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28
227화 뜻밖의 보물
탐사정이 해저에서 끌어올린 물건은 정체불명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관이었다.
레오볼드가 그걸 관이라고 생각한 것은 사람 하나가 들어가기에 딱 맞는 사이즈였기 때문이다.
녹색 광택이 살짝 도는 금속은 깊은 해저에 최소 수십 년 이상 잠겨 있었음에도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아르마가 관 옆에서 홀로그램의 데이터를 넘겼다.
“녹색 빛이 감도는 걸로 봐서 전설 속의 금속인 아다만티움 같네요. 아스테라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이라고 합니다.”
“일단 에테르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건 알겠어.”
에테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금속인데 강도는 물론이고 경도도 상상을 초월했다.
다이아몬드 커터로 긁어도 자그마한 흠집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건 어떻게 캐내고 제련하는 거지?”
“신화에 의하면 신이나 드래곤의 마법으로 제련한다… 고 되어 있네요. 엘브랑데에서 쓰이는 것을 보면 과장되었을 확률이 높지만요.”
“이 안에 있는 건 둘과 관련이 있는 물체라는 뜻이군.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마스터의 힘으로 열리지 않을까요?”
“내가? 난 여기 아스테라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
아르마가 그의 가슴팍을 쓰다듬었다.
“여기에 열쇠를 가지고 계시잖아요. 그것도 선지자가 준 선물이죠.”
레오볼드는 화성에 온 선지자의 유물을 두 개나 흡수했다.
그것으로 행성 녹스의 워프게이트를 열긴 했지만 여기와는 별 관련이 없어 보였다.
“일단 시도는 해 보자고.”
그의 손이 관에 닿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흡사 리빙메탈이 조립되는 것처럼 철컥철컥하는 소리가 나더니 관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2미터가 넘는 건장한 체구를 가진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죽은 건가?”
“생체반응은 없지만 내부 장기나 뇌 등은 멀쩡합니다. 코마 8단계로 추측됩니다.”
“의식만 없을 뿐이라는 거군. 어느 시대의 인간일 것 같아?”
“복식을 확인한 결과 200년 전 그람 제국의 귀족으로 추정됩니다.”
“지금의 그람 왕국과 같은 계보인가?”
그람 왕국은 바그란 서쪽에 붙어 있는 작은 국가로 인구는 100만도 되지 않는다.
특이한 점은 그 작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기사가 상당히 많이 배출된다는 것이다.
마법사나 에테르 공학자에 비해 기사의 재능을 가진 자가 월등히 많아서 기사의 나라라고도 불린다.
덕분에 자이움 제국에 자주 시달리는 형편이었다.
“혈통은 방계로 바뀌었으나 능력은 여전하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사가 많이 탄생하는 것이겠죠.”
“어쩌면 이 남자는 그람 제국의 황족일지도 모르겠군.”
평범한 사람을 해저의 유적지에 보관하지는 않을 테니까.
유적의 문양을 분석하던 아르마가 몇 가지를 보고했다.
“마스터, 유적에서 알테마의 선수상과 흡사한 문양을 다수 발견했습니다.”
“이건 확실히 알테마인데…….”
문양도 한두 개가 아니라 반복해서 나타나는 걸 보면 알테마의 신전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알테마 신앙이 거의 사라진 상태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상당한 위세를 자랑했다고 하니까.
“그람 제국은 알테마 신앙이 활발하던 곳이라 이런 문양을 새겨 둔 건지도 모르겠어.”
“제 판단으로는 이 남자의 정체는 알테마의 챔피언 같습니다.”
레오볼드는 그녀의 말에 턱을 쓰다듬었다.
“보통은 신의 챔피언이라고 하지 않나? 드래곤에게 그 정도의 힘이 있을까?”
지갈레온을 생각하면 솔직히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 유사 드래곤이 힘을 나눠 줬다간 빈 깡통이 되고 말 것이다.
아르마는 문헌에 나타난 여러 드래곤을 열거했다.
“알테마, 발라카스, 크로나크… 모두 신에 근접하거나 능가하는 힘을 보였던 드래곤이죠. 그들이라면 챔피언에게 힘을 나눠 줄 수도 있을 거예요.”
“드래곤의 챔피언이라…….”
무슨 사정으로 이 단단한 관에 잠들어 있는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이 남자가 범상치 않은 신분을 가졌으며 200년 전 당시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대전쟁, 혹은 드래곤 전쟁으로 불렸던 200년 전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일부 나이가 든 엘프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고 대부분의 기록은 사라졌다.
