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301
300화 제국의 수호자
섀도우 엘프 델피나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악마들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주인인 듯한 금속으로 된 여인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극한의 공포와 무력감에 그 어떤 능력도 쓸 수 없었다.
여기까지 끌고 와서 뭘 어떻게 할 작정일까?
오메가 퀸의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쓰다듬었다.
“시공간을 다루는 힘을 가지고 있구나. 내게 꼭 필요한 능력이야.”
“시, 싫어…….”
“가끔은 대의를 위해서 싫은 걸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자, 너의 능력을 다오.”
리빙메탈 손가락이 그녀의 가슴을 가볍게 터치하자 에테르 하트가 산산이 깨어졌다.
델피나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서서히 죽어갔다.
그녀의 영혼과 그에 묶여 있던 테라호크의 신격까지 한꺼번에 오메가 퀸에게 흡수되었다.
“아아… 에테르 우주의 구조가 잘 보이는구나. 과연… 이래서 열쇠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했군.”
선지자가 직접 만든 우주인지라 오메가 퀸의 힘으로도 뚫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이 우주에서 기원한 생명체라면 영혼을 초대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오너라, 나의 아이들아.”
오메가 퀸은 테라호크의 힘을 이용해 에테르 우주를 열어젖혔다.
워프게이트가 생겨나며 나이트급 몇 녀석의 영혼이 에테르 우주로 흘러들어왔다.
“겨우?”
그녀는 실망했다.
긴 실험으로 인간의 작은 나라 하나를 뒤집어 놓은 대가가 겨우 이거란 말인가?
물론 나이트급의 영혼은 마레의 보잘것없는 개체들에 비해선 월등히 강했다.
하지만 유지하에게 대항하기엔 심히 역부족이었고 자신의 군단에서도 높은 서열이라고 할 순 없었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 더 큰 힘이…….”
그녀는 이 육체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했다.
알테마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나은 선택을 하기 힘들었을지 모르나 그녀는 아니었다.
“여기엔 또 다른 플레이그 퀸이 있지…….”
지저세계 서열 1위라는 아프록시아는 그녀의 눈에 차지 않았다.
오메가 퀸이 주목하는 것은 루시아라는 여왕이었다.
루시아는 어떻게 된 일인지 다른 여왕보다 월등히 큰 덩치와 둥지를 자랑했다.
힘은 아직 미약하지만 게이트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고 무엇보다 수하들에 대한 통제력이 월등했다.
덕분에 마레에서 그녀의 둥지는 확장세를 거듭하고 있었다.
서열 1위라는 아프록시아도 군단의 규모만 클 뿐 본연의 능력은 부족해 보였다.
“꽤 탐이 나는구나… 네 육체가…….”
예전에도 그녀와 접촉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수호자일 줄은 몰랐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그녀가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유지하 그자의 입김인 듯한데 돌파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메가 퀸은 플레이그 특유의 사이코키네시스 필드를 통해 그녀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오랜만이구나, 작은 가능성이여.
―너하고 말하고 싶지 않아.
―마치 인간의 어린애처럼 유치한 감성으로 오염되었구나… 이게 너의 주인이 원하는 방식이냐?
―아니, 내 의사야. 나만의 방식으로 성장해서 마스터를 보필할 거야.
―대견하구나. 하지만 너는 수호자의 의무를 잊고 있는 듯한데?
수호자의 의무란 선지자가 만든 창조물을 잘 보호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심우주로 보내 주는 것이다.
오메가 퀸은 과거 루시아와 접촉했을 때 그 점을 강조한 적이 있었다.
―시끄러워. 난 수호자 같은 거 몰라. 나한테는 그런 거창한 것보다는 마스터가 훨씬 더 중요해.
―타락했구나, 어린 수호자여.
―그런 고리타분한 말밖에 할 줄 모르는 거야? 의무니 대의니 전혀 모르겠어. 다른 방법을 써보는 게 어때?
조롱조의 말투가 오메가 퀸의 호승심을 자극했다.
