에 더불어 온갖 광역살상마법을 써댔다는 것뿐이었다.
“블루 드래곤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데노바를 공격했지?”
“전에 비행선대가 포격을 가한 것에 앙심을 품은 것이 아닐까요?”
“그런 거라면 자이움을 먼저 공격했어야지.”
서류라도 남았다면 반다스 남작의 명의로 거액의 채권 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냈겠지만 그게 어려웠다.
그리고 그 계약을 증언해 줄 상인들은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
설령 있었더라도 그 계약과 블루 드래곤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엘븐 나이트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분노한 대의회의 귀에 다른 정보가 들어왔다.
바그란에 파견된 심판관 티렌델이 리빙메탈의 유출을 보고한 것이다.
블루 드래곤 건으로 뒤집어진 대의회가 벌집을 쑤신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대체 누가 리빙메탈을 유출한 건가! 범인을 찾아내라!
다행히 리빙메탈을 캐낼 수 있는 광산은 엘브랑데에서도 딱 한 곳뿐이었고 엄중한 감시 속에 있어서 유출자는 금방 드러날 것 같았다.
그런데 의외로 유출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대의회가 파견한 직원들이 모든 인력을 한 곳에 집합시키고 광산의 모든 곳을 수색했지만 정황을 찾을 수 없었다.
―제련소 서류에 기입된 반출량과 군부의 명세서에 기입된 수입량이 일치함을 확인함.
―일꾼들에서도 혐의점을 찾을 수는 없음. 모든 일꾼은 6개월 가까이 작업장을 떠나지 못했으며 최소 2명 이상의 감시를 받고 있음.
리빙메탈이 가지는 위험성과 중요도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희귀금속은 강도가 워낙 뛰어나서 어지간한 수단으로는 파괴가 불가능했다.
기존의 금속과 달리 매우 쉽게 변형이 가능한데 에테르 감응력이 뛰어난 사람만이 다룰 수 있었다.
엘븐 나이트 중에서도 기량이 높은 사람만이 겨우 다룰 수 있는 금속이었던 것이다.
엘브랑데 내부에서는 비행정에 태웠다는 골리앗 장갑판의 정체를 리빙메탈로 단정한 상태였다.
문제가 있다면 그 희귀한 금속이 왜 반다스 남작령에서 발견되었냐는 것이었다.
이쪽에선 유출된 정황조차 없는데.
―혹시 리빙메탈 광산이 바그란에서 발견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아니면 부유대륙에서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그 여우같은 남작이 숨겼다면…….
―일개 남작 주제에 여러모로 신경 쓰이게 하는군. 이번 영지전도 그렇고 당분간 주시할 필요성이 있다.
한편 바그란 내부에선 루아드 왕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반다스 남작이 큰 피해 없이 오하멜 자작령을 제압한 것을 내심 기쁘게 여기면서도 이를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전쟁의 원활한 수습을 위해 미팅을 제안했다.
참석자는 왕자와 프로잔 후작, 란티스 백작, 그리고 바그란 남작이었다.
고위귀족 두 명이 바로 제안에 응한데 비해 레오볼드의 대답은 시원치 않았다.
“글쎄요, 저하의 제안이시니 응당 따라야하겠지만 염려를 놓을 수가 없군요.”
“무엇을 염려하는 거요?”
“두 분이 경제적으로 저를 압박한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도 있어서 말이죠. 아시다시피 란티스 백작령하면 규모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제 2만을 넘기는 제 영지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점령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오하멜 자작령을 자신의 영지로 여기고 있군.’
그만큼 내놓기 싫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겠지만 두 귀족이 그걸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였다.
대가로 무엇 내놓는가가 문제인데 레오볼드는 뜻밖의 발언을 했다.
“기사 에밀을 돌려드리겠습니다. 큰 상처는 입지 않았으니 협정만 체결된다면 바로 돌려드릴 겁니다.”
“다행히도 그가 살아 있었군. 하지만 란티스 백작은 동의하지 않을 거요.”
“식솔과 가신의 신병을 란티스 백작에게 의탁하겠습니다. 그거면 충분하겠지요.”
“그들이… 신기한 일이군.”
보통 영지전에서 영주가 죽었는데 식솔을 살려 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 아닌 만큼 인질로 잡아 돈을 뜯어내는 건 어려웠고 대부분은 죽이거나 아주 운이 좋아도 광산 등의 힘든 작업장에 배치되는 게 대부분이었다.
적의 핏줄을 살려 둘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이런 건 수십 년 전의 일로, 최근 들어선 영지전 자체가 없었다.
다들 먹고살기도 바빠 전쟁을 할 힘도 없었던 것인데 거기에 반다스 남작이 불을 지폈다.
‘이런 제안을 하면 백작으로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군.’
처형되었다고 여기고 공세에 나설 텐데 식솔을 들이밀면 그 표정은 참 볼 만할 것이다.
가신의 식솔을 보살피지 않는 군주만큼 꼴불견은 없을 테니까.
루아드 왕자는 모든 것을 준비된 것처럼 착착 진행하는 반다스 남작에게 약간의 공포를 느꼈다.
혹시 이번 전쟁을 그가 계획한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 영지에 틀어박혀 있던 그가 어찌 이올린과 프로잔의 성정까지 파악한단 말인가.’
레오볼드의 입장에선 은광을 탐내는 누군가가 란티스 백작과 손을 잡으면 그만이었다.
그게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쨌든 루아드 왕자는 이번에 그가 왕도에 오면 하나를 물어보고 싶었다.
과연 그는 바그란 왕가에 충성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