극소수 남은 문헌은 무한의 도서관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남자가 당시에 대한 기억을 알려 줄지도 모른다.
“일단 꺼내서 치료용 캡슐에 넣어. 나중에 의식이 돌아오면 보고하고.”
“네, 알겠습니다.”
* * *
해적군도에 갔던 그랜든 휘하 병사들이 복귀했다.
그들은 많은 귀와 노예, 그리고 보물을 가지고 당당히 육지에 상륙했다.
레오볼드는 일단 반다스 마을에 임시 보호소를 지어 노예들이 휴식할 수 있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 참여한 모든 인원에게 포상을 내렸다.
“전투에 직접 참여했다면 10골드, 시체를 치우는 등 간접적으로 도왔다면 3골드를 지급하겠다.”
“오오오!”
“영주님 만세!”
사람들이 레오볼드를 따르는 것은 항상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영주들은 온갖 부역에 혹독한 세금을 물렸지만 그는 언제나 영지민을 존중했고 부역에는 합당한 보상을 해 주었다.
그 결과 영주가 시키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사람이 늘어났다.
신뢰가 형성된 것이다.
다들 환호하는 와중에 카슨 행정관은 울상이 되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해적군도에서 강탈해 온 보물의 양이 생각보다 엄청났기 때문이다.
관료들이 달려들어서 분류 및 감정에 들어갔고 얼마 후 레오볼드의 집무실에 가지런히 놓였다.
“보석은 다른 곳에 보내서 정밀 감정을 받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금은은 4만 골드에 육박하고 보검이나 장신구 등에 달려 있는 것을 합치면 최종적으론 5만 골드가 넘을 것 같습니다.”
상당한 양이지만 레오볼드의 시선을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는 검 형상의 열쇠를 잡았다.
“끝부분을 보니 열쇠인 것 같은데 뭐가 이렇게 크지? 이런 열쇠 본 적 있소?”
“아뇨, 전혀.”
다들 고개를 저었다.
루시아가 들어와서 레오볼드의 어깨에 앉았다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열쇠에서 에테르가 느껴져.
“그래? 그럼 어딘가에 쓰였던 게 확실하군.”
―그거 아마 골리앗의 열쇠일 거야. 예전에는 그런 식으로 골리앗에 시동을 걸었거든.
무슨 판타지 게임도 아니고.
‘아, 여긴 판타지 세상이었지.’
레오볼드는 새삼 자신이 드래곤과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검을 집어 들었다.
“꽤 묵직하군. 이걸 집어넣을 만한 녀석이라면 기대해도 괜찮을까?”
―당시의 골리앗은 다들 덩치가 굉장했으니까 그만큼 출력도 높았을 거야. 그나저나 이상한 인간을 주웠다며?
레오볼드는 손을 저어 관료들에게 나가라고 지시했다.
“주운 게 아니라 해저에서 관에 누워 있던 걸 데려온 거야. 아다만티움으로 된 관이었지.”
―아다만티움! 그거 에테르 연구에 필요한데!
“에테르 연구에 그게 왜 필요해? 아무런 반응을 안 보이는데.”
“반응탄을 보관할 때도 플라즈마를 쓰잖아? 같은 이치야.”
자신이 삼키려 한 폭탄의 정체가 뭔지 들은 모양이다.
아무튼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에테르를 고압축하기 위해선 아주 튼튼한 용기가 필요한데 거기에 아다만티움이 쓰인단다.
희귀한 금속인 만큼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데 에테르 연구에 반드시 필요해서 가격이 금의 수십 배에 달한다고.
“이 정도 양이면 괜찮을까?”
홀로그램을 켜서 관을 보여 주자 그녀가 어깨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엄청난 양이네! 고마워, 마스터!
장차 플레이그 퀸이 될지도 모르는 루시아에게 볼 키스를 받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지금까지는 얌전하니 믿어 봐야겠지.’
레오볼드는 그녀를 어깨에서 내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전에 자이움 국경선 지하에 골리앗이 한 대 파묻혀 있다고 그랬지?”
―대전쟁에 사용되었던 골리앗이 확실해. 아마 챔피언이 타던 걸 거야.
“구멍을 팔 거니 그 골리앗이 맞는지 직접 확인하고 와. 내친김에 이 열쇠가 들어맞는지도 확인하고.”
―윽, 나보고 땅속에 들어가라고?
“그럼 내가 들어갈까?”
그녀는 어울리지도 않는 앙탈을 선보였다가 주인의 고집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만 깨닫고 항복했다.
아무튼 해적군도를 턴 덕분에 영지의 재정이 풍족해졌다.