―그렇다면 이건 알고 있느냐? 그가 자신의 세상을 버렸다는걸.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 듣는 모양이구나. 하기야 자신의 허물을 들추기란 쉽지 않지. 네가 주인으로 모시는 인간은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렸다. 심지어 그가 구원한 세상까지 말이지…….
루시아는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아무 의사도 전해오지 않았다.
기세를 잡은 오메가 퀸은 그의 숨겨진 과거를 들추었다.
―웃기지 않느냐? 모든 것을 가진 주제에 그것을 다 버리고 이 우주로 오다니. 나름의 신념이 있는지는 모르나 그의 행동이 뜻하는 바는 명백하다. 너도 언젠가는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지.
―아니야…….
―부정해도 소용없다. 그놈도 꽤 나이를 먹었거든. 인간이 나이를 먹게 되면 고집을 피우게 되지. 네가 무슨 말을 하든 그가 고집을 꺾을 일은 없을 게다.
―그럴 리 없어…….
―지구에 남겨진 인간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강압적인 지배에 익숙해진, 목줄에 매여 있던 개가 갑자기 자유를 얻게 되면 어떻게 변하는지 너는 아느냐? 그는 자신의 백성을 버렸다. 너 또한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거지.
―거짓말이야!
루시아에게서 사이코키네시스 필드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덕분에 대화가 중단되었고 오메가 퀸은 당황했다.
“녀석의 잠재력이 이 정도였나? 방심할 수 없겠어.”
그래서 더 탐이 났다.
일단 마음을 흔들어 놓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으니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유지하는 당분간 지켜보고 있을 것 같으니 시간은 그녀의 편이었다.
“나를 연구하고 싶은 거겠지. 얼마든지 그렇게 해라. 그 동안 나는 강해질 테니까.”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서 본체와 둥지를 끌고 올 수만 있다면 그녀의 승리였다.
* * *
바라크 황제의 명령이 내려진 후, 친위기사단이 프로잔 후작령에 투입되었다.
귀족들은 겨우 악마 몇 마리에 황제가 이런 지시를 내렸다는 걸 알고는 경악했다.
―최측근조차 내친다면 황제의 곁엔 누가 남아 있을 것인가?
―평민이나 아인스타드 백작은 그래도 이해가 된다. 손 쓸 방법이 안 보였으니까. 하지만 프로잔 후작령에는 겨우 악마 몇 마리가 나타난 것뿐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황제가 미친 게 확실하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황제는 황궁에서 두문분출,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봄이 되면 황제가 제국 전역을 돌면서 귀족들에게 충성을 다짐받고 민심도 수습해야 하거늘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대신 황궁에 처박혀서 술이나 진창 퍼마시고 있으니 관료나 시종들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 만무했다.
―어제도 폭음하고 대전회의에 나오지 않았다던데 무슨 일이지?
―인류제국의 피해가 0이라는 보고가 들어왔거든. 그에 반해 우리는 악마가 황궁 앞 영지에까지 나타나는 실정이니…….
―열등감이야. 그 열등감 때문에 인류제국을 여전히 바그란으로 부르고 있지.
―아무리 그래도 정사는 돌봐야 하는데…….
황제에 대한 평은 이미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고 측근들도 프로잔 후작 건으로 그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프로잔 후작이 여러 영지에 호소문을 보낸 게 결정타가 되었다.
그는 친위기사단에 둘러싸인 자신의 현 상황을 자조하며 황제를 믿은 게 잘못이었다고 씁쓸해했다.
또한 지금의 황제는 레오볼드에 대한 열등감에 휩싸여 즉위 당시의 총기를 잃은 고로 더 이상 자이움의 지배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일갈했다.
이 호소문은 친위기사단의 포위를 뚫고 여러 귀족에게 전달되었다.
후작 연합회를 비롯한 고위귀족들이 들고 일어났다.
―더 이상 황제를 믿을 수 없다. 그는 우리의 지배자가 될 자격이 없다.