당장 쓸 수 있는 돈만 30만 골드가 넘었고 관저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각종 보물까지 내다 팔면 40만 골드에 육박했다.
어마어마한 돈인 만큼 바그란 동부의 인플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기에 당분간은 영지 내부의 시설 건설과 식량 구입에만 쓰기로 했다.
그리고 반다스 자작령에서 섀도우 엘프 해적을 격퇴했다는 소식이 상인들에게 흘러 들어 갔다.
레오볼드는 영지민들의 입단속을 시켰지만 직접 겪은 사람이 워낙 많아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런 소문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뭐? 수천 명의 해적을 박멸하고 해적군도에 쳐들어가서 보물을 싹 털어 왔다고? 무슨 500년 전 모험 소설 얘기야?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말하고 싶지만 반다스 자작 주위에서 그런 말이 자주 나오다 보니까… 그래서 증거는 있답니까?
―지금 오하멜시에 가보면 개가 금화를 물고 다닌다고!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니지만 반다스 자작령에 돈이 많이 풀린 것은 사실이었다.
평민들도 여유 자금이 생긴 덕분에 이런저런 사업을 시도하고 있었고 자연스레 상인들의 출입도 잦았다.
근처의 핀도르 남작령과 비교하면 이게 같은 나라에 있는 비슷한 처지의 영지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정도였다.
루아드 왕자도 소식을 듣곤 곧장 레오볼드에게 연락을 취했다.
“해적을 완전히 토벌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저하. 최소한 바그란 주위에서 섀도우 엘프 해적들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 해적 두목을 놓아 주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
왕자는 해적이 사라졌다는 것이 매우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10년 전에 먹은 빵이 내려가는 기분이로군. 경이 더 잘 알겠지만 그 해적들은 바그란과 여러 나라의 골칫거리였소. 아마 자이움에서도 경의 성과를 치하할 것이오. 그런데 하나만 물어도 되겠소?”
보나 마나 해적을 토벌한 힘에 대해 묻고 싶을 것이다.
평범한 영지, 아니 어지간한 국가에서도 엄두도 내지 못하던 걸 뚝딱 해치웠으니.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바그란에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대놓고 이야기하기 싫다고 말했음에도 루아드 왕자는 화를 내지 않았다.
“전에 왕궁에 왔을 때도 그 말을 했었지. 그 결심, 절대 잊지 않길 바라겠소. 아무튼 전하께서도 이번 일을 크게 기뻐하고 계시오. 포상금은 곧 전달될 거고 그 외에 재미있는 말씀도 하셨소.”
“어떤 겁니까?”
“그토록 유능하고 젊은 귀족이 홀로 지내는 게 안타깝다고… 원한다면 적당한 신부를 찾아 줄 수도 있는데 괜찮겠소?”
“…예?”
레오볼드는 오랜만에 당황했다.
설마 왕가가 중매를 설 줄은 몰랐던 것이다.
루아드 왕자는 그의 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에 기분이 좋은지 쾌활하게 웃었다.
“하하, 하이 나이트도 무릎 꿇린 반다스 자작도 결혼 얘기엔 깜짝 놀랄 수밖에 없나 보군. 상대는 자이움의 크로이츠 백작인데 생각 있소?”
자이움의 크로이츠 백작이라…….
아르마가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정보를 시야에 표시해 주었다.
「카밀라 크로이츠 백작. 여성의 몸으로 아버지의 작위를 이은 기사입니다. 성격이 굉장히 난폭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력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장차 자이움의 총사령관이 될 재목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그런 여자가 왜 소국의 자작 따위와 결혼하려 하는 거지?’
대답이 없자 루아드 왕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꺼려지는가 보군. 하긴 크로이츠 백작이라면 괄괄한 걸로 유명하니까……. 그녀가 원하는 사람은 착실하게 가문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성실한 귀족이오. 경이라면 거기에 딱 맞지.”
“이미 말씀하셨군요.”
“내가 말한 게 아니라 프로잔 후작의 소행이오. 그 사람도 입이 참 가볍다니까. 어떻소? 한번 만나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레오볼드는 아르마 외의 여자에겐 큰 관심이 없었다.
가끔 인공지능도 여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십 년을 붙어 지내다 보니 그녀 없는 삶을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아르마는 그의 파트너이자 부관이고 애인이자 아내였다.
물론 다른 여성도 충분한 실력을 가졌다면 중용하겠지만 이성으로서 관심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의 목적은 너무도 멀고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송구스럽습니다, 저하.”
“으음, 거절이로군. 예상했던 바지만 그리 쉽게 도망갈 순 없을 거요. 왜냐면 크로이츠 백작이 경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니까.”
“작은 영지를 가진 귀족에게 왜 관심을 가지는 걸까요?”
“나도 들은 거지만 그녀가 원하는 남편감은 돈을 많이 벌어 영지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귀족이라고 하오. 자신이 자이움 내에서 싸울 기반을 만들고 싶은 것이겠지.”
워낙 암투와 내전으로 유명한 자이움이다 보니 그런 게 필요한 모양이다.
내부에서 변변한 사람을 못 찾은 것 같지만 레오볼드가 신경 쓸 건 아니었다.
‘당장 자이움과 접촉할 건 아니니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겠지.’
진짜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 * *
반다스 자작령에 새로운 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것은 본격적인 조선소였다.
하나는 바다에 띄울 배를 건조할 조선소이고 두 번째는 비행선을 건조할 예정이었다.
왕도의 내로라하는 장인들을 데리고 온 상인들은 그 얘기를 듣고는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해적을 토벌했으니 배를 띄우는 건 이해가 가는데 비행선을? 에테르 추진기는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여기에 마법사가 오긴 했지만 뭘 만들 정도는 아닐 텐데…….”
“뭐, 돈이 많으니까 이것저것 해 보는 거겠죠.”
이상한 게 있다면 반다스 자작은 항상 낮게 평가된다는 점이었다.
그는 란티스 백작의 음모를 정면에서 파괴했고 동쪽 바다의 섀도우 엘프를 박멸하는 것까지 성공했다.
바그란 동부에선 어지간한 백작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돈도 많았다.
그럼에도 영지민 외의 사람들은 그를 얕잡아 보니 희한한 일이었다.
심지어 계산에 능숙한 상인들마저 그가 가지 돈을 탐낼지언정 높게 치진 않았다.
그것은 아무래도 바그란 귀족들과의 친분이 없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권력도 힘도 돈도 좋지만 역시 가장 좋은 건 인맥이지.
―다 좋은데 토벌을 하기 전에 주변 영지에 연락은 해 줄 수 있지 않았나? 영주들도 은근히 바랐던 것 같은데.
―영주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올린 공주와 란티스 백작을 적으로 돌렸군. 반다스 자작은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 그게 치명적인 단점이야.
다만 레오볼드에게 허울만 좋은 귀족은 인맥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실질적으로 문명을 이끌어 나가는 기술자와 노동자 계층이었다.
물론 바그란, 더 나아가 아스테라 전체에서 귀족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제국을 세우는 과정에서 모조리 쓸려 나갈 예정이기 때문에 큰 관심을 쏟지 않는 것이다.
귀족 중심의 관점을 버리지 않는 한 레오볼드의 진짜 힘을 정확하게 볼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런 선입견과 상관없이 레오볼드의 영지는 차근차근 발전을 이뤄 내고 있었다.
드워프 불토른이 이끄는 공방이 드디어 효율 좋은 에테르 기관의 개발에 성공했고 곧 시운전을 할 예정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유대륙으로 떠났던 선단이 선창 가득 화물을 싣고 복귀했다.
어찌나 많이 실었는지 비행선이 계류장 상공에 머무를 때 하마터면 추락할 뻔했다.
레오볼드는 힘든 여정을 다녀온 카티나와 엘윈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오늘부로 그대들은 나의 기사이다. 부디 무예와 지성을 갈고닦아 나를 보좌해 주길 바란다.”
“영주께 영원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엘윈이 두 손으로 검을 받아들고 경건하게 맹세한 것에 비해 카티나는 고개를 빼꼼 들었다.
“그, 이제부턴 영주님이라 불러야 되는 거죠?”
“이제부턴 익숙해지는 게 좋아. 기사로 만족하고 싶지는 않잖아?”
“오, 그렇네요.”
카티나는 마냥 히히 웃었지만 엘윈은 그의 야심을 읽었다.
기사에게 작위를 수여하기 위해선 군주 역시 높은 작위여야 한다.
높은 작위를 가진 여성과 결혼해 이어받는 방법도 있지만 아르마만 총애하는 그가 다른 여성을 받아들일 것 같진 않았다.
‘조만간 란티스 백작령과 전쟁이 있겠군.’
그는 작위 수여식이 끝난 뒤 선창에 실린 화물의 견본품과 목록만 영주에게 바쳤다.
“이번 부유대륙 원정에서 저희가 확보한 것들입니다. 햄튼 선장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레오볼드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목록을 보곤 만족했다.