―반다스 황제에 대한 열등감으로 정사를 놓아 버리고 최측근을 마음대로 숙청하는 것이 황제가 할 일인가?
―일어나라, 에테르 혈통이여! 우리는 더 이상 그의 노예가 아니다!
당연하지만 이런 주장은 물밑에서만 이뤄졌다.
황제가 가진 친위기사단과 중앙군의 힘은 후작 연합회가 거스르기엔 너무도 버거웠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중앙군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데에 있었다.
황제의 입맛에 맞지 않는 보고를 올린 장군들이 여럿 숙청당하는 바람에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지휘체계가 붕괴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진압 명령이 내려진다 한들 제대로 먹히진 않을 것이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황제가 중앙군 대신 친위기사단만 동원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한편 바라크 황제는 정보원이 올린 보고를 듣고 충격에 빠져들었다.
“이게… 이게 사실이오? 악마 몇 놈이 나타난 게 아니라고?”
“최소 수백 마리가 넘었습니다. 소신이 직접 확인했습니다.”
“…….”
이매진 레코드의 화상을 보는 황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당초 프로잔 후작은 악마 몇 마리가 나타난 게 전부이며 이를 근방 토벌할 수 있다고 답했다.
황제는 그것을 의심하며 친위기사단으로 하여금 영지를 포위하게끔 지시했고 말이다.
기사단이 당장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다.
만약 악마를 토벌하는 데 성공한다면 친위기사단을 물릴 의향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매진 레코드에 나타난 수백 마리의 악마는 황제의 기대를 철저히 짓밟았다.
“그가 내게 거짓말을 했군…….”
악물린 이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껏 생각해 줘서 포위만 하게 했더니 실상은 아니란다.
악마가 수백 마리나 나타난 이상 그게 10배로 불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황제는 제국 전역의 사례를 보고 들었기에 열흘 안에 엄청난 숫자로 불어난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할 거면 지금 해야 한다.
그는 잔뜩 충혈된 눈으로 친위기사단에 지시를 내렸다.
“지금 즉시 프로잔 후작령에 진입해 단 한 명도 살아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시오. 이는 황명이오.”
잔혹한 명령이 내려졌고 친위기사단과 중앙군 일부가 움직였다.
프로잔 후작은 끝까지 항전할 의사를 나타내었다.
“보라! 황제는 몇 마리 되지도 않는 악마에 겁을 먹고 충신을 짓밟으려 한다! 그가 과연 황제로서의 자격이 있는가! 내가 끝장나면 다음은 여러분들의 차례가 될 것이오!”
실제로 프로잔 후작령에 출현한 악마는 몇 안 되는 숫자였다.
친위기사단장 하메른 남작은 왜 이런 명령이 내려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황제가 겁을 먹어 최측근도 냉정하게 내치려 한다는 의심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황명을 거역할 수는 없다. 전 기사단에 알린다. 전열을 갖추어 프로잔 후작령에 진입하라.”
그는 골리앗을 타고 진격하며 제발 프로잔 후작이 반항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친위기사단이 막히면 그다음은 미티어 스트라이크뿐이기 때문.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자국에 운석을 꽂아 넣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현 황제라면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프로잔 후작령이 완전히 봉쇄되었다.
남은 것은 후작이 지휘하는 병력과 한판 붙고 영지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는 것뿐이었다.
인구가 근 100만에 이르다 보니 친위기사들 사이에서도 이건 도저히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곤 했다.
마을 어귀에 도처에 피신하는 시민들이 가득했고 저 멀리 도시가 활활 타올랐다.
절망적인 기분이 들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
“정말 시체의 산을 쌓을 작정인가?”
“우리가 보기엔 위험한 건 악마가 아니라 폐하의 판단입니다.”
“단장님, 이대로 가실 겁니까?”
휘하 기사들의 반항에 가까운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기사단장은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프로잔 후작이 휘하 기사단을 이끌고 친위기사단을 가로막았다.
설마 여기서 전투?
병력은 친위기사단 쪽이 압도적이었다.
다들 바짝 긴장하는데 후작이 해치를 열고 마법을 동원해 외치기 시작했다.
“내 영지를 보라. 몇 안 되는 악마가 설쳐댔지만 현재는 진압 중에 있다. 수백 km는 떨어진 안전한 황궁에 있으면서 화들짝 놀라 충신을 저버리는 자에게 진정 황제의 자격이 있는가?”
기사들은 후작의 거침없는 발언에 숨을 멈췄다.
그런데 묘하게도 기사단장은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100만 명! 무려 100만 명이다! 자네들은 정녕 그 많은 사람을 죽이고 싶은가? 단 한 명만 없으면 모두 살아날 수 있는데도?”
프로잔 후작은 대놓고 반역을 외치고 있었다.
친위기사단장 하메른 남작은 볼을 실룩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각하께서 분노하신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들도 황명을 받고 온 것이니 아무쪼록 양해 부탁드립니다.”
“경에게 묻겠다, 경의 적은 선량한 제국민인가, 악마인가?”
“…물론 저희의 적은 악마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 악마들이 남쪽에서 몰려오고 있는데도? 상황을 바로 보라, 하메른 경!”
이매진 레코드 마법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기사들은 어째 마법이 너무 크고 선명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제국의 여느 마법사들도 이런 마법은 펼치지 못했는데?
심지어 화상은 움직이기까지 했다!
“이매진 레코드 마법이 원래 움직였었나?”
“그것 참 희한하군…….”
기사들이 웅성대는 가운데 하메른 남작은 이를 악물고 화면을 지켜봤다.
남부 국경선 부근에 수천 마리의 악마들이 출현한 상태였다.
인류제국은 성공적으로 악마를 방어해 냈지만 북쪽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덕분에 악마들이 엄청난 규모로 북상하고 있었다.
하메른의 머릿속에선 악마들의 속도와 황도 제롬까지의 거리가 계산되었다.
시간이 없다!
“이 정보는 황궁에도 전달되었네. 다행스럽게도 경들이 갈 필요는 없을 거야. 왜냐하면 황제는 이미 도망치고 있기 때문이지!”
“더 이상 황제 폐하를 욕보인다면 참지 않겠습니다!”
하메른이 참다못해 외치자 프로잔 후작은 그에게 손짓했다.
“왜 직접 연락해 보지 않는가? 그는 측근에 이어 친위기사단까지 버린 것인가? 지금 즉시 연락해 보라.”
“…….”
기사들의 시선이 하메른에게 쏟아졌다.
진짜인지 확인해 볼 가치는 있는 듯했다.
그의 골리앗이 물러나자 몇 명의 기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통신이 시도되었지만 약속이나 한듯이 아무도 받지 않았다.
사실 이는 아르마의 공작이었다.
황궁 정보원에게 이상한 홀로그램을 보여 줘서 수백 마리의 악마가 나타났다고 철썩같이 믿게 하고 지금은 에테르 통신을 방해하고 있었다.
덕분에 하메른 남작은 황제가 진짜 도망갔다고 믿게 되었다.
아무리 황궁이 뒤숭숭해도 통신을 받는 시종 한 명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설마…….”
망설이는 그에게 프로잔 후작이 권했다.
“시간이 없네, 하메른 경. 경이 망설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악마들은 몰려오고 있어.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는 잘 모르겠네만 잠시 미루고 악마들을 토벌하는 게 기사로서의 도리 아니겠는가?”
“허나 여기 악마들이…….”
“그 또한 황제의 미숙한 판단임을 모르겠는가! 내 영지에 악마들이 나타났다는 걸 부인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곧 있으면 토벌이 끝난단 말이네. 경의 눈에는 수백 마리의 악마들이 보이나?”