엘윈은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빨라서 일 처리 또한 시원시원했다.
앞으로도 중임을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딱 좋군. 금은은 녹이면 9만 골드에 에테르석을 만들 수 있는 수정과 각종 보석을 함유한 광물이라…….”
그 외에 특이한 게 있다면 부유대륙에서 자생하는 작물이었다.
원래 있던 건 아니었고 아르마가 탐사정을 동원해 몰래 심어 놓은 것들이다.
태양계의 달 뒷면에 언옵테늄을 뿌려 놓은 것과 비슷한 방법이지만 스케일은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카티나가 주먹만 한 감자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일단 캐자고 해서 캤는데 아무래도 독이 있을 것 같지 않… 아요? 영주님?”
“모르겠는데. 누구에게 먹여 봐야겠어.”
레오볼드는 기필코 화물을 구경해야겠다며 등장한 지온에게 깨끗이 씻은 감자를 던졌다.
그는 이게 웬 과일이냐고 하면서 덥석 깨물었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야! 맛없잖아!”
레오볼드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곤 어깨를 으쓱했다.
“최소한 독은 없는 모양이야.”
“그, 그렇군요…….”
독은 없어도 당장 이 감자를 영지민에게 보급할 수는 없었다.
물량도 물량이지만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입맛은 상당히 보수적이라서 새로운 향이나 맛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레오볼드도 지구에 있을 땐 한국인의 식습관을 가져서인지 이국적인 식재료에 고생을 한 적이 꽤 있다.
‘예를 들면 고수라든가… 고수밖에 없군.’
어지간한 것은 잘 먹는 그였기에 아스테라에 와서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하여튼 선단이 가져온 작물은 감자 외에도 고구마와 딸기 등으로 꽤 다양했다.
다들 감자와 고구마에는 무신경했지만 딸기엔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거 딸기 맞죠? 엘브랑데에서 비밀리에 재배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크네요.”
“부유대륙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참 많군요.”
사실 선단이 가져온 딸기는 지구의 품종을 개량한 것이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편집한 덕분에 생장은 빠르면서도 병해충에 상당한 저항성을 가지는 딸기가 탄생했다.
맛도 설탕을 넣었나 싶을 정도로 달아 엘브랑데산 산딸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다들 한 입씩 맛을 보고는 감탄하기에 바빴다.
“확실히 과일은 감자나 고구마와는 다르게 빠르게 받아들이는군.”
“엘브랑데산 과일이 워낙 고급품으로 인식되어 있거든요. 냉장 수단도 그리 많지 않아 더더욱 비싸죠.”
“청어 때처럼 직접 나서서 재배를 좀 해 봐. 이젠 사람들도 그러려니 할 거야.”
레오볼드와 아르마가 워낙 이상한 행동을 많이 하고 또 그게 엄청난 성과를 가져온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그러려니 하는 지경에 도달했다.
영주를 의심해 봐야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으니 생각을 포기한 것에 가깝지만.
“오랜만에 텃밭을 하나 가꿔 볼게요.”
아르마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밭을 갈자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봤다.
그리고 6월이 되자 란티스 백작이 바그란 동부에서 활동하는 상단의 간부들을 불러 모았다.
“여러분을 부른 것은 밀 수확이 머지않았기 때문이오. 금년은 그다지 풍작이라 할 수 없어서 각 상단에 할당되는 양을 줄여야 할 것 같소. 그러나 내가 지시하는 대로만 하면 공급량은 이전과 같을 거요.”
상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밀은 물론 중요한 작물이지만 백작이 직접 나서서 공급량을 조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이런 말을 꺼냈다는 건 누구의 영지에 들어가는 밀을 줄이고 싶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가 누구인가는 정해져 있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백작님.”
다들 고개를 숙이자 란티스 백작이 흡족하게 웃었다.
그는 반다스 자작을 증오했지만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살벌한 섀도우 엘프 해적을 박살 냈다니 미친놈이 따로 없군…….’
하지만 그런 놈이더라도 없는 식량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 수확이 시작되는 가을까진 본격적인 춘궁기인데 반다스 자작이 무슨 대책을 세워 놨을지 궁금했다.
‘실컷 발버둥 쳐 봐라. 그래 봐야 네놈은 내게 구걸하러 오게 되어 있으니까.’
무릎을 꿇은 그의 앞에서 매정하게 거절하는 자신을 생각하면 실로 웃음만 나왔다.
고위 귀족답지 않은 옹졸한 처사지만 그가 자신에게 안겨 준 치욕은 너무나도 컸다.
란티스 백작은 그것을 갚아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