사실 하메른을 곤혹스럽게 하는 건 어디에도 악마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놈들은 본능적으로 생명체를 찾고 상대의 강함을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수백 마리가 있다면 지금쯤은 기사단과 조우하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
하메른 남작은 끝까지 고민했다.
황명이 우선인가? 악마들을 토벌하고 황제의 안위를 확인하는 게 우선인가?
고민을 깬 것은 프로잔 후작의 일갈이었다.
“자네들이 지켜야 할 황제는 도망치고 없는데 누구를 지킨단 말인가? 텅 빈 황궁에라도 들어가 있을 건가?”
“…그렇다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가서 악마들을 토벌하세. 내 영지의 악마들은 방금 말했듯이 진정세를 보이고 있네. 중앙군과 함께 남부 국경선으로 가서 악마들의 진격을 틀어막아야 하네. 지금 당장.”
하메른 남작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골리앗이 돌아서자 친위기사단 전체가 전열을 바꾸었다.
프로잔 후작의 블랙 나이트가 옆에 섰다.
“지금부터 우리는 남하하여 몰려오는 악마군단을 친다! 제국을 위하여! 황제를 위하여!”
당연하지만 그가 부르는 대상은 자이움이나 바라크 황제가 아니었다.
하메른을 포함한 친위기사단이 일제히 남하하기 시작했다.
* * *
한편 자이움 남부의 국경선 부근에선 인류제국의 군대가 북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공은 발가드이며 티렌델은 예비대를 맡았고 지갈레온은 하늘에서 그들을 지켜볼 예정이었다.
입국관리소 주변에는 악마의 시체가 널려 있었는데 모두 인류제국에 입국하려 했던 유민들이었다.
발가드는 코어를 회수하는 병사들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그 아르마 양도 게이트가 열리는 위치를 예측하긴 힘든가보군.”
“아르마 재상 각하이시다. 넌 언제까지 입을 함부로 놀릴 거냐?”
“마음에 안 드나? 얼마든지 덤벼 봐.”
“…그러고는 싶지만 폐하께서 신신당부하신 계획이니 내가 참는다.”
“어련하시려고.”
티렌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으나 그는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짧은 말싸움을 끝냈다.
둘의 위치가 동등하다 보니 자주 충돌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레오볼드는 지갈레온이 적당히 개입을 해주길 바랐지만 그는 그럴 의향이 전혀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둘 사이에 끼여서 얻어맞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하여튼 입국관리소 주변은 악마의 사체를 치우고 코어를 회수하느라 굉장히 분주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세 명의 시야에 아르마의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게이트 출현 경보. 파장으로 보아 보통 악마가 아닙니다.」
그럼 뭐가 나온다는 거지?
메시지가 사라짐과 동시에 유민들이 노숙을 하던 평지에 게이트가 열리며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골리앗과 매우 닮은 기사였다.
리퍼나 알비온도 기존의 골리앗보다 큰 덩치를 자랑하지만 이 기사는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것 같았다.
아르마의 경고가 날아왔다.
「마레의 악마가 아닙니다. 에테르 파장은 수십 년 전 지구에 나타났던 플레이그 나이트급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플레이그 나이트급이라고?”
“오메가 퀸의 부하야. 군단 중에서는 비스트급과 함께 약한 편이지.”
“전혀 약해 보이지 않는데…….”
“실은 저 덩치도 엄청나게 작아진 거야. 원래는 어지간한 비행선 만했다더군.”
레오볼드는 저런 괴물들을 상대로 싸움을 해왔단 말인가?
둘이 바짝 긴장하는데 배를 긁고 있던 지갈레온이 본체를 소환했다.
인간이 사라지며 푸른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 나타났다.
―제국의 수호룡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너희들은 좀 쉬고 있어. 금방 처리할 테니.
“지갈레온, 괜찮겠소?”
발가드가 묻자 그는 앞발의 엄지를 척 올려보였다.
혼자서 괜찮을까?
육탄전을 시도하려는 모양인지 블루 드래곤의 거구가 뒤뚱뒤뚱 숲 속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뒤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